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생존 - 지구상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피어난 생명의 경이로움
알렉스 라일리 지음, 엄성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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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생명을 연약한 것으로 생각한다. 적절한 온도, 충분한 물과 산소, 안전한 환경, 이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만 생명이 유지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알렉스 라일리의 작업이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통념이 얼마나 인간중심적 착각인지에 대한 증거다. 생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창의적이며, 끈질기다. 라일리가 소개하는 극한 환경의 생물들은 '살아남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들은 번성하고, 진화하며, 자신만의 생태계를 구축한다. 루마니아의 모빌레 동굴은 이러한 생명력의 극적인 사례다. 500만 년 이상 외부와 단절된 채, 산소가 희박하고 황 성분이 가득한 이 지하 세계에서 수 십 종의 생물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왔다.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문명을 건설하는 동안, 이 보이지 않는 생물들 은 미생물 군락을 먹으며 조용히 자신들의 시간을 이어왔다.

극한 환경 생물들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들의 적응 전략이 보여주는 창의성이다. 사막 개미는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대에 활동함으로써 경쟁자와 포식자를 피한다. 그들은 장소가 아닌 '시간'이라는 생태적 지위를 점유한다. 이는 공간적 개념에 익숙한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생존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알래스카의 송장개구리는 더욱 극단적이다. 겨울 동안 완전히 얼어붙는데, 이때 그들의 신체는 더 이상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다. 각 장기는 서로 단절되고, 기능이 정지하며, 마치 분해된 부품처럼 흩어진다. 그러나 봄이 오면 이 '부품들'은 다시 조립되고 생명이 돌아온다. 생명의 정의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새들의 호흡 시스템은 또 다른 경이다. 포유류처럼 들이쉬고 내쉬는 방식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만 공기를 순환시키는 그들의 폐는 고산 지대의 희박한 공기 속에서도 효율적으로 산소를 추출한다. 정말 생명의 기적을 보는 듯 하다.

체르노빌은 인류가 만든 재앙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생명은 길을 찾았다. 검은 곰팡이는 파괴된 원자로 벽에서 자라고, 프셰발스키말은 출입 금지 구역에서 번식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일부 균류가 방사선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광합성도 화학합성도 아닌, '방사선 합성'이라는 제3의 에너지 획득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것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우주 탐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NASA 엔지니어들이 곰팡이 포자를 우주선 외벽에 배치하여 방사선 차폐막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생명은 단지 환경에 적응할 뿐 아니라, 가장 적대적인 요소조차 자원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19세기 과학자들은 깊은 바다에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빛도 없고, 먹이도 없으며, 압력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현대의 탐사는 이것이 완전한 오해였음을 보여주었다. 8,000미터 이상의 심해에서도 달팽이고기는 유유히 헤엄치고, 쥐만 한 크기의 초대형 단각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기물을 먹으며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흔적은 이곳에도 닿아 있다. 마리아나 해구에서 채집한 단각류의 위장에서 발견된 푸른 플라스틱 섬유는, 지구상 가장 깊고 먼 곳도 더 이상 인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상기시킨다. 과학자들은 이 새로운 종에 'Eurythenesplasticus'라는 이름을 붙였다. 플라스틱의 시대를 살아가는 생물이라는 의미다.

라일리는 이 책을 코로나19 봉쇄 기간 중 가장 어두운 시기에 구상했다고 밝힌다. 우울증과 씨름했던 과학 작가에게 극한 생물들의 이야기는 호기심만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경 속에서도 생명이 계속된다는 증거이자, 회복력에 대한 믿음의 근거였다. 물론 이것이 현재 진행 중인 대멸종을 가볍게 여기자는 말은 아니다. 생물다양성의 손실은 실재하는 위기이며, 우리 세대가 책임져야 할 과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생명 자체의 놀라운 회복력도 인정해야 한다. 지구 역사상 다 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그때마다 96%의 종이 사라지는 참혹한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매번 생명은 돌아왔고,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으며, 더욱 다양해졌다. 완보동물은 거의 절대영도에 가까운 온도에서도, 끓는 물에서도, 우주 공간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 바다가 증발하지 않는 한, 이 작은 이끼돼지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해 준다.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생명은 계속될 것이라는 겸손함과, 생명의 끈질김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위안이다. 극한 환경 생물 연구는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동물들이 환경 스트레스에 적응하는 메커니즘은 인간 질병 치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벌거숭이 두더지 쥐의 암 내성은 피부 단백질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지하 생활을 위한 적응이 예기치 않게 장수와 질병 저항성으로 이어진 사례다. 누가 이런 연결고리를 예상했겠는가? 천체생물학자들은 극한 환경 생물을 연구하며 외계 생명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지구에서 가장 적대적인 환경이 목성의 위성 유로파나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와 유사하다면, 그곳에도 생명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생명의 정의를 넓히는 것은 우주에서 우리 위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로렌 아이슬리는 생명체의 극한 환경 진출을 '현실에 대한 영원한 불만'이라고 표현했다. 시적이면서도 정확한 관찰이다. 진화는 본질적으로 모험적이며, 생명은 끊임없이 경계를 시험하고 확장한다. 사막 개미가 뜨거운 정오의 시간대를 점유하고, 송장개구리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심해 생물이 어둠과 압력 속에서 번성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본성의 발현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경이감은 크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반대로 너무 연약한 것으로 과소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극한 생물들의 이야기는 생명이 우리 상상보다 훨씬 강인하고, 창의적이며, 끈질기다는 것을 일깨운다. 한 행성에서 생명이 시작되면 완전히 제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이 절망적 낙관주의인지, 아니면 현실적 희망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렸다. 분명한 것은 생명이 우리보다 훨씬 오래 존재해 왔고,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 속에서 우리는 겸손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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