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 - 한 번뿐인 아름다운 삶에서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임을 진정으로 믿는 법
제이미 컨 리마 지음, 허선영 옮김 / 알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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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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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M 프롬프트 활용 교과서 -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까지 생성형 AI를 제대로 써먹는 질문 공식
쿠지라 히코즈쿠에 지음, 김성훈 옮김 / 길벗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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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AI) 분야는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2023년 이후로 ChatGPT, Claude, Gemini과 같은 대규 모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 기반 생성AI의 급격한 진보는 개인과 조직의 업무, 학습, 생활 그 모든 면에서 혁신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를 인간의 질문에 즉각 대답하는 똑똑 도우미 또는 '검색보다 조금 더 똑똑한 도구' 정도로 인식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도구를 어떻게 다루느냐, 즉 어떻게 '질문(프롬프트)'을 던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임을 알게 된다. 마치 강력한 스포츠카 엔진을 장착한 채로도 운전자가 제대로 운전하는 법을 모른다면 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바로 이 지점을 탐구하는 것이 LLM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다. 이번에 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대해 상세히 알아 볼 수 있는 신간을 읽었다.

LLM을 최소한으로 접해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질문을 착실히 하면 그에 맞춰 답변이 오더라'고 느꼈을 것이다. 사실, LLM에게 효과적인 질문(프롬프트)을 던져 원하는 정보를 받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검색엔진이 등장한 이래 사람들은 다양한 키워드와 문장으로 정보 찾기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LLM 시대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이를 훨씬 넘는다. 저자는 처음에는 '질문을 조금 더 정교하게 조립하는 수준 아닌가?', '이게 정말 직업이 될 만한가?'라며 회의적이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실제 사례와 관련 영상을 접하며, 질문의 문장만을 고민하는 게 아닌, 여러 전략을 포괄함을 깨달았다고 강조한다. 먼저 각 조직의 다양한 업무 목적에 맞는 AI(LLM) 모델을 선정하고, 해당 업무와 데이터, 환경에 따라 어디까지 Al 해결할 것인지(업무와 프로세스의 설계와 분리)를 고려한다. 질문 자체의 구성뿐 아니라, 답변에서 요구되는 정확성, 창의성, 형태(마크다운, json, csV 등), 결과의 안정성 확보 등 총체적으로 고민한다. 일회적 질의응답이 아닌, 지속적으로 업무에 적용 가능한 프로토콜과 프롬프트 템플릿, 결과 평가 절차를 세운다. 즉,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거대한 LLM이라는 '블랙박스'를 업무 목적, 조직 구조, 생산성 극대화라는 실제 맥락에 연결시키는 설계자이자 전략가의 역할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책에서 깨달은 첫 번째 핵심은 바로 LLM의 동작과 이를 제어하는 파라미터의 이해였다. 그 중 temperature(온도) 파라미터는 단순하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파라미터인 temperatur란 무엇인가? LLM이 문장을 생성할 때 다음에 올 단어나 문장을 고르는 확률적 다양성(창의성, 불확실성)을 조정하는 값이다. 숫자가 0에 가까울수록 예측 가능한, 즉 훈련 데이터에서 가장 '평범한' 답변을 하 게 되고, 1에 가까워질수록 예측 불가능하고 다양한, 창의적인 답변을 쉽게 한다. 0.0~0.3: 극도로 예측 가능한, 사실 위주, 엄격함 (예: 수학 설명, 데이터 요약 등), 0.4~0.7: 일반적인 작업 및 비교적 자연스러운 회화 (일상응답, 넓은 범위의 내용), 0.8~1.0 이상: 창작, 자유로운 상상력, 특징적 문체··• temperature 조절 하나만으로도 동일한 프롬프 트가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낳는다. 업무 목적에 따라서는 일관성과 신뢰성이 중요한지, 창의적 발상이 중요한지 판단하여 세심히 설정 해야 안정적인 업무자동화와 결과 활용이 가능해진다. 이 외에도, 응답의 길이(최대 토큰), 답변 형식 지시, 추가 명령 등의 다양한 옵션 들이 프롬프트 내에 녹아들어야 한다.

