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통장에서 1억 만들기
돈모행(안현경)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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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월급이 들어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잔고가 다시 바닥을 드러낼 때,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왜 돈은 모이지 않을까. 이 질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물가는 매년 오르고, 고용은 예전만큼 안정적이지 않으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낡은 말이 되었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출렁이고, 어떤 자산이 오늘의 안전자산인지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변동성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안을 견디고 있다. 최근 읽은 <텅 빈 통장에서 1억 만들기> 책은 이런 불안 앞에서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가 결국 삶의 안정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화려한 투자 성공담이 아니라, 반복된 경제적 좌절 속에서도 통장 잔고를 하나씩 채워나간 지극히 현실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그 진솔함이 오히려 큰 울림을 준다. 대박을 노리는 방법이 아니라, 누구나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이 쌓여 결국 단단한 자산이 된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큰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기본기가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어느 정도의 무지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금 금리가 높고, 자산 가격이 완만하게 오르던 시절에는 그저 성실히 저축만 해도 어느 정도 미래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금리는 예측하기 어렵게 오르내리고, 자산 가격의 변동 폭은 커졌으며, 새로운 금융상품과 투자 수단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런 환경에서 금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뒤처지기 쉽다. 책에서 말하듯, 아는 만큼 아낄 수 있고 아는 만큼 지킬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나 역시 그동안 재테크에 관심은 있었지만, 정작 내 소비 습관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카드값이 왜 이렇게 나왔는지 대략은 짐작하면서도, 정확히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는 늘 뭉뚱그려 넘어갔다. 돈 공부의 출발점이 거창한 투자 지식이 아니라 내 지출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그동안 내가 가장 소홀히 했던 부분이었다. 변동성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첫걸음은 결국 나 자신의 경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비유 중 하나는 절약을 운동에 빗댄 부분이다. 갑자기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몰아붙이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치는 것처럼, 절약도 처음부터 극단적으로 접근하면 금세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신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지속하는 태도가 결국 절약이라는 근육을 키운다는 설명이 오래 남았다. 이는 비단 돈 관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가 빠른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단번에 큰 성과를 내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오래 살아남는 습관은 대체로 작고 지속 가능한 것들이다. 나에게도 식비나 통신비, 구독 서비스처럼 무심코 나가는 고정지출을 다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돈을 한 번에 아끼려는 시도보다, 매달 조금씩이라도 새어나가는 돈을 줄여나가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달았다. 절약은 궁상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시선에도 공감이 갔다.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경험은 단순한 숫자의 증가를 넘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자존감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변동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생존 전략은 수입의 다각화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소개된 블로그, 앱테크, 소소한 부수입 만들기 등의 방법들은 얼핏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수입원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위기 앞에서 완충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하나의 직장, 하나의 월급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그 자체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산업의 흐름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는, 크지 않더라도 여러 개의 수입 흐름을 만들어두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훨씬 안정적인 기반이 된다. 나 역시 오랫동안 미뤄왔던 부업이나 자기계발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거창한 사업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이나 관심사를 꾸준히 기록하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일단 움직여보는 실행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동성이 심한 현 시점에서, 우리는 완벽한 예측이나 확실한 정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스스로의 재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작은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며, 하나의 수입과 하나의 자산에만 기대지 않는 균형 잡힌 태도를 갖춘 사람이 결국 흔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책을 계기로 나만의 돈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지난 석 달간의 소비 내역을 점검하는 것부터, 하루 십 분이라도 가계부를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까지, 거창하지 않아도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채워나가고 싶다.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통장은 다시 비어질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채울 수 있는 힘과 태도를 갖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짜 돈 공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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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사로 인생 공부 - 내 삶을 비추는 명문장 100 필사집
