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 돈과 시간을 장악하는 1% 부의 법칙
유나바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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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무실 창밖으로 햇살이 스며드는 어느 오후, 책상 위에 놓인 <더 퍼스트>라는 책 한 권이 나를 멈춰 세웠다.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지나갔지만, 이 책은 달랐다. 화려한 성공담이나 추상적인 조언이 아닌, 지금 내가 딛고 선 자본주의의 구조를 명료하게 그려주었다. 우리는 매일 시간과 노동을 들여 월급이라는 수확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자본주의라는 게임 안에서 나만의 전략을 만들고, 결국에는 돈과 시간을 장악하는 1%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사고가 필요하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하나의 게임으로 정의한다. 규칙은 간단하다. 근로소득을 자생소득으로 전환하라. 자생소득이란 부동산, 주식, 채권, 사업, 지식, 기타 수익 등, 내가 시간을 직접 투여하지 않아도 흐르는 소득이다. 즉,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책에서는 '자본주의 테크트리 맵'이라는 도식을 제시한다. 처음엔 근로소득을 통해 '머니탱크'를 채우고, 이 자산을 점차 자생소득으로 전환해나가는 것이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듯, 각 단계마다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자본주의는 불공정하지만, 그 구조를 이해하고 접근하면 결코 기울어진 운동장만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립한 원칙들을 여러가지 사례와 함께 쉽게 설명해 준다. 누구나 경제적 자유를 원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저자의 조언은 나의 경제적 자유를 위한 계획에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단독자'라는 표현이었다. 다수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시선과 철학으로 삶을 설계하는 사람. 단독자는 피라미드의 아래에서 머물기보다, 피라미드 바깥에 자기만의 구조를 만든다. 회사라는 피라미드는 여전히 굳건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위로 올라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 구조는 이미 포화 상태이며, 상위로 올라갈수록 경쟁은 치열하고 자율성은 줄어든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나는 현재 회사의 구조 안에서 상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다양한 부서와의 협업, 문제 해결 능력,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내 자산이 된다. 이 자산을 가지고 나는 언젠가 내 이름을 건 구조를 만들고 싶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이라는 동일한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시간 속에서 돈을 벌고, 어떤 이는 시간을 돈으로 바꾼다. 더 나아가 어떤 이는 돈을 시간으로 산다. 젊은 세대는 명품 소비에 몰두하지만, 실상 진짜 명품은 '자유로운 시간'이다.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한 달을 일하는 삶이 아니라, 그 가방값을 저축해 한 달을 자유롭게 쓰는 삶이 진짜 부자다. 『더 퍼스트』는 이 단순한 진실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지금 시간을 벌고 있는가, 잃고 있는가?"

돈에 대한 철학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부자들이 따르는 네 가지 돈 관리 원칙을 이야기한다. 그중 하나가 "가족의 ATM이 되지 말라"는 조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돈을 쓰고, 빌려주고, 지원하면 결국 경제적 자립을 방해하고, 관계마저 파탄날 수 있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경제관념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난을 물려줘야 한다. 물론 이 말은 무정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자립과 독립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의미다.

