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가르침, 단독자로 살아라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정영훈 엮음, 김경수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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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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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의 문장들을 읽었을 때, 나는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불편함은 낯선 것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익숙한 자신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쳐서였다. 니체는 묻는다. 당신은 타인의 보폭에 맞춰 걷고 있지 않은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선뜻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많은 선택들은 내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이 옳다고 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 했던 것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부모님의 기대 때문이었다. 어떤 직업을 선 망했던 것은 그 일이 나를 불태울 것 같아서가 아니라, 주변이 안정적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특정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던 것도, 관계가 깨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나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의 좌표를 찾아왔다. 니체는 이런 태도를 낙타의 단계라고 부른다. 사회가 지워주는 짐을 묵묵히 짊어지고, "그래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하며 사막을 걷는 낙타. 그 낙타의 모습이 바로 나였다. 물론 순종이 무조건 나쁜 것 은 아니다. 규칙을 배우고 공동체의 요구에 응하는 과정은 삶의 기초를 닦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낙타의 단계에 머물면서도 그것이 내 자신의 선택이라 착각할 때다. 짐을 지고 있는데 그것이 짐인지도 모르는 상태. 그것이 진정한 위기다. 니체가 충격적인 이유는 “더 열심히 하라"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도덕, 집단, 칭찬, 양심)이 실은 탁월한 개인을 옭아매기 위한 구조일 수 있다고 폭로한다. 이 폭로는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사유의 시작이다. 안락한 수면에서 깨어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나는 얼 마나 오랫동안 타인의 칭찬을 연료로 삼아 살아왔는가. 누군가 나를 인정해 줄 때 앞으로 나아가고, 아무도 봐주지 않을 때는 멈주는 삶. 그것은 자율적인 삶이 아니라 타인이 스위치를 쥐고 있는 삶이다. 니체의 언어를 빌리자면,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를 먹고 사는 의존자였던 것이다.


니체 철학에서 내가 가장 깊이 공명한 것은 고독과 파괴다. 우리 시대는 고독을 병으로 취급한다.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로 운 사람이고, 무리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부적응자처럼 여겨진다. SNS는 끊임없는 연결을 강요하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 게 그 소음 속에 자아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니체는 말한다. 고독은 도망이 아니라 귀환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일이다. 나는 고독이 두려웠다. 혼자 있으면 잡념이 밀려오고, 그 잡념 속에는 직면하기 싫은 질문들이 있었다. '나는 지금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이 선택은 정말 내 것인가?' 소음으로 그 질문들을 덮는 것이 훨씬 쉬웠다. 유튜브를 틀고, 음악을 켜고, 누군가와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스스로를 채우지 못했기에 외부의 소음으로 마음의 공백을 메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독을 진짜로 직면한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나를 보아주지 않는 어떤 새벽, 혼자 오래 앉아 있었을 때. 처음에는 불안했다. 그러나 그 불안이 가라앉고 나면, 아주 선명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 내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 내가 지금까지 회피해온 것들, 그것들이 고요 속에서만 목소리를 낸 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니체가 말한 "침묵할 때 진짜 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문장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파괴에 관한 사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파괴를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 무너지는 것, 잃어버리는 것,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낡은 자아를 붙들고, 과거의 성공에 기대어, 변화를 최대한 미루며 산다. 그러나 니체는 말한다. 낡은 껍질을 깨지 않으면 새로운 자아는 태어날 수 없다고. 파괴는 창조의 전제 조건이다. 나는 한때 내가 구축해 온 어떤 이미지와 역할 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무너짐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그 낡은 껍질 속에서 안전하다는 착각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통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결핍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니체가 말하는 파괴적 성장이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살면서 실제로 겪는 그 쓰라린 과정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자는 낙타와 다르다. 낙타가 "당신은 해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한다면, 사자는 "나는 원한다"고 선언하며 기존의 가치에 맞선다. 이 전환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익숙한 순종의 패턴은 뿌리가 깊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 하는 순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인식이 곧 변화의 첫 번째 근육이다.


