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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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비어 있는 자리를 메우기 위해. 신유진님의 말을 빌리자면, 완전해지고 싶어서, 공백과 균열 없이 가득 찬 상태에 닿고 싶어서. 그 욕망은 순수하다. 아니, 정확히는 순진하다. 책을 읽을수록, 채울수록 오히려 더 많은 모름이 보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다. 언젠가 책을 읽으면 세계가 해명될 것이라고 믿었다. 위대한 작가들의 문장을 충분히 흡수하면, 언젠가는 삶이라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그러나 뒤라스를 읽고, 카뮈를 읽고, 크리스토프를 읽을수록 퍼즐은 완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빈칸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읽기란 채움이 아니라 발굴이었다. 그리고 발굴된 빈칸들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신유진님은 '균열'을 파괴로 읽지 않는다. 균열은 H라는 알파벳이 내리찍혀 갈라지는 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이다. 쩍, 쨍그랑, 우지끈. 그런데 그 소리는 공허하지 않다. 무언가가 깨진다는 것은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는 뜻이다. 껍질이 깨지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균열은 실패가 아니라 증거다. 뫼르소가 해변에서 방아쇠를 당긴 것도,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낯선 언어의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쓴 것도, 그들이 더 이상 온전하기를 포기한 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짓누르는 것들을 정면으로 감당하려 했던 몸짓이었다. 태양을 쏘고 싶었던 뫼르소의 총구는 엉뚱한 곳을 향했지만, 그 행위 안에는 거대하고 무심한 존재에 맞서려는 처절한 의지가 있었다. 크리스토프의 짧고 건조한 문장들은 언어라는 적에게 내어주지 않으려는 마지막 영토였다. 그렇다면 균열은 자신을 잃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속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일이다. 껍질은 우리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뒤라스가 말한 글쓰기는 '발현'이 아니라 '해독'이다. 이미 있는 것을 읽어내는 일. 간조의 해변에 남겨진 발자국과 해초와 깨진 조개들처럼, 우리 안에도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채 쌓여 있는 것들이 있다. 읽기란 그것들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것에 비로소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나는 이 생각이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채우지 못했을 때, 나는 그것을 결핍으로 읽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미해독의 상태였다. 이미 내 안에 있지만, 아직 읽히지 않은 것들. 간조가 되어야만 드러나는 해변처럼, 어떤 것들은 시간과 고독과 실패를 거쳐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균열을 받아들이는 것은 실패를 용납하는 것과 다르다. 신유진이 다루는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인물들은 계속해서 실패한다. 하지만 그 실패는 포기가 아니다. 끝을 유예하는 일이다. 불이 꺼질 테지만 무대에 남아 있는 것. 생을 조금 더 살아보는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끝내 프랑스어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고 글 속에 드러냈다. 그의 짧고 파편적인 문장들 사이의 행간에서 오히려 더 크고 더 진실한 무언가를 만난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들어온다. 몰리나르가 그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고집한 이유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균열의 역설이다. 깨지는 것은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온전히 채워진 척할 때, 우리는 오히려 자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페렉은 사물의 목록이 길어질수록 존재가 선명해지는지, 아니면 그 속에 파묻혀 지워지는지 물었다. 나는 이 질문을 읽기와 쓰기에 대입해 보고 싶다. 읽은 책이 쌓일수록 나는 더 선명해지는가, 아니면 더 흐려지는가. 신유진의 대답은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다. 나의 세계를 안전하게 확인하는 읽기는 나를 가두지만, 존재의 밑바닥을 흔들고 절대적인 낯섦을 보게 하는 읽기는 나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균열을 두려워하지 않는 읽기다. H가 내리찍히는 소리.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소리가 났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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