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 은퇴와 노화 사이에서 시작하는 자기 돌봄
이병남 지음 / 해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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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면, 낯선 얼굴과 마주한다. 주름진 눈가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시간의 무게를 증명한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은밀한 두려움이 스며든다. '이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번에 이병남 전 LG인화원 사장의 <오늘도 성장하고 있습니다>를 읽으며, 은퇴 이후의 자기 돌봄이라는 화두는 여가나 건강 관리를 넘어선 실존적 물음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사회적 정체성이 박탈된 공허함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젊음의 직선적 성취에서 노년의 곡선적 지혜로 전환하는 깊은 성찰의 과정이다.

저자가 말하는 '치·치·집(치열하고 치밀하고 집요하게)'에서 '느·조·심(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생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다. 수십 년간 목표를 향해 질주해온 삶에서 갑작스럽게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은 마치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시골길로 접어드는 것과 같은 당혹감을 준다. 하지만 저자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속도의 변화가 결코 퇴보가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오히려 그동안 빠른 속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 느껴지지 않았던 감정들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며 발견한 진정한 제주의 모습처럼, 느림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자기 돌봄의 첫 단계는 바로 이 느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자책하는 대신, 몸이 요구하는 리듬에 귀 기울이는 것.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고요한 시간을 통해 내면과 대화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자기 돌봄의 시작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자아 축소'의 개념은 은퇴 이후 자기 돌봄에서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젊은 시절 자아를 확장하며 성공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자아를 축소하며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거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차원에서 자신을 아끼는 방법이다. 물이 작은 틈으로 스며들듯, 자아가 작아질 때 비로소 타인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소통과 이해가 일어난다. 은퇴 이후의 관계는 더 이상 지위나 권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순수한 인간적 매력과 따뜻함만이 남는다. 이때 과거의 영광을 내세우거나 여전히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는 것은 오히려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 대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진심어린 관심을 보일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연결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관계의 재정립은 결국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상호 돌봄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근력 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은퇴 이후 자기 돌봄에서 신체적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턱걸이 하나도 할 수 없던 상태에서 시작해 꾸준한 훈련을 통해 체력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것을 넘어 자신감과 성취감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 몸의 한계를 받아들이되 포기하지 않는 것, 작은 변화라도 꾸준히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케테 콜비츠의 여동생 리제가 말한 "노년이란 청춘이 가졌던 힘의 나머지가 아니라, 온전히 새로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커다란 무엇"이라는 통찰과 일맥상통한다. 마음의 돌봄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고 독자들과 소통한 것처럼, 은퇴 이후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정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글일 수도, 그림일 수도, 음악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은퇴는 사회적 역할의 상실이지만, 동시에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Doing'(역할) 중심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Being'(존재)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는 무위도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성취가 아닌 내적 충실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저자가 비영리 단체에서 겪은 시련은 이러한 의미 찾기가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선의로 도우려 했지만 오해받고 상처받는 일들을 통해, 노년의 성장에도 성장통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조차도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은퇴 이후의 자기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이다. 사회가 정한 기준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열정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작고 소소한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은퇴 이후의 자기 돌봄은 단순히 건강을 유지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깊은 지혜를 얻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젊은 시절의 성장이 외적 확장을 통한 것이었다면, 노년의 성장은 내적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다. 사회적 성취나 타인의 인정이 아닌, 존재 자체의 충실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은 때로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평안과 지혜는 젊은 시절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케테 콜비츠가 말한 "영원한 불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는 표현처럼, 노년은 새로운 빛을 발견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물질적 성취나 사회적 지위의 빛이 아닌, 존재 자체에서 우러나는 따뜻하고 깊은 빛을 말이다. 은퇴 이후의 자기 돌봄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성숙한 방법이다. 과거의 자신을 긍정하되 집착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되 포기하지 않으며, 미래의 자신을 준비하되 불안해하지 않는 것. 이러한 균형 잡힌 자세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장을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게 써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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