​직장을 다니며 동시에 사업 아이템을 탐색하라는 조언은 현실적인 동시에 도전적이다. 나만의 이름을 걸 수 있는 콘텐츠, 서비스, 제품을 고민하고 탐구해야 한다. 회사에서 하는 일을 확장하거나, 전혀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려도 좋다. 핵심은 '소득의 상방'을 여는 것이다. 월급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업은 무한하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실패조차 감내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진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아직 명확한 아이템은 없지만, 분명 분석하고 탐구하는 일을 좋아하고, 잘한다. 그것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지식 콘텐츠든 결국엔 나만의 구조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피라미드 안에서 살아가도록 교육받아왔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된 삶. 그러나 이 구조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저자는 피라미드 밖으로 나와 자기만의 구조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는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왜 이 구조 안에 들어왔는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어떻게 나만의 속도로 성공의 역사를 써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단독자의 여정이다. 책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나만의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안내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책을 덮은 후에도, 그 안의 문장들은 내 안에서 계속해서 작동한다. 나 역시 이제 나만의 테크트리를 만들고 싶다. 게임의 룰을 이해했고, 도구도 준비됐다. 남은 건 단 하나, 나만의 게임을 시작하는 것뿐이다.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야생에서 살아남아 자기만의 피라미드를 세우고 싶은 이들에게, 단단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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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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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물리학의 가장 성공적이면서도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이론인 양자역학은 20세기 초에 태동한 이래로 과학계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끊임없는 호기심과 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보통의 직관과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이 이론은 미시 세계의 기본 법칙을 설명하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첨예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섞으면 예상치 못한 거품이 일어나듯이, 양자역학 역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양자 세계의 신비는 우리가 익숙한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물질과 에너지의 본질, 우주의 작동 방식, 심지어 의식의 역할까지도 재고하게 만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거시 세계에서는 사물들이 명확한 위치를 가지고, 한 번에 한 장소에만 존재하며, 한 가지 상태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이런 제약들이 사라진다. 입자들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고('중첩 상태'),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동시에 자전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상호 모순되는 특성들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다. 누군가가 "왼쪽으로 돌면서 동시에 오른쪽으로 돈다고?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따진다면, 양자역학은 "양자 세계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세계다. 그리고 양자 세계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토머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은 양자역학의 기이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이 실험에서는 빛(또는 전자)을 두 개의 슬릿이 있는 장벽을 향해 쏜다. 만약 빛이 순수하게 입자의 성질만 가진다면, 우리는 두 개의 밝은 줄무늬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개의 밝고 어두운 줄무늬가 교차하는 간섭무늬가 형성된다. 이는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 번에 하나의 입자만 쏘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간섭무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단일 입자가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완전히 배치되는 현상이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개념 중 하나는 '관측'의 역할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관측되기 전까지 입자는 여러 가능한 상태들의 '중첩'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관측이 일어나는 순간, 이 중첩 상태는 '붕괴'되어 하나의 확정된 상태가 된다. 이 개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에르빈 슈뢰딩거가 1935년에 제안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이다.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와 독약 장치가 있고, 독약이 방출될지 여부는 방사성 원자의 붕괴라는 양자적 사건에 좌우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우리가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 방사성 원자는 붕괴된 상태와 붕괴되지 않은 상태의 중첩 상태에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고양이도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고양이 역설은 양자역학의 핵심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우리는 일상에서 '양자적 좀비 고양이'를 볼 수 없는 걸까? 왜 거시 세계에서는 물체가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양자역학 해석이 제시되었다.

책에서는 거의 빌런으로 생각되는 보어의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한 위대한 과학이이긴 하지만.... 보어의 붕괴이론 (코펜하겐 해석)은 재미있다. 닐스 보어와 그의 코펜하겐 학파가 제시한 이 해석은 오랫동안 '정통적 해석'으로 통용되었으며,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표준적인 해석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관측자가 물리계를 바라보는 순간 여러 개의 중첩된 상태가 붕괴되고 단 하나의 상태만이 최종 결과로 선택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관측자의 역할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관측이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또한 우주가 관측되기 전에는 어떤 상태였는지, 그리고 의식을 가진 관측자의 출현 이전에는 어떻게 붕괴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저자는 이외에도 양자역학의 여러 이론을 기호와 재미있는 사례를 통해 설명해 준다. 다중이론, 그냥붕괴 이론 (GRW 이론), 유도 파동이론 등등... 수학을 통해 이해하려면 정말 어려운 이론을 쉽게 접근하게 한다. ^.^

양자역학이 이토록 철학적 해석에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학적 예측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 예를 들어, 전자의 자기모멘트 값을 양자역학으로 계산한 값과 실험실에서 관측된 값은 거의 일치한다. 그 차이를 지구 둘레(4,000만 미터)에 비유하면 0.1밀리미터에 불과하다! 인류가 개발한 이론 중 가장 정확한 이론으로 평가받으며, 지금까지 실행된 수많은 실험 중 양자역학의 예측에서 어긋난 결과가 얻어진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이런 놀라운 성공은 양자역학이 물리적 실재를 최소한 현상학적 수준에서는 매우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음을 말한다.저자는 양자역학의 이론적 예측이 실험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은 물리학자들이 철학적 해석보다 계산과 응용에 집중하는 이유가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양자역학의 심오한 철학적 함의를 간과하게 만들었다. 현역 물리학자가 파동함수의 붕괴 원리를 파고들기 시작하면 교수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은, 과학 공동체 내에서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이 얼마나 불편한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양자역학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끊임없는 도전과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우리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는 법칙을 설명하면서도, 그 의미에 대해서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관측할 때만 실재가 결정되는 것인지, 무한한 평행 우주가 존재하는지, 우주 전체가 의식 안에 있는지, 또는 다른 어떤 설명이 옳은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수학 용어와 수학 공식, 편미분 방정식이 없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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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의식 - 스페인 최고의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뇌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 틈새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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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의식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의식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뇌의 활동인가, 아니면 뇌를 넘어서는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철학자들만의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현대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되고 있다. 이번에 대담을 통해서 우리의 의식에 관해 분석하고 깊은 고민을 하는 화두를 던져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후안 호세 미야스와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공저의 <사피엔스의 의식>이었다. 지극히 복잡하고 심오한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우리의 두개골 안에 위치한 뇌는 실로 놀라운 기관이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처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아 개념, 기억, 감정, 그리고 자유의지라고 느끼는 것까지 생성한다. 그러나 뇌 자체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신경과학자들이 종종 언급하듯, 뇌는 '검은 상자' 속에 갇혀 있다. 외부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 오직 감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신호만을 해석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의식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뉴런만의 활동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어떤 것인가? 저자는 소설가와 진화고생물학자의 독특한 대화를 통해 인간 의식의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다.

