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척학전집 : 훔친 부 편 - 있어 보이는 척하기 좋은 돈의 문법 세계척학전집 3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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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매달 25일이 되면 나는 휴대폰을 열어 은행 앱을 확인한다. 숫자가 뜨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안도인지 허탈인지 구분이 안되는 그 감정. 숫자는 분명 늘었는데 왜 마음은 여전히 불안한가. 오랫동안 나는 그것이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더 아끼지 않아서, 더 현명하게 투자하지 않아서.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정말 문제가 나에게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이 게임 자체에 있는 걸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돈 안에서 자란다. 돈이 있으면 먹을 수 있고, 없으면 먹을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좋은 학교에 가고, 없으면 선택지가 줄어든다. 돈이 있으면 아플 때 치료받고, 없으면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너무 자연 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한 번도 묻지 않는다. 왜 이런 구조인가?"라고. 물고기가 물을 모르듯, 우리는 돈을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돈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품은 건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다가 문득 이 종이 한 장이 왜 밥 한 끼가 되는지가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진 것이다. 한국은행이 보증하니까? 정부가 인정하니까?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 종이를 받 는가? 국민이 가치 있다고 믿으니까. 왜 믿는가? 정부가 받으니까. 논리는 뱀이 자기 꼬리를 삼키듯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았다. 결국 남는 것은 딱 한 문장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가치 있다고 믿으니까." 그 순간 뭔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매달 한 달의 시간을 바쳐 받는 것이, 집단적 믿음 위에 세워진 숫자라는 사실. 전기가 끊기면 사라지는 서버 속 신호라는 사실. 되돌릴 수 없는 내 시간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숫자를 교환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 거래의 조건을 정한 것이 나라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책 속의 파홈 이야기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그가 규칙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못했기 때문 이다. 하루 동안 걸어서 돌아온 만큼이 자기 것이 된다는 규칙은 명확했다. 그는 그 규칙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데도 뛰었다. 더 넓 게, 더 멀리. 규칙이 자신을 어디로 이끄는지 모른 채. 나는 파홈을 비웃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 역시 매일 뛰고 있기 때문이다. 승 진, 연봉 협상,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점심때가 되면 이미 엄청나게 멀리 와 있는데, 저기 좋아 보이는 것이 또 눈에 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멈추면 뒤처진다는 구조, 저축해도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는 구조, 같은 시간을 일해도 누군가는 자본 수익으로 더 벌어가는 구조. 이 구조 안에서 우리는 뛰지 않을 수가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이지 않으니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는다. 더 게으르기 때문에, 더 무능하기 때문에, 더 운이 나쁘기 때문에. 자책은 구조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다.

돈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처음에 허무함을 느꼈다. 내가 평생을 바쳐 모아온 것이 집단적 믿음에 불과하다면, 이 모든 노력은 무의미한 것인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구라는 사실이 돈의 힘을 없애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법이 집행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랑이 뇌의 화학 반응이라고 해서 그것이 덜 진실한 것이 아닌 것처럼. 허구는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돈은 지금 이 순간에도 놀랍도록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허구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다. 돈을 자연법칙처럼 여기는 사람은 돈에 지배당한다. 돈이 만든 위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시스템이 만든 불평등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자이고 어떤 사람은 평생 일해도 가난한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반면 돈이 허구임을 아는 사람은 도구로서 바라본다. 망치를 숭배하는 목수가 없듯, 돈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인식한다.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그 규칙이 누구에 의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설 계되었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 시야가 생기면 더 이상 게임에 플레이 당하지 않는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이 된다.

