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작가는 쓰기 위해 산다. 바바라몰리나르(Barbara Molinard)는 썼지만, 동시에 파괴했다. 1960년 부터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그 헌신의 결과물은 한 권의 책, <Viens>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녀 자신의 손으로 찢겨졌다. 몰리나르는 쓰고 또 썼지만, 쓴 즉시 파괴했다. 이 강박적인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글쓰기가 그녀에게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자기파괴 였던 것은 아닐까? <Viens>에 수록된 14편의 이야기는 뒤라스와 그녀의 남편 파트리스 몰리나르가 간신히 구해낸 파편들이다.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가져간 것도 뒤라스였다. 몰리나르 자신은 아마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얼마나 될까? 수천 ? 수만 ?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이 14편의 이야기 뒤에는, 영원히 사라진 무수한 이야기들의 유령이 떠돈다.


몰리나르의 이야기들은 기괴하거나 초현실적인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경험한 삶 그 자체다. 그녀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뒤틀리고, 유령 같고, 광기 어린 것이었다. 그녀는 그 광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았고, 그것을 증언했다. <행복(Happiness)>은 이러한 몰리나르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바닷가 집을 구입하고 황홀한 기쁨에 빠진다. "내 집!" 그녀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삶은 경이롭다." 하지만 우리는 곧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한다. 같은 글씨체로 쓰인 수많은 편지들, 우표가 떼어진 봉투들, 빗속을 걷는 사람들이 바다로 걸어 들어가 사라지는 광경. 클라리스의 " 행복 " 은 처음부터 균열되어 있고, 그 균열은 점점 더 벌어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클라리스의 현실감각은 와해된다. 그녀는 캐비어와 샴페인을 사러 나갔다가 햄과 사이다를 사온다. 그녀가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조차 혼동한다. Karadec인가, Desanges인가? 마침내 그녀는 창문에서 바다로 뛰어든다고 믿으며 몸을 던진다. 하지만 그녀가 있던 곳은 파리의 오페라 거리였고, 그녀는 60대의 여성으로 인도에 추락한 채 발견된다. 결말은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이야기 전체를 소급적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클라리스는 정신병원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집"은 파리의 어느 건물 꼭대기 방이었고, 그녀는 망상 속에서 바닷가에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몰리나르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클라리스에게 그 경험이 절대적으로 "실재"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느낀 행복도, 바다도, 친구들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황 홀한 기대감도 모두 그녀에게는 진짜였다.

"바바라몰리나르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다." 몰리나르의 글쓰기는 표현이나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 전략이었고, 동시에 불가능한 탈출 시도였다. 그녀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을까? 그녀가 경험한 세계의 광기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아니면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공포로부터? 어떻게 보면 그녀는 모든 이들로부터, 심지어 자신의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된여성이었다. 이 소외감은 존재론적 차원의 것이었을 것이다. 몰리나르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세계에 살지 않았다. 그녀가 본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녀가 느낀 것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썼다. 그리고 찢었다. 쓰기와 찢기의 반복은 그녀의 실존적 투쟁의 리듬이었다. 쓰는 행위는 그 공포를 언어로 고정시키려는 시도였고, 찢는 행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그 공포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너무 견딜 수 없어서, 쓴 즉시 파괴해야만 했던 것일까? 몰리나르가 글쓰기를 통해 탈출하려 했던 것을 완전히 탈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글은 다른 이들에게 그들 자신의 내면의 공포와 마주할 용기를 준다. <행복>의 클라리스는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광기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그녀가 본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꽃놀이, 녹아내리는 버터의 폭포, 이 모든 환영들은 그녀가 현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만들 어낸 것이다. 그녀의 "행복"은 방어기제이자 동시에 자기파괴의 서곡이다. 몰리나르 자신도 클라리스처럼 자신 만의 바다를 보았을까?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그 바다로 뛰어드는 시도였을까? 그리고 남편과 뒤라스 가 구해낸 이 14편의 이야기는, 그녀가 마침내 익사하지 않고 해변으로 밀려온 증거일까?

