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 진짜 나를 찾아 자유로워지는 100가지 방법
리샤오이 지음, 이지연 옮김 / 이든서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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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규칙과 기대 속에서 자란다. 부모님의 바람, 학교의 규율, 사회의 통념.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울타리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어느새 우리는 그 안에서만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이래야 한다', '저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모르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제목부터 낯설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니.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배려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며, 적절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런데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내팽개치는 이기적인 행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사는 것과 무책임한 삶을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책 속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저자가 스물네 살에 겪은 일화였다. 헤드헌터가 제안한 기회를 스스로 판단하여 포기한 이야기. 면접조차 보지 않고, 스스로에게 자격 미달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그 순간.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내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할 기회가 있었다. 주변 친구들은 모두 도전해보라고 격려했지만, 나는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결국 신청서조차 내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답답해진다. 실패했다면 그나마 교훈이라도 얻었을 텐데,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에 남은 것은 오직 '만약에'라는 공허한 가정뿐이다. 책에서 헤드헌터가 했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부정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부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종종 세상이 우리를 거부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걸러낸다. 안 될 거야, 나한테는 무리야, 내가 감당할 수 없어.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미리 차단해버리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저자는 능동성을 무모함과 구별한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경험하고, 그 결과를 돌아보며 배워나가는 태도를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나는 늘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렸고, 실패하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 했으며, 안전한 선택만을 고집했다. 하지만 삶은 우리가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회는 종종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낄 때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기회는 그냥 지나가버린다. 능동적인 삶이란 결국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책에서는 "일단 저질러 보자"고 말한다. 이 표현이 처음에는 다소 거칠게 느껴졌지만, 곱씹을수록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다가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 과정에서 배우고 조정하며 나아갈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은 다음 선택을 더 현명하게 만든다.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저자는 소피아 로렌의 예를 들며,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녀의 외모를 비난했지만, 그녀가 성공하자 같은 특징들이 독창적인 매력으로 재해석되었다. 외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면 처음에는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하지만 그 길에서 자신만의 성과를 이뤄내면, 사람들은 그것을 선구적이었다고, 용감했다고 재평가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그 길을 걸으며 얻은 경험과 성장이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내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맞추려 했으며,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내 감정을 숨겼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정작 나는 점점 지쳐갔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호해졌다. 책에서 말하듯, "늘 참으면 서운함이 쌓이고, 늘 용서하면 배신을 당한다."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기준을 분명히 하고, 그것이 침범당했을 때는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삶은 우리가 순간을 경험하는 여정이지, 고통스럽게 시간을 버티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견디며, 언젠가 올 행복을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미룬다. 하지만 그 '언젠가'는 정말 올까? 아니면 우리는 평생 그렇게 미루기만 하다가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후회하게 될까? 예쁜 스카프가 있다면 지금 두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지금 떠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고백하라는 저자의 말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미뤄온 것들을 떠올렸다. 배우고 싶었던 악기,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 다시 연락하고 싶었던 친구.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나중에'라는 이름으로 계속 뒤로 미뤄왔다. 하지만 정작 그 '나중'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그 '나중'이 아닐까? 책이 전하는 핵심을 생각해 본다. 내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라는 것. 타인의 기대나 사회의 통념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자 성숙한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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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포비아 - 요즘 세대는 왜 리더를 두려워하는 걸까?
정인호 지음 / 바이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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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승진 시즌이다."축하합니다. 팀장으로 승진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말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가깝다. 과거 승진은 성취의 정점이자 사회적 성공의 증표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책임의 무게만 늘어나고, 권한은 축소되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평가와 비판 속에서 홀로 버텨야 하는 자리. 그것이 오늘날 많은 이들이 특히 MZ 세대들이 인식하는 리더의 모습이다. 실제로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 이상이 팀장 이상의 직책을 맡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지나친 성과 압박,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의 크기, 그리고 자신이 그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는 불안감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그들은 직급과 권위보다 자신의 전문성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리더가 되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희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리더 포비아'라 부른다. 리더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리더라는 자리 자체를 기피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개인의 소극적 태도나 세대의 특수성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 구조와 사회 문화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에 가깝다.