"빌어먹을, 마술적 사고라니! 한번 살펴보죠, 아르수아가. 내가 성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 내 마음속에서는 물질적이지 않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그건 원자로 이뤄진 게 아니니까요." 이 격정적인 대화는 소설가와 과학자 사이의 근본적인 철학적 충돌을 보여준다. 데카르트 이래로 서양 철학에서 지속되어 온 심신이원론과 물리주의의 대립이다. 소설가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물질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만질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과학자는 이러한 생각을 "마술적 사고"라고 반박한다. 이 논쟁은 의식의 본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경험하는 정신적 현상들—기억, 감정, 사고, 꿈—은 단순히 뇌의 신경 활동인가, 아니면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인가? 철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는 '퀄리아(qualia)'라고 불리는 주관적 경험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붉은색을 볼 때의 그 '붉음'의 감각, 통증의 '아픔', 사랑의 '느낌'과 같은 주관적 경험들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는가? 뇌의 활동을 아무리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한다 해도, 그것이 어떻게 주관적 경험으로 변환되는지는 여전히 '설명적 간극'으로 남아 있다.

아르수아가는 컴퓨터 비유를 통해 정신과 뇌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다. 그의 관점에서 정보는 항상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가 하드디스크나 메모리 칩과 같은 물리적 매체에 저장되는 것처럼, 인간의 생각과 기억도 뇌의 신경 회로에 물리적으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한계가 있다. 컴퓨터와 달리, 인간의 뇌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뇌는 정보를 저장하면서 동시에 그 구조 자체가 변화한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불리는 이 특성은 뇌가 경험에 따라 물리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사고와 기억이 단순히 정적인 저장소에 기록되는 데이터가 아니라, 뇌의 구조와 기능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동적인 과정임을 시사한다. 더욱이, 정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해석자가 필요하다. 컴퓨터의 데이터는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시스템 없이는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뇌에 저장된 정보도 그것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누군가' 없이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정확히 무엇인가? 이 질문은 우리를 의식의 수수께끼로 다시 이끈다.

​아르수아가는 기억과 감정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뇌의 진화적 측면을 강조한다. 편도체는 감정, 특히 공포와 같은 원시적 반응을 처리하는 뇌의 일부로, 인간의 기억과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이러한 뇌 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의식이 단순히 합리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복잡한 진화의 역사를 가진 다층적 시스템임을 시사한다. 우리의 뇌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그리고 인간 고유의 발달된 대뇌 피질이라는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파충류의 뇌에 해당하는 부분은 생존과 직결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고차원적 의식은 원시적 생존 메커니즘 위에 구축된 발전된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설명이 의식의 주관적 측면을 완전히 포괄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어렵지만, 의식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과학과 철학, 종교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현대 신경과학은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제공하지만, 주관적 경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어쩌면 의식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의식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순될 수 있다. 마치 눈이 자신을 볼 수 없고, 칼날이 자신을 자를 수 없는 것처럼. 오히려 의식의 미스터리는 우리를 더 깊은 질문으로 이끈다. "나는 누구인가?", "내 경험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인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쩌면 의식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탐구하며 경이로워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소설가와 과학자의 대화가 최종적인 답변보다는 더 많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의식의 탐구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 자체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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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균, 죽이는 균, 서로 돕는 균 좋은균, 나쁜 균, 이상한 균 2
류충민 지음 / 플루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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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연 우리 안에는 어떤 균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살리고 죽이며, 때로는 손을 잡고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을까? 이번에 관련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류충민님의 <살리는 균, 죽이는 균, 서로 돕는 균>이었다. 흥미로운 균의 두번째 이야기다. ^.^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은 불과 잠깐 등장한 손님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생물은 지구가 생명을 품기 시작한 순간부터 함께해온 오래된 주인이다. 우리가 발을 딛는 모든 곳, 숨을 쉬는 모든 공간, 심지어 우리 몸 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생명체들이 없다면 지구의 생태계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미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유기물을 분해하는 것이다. 죽은 생물을 처리하는 청소부 역할이다. 그들의 분해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광합성을 가능하게 하고, 식물이 만든 당은 다시 동물의 에너지원이 된다. 이런 순환고리 속에서 미생물은 필수적인 연결고리다. 화성이나 달에 미생물이 없다면 음식물 쓰레기는 영원히 그대로 남을 것이다. 지구에서 유기물이 썩으면서 냄새를 풍기는 것도 미생물 덕분이다. 유기물이 분해되고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면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당을 생성한다. 동물이 이를 섭취하면 장내 미생물이 다시 분해하고, 동물의 배설물 역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다시 이산화탄소가 된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을 제거한다면 지구의 생명체 대부분은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미생물, 특히 세균의 놀라운 세계와 그 중요성을 탐구하는 과학 에세이다. 저자는 토마토의 풋마름병 연구부터 시작해 식물과 미생물의 복잡한 관계, 토양 미생물이 식물에게 '기억'을 전달하는 방식, 식물이 소리에 반응하는 현상, 미생물이 곤충의 변태에 미치는 영향, 장내 미생물과 정신 건강의 연관성, 항생제 개발의 도전과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또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나방 애벌레의 발견, 물고기를 이용한 암 연구, 마스크 여드름과 미생물의 관계 등 일상과 연결된 흥미로운 연구 사례들을 통해 미생물이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건강과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 부담스럽제 않게 읽을 수 있다.