<Panics>(Viens의 영어 제목)은 작은 공포들이다. 이것은 거대한 재앙이나 명백한 공포가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든 미세한 균열들, 현실감각의 작은 미끄러짐들, 정상성에서의 미묘한 일탈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클라리스의 이야기에서,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인다. 한 여성이 새 집을 샀고, 기쁘다. 하지만 곧 작은 이상 함들이 축적된다. 우표가 사라진 편지들. 빗속을 걷다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주문한 것과 다른 물건들. 이 작은 공포들은 서서히 증폭되어, 마침내 전체 현실을 잠식한다. 이것이 몰리나르가 경험한 세계였다. 그녀에게 광기는 갑작스러운 침입이 아니라 천천히 일상을 침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정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클라리스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바다로 뛰어드는 황홀함을 기대한다. 우리는 모두 작은 공포들과 함께 산다. 우리의 현실감각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몰리나르는 그 취약함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소름끼치면서도 이상하게 아름답다.

나는 자꾸 생각한다. 몰리나르 그녀도 클라리스처럼 바다를 보았을까? 자신만의 황홀한 도약을 꿈꾸었을까?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바다로 뛰어드는 이야기. 계속해서 인도에 떨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또 쓰고, 또 찢고, 또 뛰어내리는 이야기. Viens는 그 무한한 반복 속에서 간신히 건져 올려진 14개의 파편이다. 뒤라스와 남편이 없었다면 이것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많은 것 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0년 뒤 당신은 무얼 하고 있을까요? 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춘다. 답십리역 앞 원룸에서 밀린 월세를 걱정하던 시인처럼, 나 역시 미래라는 단어 앞에서 머릿속이 까매지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모든 것 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5년 계획, 10년 계획, 인생 로드맵. 그러나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생활의 조급함과 이번은 다를 거라는 “순진한 낙관" 사이를 오가며 우리는 그저 걷는다. 때로는 비틀거리고, 때로는 주저앉으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위로를 받는다. 답할 수 없다는 것, 알 수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은 건 '보잘것없음을 정직하게 마주한다'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 로를 크게, 대단하게, 의미 있게 만들려고 애쓰는가. SNS에는 성공한 순간들만 올리고, 약한 모습은 숨긴다. 그런데 시인은 을지로 골목 한가운데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러워서다. 가까이서 멀리서 지켜보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그 솔직함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왔나. 사라져가는 골목들, 밀려나는 사람들, 누군가의 슬픔. 그것들을 보면서도 모른 척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문학은 얼마나 무력한가. 무력하더라도, 계속해야 한다는 걸 안다. 더 큰 문제는 무력과 무능을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해온 일들을 떠올렸다.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반복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날들. 하지만 중요한 건 무력함을 인정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답이 없다고 해서 물음을 멈출 수는 없다"는 그의 말처럼, 모른다는 이유로 질문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잊힐 것이 뻔하더라도, 쓸모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걸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노래할 이유도 없다"는 말이 오래 맴돈다. 사랑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순간도 분명있다. 바라 던 모양과 다를 때, 이것이 정말 사랑인지 의심하게 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희미해진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사람을, 일을, 순간을, 풍경을. 때로는 그 사랑이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너무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고, 기대해서 실망한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어떤 삶이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 삶은 불행하다." 나는 나를 위 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살고 싶다. 구렁텅이에 나를 던지지 않으면서. 겨울 호수를 걷던 두 사람처럼, 우리는 모르는 사이 변해간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고,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다른 사람 같다. 그 변화가 두렵기도 하지만, 그것이 삶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뿐이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지나고 나서야 붙일 수 있는 이름이라는 것. 그때는 그저 힘들고 간절했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날들. 하지만 그래도 살자"고, "괜찮아지는 때가 올 거라고" 되뇌는 것. 그것이 무책임하게 들릴지라도, 우리에게는 삶이 있다고 말하 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괜찮아질 거라고, 지나갈 거라고. 때로는 그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정말 괜찮아질까? 정말 지나갈까? 하지만 시인의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그 말을 건네는 마음이 아닐까. 함께 있어주는 것, 울음을 그치지 않는 이를 끌어안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의미는 뒤에 온다. 인간이 제멋대로 정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의미는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아도 된다. 뒤돌아보았을 때, 혹은 훨씬 후에, 그때의 의 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그 의미를 불러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낼 때 일상은 오롯이 빛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얼마나 많은 혹을 달고 살았나.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시간을 쏟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도 삶의 일부일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경험해봐야 필요한 것을 알게 되니까.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노래는 시작된다. 누군가 있었으나 이제는 없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그곳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이야기는 부재의 그림자라는 말이 아프게 와닿는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라진 것들을 기억한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게 한다. 바닷가에서 아버지가 테트라포드까지 수영해 굴을 따오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야카 씨처럼, 가족들이 모래사장에 둘러앉아 굴을 구워 먹던 기억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느낀 뭉클한 기분처럼. 이 런 순간들이 삶을 만든다.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작고 소박한 순간들이.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는 것을 일러주는 장소들. 한 사람의 역사가 깃든 공간들. 우리는 각자의 장소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우리를 만 든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따뜻한 그 기억들.