실제 업무에 LLM을 적용하려면 구체적인 프롬프트 전략과 테크닉이 요구된다. 먼저 출력 형식 및 시각화 명시해야 한다. 저자는 실제 업무 적용의 첫걸음으로, LLM 답변의 '형식 명시' 및 '표현 방식의 제어'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예로 마크다운(Markdown) 명시, Mermaid(마메이드) 기법, CSV / JSON 등 LLM 답변이 바로 업무의 다음 단계(문서화,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코드 연결 등)로 이어 질 수 있도록, 형식과 컨벤션을 명확히 요구하는 습관이 필수다. 이외에 샘플 기반 프롬프트 설계(Zero-shot, Few-shot), 제로샷 (Zero-shot), 퓨샷(Few-shot), 체인드링킹(GhanotThough), 트리 오브 싱킹(Tree-of-Thought), Chain of Thought 연쇄적 사고 프롬프트), Tree of Thought(생각의 나무형 구성), MAGI System, Mock 프롬프트 등 고급 응용 등 이런 전략적 프롬프트 설계없이는 LLM 생성시도 일관된 품질을 기대할 수 없으며, 실제 업무 자동화에서 '묻지마 프롬프트', '우연의 정답'에 기대는 수준을 넘 어서지 못한다.

문맥에 맞게 실제 답변 포맷을 지정하고, 복잡한 정보추출, 요약, 데이터 변환, 창의적 에세이, 문서 자동 작성, 보고서 도식화 등에 LLM을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업무의 반복작업 자동화, 데이터 정리/분석,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코드 생성, 문서작성, 시각화 등 그 쓰임은 무한대다. 생산성을 비약시킬 '시드리븐'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프롬프트 실습만이 아니라, 업무 목적에 따라 AI의 특징, 한계, 조정법까지 꿰뚫는 설계력과 전략적 사고력, 그리고 결과 평가 피드백 루프를 쌓아야 한다. 특히, 직장에서 조직적으로 LLM을 도입한다면, 프로토콜화된 프롬프트 템플릿 구축, 역할별 LLM 정책관리(보안/윤리/정확성 등), 활용결 과 모니터링과 개선 전략이 포함된 조직적 접근이 필요하다.

LLM은 사용자의 역량에 의해 그 크기와 한계가 결정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AI라는 블랙박스를 현실의 가치와 문제해결에 연결하는 디자이너이자 조정자의 자리다. 앞으로 프롬프트 설계 기술을 쌓아가며, 자신만의 템플릿, 업무 적용 전략, 평가 및 개선 노하우를 만든다면, Al 시대의 선도자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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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 은퇴와 노화 사이에서 시작하는 자기 돌봄
이병남 지음 / 해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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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균형 잡힌 자세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장을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게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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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 은퇴와 노화 사이에서 시작하는 자기 돌봄
이병남 지음 / 해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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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면, 낯선 얼굴과 마주한다. 주름진 눈가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시간의 무게를 증명한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은밀한 두려움이 스며든다. '이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번에 이병남 전 LG인화원 사장의 <오늘도 성장하고 있습니다>를 읽으며, 은퇴 이후의 자기 돌봄이라는 화두는 여가나 건강 관리를 넘어선 실존적 물음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사회적 정체성이 박탈된 공허함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젊음의 직선적 성취에서 노년의 곡선적 지혜로 전환하는 깊은 성찰의 과정이다.