니체 철학의 정점은 위버멘쉬나 영원회귀의 개념보다, 나에게는 아모르파티(Amor Fati)였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은 체념이 아니다. 주어진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능동적인 태도다. 내게 주어진 조건(결핍, 상처, 실패, 한계)을 원망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바로 그것을 재료 삼아 나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아모르파 티가 요구하는 삶의 태도다. 나는 오랫동안 내 삶의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환경의 탓으로 돌렸다. 더 나은 조건이었다면, 다른 시작점이었다면,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라는 가정들이 나를 현재로부터 도피하게 만들었다. 니체는 이 도피를 정확히 꿰뚫는다. "환경을 탓하는 자는 영원히 제자리를 맴돈다." 불편한 문장이다. 그러나 진실은 종종 불편한 형태로 도착한다. 아모르파티를 삶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통이 닥쳤을 때 그것을 사랑하라는 말은,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것은 고통을 즐기라는 게 아니다. 그것을 없애려 발버둥치는 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 그 고통을 통과함으로써 더 단단해지라는 것이다. 고통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원동력이다.


나는 하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오늘 하루가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그것을 긍정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실존적인 물음이다. 만약 지금 이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할 때 그것을 기꺼이 원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신호다. 니체는 위로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흔든다. 그러나 그 흔들림 이 진짜 시작이다. 타인의 허락 없이, 집단의 승인 없이, 내 안의 명령 하나만으로 걸어가는 삶.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단독 자의 삶이며, 나는 지금 그 길의 아주 초입에 서 있다. 두렵지만, 이 두려움마저 껴안고 걷는 것, 그것이 바로 아모르파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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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포트폴리오 - 폭발적 우상향을 이끌 주식투자 넥스트 텐배거 TOP7
정주용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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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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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말부터 2026년에 이르는 이 시장은 두 개의 극단이 동시에 존재한다. 엔비디아는 다시 한번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고, 스페이스X의 IPO 기대감은 우주·항공 섹터 전체를 들끓게 만들고 있다. HBM 수주 잔고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 중이고, AI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 글로벌 자본은 연간 5조 달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숫자만 보면 지금이 역사상 가장 뜨거운 장세다. 그런데 동시에, 공부지수도 사상 최고치다. 유튜브에는 날마다 새로운 '텐배거 후보'가 등장하고, 커뮤니티에는 "지금 이 종목 안 사면 평생 후회한다"는 경고가 넘쳐난다. 테마주 열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노선을 바꾼다. 어제는 자율주행, 오늘은 로보틱스, 내일은 방산이다. 이 시장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주가의 하락이 아니다.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생각해 본다.


많은 투자자들이 초성장 섹터에 뛰어들며 꿈꾸는 것은 '시장 평균을 압도하는 수익률'이다. 그것은 나쁜 욕망이 아니다. 하지만 이 욕망이 가장 자주 만들어내는 결과는 고점 추격 매수와 저점 공포 매도의 반복이다. 테마주 열차를 갈아타는 투자자는 항상 이미 출발한 기차의 뒷칸에 탑승하게 된다.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가치투자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경제적 해자는 존재하는가, 현금 흐름이 지속되는가, 가격이 가치보다 낮은가. AI 시대의 화려한 수사 속에서도 이 세 가지 질문의 답이 긍정적인 기업만이 장기 복리의 수혜를 누린다는 것이다. 나는 이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솔직한 자기 진단이 필요하다. 나는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를 기술적으로 깊이 분석할 역량이 있는가? 스페이스X의 발사체 재사용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한계비용 구조를 스스로 모델링할 수 있는가? 답은 '아니오'다. 개별 종목의 깊은 분석이 어렵다면, 섹터 전체의 성장에 올라타는 ETF가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저자의 제안은 나에게 위안이 아니라 전략적 방향이다.