오수경 지음 / Birdbox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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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밑줄을 긋는다는 건, 사실 나 자신에게 표시를 하는 일이다. 좋은 문장은 저 혼자 빛나지 않는다. 그 문장이 지금의 나와 부딪히는 순간에야 비로소 빛을 낸다. 그래서 오늘 몇 개의 드라마 대사를 손으로 옮겨 적으면서, 나는 문장을 베낀 게 아니라 나를 조금 더듬어 본 것 같다. 요즘의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갇혀 있다'는 말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어디에 갇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회사일 수도, 관계일 수도, 혹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기준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뭔가를 뚫고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든다는 것이다. 그저 그런 만족이 아니라 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은 순간, 그래서 저절로 "아, 이게 사는 거지" 하는 말이 나오는 순간을 갖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갈망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해방의 시작이었다. 갇혀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 보는 것. 힘든 걸 힘들다고, 지친 걸 지쳤다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자리를 스스로에게 마련해 주는 것. 그게 없으면 사람은 갇힌 채로 갇힌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나는 나에게 그런 자리를 얼마나 자주 내어주고 있었을까.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무엇이 그리운지 생각해 보면, 화려했던 순간이나 큰 성취가 아니다. 그리운 건 오히려 그때의 사소한 걱정들이다. 숙제를 못 끝낼까 봐, 선배에게 혼날까 봐, 무대에서 실수할까 봐,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할까 봐,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그 걱정들이 실은 그 시절을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게 만든 것들이었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걱정도 언젠가는 그렇게 그리운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지금의 근심조차, 시간이 지나면 내가 치열하게 살아 있었다는 증거로 남을 테니까. 성공은 사람을 조금 가르치고, 실패는 사람을 전부 가르친다는 말을 오래 곱씹었다. 넘어지지 않으면 조금 알지만, 넘어지면 모든 걸 알게 된다는 말. 나는 그동안 넘어지는 걸 지나치게 두려워하며 살아온 것 같다. 실패가 나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로 배운 순간들은 늘 매끄럽지 않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날,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던 날, 자존심이 상했던 날. 그런 날들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다음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성공은 나를 안심시켰지만, 실패는 나를 깨어 있게 했다. 앞으로도 넘어지는 일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넘어지는 것을 조금 덜 두려워하며 살고 싶다. 나는 늘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준비가 되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조금 더 확신이 서면, 그렇게 미뤄온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서른여덟이었으면 쉬웠을까, 마흔여덟이었으면 두렵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 앞에서 깨달았다. 모든 조건이 동시에 갖춰지는 순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생의 신호등이 한꺼번에 파란불이 되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대신 지금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물어야 한다. 결국 문제는 타이밍이 아니라 용기였다. 나는 그동안 타이밍을 핑계로 용기를 미뤄온 건 아니었을까. 사랑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실 나는 사랑보다 나 자신을 더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망설였던 순간에도, 돌아섰던 순간에도 나는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보다, 내 마음의 결을 읽어내는 일이 언제나 더 어려웠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먼저 나 자신과 잘 지내보려 한다. 내가 무엇에 흔들리고 무엇에 편안해지는 사람인지 아는 것. 그게 관계의 시작이자 결국은 해방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 문장들을 손으로 옮겨 적으며 알게 된 건, 해방이란 어딘가로부터 완전히 도망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안에서도 나답게 걱정하고, 넘어지고, 사랑하고, 오늘을 사는 일.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 자신과 화해해 가는 과정 자체가 해방이 아닐까.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던 나로부터, 넘어짐을 두려워하던 나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장 낯설어하던 나로부터. 그 모든 것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것. 그게 지금 내가 바라는 나의 해방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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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영어, 해석이 아니라 단서다
김혜남 지음 / 지상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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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랫동안 수능 영어를 '단어 싸움'이라고 생각해 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독해가 멈추고, 문장 하나를 놓치면 지문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불안 속에서 사전을 뒤지듯 단어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러나 이번에 책이 소개하는 여러 지문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내가 정작 놓치고 있던 것은 단어의 뜻이 아니라 글이 움직이는 '방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능 영어는 문장을 얼마나 정확히 번역하느냐를 묻는 시험이 아니라, 필자의 생각이 어디에서 꺾이고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읽어 내는 시험이었다.

