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를 모르는 나에게 - 프로이트가 건넨 낯선 마음의 문장들
민유하 지음, 지크문트 프로이트 원작 / 리프레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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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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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종종 낡은 학문으로 취급된다.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이 발전하면서 무의식이니 이드니 하는 개념은 검증되지 않은 은유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정신분석의 학문적 지위가 흔들리는 동안에도 그 언어는 오히려 우리 일상 속으로 더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사실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 같아", "그건 방어기제야", "나 자신도 몰랐던 욕망이었나 봐" 같은 말들은 이제 전문 용어가 아니라 평범한 대화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과학적으로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가 던진 질문이 시대를 초월해 계속해서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이해"와 "자기 관리"를 강조한다. 자기계발서는 목표를 세우고 습관을 관리하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SNS 프로필은 각자가 자신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편집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듯 보여준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는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다"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정면으로 균열을 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움직인 감정과 충동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것을 그럴듯한 서사로 정리하는 존재에 더 가깝다. 이 진단은 백 년 전보다 오히려 지금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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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에는 억압된 마음이 꿈이나 말실수, 증상을 통해 우회적으로 돌아왔다. 오늘날에는 그 우회로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우리의 클릭, 체류 시간, 검색 기록이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정하기도 전에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데이터로 먼저 포착한다. 사람들은 종종 추천 피드를 보고 나서야 "내가 이런 것에 관심이 있었나"라고 놀란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의 뒤늦음 즉, 의지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마음의 사건을 나중에 이해하는 구조가 기술적으로 증폭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그 뒤늦은 해석을 개인의 내면에서 수행했다면, 지금은 플랫폼이 그 해석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우리에게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되팔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취향이라 믿는 것, 정치적 견해라 믿는 것, 소비 습관이라 믿는 것의 상당 부분이 알고리즘에 의해 반복적으로 강화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이제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일 뿐 아니라, 무엇이 나의 관심을 대신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프로이트는 억압이 삭제가 아니라 보류이며, 억압된 것은 반드시 증상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온다고 보았다. 이 통찰은 오늘날 번아웃과 감정노동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많은 직장인들은 부당함이나 분노, 억울함을 그 자리에서 표현하지 못한 채 "프로답게" 웃으며 넘긴다. 감정을 누르는 일이 반복되면, 그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만성적인 피로, 이유 없는 무기력, 사소한 일에 대한 과민 반응으로 되돌아온다. 번아웃을 단순히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긴 것"으로만 설명하면 이 현상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그 이면에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이 다른 얼굴을 하고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감정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프로이트적 통찰을 사회학적으로 번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짜 감정과 요구되는 감정 사이의 간극을 매일 메우며 살아가고, 그 간극이 벌어질수록 몸과 마음은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을 더 완벽하게 억누르는 기술이 아니라, 그 증상이 무엇을 대신 말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태도다. 이는 정신분석이 임상 밖에서도 여전히 실천적 힘을 갖는 지점이다.


현대사회는 승화의 개념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사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안과 결핍,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일과 성취, 자기계발이라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형태로 바꾸어내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는 분명 프로이트가 말한 승화의 긍정적 측면 즉, 충동의 에너지가 창조와 헌신의 방향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승화가 지나치게 도구화될 때, 즉 쉼 없는 성과와 생산성만이 유일한 승화의 통로로 강요될 때, 그 이면에는 프로이트가 후기에 주목한 죽음충동적 요소 즉, 자기 자신을 소진시키고 파괴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힘가 함께 작동할 수 있다. "갈아 넣는다"는 표현이 일상어가 될 정도로 자기 착취가 성실함의 증거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승화와 자기파괴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흐려지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오늘날 프로이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의 이론을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현대사회의 자신감에 질문을 던지는 일에 가깝다. 프로이트는 우리에게 손쉬운 자기 이해 대신, 끈질기고 불편한 질문을 남겼다. 나는 왜 이 감정을 유독 부끄러워하는가, 나는 무엇을 이미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가, 나의 분노와 회피와 습관 뒤에는 어떤 오래된 마음이 숨어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알고리즘이 우리의 욕망을 대신 읽어주고, 자기계발 담론이 손쉬운 해답을 제공하는 시대일수록 더 큰 의미를 갖는다. 프로이트가 남긴 것은 완결된 답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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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끝