식물과 미생물의 관계는 깊은 상호작용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든 포도당의 30퍼센트를 뿌리를 통해 토양으로 흘려보낸다. 왜 이토록 '낭비'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는 뿌리 주변 1밀리미터 내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을 위한 것이다. 식물은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토양에 뿌려주는 자선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상호이익을 위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온 전략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식물이 해충의 공격을 받았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 식물이 곤충에게 공격받으면 특별한 냄새를 풍겨 이웃 식물에게 경고한다. 이것이 바로 '곤충에 의해 유도된 식물 냄새(HIPV)'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생물에 의해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미생물에 의해 유도된 식물 냄새(MIPV)'라고 한다. 식물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며 위험에 대비한다. 또한 식물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특별한 물질을 뿌리에서 분비하여 유용한 미생물을 끌어들인다. 이렇게 끌어모은 미생물은 해충을 직접 죽이거나 식물의 면역력을 높여 해충의 공격을 방어한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만든 페놀 물질들이 토양으로 흘러나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미생물만 살아남아 식물과 계속 상호작용한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생관계를 형성한다. 토양은 생명의 역사가 담긴 기억의 저장고다. 놀랍게도 식물이 받은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정보가 토양 미생물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된다. 작년에 식물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토양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문자를 갖지 못한 식물이 자손들을 위해 토양에 역사를 새겨놓은 오벨리스크와 같다. 우리가 땅 위를 걸을 때, 수만 년 동안의 기억이 발아래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대지와의 연결감이 새롭게 느껴진다. 토양 미생물은 식물의 '기억'을 유지하는 매개체로서, 세대를 넘어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생명의 연속성을 위한 놀라운 전략이다.

과학적 발견의 과정은 종종 우연과 필연이 얽혀 있다.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능력을 발견한 것처럼, 어떤 현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이 이루어진다.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가 찾고 있는 바로 그것일 수도 있다는 '파랑새 증후군'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큰 몫을 한다. 꿀벌부채명나방에서의 또 다른 발견은 장내 세균과 변태 속도의 관계다. 그람양성 세균이 없어지면 변태가 빨라지고, 반대로 그람양성 세균인 장내구균을 더 많이 넣어주면 변태 속도가 늦어진다. 심지어 자연 상태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바실러스를 넣어도 변태를 비슷하게 늦출 수 있었다. 이러한 발견들은 생명체와 미생물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

우리가 미생물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생명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더 겸손하게 재평가하게 된다. 지구 역사에서 인간은 가장 최근에 등장한 손님이지만, 미생물은 지구가 생명을 품기 시작한 순간부터 함께해 온 주인이다. 앞으로도 미생물은 지구 생태계의 건강과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생명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무수한 미생물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성장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미생물과의 공생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할 때, 우리는 더욱 조화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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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지윤 지음 / 모티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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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힘을 가진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도 말이고, 가장 쉽게 상처를 남기는 것도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말을 듣고, 말하며 살아간다. 어떤 말은 하루를 환하게 비추는 등불이 되고, 어떤 말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된다. 말은 마음의 그림자처럼 드러나고, 사람의 본성을 비추는 창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예쁘게 말하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이 말은 단지 언어를 아름답게 꾸미라는 뜻이 아니다. 말에는 마음이 담겨야 하고, 그 마음에는 존중과 배려가 깃들어야 한다. 예쁘게 말하는 사람은 결국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는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릴 수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며, 관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말로 하루를 열고, 또 어떤 말로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있는가. 이번에 어떻게 하면 예쁘게 말을 전달할 수 있는지 여러 조언을 해 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추지윤의 <조금 더 예쁘게 말하면 좋을텐데>였다. 예쁜 말을 위한 기술과 저언을 기대해 본다...