리더 포비아의 가장 큰 원인은 권한과 책임 사이의 불균형이다. 과거의 리더는 의사결정권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권위를 가졌다. 하지만 현대의 리더는 위로부터는 지시를 받고, 아래로부터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끼인 존재'가 되었다. 수평적 조직문화와 실시간 평가 시스템은 리더의 모든 행동을 공개적으로 노출시킨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으며, 성공은 팀의 것이지만 실패는 리더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더 큰 문제는 리더가 실제로 잘못한 것이 없어도 책임의 자리에 놓인다는 점이다. 조직 내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원인을 리더에게서 찾는다. "리더가 더 잘했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분위기 속에서 리더는 자동적으로 희생양이 된다. 심지어 리더의 감정과 인간적인 면까지 소비된다. 구성원의 불만을 듣고, 위로를 건네고,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역할로 여겨지지만, 정작 리더 자신은 위로받을 곳이 없다. 조직은 리더를 키운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리더를 버텨내게 만들 뿐이다. 살아남은 자만이 리더가 되는 구조 속에서, 그 생존 과정은 심리적 소진과 고립을 대가로 치른다. 리더 포비아는 이러한 냉혹한 현실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자 방어기제다.


리더 포비아는 단지 조직 구조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대적 불안감이 이를 더욱 증폭시킨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안정과 회피를 선택한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불확실성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성과를 보장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예측할 수도 없으며, 언제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리다. 실제로 신임 팀장들의 대다수는 승진 이후 행복감보다 불안감이 더 커졌다고 고백한다. 특히 요즘 세대는 성장 과정에서 과보호와 경쟁의 양극단을 동시에 경험했다. 부모 세대의 지나친 보호 속에서 실패의 경험이 부족했고, 동시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했다. 그 결과 자기효능감은 낮고, 불안은 높으며,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두려운 심리 상태를 갖게 되었다. 리더라는 자리는 이들에게 불완전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위험천만한 무대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디지털 환경은 모든 것을 공개하고 평가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리더는 단순히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관리하고 감정까지 통제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주목받는다는 것은 곧 표적이 된다는 의미다. 튀면 다치고, 눈에 띄면 비난받는 시대에, 누가 자발적으로 리더라는 무대 위에 서고 싶겠는가.

리더 포비아를 이해하려면 요즘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조직에 깊이 소속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 있는 연결을 원하지만, 그 방식을 스스로 정하고 싶어 한다. 전통적인 조직은 소속의 형태를 미리 정해놓고 구성원에게 그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느슨하지만 유의미한 연결, 필요에 따라 조립하고 해체할 수 있는 유연한 소속감을 선호한다. 시간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 세대는 현재의 희생이 미래의 보상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의 경험을 중시한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희생하고, 미래의 불확실한 보상을 기다리는 일로 여겨진다. 시간 할인율이 높은 이들에게 이는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무엇보다 정체성의 기준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소속된 조직과 직급이 자신을 정의했다면, 지금은 개인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정체성의 핵심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조직 밖에 있는 세대에게, 조직 내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리더 포비아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리더십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리더십을 정의하는 방식에 있다. 권위와 통제에 기반한 낡은 리더십이 시대와 맞지 않을 뿐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지시가 아니라 질문으로, 통제가 아니라 연결로, 완벽함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작동해야 한다. 구글의 연구는 성과가 높은 팀의 핵심 요소로 '심리적 안전감'을 꼽았다. 리더가 모든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짜 리더십이다. 이케아는 리더가 얼마나 많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었는지를 핵심 지표로 삼는다. 실적보다 관계, 통제보다 신뢰가 중심에 있는 리더십이다. 이러한 리더십을 '동반향상 리더십'이라 부를 수 있다. 리더는 혼자 앞서가는 존재가 아니라 동료와 함께 걸으며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존재다. 성공도 실패도 함께 나누고, 학습의 과정 자체를 공유한다. 리더가 완벽해야 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 리더 포비아도 사라진다.