새로운 관점의 출발점은 역접 접속사였다. however, but, yet, instead 같은 단어들을 나는 그동안 그저 '그러나', '하지만'으로 옮기고 넘어가는 연결어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 이 단어들은 출제자가 독자에게 보내는 신호에 가까웠다. 지문은 흔히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통념이나 기대를 먼저 제시한 뒤, 역접 접속사를 기점으로 그 기대를 뒤집으며 필자의 진짜 주장을 드러낸다. 예컨대 부모가 아이를 달래기 위해 간식을 주고 싶어 하는 상황을 먼저 그려 놓고, However 이후에 정서적 필요를 간식으로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넘어가는 구조가 그렇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지문을 읽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이제 나는 however나 but을 발견하는 순간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그 뒤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앞부분을 완벽하게 해석하지 못했더라도, 역접 뒤의 흐름만 정확히 붙잡으면 정답에 훨씬 가까워진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시 보게 된 것은 this, that, such, these 같은 지시어였다. 예전의 나는 이것들을 그냥 '이런', '그런' 정도로 얼버무리며 지나갔다. 그러나 지시어는 바로 앞 문장의 핵심 내용을 압축해서 다시 가리키는 장치였다.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 글이 어색해지기 때문에 출제자는 this tendency, such behavior, these changes처럼 형태를 바꾸어 핵심 개념을 다시 불러온다. 그래서 나는 지시어가 나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this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behavior는 앞에서 말한 어떤 행동인가'를 되짚는 순간, 문장과 문장 사이에 끊어져 있던 논리가 다시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순서 배열이나 문장 삽입 문제에서는 지시어가 곧 단서였다. 어떤 문장에 this phenomenon이나 such effects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면, 그 현상이나 효과가 반드시 앞선 문장에서 먼저 설명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알게 되면서, 나는 문장을 낱개로 보지 않고 지시어가 만들어 내는 고리를 따라가며 순서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지문이 하나의 핵심 개념을 여러 단어로 바꾸어 가며 반복한다는 사실이었다. competition, rival, outperform, survival 같은 단어들이 함께 등장한다면, 그것은 각각 독립된 단어가 아니라 '경쟁'이라는 하나의 의미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risk, uncertainty, instability 같은 단어들이 이어진다면 글 전체가 위험이라는 주제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고, environment, pollution, sustainability 같은 단어들이 반복된다면 환경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글이 전개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지문을 읽을 때 개별 단어의 뜻보다 '지금 이 글이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하나의 개념이 무엇인가'를 먼저 찾으려 한다. 이렇게 의미 묶음으로 읽으면 모르는 단어가 하나쯤 섞여 있어도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오히려 낯선 단어의 뜻을 문맥 속에서 짐작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수능 영어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슨 단어가 나왔는가'가 아니라 '글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이다. 역접 접속사는 논리가 꺾이는 지점을 알려 주고, 지시어는 핵심 개념이 반복되는 고리를 만들어 주며, 의미 묶음으로 반복되는 어휘는 글 전체가 향하는 하나의 중심 주제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원리를 모두 관통하는 것이 바로 흐름, 즉 문장과 문장 사이의 방향성이다. 앞으로 나는 지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번역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however 뒤에서 멈추고, 지시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되짚고, 반복되는 핵심어를 따라가며 글의 방향을 먼저 파악하는 방식으로 수능 영어를 다시 준비해 보려 한다. 완벽한 해석보다 정확한 방향 읽기가 진짜 실력이라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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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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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자주 이런 느낌을 경험한다. 화면 앞에서 무언가를 입력하려다 멈추고, 이 선택이 정말 내 선택인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AI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 없는 불안"이라고나 할까.. 무엇이 불안한지 설명할 수 없지만, 확실히 불안하다. LLM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으로 침투하면서 우리는 전대미문의 불확실성 속 으로 빨려들어갔다. 알파고가 바둑판 위의 불확실성을 정복했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불확실성은 우리 자신의 존재 위 에 걸려 있다. 내가 생각한 것도 누군가는 이미 생각했을지 모른다. 내 선택도 알고리즘의 예측 범위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현대의 불안이다. EP문화와 이중구속. "직장에서는 유능한 동시에 여유로운 동료여야 하고, 집에서는 따뜻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낡은 시대의 말처럼 느껴진다. 