앞을 내다보는 게 부질없이 느껴질 때, 바다에 가서 파도를 바라본다는 시인처럼, 나도 내 방식으로 견딘다. 어 떤 미래가 닥쳐올지 알 수 없지만, 삶은 미지에서 미지로 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위에서 우리는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또 일어선다.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다. 나는 그 시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이하는 것도 삶이니까. 시인의 말처럼, "시를 쓰고 노래하며 미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음악을 들으며 나를 들여다보고, 친구들의 음악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 면서. 결국 우리에게는 삶이 있다. 지난한 여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지나치고 놓치며 포기하게 되더라도. 그 삶을 살아내는 것. 무력하더라도 계속하는 것. 물음을 멈추지 않는 것. 사랑하는 것. 기억하는 것.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우리가 해야 할 전부다. 10년 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모르는 것이 두렵지 않다.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걸어가는 것이니까. 미지를 향해, 오늘도 나는 걷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설계하라 - 최소한의 힘으로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법
댄 히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많은 조직이 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전략 회의를 반복 하지만 실질적인 개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에 읽은 <재설계하라>에서 댄 히스는 이러한 실패의 근본 원인 을 정확히 짚어낸다. 우리는 잘못된 곳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레버리지 포인트를 찾고, 그곳에 모든 자원을 집중할 때 일어난다. 작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점, 바로 그곳이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더들은 이 지점을 찾지 못한 채 평균과 집계 데이터에 의존하여 의사결정을 내린다.

테레사 아마빌레와 스티븐 크래머의 연구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직원들을 가장 크게 동기부여하는 요소는 의미 있는 일에서 진전을 경험하는 것이다. 연봉도, 승진도, 인정도 아닌 '진전'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전 세계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단 5%만이 진전을 최우선 동기부여 요소로 꼽았다는 점이다. 통계적 오류가 아니다. 리더십의 근본적인 맹점을 드러낸다. 우리는 직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추측하고, 그 추측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확신이다. 진전을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팀원들이 자신의 성과를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추상적인 목표가 아닌 구체적인 성취, 숫자로 표현되는 개선, 눈에 보이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초기에는 뒤를 돌아보며 이미 이룬 것을 축하하고, 후반부에는 앞을 보며 목표까지의 거리를 확인하는 전략이 효과적인 이유다.

기업의 대부분 결정은 회의실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앉아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토론한다. 톰치는 이를 추측 대회라고 불렀다. 데이터를 보고, 보고서를 검토하고, 의견을 교환하지만 정작 실제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MIT 교수 넬슨 레페닝은 다음과 같이 조언을 한다. "일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가서 직접 보라. 교장이라면 학생의 하루를 따라가 보고, 공장장이라면 생산 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고, 컨 설턴트라면 고객 프로젝트의 모든 활동을 지도로 그려보라." 현장에 나가면 당혹스러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오랫동안 방치된 문제들, 익숙해진 나쁜 습관들, 불필요한 절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레페닝의말대로, 만약 당황스럽지 않다면 아직 충분히 자세히 보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 불편한 발견들이 레버리지 포인트가 된다. 수정 가능하면서도 가치 있는 개선점들이다. 평균은 모니터링에는 유용하지만 진단과 해결책 마련에는 무용하다. 매출, 이익률, 고객만족도 같은 집계된 수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줄 뿐,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답은 평균 안에 묻혀 있는 개별 사례들, 특히 밝은 지점들에 있다.

