진단의 시대 - 진단은 어떻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수잰 오설리번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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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의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다. 백신은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퇴치했고, 항생제는 한때 치명적이었던 감염을 일상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만들었다. 첨단 영상 기술과 유전자 검사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정밀하게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30년 경력의 신경과 전문의 수잔 오설리번(Suzanne O'Sullivan)은 그녀의 신작 <진단의 시대(The Age of Diagnosis)>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혹시 너무 많이 진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학적 라벨을 붙이는 것이 항상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자폐증, ADHD, 암, 라임병, 롱코비드 등 다양한 질환의 진단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 앞에서, 오설리번은 우리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비관론과 의학이 더욱 정교해졌다는 낙관론 사이에서 제3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더 아픈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 많은 것을 질병으로 귀속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설리번은 현대 의학의 문제를 "과잉의 삼위일체"로 개념화한다. 첫째, 과잉진단(overdiagnosis)은 치료가 꼭 필요하지 않은 의학적 문제를 치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일부 암 조기 검진 프로그램은 실제로 암으로 진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이상 징후를 발견하여, 환자에게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70세 이상 여성의 유방암 과잉진단율이 3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는 불필요한 유방절제술, 방사선 치료, 화학요법을 의미한다. 둘째, 과잉의료화(overmedicalisation)는 비의학적 행동이나 특성을 의사의 영역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정상적인 개인차, 일상적인 슬픔과 불안, 삶의 불완전함이 점점 더 의학적 장애로 규정되고 있다. 오설리번은 자신의 진료실을 찾는 20~30대 젊은이들이 이미 수많은 진단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투렛증후군, 난독증, 자폐증, ADHD, 우울증, 불안장애 등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진단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셋째, 이 두 현상의 근저에는 과잉탐지(overdetection)가 자리한다. 우리는 질병의 신호를 점점 더 잘 식별해내고 있지만,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조기에, 그리고 그 지표들이 실제 질병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시점에 발견한다. 선별검사 프로그램, 영상 스캔, 유전자 검사 등 기술의 발전은 문제로 진행되지 않을 이상 징후들까지 탐지해낸다.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잠재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에 매혹되어, 탐지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함정에 빠진다.


오설리번이 주목하는 가장 극적인 사례는 행동 장애의 진단 증가다. ADHD는 1968년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처음 등장했을 때, 어린 아이들의 산만함과 안절부절못함을 설명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DSM 개정을 거치면서, ADHD는 이제 모든 연령대에 적용될 수 있고, 광범위한 증상과 심각도를 포괄하는 진단명이 되었다. 2018년 기준 미국 아동의 거의 10%가 ADHD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20년 전 6% 미만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자폐증의 경우는 더욱 인상적이다. 2022년 미국 아동 31명 중 1명이 자폐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2000년 150명 중 1명에서 급증한 것이다. 이러한 증가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자폐증의 실제 범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회의적이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폐증을 확진할 수 있는 혈액 검사나 스캔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설리번이 지적하듯, "진단은 전적으로 정상적인 행동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오설리번은 "진단 확대(diagnosis creep)"라는 개념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한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선이 천천히 이동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때 건강하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질병 집단으로 편입되는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오설리번이 ADHD와 자폐증이 실제 질환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가 문제 삼는 것은 과잉진단의 가능성이다.

오설리번은 가명 포피(Poppy)라는 자폐 청소년의 사례를 통해 진단이 가진 복잡한 의미를 보여준다. 포피는 자신이 "자폐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폐인"이라고 명확히 말한다. 자폐증은 그녀가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녀 존재 방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진단은 포피가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과거라면 포피는 반에서 "좀 이상한" 아이였을 것이고, 그 특이함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이제 라벨은 그녀가 비전형적인 존재임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중등도 또는 경증 자폐 진단을 받은 아동의 경우, 진단이 유익할 수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상당한 해를 끼친다는 새로운 증거도 나타나고 있다. 자존감 저하, 자폐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도를 꺼리게 되는 현상 등이다. 성인의 경우, 진단 자체로 인한 이득이나 해에 대한 증거는 희박하다. 이는 진단이 가진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진단은 동시에 해방적이면서도 제한적일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이해와 사회적 인정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낙인과 자기 제한적 신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오설리번이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연민과 배려, 그리고 품위로 가득 차 있다. 이는 나쁜 과학을 반박하는 글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을 피하는 중요한 접근법이다.


라임병과 롱코비드, 이 두 질환은 악명 높을 정도로 광범위한 증상을 가지고 있으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라임병의 원인은 잘 알려져 있다. 사슴 진드기가 전파하는 세균 감염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불신부터 제한적인 생물학적 증거에 기반한 거대한 과잉진단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부적절한 처우를 경험한다. 오진율은 무려 85%로 추정되는데, 이는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모호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절박함을 이용하는 극소수 회사들 때문이다. 롱코비드 역시 어떤 하나의 장기나 해부학적 시스템에 국한되지 않는 효과를 가진다. 오설리번이 지적하듯, 롱코비드는 독특하게도 대중이 주도한 진단이며, 종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과학적 정의와 체계적 연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롱코비드 환자로서 그녀는 그것이 매우 실재한다는 것을 증언하지만, 동시에 대중 주도 진단이 가져온 방법론적 문제들을 지적한다. 이러한 질환들이 탐구하기 극도로 어려운 영역인 이유는 명확하다. 증상은 실재하고 환자들의 고통은 진짜이지만, 진단의 경계는 모호하고, 생물학적 표지자는 불확실하며, 문화적·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오설리번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더 아픈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질병으로 귀속시키고 있다." 진단은 도구이며,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 사용되어야 한다. 차이에 대한 관용과 불완전함에 대한 수용이 우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잉진단의 가장 큰 지표는 질병 탐지율은 훨씬 높아졌지만 장기적인 건강에는 실질적인 개선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의사들과 과학자들의 책임을 인정하지만, 삶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진단을 요구하는 환자들과 환자의 부모들의 역할도 강조한다. "끊임없는 건강, 성공, 순탄한 삶을 향한 전환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실망으로 이어진다. 의학적 설명은 우리가 그 실망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는 반창고가 되었다." 현대 사회의 깊은 문화적 변화를 반영한다. 우리는 점점 더 완벽함을 기대하고,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은 줄어들었으며, 모든 어려움에 대한 의학적 해결책을 찾는다. 정상적인 경험, 불완전함, 슬픔, 불안이 점점 더 의학적 장애의 인가를 받고 있다.


<진단의 시대>는 현대 의학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딜레마 중 하나를 이야기 한다. 의학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질병을 식별하고 치료하며, 사람들이 애초에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겉보기에 단순한 목표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극도로 복잡하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학적 증거 기반, 계속 변화하는 진단 기준, 그리고 정상과 병리를 나누는 자의적인 선들. 저자는 과잉진단의 문제만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환자들의 경험을 무효화하지 않고, 의학적 진보를 부정하지 않으며, 보수적 담론에 포섭되지 않는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며, 그녀의 성공은 그녀의 임상 경험, 과학적 엄밀함, 그리고 깊은 인간애에서 비롯된다할 것이다. 오설리번은 의학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이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되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녀의 메시지는 진단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단을 더 신중하고 사려 깊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 모든 차이를 병리로 전환하지 않는 지혜, 그리고 의학적 라벨 없이도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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