이제 우리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동시에 해야 한다. AI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압박, 하지만 AI에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 새로운 기술에 적응해야 한다는 명령, 그러나 그것이 인간성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경고. 우리는 '정상'이 무엇인지 모른 채 정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다. 이것이 현대적 노모패시(normopathy)가 아닌가 싶다. 내가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실업의 공포가 아니다. 더 깊은 곳에는 나의 가치가 기 계적으로 계산될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대체 가능한 존재'로 환원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책에서 말하는 "피플 플리저"처럼 나도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역할이 이제는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 해 정의되고 있을 뿐이다. 책은 상호주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AI와의 상호작용에는 일방성이 있다. 나는 반응하지만, 그것이 정말 '반응'인지 의문이 든다. 더 정확히는 반응 의도의 흉내인 것 같다. 더 불편한 것은 이 일방성이 점점 양방성으로 착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위로받고, 공감받는다고 느낀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것이 건강한 상호주관성일까, 아니면 정교하게 설계된 환상일까? 책에서 말하는 "판타즘(환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은 아닐까 싶다. 내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나는 누군가와 진정으로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거울 속에서 나 자신의 반영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반영적 자기대상으로서의 AI를 무한정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너는 멋진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환상이다. 사후성의 의미도 흥미롭다. 의미 없이 숨겨져 있던 무의식적 기억이 시간이 흐른 뒤 '사후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 정신분석가 크리스토퍼 볼라스의 말이 떠오른다. "주체는 좀 늦게 현장에 도착한다." AI 시대에 우리는 이 사후성 자체 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경험, 선택, 감정이 모두 데이터로 변환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사후적으로 해석할 기회를 빼앗긴다. 대신 이미 해석된 데이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추천 알고리즘이 나를 정의하고, 트렌드 분석이 나의 미래를 예측한다. 역설적이다. 우리가 과거를 재구성할 자유를 잃을수록, 현재를 이해할 능력도 상실한다. 책에서 강조하는 이름 붙이기"의 능력 즉, 자신의 경험을 언어로 정의하고 의미화하는 능력이 가장 절실해진다. 하지만 그 이름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있는 중이다. 책은 희망적이다. "모호함을 견디는 것은 회피와 다르며, 성급한 단정을 유예하는 태도다." 그리고 "가짜 안전감 속에 숨 어 있는 것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내 불안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것이다: 현대는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을 빼앗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요구한다. AI 시대의 불확실성은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 과거의 불확실성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불확실성은 "이미 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의된 나'를 마주할 것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제시하는 길은 명확하다. 양가감정을 받아들이듯이, 우리는 이 시대의 모호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 없는 마음에 이름을 붙이면 막연하기만 하던 불안과 공포는 다룰 수 있는 마음이 된다. LLM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과의 경쟁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불안에 이름을 붙이고, 그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심리적 성숙함이다. 알고리즘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불안을 마주하고 있는 이 주체의 얼굴이다. 우리는 좀 늦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다. AI가 쓴 시나리오 위에 손글씨로 우리의 경험을 적을 수 있다. 그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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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의 가성비 - 대한민국, 누가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