토요타 생산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은 DOWNTIME 원칙은 여덟 가지 낭비 유형을 제시한다. 가상의 베이커리를 예로 들면, 불량품(탄쿠키), 과잉생산(하루 끝에 버려지는 도넛), 대기(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리며 손가락만 빠는 직원), 미활용 인재(접시를 닦는 케이크 데코레이터), 운송(믹서에서 너무 멀리 보관된 밀가루), 재고(상한 우유), 동선(커피포트와 계산대를 오가며 불필요하게 움직이는 직원), 과잉 처리(고객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프랑스식 아이싱 기법) 등이 있다. 낭비의 정의는 명확하다. 고객의 관점에서 가치를 더하지 않는 모든 것이다. 낭비를 발견하면 그 자원을 즉시 재활용하여 레버리지 포인트에 집중할 수 있다. 낭비 제거에는 단점이 없다. 왜냐하면 고객이 가치를 두지 않는 것들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매니지먼트도 거의 보편적인 낭비의 한 형태다. 관리자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직원들의 자율성을 해치며, 실질적인 가치는 거의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런 낭비를 제거하고 그 에너지를 진짜 중요한 곳에 쏟을 때 조직은 도약한다.


많은 리더들이 변화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기획한 후 직원들에게 강요한다. 저항에 부딪히면 놀라며 묻는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동참시키기"는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도 원하게 만들기"의 완곡한 표현이다. 이것은 거꾸로 된 접근이다.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도약하고 싶다면, 에너지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동기를 활용해야 한다. 어떤 개선안이 우리 팀원들에게 가장 열정적으로 받아들여질까를 물어야 한다. 실제로 그보다 복잡할 것이 없다. 프랭크 블레이크 전 홈디포CEO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칭찬과 인정은 공짜 연료다. 팀원들을 어떻게 칭찬하고 인정하여 목표에 도달하려는지 먼저 말해보라. 그런 다음 자원에 대해 이야기하자." 축하하는 것을 얻게 된다. 인정은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위한 최고의 도구다. 목표는 동기를 활용하여 진전을 이끌어내고, 그 진전의 증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동기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점화된 열정은 더 많은 에너지를 위해 다시 활용될 수 있다. 이 순환이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이 된다. 진전이야말로 회의론자를 신봉자로 만드는 불꽃이다.

W. 에드워즈 데밍의 말처럼 "모든 시스템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얻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 현재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Reset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레버리지 포인트를 찾고, 제약 조건에 집중하고, 낭비를 제거하고, 기존의 동기를 활용해야 한다. 추측이 아닌 직접 경험을 기반으로 결정하고, 평균이 아닌 밝은 지점을 연구하라. 목표의 목표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진전을 가시화하며, 성취를 축하해야 한다. 변화는 거창한 계획이나 복잡한 전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지만 정확한 지점을 찾아 집중하는 것, 팀원들이 진전을 보고 느끼게 하는 것, 있는 곳에서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댄 히스가 수백 번의 인터뷰와 연구를 통해 발견한 조직 혁신의 본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꾼 결단의 리더들 -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역사 속 위대한 선택
유필화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더십이라는 말에는 항상 무게가 실린다. 그리고 그 무게는 권력이나 위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격동하는 시대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흔들리는 배를 꿋꿋이 이끄는 마음의 힘이다. 이번에 읽은 <세상을 바꾼 결단의 리더들>에서 만난 일곱 명의 리더는 각기 다른 시대와 환경, 성별과 배경을 가졌지만 한결같이 '위기 앞에서 결단하는 사람'이란 공통점을 지녔다. 그들의 모습은 내게 리더십이란 결국 '태도'와 '마음가짐'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먼저 폐허 위에서 독일을 일으킨 콘라트 아데나워의 리더십에는 '겸양'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다.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마주하며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통해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하고, 자신만의 권한을 나누며 도덕적 책임을 다했다. 아데나워는 수많은 난관 속에서 절망을 기회로 바꿨다. 그가 보여준 태도는 위대한 리더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거창한 명분이나 전략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겸손한 마음임을 알려준다. 이는 나의 삶과 일터에서도 큰 울림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 눈을 감고겉모습만 꾸미려 하는가. 그러나 아데나워처럼 땅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어떠한 난관도 능히 딛고 일어설 수 있 을 것이다. 마거릿 대처를 보면서는 그 누구도 쉽게 가지 못하는 '결단'이란 무게감을 절감했다. 그녀는 국민의 시선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날카로운 개혁을 강행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고, 노동조합과 맞서 싸우고,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대처의 리더십은 단호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단호함이 항상 대중적인 인기가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 상황과도 연결되어 깊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누군가는 경멸하지만 누군가는 존경하는 그 길, 그 결단을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모두 팍팍한 세상에 살면서도 쉽게 '모두가 좋아하는 길'을 선택하려 한다. 그러나 대처는 말한다. 진정한 리더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옳은 결정에 책임지는 자라고 말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그녀는 여성이라는 한계와 편견 속에서 강인하게 제국을 지켜낸 '균형의 미학'이었다. 단호함과 유연함, 원칙과 공감 사이를 오가며, 외부의 적뿐 아니라 내부의 갈등에도 능숙히 대처했다. 이는 단지 정치적 수완이 아니라 인간적인 리더십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녀를 통해 인간 관계와 조직 운영에서 균형 잡힌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흔히 리더십 하면 권위와 강압을 떠올리기 쉽지만, 진정 위대한 리더는 사람들의 신뢰와 충성을 '설득'과 '소통'으로 확보함을 깨닫는다. 송나라의 조광윤, 그는 '우직함'의 리더였다. 시대가 변하고 화려한 스타 경영자가 넘쳐나는 오늘날, 그는 한 길을 묵묵히 걸으며 전문성과 꾸준함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그의 리더십은 화려함보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에 닿아 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강제보다는 설득, 권위보다는 신뢰'가 얼마나 모든 조직의 영속성을 좌우하는지 새삼 느꼈다. 간혹 무조건적인 혁신과 변화만 추구하다 지쳐버리는 우리에게 조광윤은 '한 우물을 파는 힘'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알려주는 조용한 스승 같다.

