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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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작가는 쓰기 위해 산다. 바바라몰리나르(Barbara Molinard)는 썼지만, 동시에 파괴했다. 1960년 부터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그 헌신의 결과물은 한 권의 책, <Viens>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녀 자신의 손으로 찢겨졌다. 몰리나르는 쓰고 또 썼지만, 쓴 즉시 파괴했다. 이 강박적인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글쓰기가 그녀에게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자기파괴 였던 것은 아닐까? <Viens>에 수록된 14편의 이야기는 뒤라스와 그녀의 남편 파트리스 몰리나르가 간신히 구해낸 파편들이다.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가져간 것도 뒤라스였다. 몰리나르 자신은 아마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얼마나 될까? 수천 ? 수만 ?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이 14편의 이야기 뒤에는, 영원히 사라진 무수한 이야기들의 유령이 떠돈다.


몰리나르의 이야기들은 기괴하거나 초현실적인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경험한 삶 그 자체다. 그녀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뒤틀리고, 유령 같고, 광기 어린 것이었다. 그녀는 그 광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았고, 그것을 증언했다. <행복(Happiness)>은 이러한 몰리나르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바닷가 집을 구입하고 황홀한 기쁨에 빠진다. "내 집!" 그녀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삶은 경이롭다." 하지만 우리는 곧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한다. 같은 글씨체로 쓰인 수많은 편지들, 우표가 떼어진 봉투들, 빗속을 걷는 사람들이 바다로 걸어 들어가 사라지는 광경. 클라리스의 " 행복 " 은 처음부터 균열되어 있고, 그 균열은 점점 더 벌어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클라리스의 현실감각은 와해된다. 그녀는 캐비어와 샴페인을 사러 나갔다가 햄과 사이다를 사온다. 그녀가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조차 혼동한다. Karadec인가, Desanges인가? 마침내 그녀는 창문에서 바다로 뛰어든다고 믿으며 몸을 던진다. 하지만 그녀가 있던 곳은 파리의 오페라 거리였고, 그녀는 60대의 여성으로 인도에 추락한 채 발견된다. 결말은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이야기 전체를 소급적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클라리스는 정신병원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집"은 파리의 어느 건물 꼭대기 방이었고, 그녀는 망상 속에서 바닷가에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몰리나르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클라리스에게 그 경험이 절대적으로 "실재"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느낀 행복도, 바다도, 친구들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황 홀한 기대감도 모두 그녀에게는 진짜였다.

"바바라몰리나르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다." 몰리나르의 글쓰기는 표현이나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 전략이었고, 동시에 불가능한 탈출 시도였다. 그녀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을까? 그녀가 경험한 세계의 광기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아니면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공포로부터? 어떻게 보면 그녀는 모든 이들로부터, 심지어 자신의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된여성이었다. 이 소외감은 존재론적 차원의 것이었을 것이다. 몰리나르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세계에 살지 않았다. 그녀가 본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녀가 느낀 것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썼다. 그리고 찢었다. 쓰기와 찢기의 반복은 그녀의 실존적 투쟁의 리듬이었다. 쓰는 행위는 그 공포를 언어로 고정시키려는 시도였고, 찢는 행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그 공포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너무 견딜 수 없어서, 쓴 즉시 파괴해야만 했던 것일까? 몰리나르가 글쓰기를 통해 탈출하려 했던 것을 완전히 탈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글은 다른 이들에게 그들 자신의 내면의 공포와 마주할 용기를 준다. <행복>의 클라리스는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광기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그녀가 본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꽃놀이, 녹아내리는 버터의 폭포, 이 모든 환영들은 그녀가 현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만들 어낸 것이다. 그녀의 "행복"은 방어기제이자 동시에 자기파괴의 서곡이다. 몰리나르 자신도 클라리스처럼 자신 만의 바다를 보았을까?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그 바다로 뛰어드는 시도였을까? 그리고 남편과 뒤라스 가 구해낸 이 14편의 이야기는, 그녀가 마침내 익사하지 않고 해변으로 밀려온 증거일까?

<Panics>(Viens의 영어 제목)은 작은 공포들이다. 이것은 거대한 재앙이나 명백한 공포가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든 미세한 균열들, 현실감각의 작은 미끄러짐들, 정상성에서의 미묘한 일탈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클라리스의 이야기에서,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인다. 한 여성이 새 집을 샀고, 기쁘다. 하지만 곧 작은 이상 함들이 축적된다. 우표가 사라진 편지들. 빗속을 걷다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주문한 것과 다른 물건들. 이 작은 공포들은 서서히 증폭되어, 마침내 전체 현실을 잠식한다. 이것이 몰리나르가 경험한 세계였다. 그녀에게 광기는 갑작스러운 침입이 아니라 천천히 일상을 침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정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클라리스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바다로 뛰어드는 황홀함을 기대한다. 우리는 모두 작은 공포들과 함께 산다. 우리의 현실감각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몰리나르는 그 취약함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소름끼치면서도 이상하게 아름답다.

나는 자꾸 생각한다. 몰리나르 그녀도 클라리스처럼 바다를 보았을까? 자신만의 황홀한 도약을 꿈꾸었을까?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바다로 뛰어드는 이야기. 계속해서 인도에 떨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또 쓰고, 또 찢고, 또 뛰어내리는 이야기. Viens는 그 무한한 반복 속에서 간신히 건져 올려진 14개의 파편이다. 뒤라스와 남편이 없었다면 이것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많은 것 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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