정욱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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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절규가 유럽을 뒤흔들고, 중동은 또 다른 화염에 휩싸여 있다. 미국은 '아틀라스처럼 세계 질서를 홀로 떠받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중국은 동북아의 패권을 노리며 조용히 움직인다. 이런 시대에 한반도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정욱식 소장의 <자주국방의 가성비>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외쳐온 자주국방은 진정한 자주성이 아니라, 대미 의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명분 위주의 담론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쏟아부은 국방비는 천문학적이다. 2003년부터 2025년까지 총 865조 원이라는 거대한 숫자 뒤에는 깎아지른 절벽처럼 높아진 군사비 부담이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26년을 전시작전권 회복 원년으로 삼고 2028년 최종 환수를 목표로 하면서 국방 예산을 66조 2947억 원으로 편성했다. 그것도 7년 만에 가장 큰 폭인 8.2% 인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날카롭다. 우리는 정말 자주국방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그리는 '약탈적 패권주의'의 더 깊은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무현 정부는 자주국방의 꿈을 품고 2012년 12월 전시작전권 환수를 선언했다. 그것이 20년 전의 일이다. 20년이 흘렀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의 유산"이라며 발을 빼 버렸고, 박근혜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정권 간 쟁점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 국방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하나의 증거다. 작전권을 평시와 전시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이미 기형적이다. 마치 축구 대표팀의 감독을 평소에는 한국인이 맡다가 대회 때는 외국인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 더 심각한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미국의 자동 개입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자국의 이익과 배치된다고 판단하면 손을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헌법상 국군통수권자이면서도 전쟁과 평화의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갖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주국방이 언제나 '그림의 떡'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전시작전권 환수라는 형식적 절차만으로는 진정한 자주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패권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최근 이란 침공도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이것이 미국 패권의 종말을 의미할까? 패권의 종말이 아니라 패권의 '변질'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고 있고, 달러는 국제 금융의 중심이며, AV 등 첨단기술에서도 선도적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다극화 추세다. 중국이 강해지고, 러시아가 호전성을 드러내고, 글로벌 사우스가 부상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약탈적 패권주의'다. 미국은 이제 만만한 동맹국들의 팔을 비틀어 경제적•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한국에 대해 국방비 증액과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면서도, 한국의 주권에는 눈을 감고 있다. 주한미군에 한국 영토를 "발진기지"나 "중간기지"로 사용할 권리를 달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봉착한 딜레마다. 우 리가 전시작전권을 회복해도,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의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군은 휴전선과 북방한계선 이남 영토를 넘어, 헌법 제3조의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한 다. 이것이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 건설과 훈련을 요구하게 만든다.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도 '방어와 격퇴'를 1단계로, '반격과 점령'을 2단계로 설정했다. 이러한 높은 군사 목표는 전시작전권 환수 조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동시에 조선의 핵• 미사일 강화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제공한다. 만약 한국이 흡수통일 계획을 명시적으로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국 방비 소요를 대폭 줄일 수 있다. 국방 예산을 동결하면서도 현재보다 강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재정립이다. 조선이 '적대적 두 국가론'과 '한국에 대한 불변의 주적' 입장을 고수하는 핵심 이유가 바로 한국의 유사시 무력흡수통일론이다. 한국이 이를 명시적으로 포기한다면, 조선도 입장을 바꿀 여지가 생긴다. 이는 이재 명 정부가 천명한 "흡수통일 배제"와도 정확히 부합한다. 가장 현실적인 제안은 평화협정 체결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실 용적 자주국방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경로일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울부짖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우리에게 행운일 수도 있다. 미국 패권의 약화, 미중관계의 변화, 트럼프 행정부의 현실주의적 외교, 이 모든 것이 한반도에 평화의 문을 열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 자주국방'은 기존 자주국방론의 화려한 수사를 거둬내고 현실의 제약 조건 속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전략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택의 순간 앞에 있다. 우크라이나처럼 무한 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인가, 아니면 변화된 국제 정세를 현명하게 활용하여 진정한 자주성과 안정을 동시에 확보할 것인가. 그 답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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