그리고 제갈공명.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영웅이지만, 결과적으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리더십은 승리를 넘어 '신뢰'와 '책임'에 있었다. 권력에 눈멀지 않고 원칙에 따라 공정함을 지키며,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운 그의 태도는 오늘날 어느 조직에서도 귀감이 된다. 연이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몸 소 희생하며 모범을 보인 모습은, 결국 진정한 리더십이 승리가 아니라 '마음을 얻는 일'임을 되새기게 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특별한 교훈으로 다가왔다. 미인으로만 치부되던 그녀가 '철저한 준비와 계산된 전 략'으로 살아남은 리더였다는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권력을 잃고 도망가야 했던 그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와신상담하며 복귀한 그녀의 끈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 던 것은 그녀가 '현장을 무시한 후퇴'라는 결정으로 결국 몰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것은 나에게 현장 경영의 중요성,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직접 듣는 리더의 자세를 상기시켰다. 리더는 책상머리에서만 머무르는 자리가 아니라 전선 한가운데 서야 한다는 무거운 진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측천무후. 그녀는 '야망'이라는 힘을 몸소 증명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야망은 단지 권력만이 아니라 '조직의 지속성'과 '인재의 공정한 평가"에 닿아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능력과 공정성의 원칙을 시행했고, 이는 오늘날 기업 인사제도와 맞닿는 업적이다. 그녀는 '리더의 야망이 어떻게 조직의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견인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책을 읽고 나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만약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이 나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역사는 이제 교과서 속 인물이 아니라, 나의 일상 속 판단을 돕는 동료가 되었다. 이 책은 리더십에 대한 이론서가 아니라, 판단에 대한 사유서다. 그리고 그 사유는 결국 사람을 향한다. 책은 과거의 리더들과 그들의 결단이 지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오늘 마주한 위기에서 가장 필요한 결단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멈춰서 본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한다. 겸손한 마음으 로 현실을 직면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신뢰와 균형의 힘으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리더십은 시대를 초월한 '태도의 문제'다. 그리고 그 태도는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다시 한 번 결심한다. 역사를 배우며, 인간을 이해하며, 흔들림 없는 나만의 리더십을 길러가겠노라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WAKENING - 부의 진동을 깨우는 100일 철학 필사
조성희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생각만으로 충분하다고 믿게 되었을까. 머릿속으로 다짐하고, 마음으로 결심하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착각. 하지만 생각은 너무 가볍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고, 물처럼 흘러가 버린다. 반면 필사라는 행위는 그 가벼운 생각에 무게를 싣는다. 손으로 쓴다는 것은 신체적 각인이다. 펜을 잡고, 종이 위에 글자를 새기는 그 순간, 우리의 뇌는 읽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이 그 문장을 받아들인다. 근육이 기억하고, 시각이 확인하고, 촉각이 증명한다. "나는 풍요롭다"라는 문장을 백 번 읽는 것과 열 번 쓰는 것 중 무엇이 더 강력할까. 답은 명확하다. 쓰는 행위는 읽기보다 느리고,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 문장과 진짜 대화를 나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을 숫자의 문제로 본다. 월급이 적어서, 집값이 비싸서, 투자 기회를 놓쳐서.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숫자 이전에 형성된 가난한 자아상이다. "나는 늘 이 정도야", 우리 집안은 원래 그래", "나한테 그런 행운은 없어". 이런 문장들이 무의식 깊이 뿌리내리면, 실제로 기회가 와도 보지 못하거나 붙잡지 못한다. 마치 필터가 장착된 것처럼, 자신의 신념 체계에 맞는 현실만 인지하게 된다. 내면의 창고가 결핍으로 가득하면, 외부에서 아무리 많은 것이 들어와도 그것을 담을 공간이 없다. 새는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격이다. 반대로 내면이 풍요로 채워지면, 작은 것도 크게 느껴지고, 감사가 더 많은 것을 끌어당긴다. 결국 진짜 부자가 되는 첫걸음은 은행 계좌가 아니라 마음 계좌를 점검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는가. 나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가를 고민해 본다.