김성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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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달이 파괴된 세계, 사교도들이 신도를 모으고 괴물의 목격담이 도시를 떠도는 종말의 풍경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소설이 진짜로 다루는 공포는 괴물이나 재난 자체가 아니다. 더 근원적인 공포는 '틸링해스트 수식'이라는, 우리가 사는 시간과 겹쳐진 또 다른 시간, 이른바 '2차 시간'을 계산해낼 수 있다는 설정에서 나온다. 시간이 더 이상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정식으로 환원되고, 그 방정식을 풀면 세계의 끝이 언제 어떻게 오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 형사, 수학자, 교주라는 세 인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수식을 붙들고 씨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이 계산 가능한 대상이 되는 순간, 운명은 더 이상 신비가 아니라 산출값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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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비밀 - 종양내과 전문의가 알려 주는 암 극복 전략
문용화.김슬기 지음 / 비타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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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늘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뉴스에서 누군가의 투병 소식을 들을 때도, 주변 지인이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암은 나에게 오랫동안 "특별히 운이 나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재앙" 같은 것이었다.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거나, 나쁜 생활 습관을 오래 방치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일종의 벌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비밀>을 소개하는 두 편의 서평을 읽으면서, 그 오래된 믿음이 얼마나 근거 없는 편견이었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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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수술 후에도 재발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 이른바 '미세잔존암'이라는 개념이었다. 나는 그동안 암 수술이 끝나면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암세포가 남아 있을 수 있고, 그것이 훗날 재발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접하니, 의료진이 '완치'라는 단어 대신 '관해'라는 표현을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이유도 비로소 납득이 되었다. 이것은 의사들이 희망을 주지 않으려는 냉정함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와 가족이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직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면 두렵고, 알면 준비할 수 있다는 말을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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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가장 마음을 울린 부분은 실제로 암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3기 유방암을 진단받고 무기력함을 떨쳐내며 운동을 시작한 사람, 4기 전립선암 진단 이후에도 7년을 꾸준한 습관으로 버텨낸 사람, 딸의 결혼식을 목표로 삼아 4기 난소암을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는 몇 번이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간 사람들이었다는 설명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삶은 결국 재능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아울러 환자가 스스로 질문하고 기록하며 치료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결과가 실질적으로 달라진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암 치료는 이제 그저 버티는 인내의 영역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의 건강 문해력이 생존율을 바꾸는 적극적인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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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 밖 주식 투자 - 숫자 뒤에 숨은 기업가치를 읽어라
이재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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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계좌를 처음 개설하던 날을 떠올려본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화면 속 숫자들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오르내렸고, 나는 그 흐름에 올라타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은 것은, 시장은 기대를 먹고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변동성은 일상이었고, 손실은 생각보다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찾아왔다. 주식 투자 인구가 1,4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나 실시간으로 공시를 열람하고, 해외 투자까지 손쉽게 할 수 있는 시대다. 정보는 평등해졌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개인투자자의 성과는 여전히 시장 평균을 밑돈다. 매매가 잦을수록 수익률은 오히려 나빠지는 현상이 실증 데이터로 반복해서 확인된다. 왜일까. 나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흘려보냈다. <재무제표 밖 주식 투자>를 읽으며 비로소 그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학창 시절, 성적표는 이미 끝난 결과였다. 고치거나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재무제표를 그렇게 대해왔다. 매출액이 늘었으면 좋은 기업, 영업이익이 줄었으면 나쁜 기업. 단순하고 직관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저자 이재준은 이 관점 자체를 뒤집는다. 재무제표의 숫자는 '이미 끝난 기록'이 아니라, 그 숫자를 만들어낸 경영진의 전략과 의도, 그리고 기업이 처한 실제 상황이 응축된 '전략서'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매출이 급등한 기업이 있다면, 그 이 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진짜 수요가 늘어난 것인가, 아니면 채널에 재고를 밀어 넣은 것인가. 영업이익률이 개선되었다면, 원가 절감 덕분인가, 일회성 이익이 포함된 것인가. 현금흐름표상 잉여현금흐름이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도, 대규모 설비투자 사이클이 진행 중이라면 그 수치는 일시적 안도에 불과할 수 있다. 네이버의 사례처럼, AI 인프라 투자 구간에서 의 FCF 변동성은 숫자 하나만으로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재무제표를 더 열심히 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숫자를 읽는 방식 자체를 바꾸라는 요청이다. 손익계산서(IS)와 재무상태표(BS)의 연결 고리를 추적하고, 현금흐름의 방향과 속도를 읽으며, 공시 이면에 담긴 자금 조달의 의도까지 해석해야 한다. 유상증자가 발표되었을 때, 그것이 성장을 위한 투자인지, 부채를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인지는 자금의 용도를 끝까지 추적해야만 알 수 있다. 전환사채(CB) 역시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자금 조달 수단이지만, 그 뒤에는 경영진의 주가 전망과 자본 조달 전략이 숨어 있다.