자율주행에는 AI 칩이 필요하고, 로봇에는 반도체가 들어가고, 방산 드론은 자율주행 기술을 쓴다. 섹터 분석서에서 흔히 보는 산업 연결 지도처럼 보이지만, 투자 실전에서의 함의는 훨씬 깊다. 이 7개 테마가 서로 경쟁하는 열차가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병렬 노선이라면, 어느 열차가 먼저 도착할지를 맞추는 게임보다 모든 열차가 지나는 '공통 철로'에 자산을 배치하는 것이 훨씬 낮은 리스크로 높은 확률의 수익을 만든다. 나의 포트폴리오 코어는 이 원칙 위에 세운다. 전체 투자 자산의 70%는 모든 테마를 관통하는 핵심 인프라 자산에 고정한다. 구체적으로는 S&P 500 인덱스 ETF와 나스닥 100 ETF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AI가 뜨든, 로보틱스가 뜨든, 방산이 뜨든, 이 지수에 편입된 빅테크와 핵심 인프라 기업들은 결국 수혜를 입는다. 엔비디아 하나가 S&P 500 전체 수익률에 기여하는 비율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넓게 분산된 인덱스가 가장 효율적으로 AI 슈퍼사이클의 과실을 흡수하는 그릇이 된다. 여기에 반도체 섹터 ETF(SOXX 또는 SMH)를 일부 추가한다. 반도체는 AI, 자율주행, 로보틱스, 방산 드론 등 모든 테마의 공통 원자재다. 특정 응용 산업의 승자를 고르지 않아도, 반도체 공급망 자체가 성장하면 이 ETF는 수혜를 입는다. '금광을 캐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곡괭이를 파는 사람'에 투자하는 고전적 논리가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반도체 ETF는 증명하고 있다. 코어의 핵심은 '갈아타지 않는 것'이다. 뉴스에 반응하지 않는다. 리밸런싱은 연 1회로 제한한다. 이 단순한 규칙이 수수료, 세금, 심리적 손실을 모두 줄이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다.


나머지 30%는 위성 포트폴리오다. 이 자산의 목적은 특정 테마가 폭발할 때 초과 수익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테마가 먼저 터질지 나는 모른다는 전제를 유지한다. 우주·항공 ETF 한 종목, 에너지 인프라(전력·SMR) ETF 한 종목, 방산 ETF 한 종목에 각각 8~10% 수준으로 분산 배치한다. 자율주행과 로보틱스는 당장 현금 흐름이 검증된 기업이 많지 않고 밸류에이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시장의 추가 성숙을 기다리며 관찰 대상으로 유지한다. 에너지 인프라를 위성에 포함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전력 수요 급증을 동반한다. 6,65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이 직면한 가장 본질적인 병목은 연산 칩이 아니라 전기와 냉각이다. 이 물리적 제약은 반도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는다. 전력 인프라와 SMR(소형 모듈 원자로)에 투자하는 ETF는 AI 섹터의 직접 수혜주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안정 우선 성향의 나에게 적합하다. 방산 ETF 역시 유사한 논리다. 지정학적 불안이 상수가 된 시대에 각국의 국방 예산은 GDP 대비 확장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K-방산의 장기 수주 잔고와 수출 다변화는 단기 테마가 아니라 구조적 성장의 근거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협상 진전 같은 지정학적 변수가 단기 조정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비중을 10%를 넘기지 않는다.


나의 포트폴리오 전략의 가장 큰 전제는 버핏이 말한 그 문장이다. "가격은 당신이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당신이 얻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을 때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이 원칙의 반대편에는 경고가 있다. 현재 가격이 미래 가치를 압도적으로 초과할 때, 그것이 버블이다. AI 반도체가 PER 40배를 넘어도 계속 오를 수 있다. 스페이스X가 상장하면 섹터 전체가 리레이팅될 수 있다. 그러나 닷컴 버블이 그랬고, 2021년 메타버스 광풍이 그랬듯, 가격은 반드시 가치로 회귀하는 중력이 존재한다. ETF 중심의 분산 투자는 이 중력이 작용할 때 특정 종목에 집중 투자한 포트폴리오보다 훨씬 완만한 충격 흡수 구조를 만든다. 공부지수가 최고치인 시장에서 역설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가장 공부를 덜 한 척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의 범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불확실성 자체를 포트폴리오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테마 열차가 먼저 도착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모든 열차가 지나는 철로 위에 서기로 했다. 폭풍이 지나가도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다. 가격과 가치 사이의 간극을 냉정하게 읽는 눈, 그리고 그 눈을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자신만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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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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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비어 있는 자리를 메우기 위해. 신유진님의 말을 빌리자면, 완전해지고 싶어서, 공백과 균열 없이 가득 찬 상태에 닿고 싶어서. 그 욕망은 순수하다. 아니, 정확히는 순진하다. 책을 읽을수록, 채울수록 오히려 더 많은 모름이 보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다. 언젠가 책을 읽으면 세계가 해명될 것이라고 믿었다. 위대한 작가들의 문장을 충분히 흡수하면, 언젠가는 삶이라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그러나 뒤라스를 읽고, 카뮈를 읽고, 크리스토프를 읽을수록 퍼즐은 완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빈칸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읽기란 채움이 아니라 발굴이었다. 그리고 발굴된 빈칸들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신유진님은 '균열'을 파괴로 읽지 않는다. 