흥미로운 건 이 책이 긍정적 사고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부정적 감정, 두려움, 분노, 열등감을 인정하고 그것과의 관계를 재정의하라고 말한다. 두려움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이유로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문제다. "나는 두렵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성장하려는 증거다"라고 재해석 하는 순간, 같은 감정이지만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든다. 분노도 마찬가지다. 분노를 억누르는 것도, 분노에 쓸리는 것도 아닌, 분노라는 에너지를 변화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것. "이 상황이 분하다. 그래서 나는 더 나은 내 가 되기로 선택한다." 감정은 에너지다. 부정적 에너지도 재료로만 본다면 얼마든지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다.

​필사를 하며 이런 문장들을 반복해 쓰다 보면, 감정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 감정을 적으로 보지 않고 정보로, 신호로, 재료로 보게 된다. 100일이라는 기간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이 기간은 인간의 습관 형성에 이상적인 주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100일'이라는 전체가 아니라 '오늘 하루'다. 장기 목표는 우리를 압도하지만, 하루는 감당 가능하다. 오늘 하루만 이 문장을 쓴다. 내일은 내일의 내가 결정한다. 이런 태도가 역설적으로 장기간의 지속을 가능하게 만든다. 하루를 지배하는 자가 인생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거창한 10년 계획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가 실제로는 더 중요하다. 오늘 아침에 어떤 문장으로 하루를 시작했는가. 오늘 저녁에 어떤 생각으로 잠자리에 드는가 중요하다. 필사는 이 '오늘'에 의도를 심는 의식이다. 무의식적으로 흘러가 던 하루에 작은 주춧돌을 놓는 것. 그 주춧돌 100개가 쌓이면 집이 된다.

100일 챌린지를 완주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진짜 목적은 100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놓쳤을 때 자책하는 대신, 그래도 다시 시작 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포기하는 대신, "실패가 아니라 실험"이라고 재정의하는 것. 이것이 진짜 변화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완벽주의의 덫에 걸려 있었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거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계획에서 벗어나면 전부 무너진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인생은 All or Nothing이 아니다. 60점짜리 실천이 0점짜리 완벽한 계획보다 낫다. 하루를 놓쳤어도 다시 펜을 드는 사람이 아예 시작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앞서 있다. 이 책의 필사를 통해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나에게 관대해지는 법"일지도 모른다.

필사는 과거의 나를 지우고 새로운 나를 써 내려가는 과정이다. 어제까지의 나는 특정한 신념, 습관, 감정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구성 요소들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며 같은 선택, 같은 결과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문장을 쓰며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거짓말처럼 느껴지던 문장들이, 반복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 내 것이 된다. "나는 풍요롭다"가 처음엔 공허했지만, 100번 쓰고 나면 최소한 그 가능성은 열린다. 이것이 잠재의식을 깨운다는 의미다. 의식적으로는 믿지 못하던 것들이, 반복을 통해 무의식의 영역으로 스며들고, 그것이 새로운 자동 시스템이 된다. 마치 운전을 처음 배울 때는 의식적으로 모든 걸 생각해야 하지만, 익숙해지면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책이 제안하는 것은 단순하다. 읽지만 말고 써라. 생각만 하지 말고 손을 움직여라.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난하게 대하지 말라. 부의 진동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늘 나를 조금 더 존중하고, 내 가능성을 믿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는 것. 그 작은 진동들이 모여 삶 전체를 흔들고, 결국 현실을 바꾼다. 100일 후에 통장 잔고가 극적으로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100일 후의 나는 지금과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진짜 부의 시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