리더 포비아는 리더십의 실패가 아니라 진화의 신호다. 리더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대는, 동시에 리더십을 새롭게 정의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더 이상 카리스마 넘치고 완벽한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실수하며, 그 과정에서 함께 배우는 리더를 원한다. 조직은 리더를 감시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원하는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리더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심리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리더 개인도 완벽함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신뢰를 만드는 시대다. 리더 포비아를 극복하는 길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성장의 언어로 바꾸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리더라는 자리는 여전히 어렵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것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립의 무게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연결의 과정이 될 때, 비로소 리더십은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이 된다. 승진의 순간, 불안보다 설렘이 앞서는 조직. 리더가 된다는 것이 희생이 아니라 의미 있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다. 리더 포비아는 극복해야 할 문제만 아니라, 우리 시대가 어떤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지 알려주는 귀중한 신호다. 그 신호에 귀 기울일 때, 리더십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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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걷기 - 몸과 마음을 살리는 걷기는 따로 있다
애너벨 스트리츠 지음, 김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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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걷기와 달리기의 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가 많아짐에 따라 많은 분들이 건강을 위해 걷기와 달기리를 실천하고 있다.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애너벨 스트리츠(Annabel Streets)의 <치유의 걷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걷기'라는 행위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20곳에 대한 장소별 건기의 효과와 긍적적인 효과, 치유의 기능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해안, 언덕, 숲, 시골길, 호수, 도시산책 등 우리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곳, 마음먹고 갈 수 있는 곳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준다. 자신이 원하는 곳을 골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일을 수 있어 좋았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호숫가 산책에 관한 장은 자연 환경이 우리의 심신에 미치는 과학적 메커니즘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스트레스 해소, 불안 완화, 창의력 증진이 필요한 이들에게 호숫가 산책이야말로 최적의 '걷기 처방전'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과학적 근거와 시적 감수성의 절묘한 조화에 있다. 저자는 호숫가가 다른 어느 곳보다 빛으로 가득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태양 반짝임(sun glitter)'이라는 현상을 소개한다. 맑은 물 표면에 햇빛이 닿을 때 생기는 수천 개의 작은 빛 조각들은 각각이 정확한 각도로 반사되어 우리 눈에 도달한다. 미풍이나 잔잔한 물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반짝임 패턴은 시각적 자극과 함께 끝없는 빛의 향연을 제공한다. 이러한 묘사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넘어, 왜 우리가 물가에서 평온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강조하는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시간'이다. 아침의 빛은 푸른 파장이 풍부하여 우리를 졸리고 정신이 흐릿하게 만드는 멜라토닌의 분비를 억제한다. 최근 연구들은 빛이 편도체, 즉 위협을 감지하고 투쟁-도피 반응을 활성화시키는 뇌 영역의 활동을 둔화시킨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만성 스트레스나 불안에 시달릴 때, 빛은 우리의 편도체를 진정시킨다. 밝은 빛은 집중력과 기억력도 향상시키는데, 신경과학자들은 우리 뇌가 낮 시간 동안 학습하도록 진화했다고 본다. 따라서 에너지와 기분을 북돋우는 푸른 파장의 빛을 원한다면 아침에 호숫가를 걸으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그러나 스트리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하루의 끝자락, 석양의 태양 반짝임도 그 나름의 장엄함이 있다. 진홍색, 분홍색, 호박색, 금색 빛줄기가 만들어내는 저녁의 반짝임은 우리 몸에게 이제 긴장을 풀고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임을 알려준다. 