균열은 H라는 알파벳이 내리찍혀 갈라지는 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이다. 쩍, 쨍그랑, 우지끈. 그런데 그 소리는 공허하지 않다. 무언가가 깨진다는 것은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는 뜻이다. 껍질이 깨지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균열은 실패가 아니라 증거다. 뫼르소가 해변에서 방아쇠를 당긴 것도,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낯선 언어의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쓴 것도, 그들이 더 이상 온전하기를 포기한 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짓누르는 것들을 정면으로 감당하려 했던 몸짓이었다. 태양을 쏘고 싶었던 뫼르소의 총구는 엉뚱한 곳을 향했지만, 그 행위 안에는 거대하고 무심한 존재에 맞서려는 처절한 의지가 있었다. 크리스토프의 짧고 건조한 문장들은 언어라는 적에게 내어주지 않으려는 마지막 영토였다. 그렇다면 균열은 자신을 잃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속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일이다. 껍질은 우리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뒤라스가 말한 글쓰기는 '발현'이 아니라 '해독'이다. 이미 있는 것을 읽어내는 일. 간조의 해변에 남겨진 발자국과 해초와 깨진 조개들처럼, 우리 안에도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채 쌓여 있는 것들이 있다. 읽기란 그것들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것에 비로소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나는 이 생각이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채우지 못했을 때, 나는 그것을 결핍으로 읽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미해독의 상태였다. 이미 내 안에 있지만, 아직 읽히지 않은 것들. 간조가 되어야만 드러나는 해변처럼, 어떤 것들은 시간과 고독과 실패를 거쳐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균열을 받아들이는 것은 실패를 용납하는 것과 다르다. 신유진이 다루는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인물들은 계속해서 실패한다. 하지만 그 실패는 포기가 아니다. 끝을 유예하는 일이다. 불이 꺼질 테지만 무대에 남아 있는 것. 생을 조금 더 살아보는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끝내 프랑스어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고 글 속에 드러냈다. 그의 짧고 파편적인 문장들 사이의 행간에서 오히려 더 크고 더 진실한 무언가를 만난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들어온다. 몰리나르가 그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고집한 이유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균열의 역설이다. 깨지는 것은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온전히 채워진 척할 때, 우리는 오히려 자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페렉은 사물의 목록이 길어질수록 존재가 선명해지는지, 아니면 그 속에 파묻혀 지워지는지 물었다. 나는 이 질문을 읽기와 쓰기에 대입해 보고 싶다. 읽은 책이 쌓일수록 나는 더 선명해지는가, 아니면 더 흐려지는가. 신유진의 대답은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다. 나의 세계를 안전하게 확인하는 읽기는 나를 가두지만, 존재의 밑바닥을 흔들고 절대적인 낯섦을 보게 하는 읽기는 나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균열을 두려워하지 않는 읽기다. H가 내리찍히는 소리.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소리가 났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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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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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고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Al라는 문 앞에서 서성였다. 손잡이를 잡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못한 채. 화면 너머에서 화려하게 답변을 쏟아내는 AI를 바라보며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저건 나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기술에 능숙한 사람들, 젊고 손가락이 민첩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 선은 누가 그어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조용히, 그리고 아주 단단하게 그어둔 선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AI 그 자체가 아니 라, AI 앞에서 무능해질지도 모르는 '나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생성형 Al, 즉 LLM(Large Language Model)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뒤집어야 할 편견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Al를 '정답을 가진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AI에게 묻는다. 짧게, 단순하게, 마치 검색창에 키워드를 던지듯이. 그리고 AI가 기대에 못 미치는 답을 내놓으면 실망하며 말한다. "AI가 별거 없네." 하지만 그것은 거울 앞에 서서 흐릿하게 보인다고 거울을 탓하는 것과 같다. AI는 내가 던진 질문의 수준만큼 답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AI는 내 사고의 깊이를 그대로 반영해 보여주는 존재다. 그러므로 AI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역량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정교하게 질문할 수 있는가'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2500년 전에 이미 질문이 지혜의 시작임을 보여주었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에게 "어디가 아프세요?"