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킹 - 버티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이클 이스터 지음, 박선령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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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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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더 가볍게 살고 싶어 한다. 짐을 줄이고, 불편함을 없애고, 마찰을 제거하는 것이 문명의 방향처럼 여겨진다. 식료품 카트, 엘리베이터, 자동차, 배달 앱-이 모든 것은 우리 어깨 위에서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발명되었다. 그러나 마이클 이스터의 책 러킹(Walk With Weight)는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짐을 내려놓는 것이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했는가? 그의 대답은 명확하다. 오히려 우리는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무언가 본질적인 것을 잃었다. 근육만이 아니다. 버티는 힘, 즉 삶의 무게를 견디는 능력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 책을 읽으며 오래 생각했다. 버티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왜 어떤 사람은 쓰러지고, 어떤 사람은 같은 무게 아래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지를 궁금해하면서도, 그 차이를 운명이나 성격의 문제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답이 훨씬 물리적이고, 훨씬 실천적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배웠다. 2004년 Nature지에 실린 논문, 맨발 달리기 열풍, 지구력 사냥의 이야기들. 그러나 이스터는 그 이야기에서 빠진 절반을 복원한다. 인간은 달리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했다. 짊어지는 것이다. 사냥감을 쓰러뜨린 후 그것을 캠프까지 운반해야 했다. 물을 길어왔고, 도구를 옮겼으며, 아이를 품에 안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었다. 진화는 우리 몸을 그 반복적인 무게에 맞게 설계했다. 어깨의 구조, 척추의 곡선, 엉덩이의 근육-이 모든 것이 무언가를 지고 걷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이 모든 무게를 기계에 맡겼다. 그 결과, 우리의 몸은 진화적으로 기대하던 자극을 잃었다. 근육이 줄고, 뼈가 약해지고, 신진대사가 흐트러졌다. 그러나 이스터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몸의 약화만이 아니다. 그는 무게를 짊어지는 경험 자체가 우리의 정신을 단련해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버티는 힘이란 어쩌면 거창한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물리적 경험, 무언가를 지고 한 걸음씩 걷는 그 행위로부터 길러지는 것이 아닐까.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불편함을 제거하려는 현대인의 충동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이 책 이전에 쓴 The Comfort Crisis에서 이미 그 논지를 펼쳤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배낭에 무게를 넣고 걷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발적인 불편함을 선택하는 행위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짐을 짊어진다. 그 무 게는 처음에는 어깨를 짓누르고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몸은 서서히 그 무게에 적응한다. 근육이 생기고, 자세가 바로잡히고, 심폐 기능이 향상된다. 몸이 무게를 배우는 것이다. 이 과정이 나에게는 삶의 은유처 럼 읽혔다. 버티는 힘은 편안한 조건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찰과 저항, 땀과 피로 속 에서 자란다. 이스터가 인용한 저자 잭 카의 말처럼, "전문가란 기본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다. 탁월한 기본기는 결코 쉬운 길에서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버티는 힘을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강하고, 어떤 사람은 약하다고.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이 훈련의 결과라고 말한다. 배낭에 체중의 10~25퍼센트를 넣고 매일 걷는 사람은, 단지 몸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매일 불편함을 선택하고, 그 불편함을 끝까지 견뎌내는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삶의 마찰 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꾼다.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 중 하나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강조였다. 저자는 무거울수록, 빠를수록, 힘들수록 좋다는 군사적 문화에 비판적이다. 지나치게 무거운 짐은 오히려 부상을 낳고, 포기를 부른다. 진정한 강함은 수십 년을 지속할 수 있는 강함이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버팀의 속성을 떠올렸다. 우리는 버팀을 이를 악물고 한계를 밀어붙이는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진짜 버팀은 오히려 지속 가능한 페이스를 찾는 일에 가깝다. 이스터가 권고하는 체중의 15~25퍼센트라 는 무게는, 불편하지만 견딜 수 있는 무게다. 걷기 싫을 만큼 힘들지 않으면서도, 아무 자극이 없을 만큼 가볍지도 않은 무게다. 삶도 그렇다. 버티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그들은 단지 강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페 이스를 알고 있다. 과부하를 피하면서도 나태함을 경계하는 그 균형 속에서, 그들은 오랜 시간을 걸어간다. 이스터의 책이 강조하는 'SUPERMEDIUM' 즉, 극단의 체형이 아닌, 쓸모 있고 균형 잡힌 몸은 사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의 이상형처럼 도 읽힌다. 너무 많이도, 너무 적게도 아닌, 지속 가능한 강함이다. "시작하려면, 시작하라."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다. 생각해보면, 걷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능동성이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몸으로 결정하는 행위. 한 발을 내딛는 것은 동시에 나머지 한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걷는다. 그 리듬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정리하고, 때로는 비워낸다. 짐을 지고 걸을 때 그 경험은 배가된다. 무게는 정신을 현재에 붙잡아 둔다. 배낭이 어깨를 누를 때, 우리는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 속을 방 황하기 어렵다. 지금, 여기, 이 한 걸음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버티는 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일지 모른다. 현재에 있는 능력. 지금 이 무게를, 지금 이 발걸음을 감당하면 된다는 단순함이다. 우리가 버티지 못하는 이유 중 많은 경우는, 감당해야 할 전체 무게를 한꺼번에 상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모든 날들, 모든 어려움, 모든 불확실성. 그러나 짐을 지고 걷는 사람은 안다. 지금 이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된다. 다음 걸음은 그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짊어지 고 살아간다. 선택할 수 없는 짐도 있다. 그러나 이스터의 책이 가르쳐주는 것은 이것이다. 스스로 짐을 고르고, 그것을 지 고 걷는 연습을 반복할 때,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짐도 견디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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