"탐방의 힘은 재무제표의 숫자와 현장에서 관찰한 신호를 연결할 때 드러난다." 재무제표만 보면 이상 징후는 읽히지만, 그것이 실제 위기인지 일시적 노이즈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반대로 현장만 보면 직관적인 인상에 머물고 만다.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기업의 실제 상태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기관투자자들이 공장을 방문하고 IR 담당자를 만나며 경영진의 뉘앙스를 재무 숫자와 교차 검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출처가 특정 기업 하나에 집중된 구조적 취약점, 수면 아래에서 진행 중인 특허 분쟁, 주요 고객의 재고 조정 신호 - 이런 것들은 공시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직접 묻고, 관찰하고, 기록해야 드러난다. 물론 개인투자자가 기업 탐방을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그것을 '기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책이 제시하는 90일 완성 프로젝트는 그 장벽을 현실적인 단계로 나눈다. IR 부서에 이메 일을 보내고,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경쟁사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같은 업종 종사자를 만나는 것. 거창한 출발이 아니어도 된다. 관심 종목 하나를 골라 DART에서 분기보고서를 열고, 다섯 가지 핵심 수치를 직접 계산해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경쟁사와 나란히 비교해보면, 어느 기업이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는지가 바로 보이기 시작한다.


재무제표를 읽는 기술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나 자신의 심리다. 책은 개인투자자의 7가지 실패 패턴을 다루면서, 손실회피•확증 편향•과잉확신이 어떻게 수익률을 갉아먹는지를 행동재무학의 시각으로 짚어낸다. 솔직히 이 함정들에 반복적으로 빠졌다. 분명히 이상 신호가 보이는 종목인데도, 이미 매수했다는 이유로 좋은 뉴스만 찾아다녔다. 손실이 커질수록 곧 오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강해졌다. 확증 편향은 분석을 내가 내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이미 내린 결론을 합리화하는 재료만 끌어모으게 한다. 특히 책에서 경고하는 한 대목이 뇌리에 남는다. 현장 확인이나 데이터 분석없이 시장 분위기만 보고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행동은, 오히려 정보 우위를 가진 기관이나 내부자들에게 유리한 Exit 환경을 만들어줄 뿐이라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한 채로 거래에 뛰어드는 순간, 나는 이미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투자 경고가 아니라 거의 철학적 경구처럼 느껴진다.


변동성이 심한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손실을 피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근거 있는 판단을 유지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재무제표는 그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앞으로 나는 재무제표 앞에서 이렇게 질문하려 한다. "이 숫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가 아니라, "이 숫자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가?" 라고. 현장으로 나가고, 공시의 행간을 읽고, 내 심리의 편향을 의심하는 것. 그것이 결국 정보 평등의 시대에 개인투자자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 는 진짜 경쟁력이다. 시장은 언제나 변동한다. 하지만 질문하는 투자자는 흔들리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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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킹 - 버티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이클 이스터 지음, 박선령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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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더 가볍게 살고 싶어 한다. 짐을 줄이고, 불편함을 없애고, 마찰을 제거하는 것이 문명의 방향처럼 여겨진다. 식료품 카트, 엘리베이터, 자동차, 배달 앱-이 모든 것은 우리 어깨 위에서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발명되었다. 그러나 마이클 이스터의 책 러킹(Walk With Weight)는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짐을 내려놓는 것이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했는가? 그의 대답은 명확하다. 오히려 우리는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무언가 본질적인 것을 잃었다. 근육만이 아니다. 버티는 힘, 즉 삶의 무게를 견디는 능력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 책을 읽으며 오래 생각했다. 버티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왜 어떤 사람은 쓰러지고, 어떤 사람은 같은 무게 아래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지를 궁금해하면서도, 그 차이를 운명이나 성격의 문제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답이 훨씬 물리적이고, 훨씬 실천적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배웠다. 2004년 Nature지에 실린 논문, 맨발 달리기 열풍, 지구력 사냥의 이야기들. 그러나 이스터는 그 이야기에서 빠진 절반을 복원한다. 인간은 달리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했다. 짊어지는 것이다. 사냥감을 쓰러뜨린 후 그것을 캠프까지 운반해야 했다. 