말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그 태도는 결국 진심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진짜 마음이 오가는 말은 많지 않다. 잘 말하는 사람보다, 곱게 말하는 사람이 더 큰 신뢰를 얻는다. 곱게 말한다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말투를 쓰는 것이고, 경청으로 먼저 마음을 여는 일이다. 좋은 대화는 말이 많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잘 들어주는 사람 옆에서 진심 어린 말이 터져 나오고, 그 말은 관계를 깊게 만든다. 듣는 태도에서 시작된 공감은 말의 온도를 높이고, 말투 하나 바뀌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말투에는 마음이 묻어난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딱딱한 어조와 차가운 눈빛이 더 앞선다면 그 말은 닿지 않는다. 반대로 평범한 말이라도 따뜻한 눈빛과 부드러운 말투로 건넨다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예쁘게 말하는 사람은 결국 따뜻한 리액션을 가진 사람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쳐주며, 상대의 감정에 반응하는 태도는 진심에서 비롯된 배려다. 그리고 그 배려가 말 속에 묻어날 때,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마음을 연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말을 아낄 줄 아는 사람, 감정을 추측하지 않고 묻는 사람,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은 결국 인간관계에서 중심이 된다. 말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전달되고, 반응을 낳고, 또 다른 말로 이어지며 관계를 형성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이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말 한마디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이다. 같은 뜻이라도 ‘알겠어’와 ‘그래도 내 말이 맞잖아’는 전혀 다른 울림을 만든다.

갈등은 말에서 시작되지만, 위로도 말에서 온다. 말로 다툼이 일어난다면 말로 풀어야 한다. 말은 행동보다 빠르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그리고 그 도구는 연습을 통해 다듬어진다. 칭찬은 구체적으로 해야 하고, 감정 표현은 있는 그대로 해야 한다. “고마워,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같은 말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자기 자신에게도 예쁜 말을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 셀프 대화는 자신감을 만든다. “나는 괜찮아, 잘할 수 있어”라는 반복된 자기 암시는 불안을 이겨내는 말의 힘이 된다.

말은 세상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설득하는 데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 말은 곧 믿음이고, 그 믿음은 태도를 바꾸고, 태도는 삶을 바꾼다. 발표나 인터뷰처럼 중요한 순간에도 결국 말은 마음의 준비에서 시작된다. 완벽한 말을 준비하는 것보다, 따뜻한 말 하나를 진심으로 전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울림을 만든다. 숫자를 넣어 구체적으로 말하고, 실수는 솔직하게 웃으며 넘길 줄 아는 여유는 결국 진심 어린 말에서 온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보다, 말로 위로해주는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사례로 여러가지 스킬을 잘 설명하고 있다. 매력자본이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목소리와 이를 위한 연습 방법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나만의 퍼스널 보이스톤을 찾기위한 스킬을 설명해 준다. 나만의 보이스를 찾기위한 방법이 재미있었다. 또한 대화하면서 필요한 리액션의 3요소(경청,동의/공감 리액션..), 아이컨택의 자연스럽게 하기위한 3개의 꼭지점 등 실전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스킬들을 한아름 제안해주고 있다. ^.^

결국 말은 마음을 닮는다. 따뜻한 말을 한다는 것은 그저 공손하게 말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는 배려의 태도다. 예쁘게 말한다는 것은 표현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곱게 전달하려는 의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준 적도 있고, 말로 큰 위로를 받은 적도 있다. 그 기억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말은 조심해야 하고, 말은 연습해야 하며, 말은 사랑처럼 정성을 들여야 한다. 오늘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건넸는가. 혹시 나도 모르게 던진 말이 누군가를 지치게 하지 않았는가. 말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말은 사람의 마음에 머문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말을 하기 전에 마음부터 담으려 한다. 따뜻한 말은 나를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예쁘게 말하는 것은 곧, 예쁘게 살아가는 일이다. 우리가 나누는 말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그리고 나의 하루도 그런 말들로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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