저자가 말하는 '치·치·집(치열하고 치밀하고 집요하게)'에서 '느·조·심(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생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다. 수십 년간 목표를 향해 질주해온 삶에서 갑작스럽게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은 마치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시골길로 접어드는 것과 같은 당혹감을 준다. 하지만 저자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속도의 변화가 결코 퇴보가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오히려 그동안 빠른 속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 느껴지지 않았던 감정들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며 발견한 진정한 제주의 모습처럼, 느림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자기 돌봄의 첫 단계는 바로 이 느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자책하는 대신, 몸이 요구하는 리듬에 귀 기울이는 것.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고요한 시간을 통해 내면과 대화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자기 돌봄의 시작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자아 축소'의 개념은 은퇴 이후 자기 돌봄에서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젊은 시절 자아를 확장하며 성공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자아를 축소하며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거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차원에서 자신을 아끼는 방법이다. 물이 작은 틈으로 스며들듯, 자아가 작아질 때 비로소 타인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소통과 이해가 일어난다. 은퇴 이후의 관계는 더 이상 지위나 권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순수한 인간적 매력과 따뜻함만이 남는다. 이때 과거의 영광을 내세우거나 여전히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는 것은 오히려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 대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진심어린 관심을 보일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연결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관계의 재정립은 결국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상호 돌봄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근력 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은퇴 이후 자기 돌봄에서 신체적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턱걸이 하나도 할 수 없던 상태에서 시작해 꾸준한 훈련을 통해 체력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것을 넘어 자신감과 성취감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 몸의 한계를 받아들이되 포기하지 않는 것, 작은 변화라도 꾸준히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케테 콜비츠의 여동생 리제가 말한 "노년이란 청춘이 가졌던 힘의 나머지가 아니라, 온전히 새로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커다란 무엇"이라는 통찰과 일맥상통한다. 마음의 돌봄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고 독자들과 소통한 것처럼, 은퇴 이후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정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글일 수도, 그림일 수도, 음악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은퇴는 사회적 역할의 상실이지만, 동시에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Doing'(역할) 중심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Being'(존재)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는 무위도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성취가 아닌 내적 충실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저자가 비영리 단체에서 겪은 시련은 이러한 의미 찾기가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선의로 도우려 했지만 오해받고 상처받는 일들을 통해, 노년의 성장에도 성장통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조차도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은퇴 이후의 자기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이다. 사회가 정한 기준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열정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작고 소소한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은퇴 이후의 자기 돌봄은 단순히 건강을 유지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깊은 지혜를 얻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젊은 시절의 성장이 외적 확장을 통한 것이었다면, 노년의 성장은 내적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다. 사회적 성취나 타인의 인정이 아닌, 존재 자체의 충실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은 때로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평안과 지혜는 젊은 시절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케테 콜비츠가 말한 "영원한 불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는 표현처럼, 노년은 새로운 빛을 발견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물질적 성취나 사회적 지위의 빛이 아닌, 존재 자체에서 우러나는 따뜻하고 깊은 빛을 말이다. 은퇴 이후의 자기 돌봄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성숙한 방법이다. 과거의 자신을 긍정하되 집착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되 포기하지 않으며, 미래의 자신을 준비하되 불안해하지 않는 것. 이러한 균형 잡힌 자세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장을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게 써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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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예술 - 창을 품은 그림, 나를 비춘 풍경에 대하여
박소현 지음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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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둠이 서서히 밀려나고 새벽빛이 창문 사이로 스며들 때, 나는 종종 그 빛의 궤적을 따라간다. 사각형 프레임에 담긴 세상은 때로는 한 폭의 그림처럼, 때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창문이라는 경계선은 안과 밖을 구분하지만, 동시에 그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이번에 읽은 박소현의 <창문 너머 예술>을 통해 만난 예술가들의 창문은 단순한 건축적 요소를 넘어선 철학적 공간이었다. 하메르스회의 햇살 속에서 춤추는 먼지들, 샤갈의 환상 속에 떠다니는 연인들, 페르메이르의 진주 같은 빛의 입자들과 같이, 이들은 모두 창문이라는 틀 안에서 각자의 우주를 펼쳐 보였다.