고요한 물 위의 달빛은 또 다른 '달 반짝임(moon glitter)'을 만들어내는데, 그 신비로운 우아함은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처럼 저자는 같은 호숫가라도 시간대에 따라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점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책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리듬'이다. 연구들은 불안과 우울 완화에 있어 리드미컬한 움직임의 중요성을 입증해왔다. 특히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에서 리드미컬한 걷기가 근력, 균형감각, 유연성 같은 신체 건강뿐 아니라 삶의 질 전반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나아가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은 암, 심장병, 치매, 골다공증의 위험을 줄인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뇌과학적 설명을 덧붙인다. 활발하게 움직일 때 우리 뇌는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라는 분자를 생성한다. 이 단백질은 새로운 뉴런의 성장을 촉진하며, 우울증과 스트레스로부터의 회복을 돕는 것으로 보인다. 더 빠르게 움직일수록 더 많은 BDNF가 생성되고, 속도를 높이는 것은 더 나은 수면에도 도움이 되며 걷기를 뼈를 강화하는 활동으로 만든다. 이러한 과학적 설명들은 막연히 '운동하면 좋다'는 상식을 구체적인 생리학적 메커니즘으로 변환시켜, 독자들이 걷기의 효과를 보다 실감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책이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은 풍경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숫가는 그저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생리학적, 신경학적, 심리적 상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치유의 공간이다. 빛의 파장, 물의 움직임, 걷기의 리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우리 몸의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고,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변화시키며, 근골격계를 강화한다. 스트리츠는 이 모든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호숫가 산책의 시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현대인의 많은 질병이 실내 생활, 인공 조명, 좌식 생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의 메시지는 더욱 시의적절하다. 스트레스, 불안, 우울,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등 우리 시대의 만성적 증상들에 대한 해답이 값비싼 치료나 약물이 아니라, 호숫가를 걷는 단순한 행위에 있을 수 있다는 제안은 희망적이다. 더욱이 저자는 '걸으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왜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 물론 모든 이에게 호숫가가 접근 가능한 것은 아니며, 개인의 상황에 따라 걷기의 효과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트리츠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 환경과 우리 몸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이며, 풍경이 가진 치유력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법이다. 호숫가는 그 중 하나의 예시일 뿐,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주변 환경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각자에게 필요한 '걷기 처방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걷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책이다. 걷기는 더 이상 이동 수단이나 부담스러운 운동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활력을 주며 영감을 불어넣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특히 호숫가 산책에 관한 장은 과학과 시, 데이터와 감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저자가 제시하는 빛과 물과 움직임의 상호작용은 우리에게 자연이 적극적인 치유의 파트너임을 일깨운다. 아침의 푸른 빛이 우리를 깨우고, 저녁의 금빛이 우리를 쉬게 하며, 리드미컬한 걸음이 새로운 뉴런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놀랍다. 새로운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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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빌어먹을 세상엔 로큰롤 스타가 필요하다
맹비오 지음 / 인디펍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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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덮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진다. 누군가의 청춘 고백을 엿본 기분이랄까. 아니, 어쩌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어떤 감각을 깨운 것 같기도 하다. 책은 로큰롤에 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살아남기'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가 무대 앞에서, 흙먼지 날리는 페스티벌에서, 작은 클럽의 땀 냄새 속에서 발견한 건 단순히 좋은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어떤 힘이었다. 세상이 나를 규격화하려 할 때, 정답을 강요할 때, 그 압박에서 벗어나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공간 같은 것이다.