물을 길어왔고, 도구를 옮겼으며, 아이를 품에 안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었다. 진화는 우리 몸을 그 반복적인 무게에 맞게 설계했다. 어깨의 구조, 척추의 곡선, 엉덩이의 근육-이 모든 것이 무언가를 지고 걷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이 모든 무게를 기계에 맡겼다. 그 결과, 우리의 몸은 진화적으로 기대하던 자극을 잃었다. 근육이 줄고, 뼈가 약해지고, 신진대사가 흐트러졌다. 그러나 이스터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몸의 약화만이 아니다. 그는 무게를 짊어지는 경험 자체가 우리의 정신을 단련해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버티는 힘이란 어쩌면 거창한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물리적 경험, 무언가를 지고 한 걸음씩 걷는 그 행위로부터 길러지는 것이 아닐까.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불편함을 제거하려는 현대인의 충동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이 책 이전에 쓴 The Comfort Crisis에서 이미 그 논지를 펼쳤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배낭에 무게를 넣고 걷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발적인 불편함을 선택하는 행위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짐을 짊어진다. 그 무 게는 처음에는 어깨를 짓누르고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몸은 서서히 그 무게에 적응한다. 근육이 생기고, 자세가 바로잡히고, 심폐 기능이 향상된다. 몸이 무게를 배우는 것이다. 이 과정이 나에게는 삶의 은유처 럼 읽혔다. 버티는 힘은 편안한 조건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찰과 저항, 땀과 피로 속 에서 자란다. 이스터가 인용한 저자 잭 카의 말처럼, "전문가란 기본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다. 탁월한 기본기는 결코 쉬운 길에서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버티는 힘을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강하고, 어떤 사람은 약하다고.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이 훈련의 결과라고 말한다. 배낭에 체중의 10~25퍼센트를 넣고 매일 걷는 사람은, 단지 몸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매일 불편함을 선택하고, 그 불편함을 끝까지 견뎌내는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삶의 마찰 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꾼다.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 중 하나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강조였다. 저자는 무거울수록, 빠를수록, 힘들수록 좋다는 군사적 문화에 비판적이다. 지나치게 무거운 짐은 오히려 부상을 낳고, 포기를 부른다. 진정한 강함은 수십 년을 지속할 수 있는 강함이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버팀의 속성을 떠올렸다. 우리는 버팀을 이를 악물고 한계를 밀어붙이는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진짜 버팀은 오히려 지속 가능한 페이스를 찾는 일에 가깝다. 이스터가 권고하는 체중의 15~25퍼센트라 는 무게는, 불편하지만 견딜 수 있는 무게다. 걷기 싫을 만큼 힘들지 않으면서도, 아무 자극이 없을 만큼 가볍지도 않은 무게다. 삶도 그렇다. 버티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그들은 단지 강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페 이스를 알고 있다. 과부하를 피하면서도 나태함을 경계하는 그 균형 속에서, 그들은 오랜 시간을 걸어간다. 이스터의 책이 강조하는 'SUPERMEDIUM' 즉, 극단의 체형이 아닌, 쓸모 있고 균형 잡힌 몸은 사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의 이상형처럼 도 읽힌다. 너무 많이도, 너무 적게도 아닌, 지속 가능한 강함이다. "시작하려면, 시작하라."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다. 생각해보면, 걷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능동성이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몸으로 결정하는 행위. 한 발을 내딛는 것은 동시에 나머지 한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걷는다. 그 리듬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정리하고, 때로는 비워낸다. 짐을 지고 걸을 때 그 경험은 배가된다. 무게는 정신을 현재에 붙잡아 둔다. 배낭이 어깨를 누를 때, 우리는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 속을 방 황하기 어렵다. 지금, 여기, 이 한 걸음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버티는 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일지 모른다. 현재에 있는 능력. 지금 이 무게를, 지금 이 발걸음을 감당하면 된다는 단순함이다. 우리가 버티지 못하는 이유 중 많은 경우는, 감당해야 할 전체 무게를 한꺼번에 상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모든 날들, 모든 어려움, 모든 불확실성. 그러나 짐을 지고 걷는 사람은 안다. 지금 이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된다. 다음 걸음은 그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짊어지 고 살아간다. 선택할 수 없는 짐도 있다. 그러나 이스터의 책이 가르쳐주는 것은 이것이다. 스스로 짐을 고르고, 그것을 지 고 걷는 연습을 반복할 때,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짐도 견디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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