라고만 묻지 않는다. "언제부터,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강도로 아픈지"를 세심하게 물으며 문제의 핵심에 다가간다. AI도 마찬가지다. 나의 상황, 나의 목적, 나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담은 질문일수록 AI는 비로소 진짜 '생각하는 파트너'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AI는 단지 내 질문에 답하는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내가 막막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AI에게 역할을 역전시킬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파악하기 위해 당신이 먼저 질문해 달라고. 이 발상의 전환이 의외로 강력하다. AI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문제를 훨씬 선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AI는 때로 거울이 되고, 때로 나침반이 된다. 결국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평소의 사고 훈련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현상을 피상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왜?""어떻게?", "만약 이렇다면?"이라는 질문 습관을 몸에 익히는 것. 그것이 AI 시대의 진짜 공부다.

한때 세상은 '타고난 재능'의 논리로 굴러갔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글을 유려하게 쓰는 사람, 음악적 감각이 탁월한 사람. 그들이 콘텐츠를 만들고, 브랜드를 세우고, 시장을 선점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감탄하며 소비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 구도를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이제는 전문적인 디자인 훈련 없이도 이미 지를 만들 수 있고, 악기를 다루지 못해도 음악을 구성할 수 있으며, 유려한 문장력이 없어도 설득력 있는 글을 완성할 수 있다. AI가 기술적 실행의 장벽을 허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AI 시대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시대다. AI가 실행을 대신할 수 있게 된 만큼, 이제 진짜 경쟁의 무대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왜 이것이어야 하는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할 것인가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다시 말해, 아이디어와 관점과 개성이 핵심 경쟁력이 된 것이다. 이것은 사실 반가운 소식이다. 선천적 재능은 노력으로 쉽게 따라잡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다르다. 아이디어는 경험에서 나오고, 관찰에서 자라며,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삶의 경험, 수많은 실패와 성찰 속에서 길러진 통찰, 그것이야말로 Al라는 강력한 도구를 가장 지혜롭게 움직일 수 있는 연료가 된다.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방직기계의 등장에 공포를 느낀 직공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기계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기계를 이해하고 활용한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Al 앞에서 우리는 지금 같은 기로에 서 있다. 파도를 막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파도 위에 올라탈 것인가. 그 선택 은 기술력의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차이에서 갈린다.

AI는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는 거인이다. 그 어깨 위에 올라서는 것, 그것이 두려움의 반대편에 있는 가능성이다. 나이가 든 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열어둔 창문을 하나씩 닫아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혜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는 과정이다. 그 지혜가 AI라는 도구를 만날 때,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두려움을 내려놓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시작하는 것, 그리고 AI와 함께 질문하고 탐구하고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AI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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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바라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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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통장 잔액은 늘 내 기대를 배신했다.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왔고, 딱히 사치를 부린 기억도 없었다. 그런데도 연말이 되면 손에 쥐어진 것은 희미해진 계획과 텅 빈 저축 통장뿐이었다. 처음에는 '월급이 적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물가가 올라서 라고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솔직히 들여다보면, 나는 돈을 관리한 것이 아니라 그저 돈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그 이유를 명확히 마주했다. 문제는 수입의 크기가 아니었다. 순서였다.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축도 제대로 하기 전에 투자부터 시작한다고. 아기가 걷기도 전에 뛰려 하는 것처럼, 기초 없이 수익률부터 쫓는 재테크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말이 날카롭게 가슴에 박혔다. 나는 정확히 그 실패의 루트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 나에게 재테크란 곧 주식이었다.