저자가 서태지부터 실리카겔까지 15팀의 밴드를 소개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이건 음악 평론이 아니다. 콘서트에서 받은 충격을 일기장에 급히 적어 내려간 것 같은, 생생한 감정의 기록이다. 카세트테이프의 A면과 B면으로 나뉜 구성도 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따스함이랄까. 나는 저자와 세대가 조금 다르다. 내 청춘의 사운드트랙은 해외 록이 더 많았고, 국내에선 발라드와 댄스가 주류였던 시절을 지나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저자의 글에 공감이 된다. 왜일까 생각해봤다. 이 책이 말하는 건 결국 "로큰롤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 책임은 무거워지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것들은 끊임없이 나를 시험한다.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려 애쓰지만, 가끔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그럴 때면 내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조차 흐릿해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랜만에 음악을 틀었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자우림, 국카스텐. 내 청춘 어딘가에 있었던 밴드들. 그리고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밴드들까지. 음악이 흐르는 순간, 묘한 일이 일어났다. 젊을 때 느꼈던 그 감각이 돌아왔다. 열정이라고 하기엔 과하고, 자유로움이라고 하기엔 막연한, 그런 어떤 것이랄까..

로큰롤은 "나는 이렇게 산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음악이었다.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정답을 고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음악. 굳이 멋을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던지는 날것의 용기. 그게 로큰롤이었다. 저자가 무대 앞에서 울고 웃었던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건 단순히 좋은 공연을 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음악이 울려 퍼지는 그 공간에서, 가슴이 쿵쾅대는 그 순간에, '나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생각한다. 로큰롤 스타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달라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정해진 길을 벗어나도,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도 괜찮다는 걸. 그들의 음악은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함께 견디자는 연대의 메시지다. 나이가 들수록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모험은 줄어들고, 타협은 늘어난다.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내 안의 어떤 것이 소리친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냐고. 이렇게 살고 싶었냐고 말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로큰롤이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워주는 음악. 단단한 벽을 통과할 힘을 주는 소리다. 저자는 말한다. 세상이 버겁고 무기력해질 때, 자신을 붙잡아 준 건 거창한 위로가 아니었다고. 가슴이 쿵쾅대는 로큰롤 음악을 들으면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로큰롤은 도피가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다. 이 빌어먹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는 로큰롤이 필요하다. 음악을 다시 틀어본다. 볼륨을 조금 더 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를 다시 나답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아직 로큰롤을 들을 수 있다면, 아직 가슴이 뛸 수 있다면, 나는 살아있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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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생존 - 지구상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피어난 생명의 경이로움
알렉스 라일리 지음, 엄성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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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생명을 연약한 것으로 생각한다. 적절한 온도, 충분한 물과 산소, 안전한 환경, 이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만 생명이 유지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알렉스 라일리의 작업이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통념이 얼마나 인간중심적 착각인지에 대한 증거다. 생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창의적이며, 끈질기다. 라일리가 소개하는 극한 환경의 생물들은 '살아남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들은 번성하고, 진화하며,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한다. 루마니아의 모빌레 동굴은 이러한 생명력의 극적인 사례다. 500만 년 이상 외부와 단절된 채, 산소가 희박하고 황 성분이 가득한 이 지하 세계에서 수 십 종의 생물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왔다.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문명을 건설하는 동안, 이 보이지 않는 생물들 은 미생물 군락을 먹으며 조용히 자신들의 시간을 이어왔다.

극한 환경 생물들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들의 적응 전략이 보여주는 창의성이다. 사막 개미는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대에 활동함으로써 경쟁자와 포식자를 피한다. 그들은 장소가 아닌 '시간'이라는 생태적 지위를 점유한다. 이는 공간적 개념에 익숙한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생존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알래스카의 송장개구리는 더욱 극단적이다. 겨울 동안 완전히 얼어붙는데, 이때 그들의 신체는 더 이상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다. 각 장기는 서로 단절되고, 기능이 정지하며, 마치 분해된 부품처럼 흩어진다. 그러나 봄이 오면 이 '부품들'은 다시 조립되고 생명이 돌아온다. 생명의 정의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새들의 호흡 시스템은 또 다른 경이다. 포유류처럼 들이쉬고 내쉬는 방식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만 공기를 순환시키는 그들의 폐는 고산 지대의 희박한 공기 속에서도 효율적으로 산소를 추출한다. 정말 생명의 기적을 보는 듯 하다.