"경계에 서 있지 않고서는 그것이 경계였는지 모른다" 가슴에 와닿는다. 창문은 물리적 경계이지만,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어떤 경계 위에 서 있지 않은가. 학교와 사회, 청춘과 성인,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또렷한 창문의 순간은 대학 기숙사의 작은 창문이었다. 그 창 너머로는 캠퍼스의 일상이 펼쳐졌고, 나는 그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경계의 시간이었는지를 말이다. 창가에 앉아 있는 인물들의 뒷모습이 자주 그림의 소재가 되는 이유를 이제 안다. 뒷모습은 관찰자에게 상상의 여백을 남긴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게 된다.

도시의 아파트 창문들은 밤이 되면 수많은 작은 무대가 된다. 각각의 창문 안에는 저마다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나는 때로는 관객이, 때로는 배우가 되어 그 무대 위에 선다. 현대인의 외로움이 창문과 만날 때, 그것은 단순한 고독을 넘어 존재론적 성찰로 이어진다. 카유보트의 그림 속 창가에 선 인물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창 앞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SNS라는 디지털 창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더욱 깊은 고립감을 느끼는 역설적 상황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외로움은 때로 우리를 보호하는 투명한 막이 되어주고,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을 선사한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다. 아침의 빛은 희망적이고 역동적이며, 저녁의 빛은 서정적이고 사색적이다. 겨울의 빛은 날카롭고 선명하며, 여름의 빛은 풍성하고 따뜻하다. 하메르스회가 포착한 햇살에 춤추는 먼지 티클들을 보며 생각한다. 평소에는 더럽다고 여겨졌던 먼지들이 빛을 만나는 순간 마법 같은 존재가 된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 아닐까.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변화시키는 시선의 마법 말이다. 창문은 자연광의 무대이면서 동시에 인공조명의 캔버스가 되기도 한다. 밤이 되어 실내의 불빛이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스며 나갈 때, 그 창문은 거대한 도시라는 캔버스 위의 하나의 픽셀이 된다.

창문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를 규정한다. 실내에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에서 바깥을 관찰할 수 있지만, 바깥의 사람에게는 그 창문 안의 세계가 때로는 호기심의 대상이, 때로는 접근 불가능한 영역이 된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 창가의 여인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창문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완벽한 구도로 포착되어 있다. 하지만 그 완벽함 뒤에는 여성에게 허락된 제한적 공간에 대한 은밀한 고발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창문은 해방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속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현대의 우리에게 창문은 어떤 의미일까.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지금, 집의 창문은 사무실이 되고, 카페가 되고, 때로는 전 세계와 연결되는 포털이 되기도 한다. 물리적 경계는 희미해졌지만, 심리적 경계는 오히려 더욱 복잡해졌다.

샤갈의 환상적인 창문들을 보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다. 그의 창문 너머에는 날아다니는 연인들과 바이올린을 든 천사들이 있다. 이것이 예술가의 시선이 아닐까. 평범한 창문을 통해 비범한 세계를 보는 능력 말이다. 창문 앞에 앉아 있는 시간들을 생각해본다. 급한 일도 없고,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실은 가장 소중한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아그네스 마틴의 미니멀한 작품들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연습. 창문 앞의 명상은 이런 수행의 시간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호흡을 느끼고, 빛의 변화를 관찰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문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가상현실의 창문, 증강현실의 창문,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맞춤형 창문... 미래의 창문들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실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빛과 바람,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 경험과 가상 경험 사이의 간극, 그것을 메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아닐까?

박소현은 "나는 창문을 열어 두기로 했다"고 말한다. 창문을 열어둔다는 것은 변화에 열려 있다는 것이고,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닫힌 창문의 안전함을 포기하고 열린 창문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 때로는 찬바람이 들어올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소음이 들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창문 너머에는 항상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하루, 변화하는 계절,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나 자신까지. 창문을 열고 그 모든 가능성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창문은 세상을 보는 틀이지만, 동시에 그 틀을 넘어서게 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창문 앞에 서서 너머의 세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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