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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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0년 뒤 당신은 무얼 하고 있을까요? 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춘다. 답십리역 앞 원룸에서 밀린 월세를 걱정하던 시인처럼, 나 역시 미래라는 단어 앞에서 머릿속이 까매지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모든 것 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5년 계획, 10년 계획, 인생 로드맵. 그러나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생활의 조급함과 이번은 다를 거라는 “순진한 낙관" 사이를 오가며 우리는 그저 걷는다. 때로는 비틀거리고, 때로는 주저앉으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위로를 받는다. 답할 수 없다는 것, 알 수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은 건 '보잘것없음을 정직하게 마주한다'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 로를 크게, 대단하게, 의미 있게 만들려고 애쓰는가. SNS에는 성공한 순간들만 올리고, 약한 모습은 숨긴다. 그런데 시인은 을지로 골목 한가운데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러워서다. 가까이서 멀리서 지켜보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그 솔직함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왔나. 사라져가는 골목들, 밀려나는 사람들, 누군가의 슬픔. 그것들을 보면서도 모른 척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문학은 얼마나 무력한가. 무력하더라도, 계속해야 한다는 걸 안다. 더 큰 문제는 무력과 무능을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해온 일들을 떠올렸다.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반복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날들. 하지만 중요한 건 무력함을 인정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답이 없다고 해서 물음을 멈출 수는 없다"는 그의 말처럼, 모른다는 이유로 질문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잊힐 것이 뻔하더라도, 쓸모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걸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노래할 이유도 없다"는 말이 오래 맴돈다. 사랑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순간도 분명있다. 바라 던 모양과 다를 때, 이것이 정말 사랑인지 의심하게 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희미해진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사람을, 일을, 순간을, 풍경을. 때로는 그 사랑이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너무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고, 기대해서 실망한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어떤 삶이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 삶은 불행하다." 나는 나를 위 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살고 싶다. 구렁텅이에 나를 던지지 않으면서. 겨울 호수를 걷던 두 사람처럼, 우리는 모르는 사이 변해간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고,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다른 사람 같다. 그 변화가 두렵기도 하지만, 그것이 삶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뿐이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지나고 나서야 붙일 수 있는 이름이라는 것. 그때는 그저 힘들고 간절했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날들. 하지만 그래도 살자"고, "괜찮아지는 때가 올 거라고" 되뇌는 것. 그것이 무책임하게 들릴지라도, 우리에게는 삶이 있다고 말하 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괜찮아질 거라고, 지나갈 거라고. 때로는 그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정말 괜찮아질까? 정말 지나갈까? 하지만 시인의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그 말을 건네는 마음이 아닐까. 함께 있어주는 것, 울음을 그치지 않는 이를 끌어안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의미는 뒤에 온다. 인간이 제멋대로 정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의미는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아도 된다. 뒤돌아보았을 때, 혹은 훨씬 후에, 그때의 의 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그 의미를 불러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낼 때 일상은 오롯이 빛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얼마나 많은 혹을 달고 살았나.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시간을 쏟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도 삶의 일부일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경험해봐야 필요한 것을 알게 되니까.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노래는 시작된다. 누군가 있었으나 이제는 없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그곳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이야기는 부재의 그림자라는 말이 아프게 와닿는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라진 것들을 기억한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게 한다. 바닷가에서 아버지가 테트라포드까지 수영해 굴을 따오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야카 씨처럼, 가족들이 모래사장에 둘러앉아 굴을 구워 먹던 기억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느낀 뭉클한 기분처럼. 이 런 순간들이 삶을 만든다.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작고 소박한 순간들이.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는 것을 일러주는 장소들. 한 사람의 역사가 깃든 공간들. 우리는 각자의 장소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우리를 만 든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따뜻한 그 기억들.

앞을 내다보는 게 부질없이 느껴질 때, 바다에 가서 파도를 바라본다는 시인처럼, 나도 내 방식으로 견딘다. 어 떤 미래가 닥쳐올지 알 수 없지만, 삶은 미지에서 미지로 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위에서 우리는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또 일어선다.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다. 나는 그 시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이하는 것도 삶이니까. 시인의 말처럼, "시를 쓰고 노래하며 미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음악을 들으며 나를 들여다보고, 친구들의 음악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 면서. 결국 우리에게는 삶이 있다. 지난한 여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지나치고 놓치며 포기하게 되더라도. 그 삶을 살아내는 것. 무력하더라도 계속하는 것. 물음을 멈추지 않는 것. 사랑하는 것. 기억하는 것.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우리가 해야 할 전부다. 10년 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모르는 것이 두렵지 않다.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걸어가는 것이니까. 미지를 향해, 오늘도 나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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