체르노빌은 인류가 만든 재앙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생명은 길을 찾았다. 검은 곰팡이는 파괴된 원자로 벽에서 자라고, 프셰발스키말은 출입 금지 구역에서 번식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일부 균류가 방사선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광합성도 화학합성도 아닌, '방사선 합성'이라는 제3의 에너지 획득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것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우주 탐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NASA 엔지니어들이 곰팡이 포자를 우주선 외벽에 배치하여 방사선 차폐막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생명은 단지 환경에 적응할 뿐 아니라, 가장 적대적인 요소조차 자원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19세기 과학자들은 깊은 바다에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빛도 없고, 먹이도 없으며, 압력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현대의 탐사는 이것이 완전한 오해였음을 보여주었다. 8,000미터 이상의 심해에서도 달팽이고기는 유유히 헤엄치고, 쥐만 한 크기의 초대형 단각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기물을 먹으며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흔적은 이곳에도 닿아 있다. 마리아나 해구에서 채집한 단각류의 위장에서 발견된 푸른 플라스틱 섬유는, 지구상 가장 깊고 먼 곳도 더 이상 인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상기시킨다. 과학자들은 이 새로운 종에 'Eurythenesplasticus'라는 이름을 붙였다. 플라스틱의 시대를 살아가는 생물이라는 의미다.

라일리는 이 책을 코로나19 봉쇄 기간 중 가장 어두운 시기에 구상했다고 밝힌다. 우울증과 씨름했던 과학 작가에게 극한 생물들의 이야기는 호기심만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경 속에서도 생명이 계속된다는 증거이자, 회복력에 대한 믿음의 근거였다. 물론 이것이 현재 진행 중인 대멸종을 가볍게 여기자는 말은 아니다. 생물다양성의 손실은 실재하는 위기이며, 우리 세대가 책임져야 할 과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생명 자체의 놀라운 회복력도 인정해야 한다. 지구 역사상 다 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그때마다 96%의 종이 사라지는 참혹한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매번 생명은 돌아왔고,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으며, 더욱 다양해졌다. 완보동물은 거의 절대영도에 가까운 온도에서도, 끓는 물에서도, 우주 공간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 바다가 증발하지 않는 한, 이 작은 이끼돼지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해 준다.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생명은 계속될 것이라는 겸손함과, 생명의 끈질김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위안이다. 극한 환경 생물 연구는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동물들이 환경 스트레스에 적응하는 메커니즘은 인간 질병 치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벌거숭이 두더지 쥐의 암 내성은 피부 단백질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지하 생활을 위한 적응이 예기치 않게 장수와 질병 저항성으로 이어진 사례다. 누가 이런 연결고리를 예상했겠는가? 천체생물학자들은 극한 환경 생물을 연구하며 외계 생명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지구에서 가장 적대적인 환경이 목성의 위성 유로파나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와 유사하다면, 그곳에도 생명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생명의 정의를 넓히는 것은 우주에서 우리 위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로렌 아이슬리는 생명체의 극한 환경 진출을 '현실에 대한 영원한 불만'이라고 표현했다. 시적이면서도 정확한 관찰이다. 진화는 본질적으로 모험적이며, 생명은 끊임없이 경계를 시험하고 확장한다. 사막 개미가 뜨거운 정오의 시간대를 점유하고, 송장개구리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심해 생물이 어둠과 압력 속에서 번성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본성의 발현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경이감은 크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반대로 너무 연약한 것으로 과소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극한 생물들의 이야기는 생명이 우리 상상보다 훨씬 강인하고, 창의적이며, 끈질기다는 것을 일깨운다. 한 행성에서 생명이 시작되면 완전히 제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이 절망적 낙관주의인지, 아니면 현실적 희망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렸다. 분명한 것은 생명이 우리보다 훨씬 오래 존재해 왔고,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 속에서 우리는 겸손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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