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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의식 - 스페인 최고의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뇌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 틈새책방 / 2025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의식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의식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뇌의 활동인가, 아니면 뇌를 넘어서는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철학자들만의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현대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되고 있다. 이번에 대담을 통해서 우리의 의식에 관해 분석하고 깊은 고민을 하는 화두를 던져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후안 호세 미야스와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공저의 <사피엔스의 의식>이었다. 지극히 복잡하고 심오한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우리의 두개골 안에 위치한 뇌는 실로 놀라운 기관이다. 그것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처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아 개념, 기억, 감정, 그리고 자유의지라고 느끼는 것까지 생성한다. 그러나 뇌 자체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신경과학자들이 종종 언급하듯, 뇌는 '검은 상자' 속에 갇혀 있다. 외부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 오직 감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신호만을 해석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의식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뉴런만의 활동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어떤 것인가? 저자는 소설가와 진화고생물학자의 독특한 대화를 통해 인간 의식의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다.
"빌어먹을, 마술적 사고라니! 한번 살펴보죠, 아르수아가. 내가 성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 내 마음속에서는 물질적이지 않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그건 원자로 이뤄진 게 아니니까요." 이 격정적인 대화는 소설가와 과학자 사이의 근본적인 철학적 충돌을 보여준다. 데카르트 이래로 서양 철학에서 지속되어 온 심신이원론과 물리주의의 대립이다. 소설가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물질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만질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과학자는 이러한 생각을 "마술적 사고"라고 반박한다. 이 논쟁은 의식의 본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경험하는 정신적 현상들—기억, 감정, 사고, 꿈—은 단순히 뇌의 신경 활동인가, 아니면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인가? 철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는 '퀄리아(qualia)'라고 불리는 주관적 경험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붉은색을 볼 때의 그 '붉음'의 감각, 통증의 '아픔', 사랑의 '느낌'과 같은 주관적 경험들은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는가? 뇌의 활동을 아무리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한다 해도, 그것이 어떻게 주관적 경험으로 변환되는지는 여전히 '설명적 간극'으로 남아 있다.
아르수아가는 컴퓨터 비유를 통해 정신과 뇌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다. 그의 관점에서 정보는 항상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가 하드디스크나 메모리 칩과 같은 물리적 매체에 저장되는 것처럼, 인간의 생각과 기억도 뇌의 신경 회로에 물리적으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한계가 있다. 컴퓨터와 달리, 인간의 뇌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뇌는 정보를 저장하면서 동시에 그 구조 자체가 변화한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불리는 이 특성은 뇌가 경험에 따라 물리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사고와 기억이 단순히 정적인 저장소에 기록되는 데이터가 아니라, 뇌의 구조와 기능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동적인 과정임을 시사한다. 더욱이, 정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해석자가 필요하다. 컴퓨터의 데이터는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시스템 없이는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뇌에 저장된 정보도 그것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누군가' 없이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정확히 무엇인가? 이 질문은 우리를 의식의 수수께끼로 다시 이끈다.
아르수아가는 기억과 감정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뇌의 진화적 측면을 강조한다. 편도체는 감정, 특히 공포와 같은 원시적 반응을 처리하는 뇌의 일부로, 인간의 기억과 행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이러한 뇌 구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의식이 단순히 합리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복잡한 진화의 역사를 가진 다층적 시스템임을 시사한다. 우리의 뇌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그리고 인간 고유의 발달된 대뇌 피질이라는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파충류의 뇌에 해당하는 부분은 생존과 직결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고차원적 의식은 원시적 생존 메커니즘 위에 구축된 발전된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설명이 의식의 주관적 측면을 완전히 포괄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어렵지만, 의식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과학과 철학, 종교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현대 신경과학은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제공하지만, 주관적 경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어쩌면 의식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의식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순될 수 있다. 마치 눈이 자신을 볼 수 없고, 칼날이 자신을 자를 수 없는 것처럼. 오히려 의식의 미스터리는 우리를 더 깊은 질문으로 이끈다. "나는 누구인가?", "내 경험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인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쩌면 의식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탐구하며 경이로워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소설가와 과학자의 대화가 최종적인 답변보다는 더 많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의식의 탐구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 자체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