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종목 추천 영상을 보며 소액을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고, 어느 날은 친구가 했다는 코인 투자 이야기에 솔깃해 무작정 따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손실을 겪고 나서야 나는 재테크를 완전히 포기했다. 아니, 정확히는 '나는 재테크와 맞지 않는 사람' 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것이 내 성격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였음을 알려주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올바른 순서는 간명하다. [돈 관리 + 저축 +투자] 이 세 단계는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놀랍도록 많은 사람들이 역순으로 움직인다. 투자부터 시작하고, 실패하고, 그제야 저축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자기 돈의 흐름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채 허덕인 다. 나 역시 그 흐름의 한복판에 있었다. 저자는 재무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모든 재테크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건강검진 없이 건강을 논하지 않듯이, 수입과 지출의 구조를 냉정하게 파악하지 않고 투자를 논하는 것은 지도 없이 낯선 도시를 헤매는 것과 같다. 가계부를 쓰고, 비상금을 마련하고, 고금리 부채부터 상환하는 것. 이 당연해 보이는 과정들이 실은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특히 비상금에 대한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평소 월 생활비의 6개월치를 모아두라는 것. 단순한 수치이지만, 그것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생각하면 무게가 달라진다. 비상금이 없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면 신용카드 할부나 카드론에 손을 댈 수밖에 없고, 그 순간부터 재무 구조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비상금은 재무 설계 전체를 보호하는 방어막인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대출을 금기어처럼 여겼다. 대출을 받는다는 것은 곧 경제적으로 실패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고, 빛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빚은 없을수록 좋다", 대출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말 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대출은 나쁜 것이 아니라, 잘못 쓰는 것이 나쁜 것이다. 저자는 적절한 대출이 자산 성장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무분별한 차입을 권정하는 것이 아니다. 금리 구 조를 이해하고, 자신의 소득 수준에 맞는 상환 계획을 세우며, 금리 변동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스스로 해보는 것. 그것이 대출을 두려움이 아닌 전략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특히 내 집 마련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시각 전환은 결정적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주택 가격이 수억 원을 훌쩍 넘는 현실에서 대출 없이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문제는 '대출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를, 어떻게, 어떤 조건으로 받을 것인 가가 되어야 한다. 대출을 피하려다 정작 적절한 시기에 주택을 구입하지 못하고, 더 오른 집값 앞에서 좌절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숱하게 보아왔다. 그 안타까움이 이제야 다른 맥락에서 이해된다. 물론 이 책이 대출을 무조건 권장하는 것은 아 니다. 핵심은 '적절함'이다. 자신의 가처분 소득, 상환 여력, 금리 시나리오를 따져보고, 그 범위 안에서 레버리지를 활용하 는 것. 그것이 책에서 말하는 '제대로 빌리기'의 본질이다.

종합주가지수는 최고치를 경신하지만, 공포지수 또한 높은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수식시장이다. 초보자의 대부분이 떨어 졌을 때 겁에 질려 매도하고, 오르면 추격매수한다. 등이 서늘해졌다. 그것이 정확히 내가 해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떨어지면 더 떨어질까봐 팔았고, 오르면 뒤늦게 올라타다가 꼭지에서 물렸다. 논리도 없었고 원칙도 없었다. 오직 감정만 있었다. 행동재무학에서 말하는 현재 편향, 손실 회피, 과신 편향은 그저 학문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투자 결 정 속에서 살아 숨쉬는 심리적 함정이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장기 투자가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가가 5% 떨어지는 순간 손가락이 매도 버튼을 향한다. 뇌는 알고, 손은 모른다. 이 괴리를 줄이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것이 바로 '도깨비 포트 폴리오'와 같은 자동화•구조화된 투자 시스템이다. 하락 시 자동 매수, 상승 시 자동 일부 수익 실현, 그리고 평소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이 단순한 구조가 오히려 감정의 개입을 막고 장기 복리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은, 어쩌면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역설이다. 가장 좋은 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투자라는 사실. 이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꽤 많은 수업료를 냈다. ISA를 통한 절세 장기 투자, 퇴직연금의 구조적 활용, 적정 보험료의 비율 설정까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은 더욱 구체적이고 실용적이 된다. 20대에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이라도 읽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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