2,300년 전 에피쿠로스는 물었다. "얼마면 충분한가?" 이 질문이 지금 이 시대에 더 날카롭게 꽂히는 이유는, 우리 중 누구도 이 질문 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봉이 5천만 원일 때는 7천만 원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7천만 원이 되자 1억이 기준이 됐다. 1 억이 되면 그 다음 숫자가 기다리고 있다. 욕망의 기준선은 언제나 현실보다 조금 앞에 있다. 이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욕망은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상대적 비교로 작동한다. 옆 사람보다 조금 더 많으면 되는 구조, 그래서 결코 충분해질 수 없 는 구조다. 그렇다면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 문. 파홈이 진짜로 필요했던 것은 얼마나 많은 땅이었을까. 가족과 함께 먹고살 수 있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는 그 정도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뛰었다. 더 넓게, 더 멀리. 나는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두려웠다. 충분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뒤처질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면 그 두려움 자체가 구조가 심어놓은 것일지 도 모른다. 멈추지 못하게 설계된 게임의 가장 정교한 장치다. 돈의 문법을 안다는 것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돈 안 에서 살면서도 돈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다. 게임에 참여하되 게임에 속지 않는 것. 뛰되, 눈을 뜨고 뛰는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2미터. 파홈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했던 땅의 크기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보다 훨씬 작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것이 돈의 문법을 배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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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식투자가 처음인데요 (2026년 완전개정판) - 제대로 시작하고 처음부터 돈 버는 주식 공부 교과서 처음인데요 시리즈 (경제)
강병욱 지음 / 한빛비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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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숫자가 6,000을 넘어서던 날, 나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뉴스를 바라보았다. 아나운서는 환한 표정으로 "사상 최고 치 경신"을 외쳤고, 스튜디오 뒤편의 그래프는 한껏 허리를 펴고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 순간 내 뱃속 어딘가에서 묘한 감각이 올 라왔다.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꼭 오랫동안 문을 닫아두었던 방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그 방 이름은 '주식'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 흔한 삼성전자 주식 한 주도 없는 사람이다. 동학개미 운동이 온 나라를 들썩이던 시절에도 나는 귀를 닫았고, 삼성전자가 4만 원이던 시절에 이미 팔아버렸고, 크고 작은 손실 끝에 증권 계좌를 아예 닫아버린 사람이다. 한화에어 로스페이스가 몇 배씩 뛰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하이닉스가 AI 반도체 수혜주로 각광받는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역시 주식이랑 안 맞아.' 그런데 코스피가 6,000을 찍었다. 그리고 그 숫자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안 맞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겁이 났던' 것이었다고.


FOMO. Fear Of Missing Out.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코인 열풍이 한창이던 몇 해 전이었는 데, 그때는 '저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며 넘겼다. 그러나 코스피 6,000이라는 숫자 앞에서 나는 비로소 그 단어의 진짜 의미를 몸으로 이해했다. 두려워서 뛰어들지 못하는 것과, 놓쳐버릴까 봐 두려운 것. 그 두 가지 두려움 사이에서 나는 한참 동안 흔들렸다. 그래서 선 택한 것이 책이었다. 강병욱 저자의 저는 주식투자가 처음인데요>. 2010년 초판 이후 50만 독자를 주식의 세계로 이끌었다는 그 책의 2026 완전개정판이다. 사실 나는 예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읽은 책이 너무 많은 탓인지, 그 시절의 나는 책을 읽고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때의 나는 주식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빨리 돈 을 벌고 싶었던 것이었으니까. 두 번째로 펼친 이 책은 달랐다. 아니, 책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졌다. 이번에는 밑술을 그으며 읽었다. 형광펜이 아까울 정도였다. 특히 첫 장을 넘기자마자 나온 이 문장에서 손이 멈췄다. "매일 아침 MTS를 열어 오늘의 시가와 거래량을 확인하고, 관심 종목의 뉴스를 읽고, 왜 그 기업의 주가가 오르거나 내렸는지 이유를 찾아보는 것. 이 단순한 반복이 투자자 의 기초 체력을 만들어줍니다. 거창한 기법도, 비밀스러운 공식도 아니었다. 그냥 매일 아침, 보고, 읽고, 생각하는 것. 그 단순한 루틴 이 투자자를 만든다는 말, 어쩐지 오래된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뜨끔했다. 나는 지금껏 '주식은 복잡한 것'이라는 선입견 뒤에 숨어서, 복잡하게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코스피 6,000 시대에 주식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험은 사실 '폭락'이 아니다. 진짜 위험은 '조급함'이다. 남들이 다 벌고 있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그 불안감. 그 불안감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딘가에서 들은 종목을 사게 만들고, 조금만 떨어져도 패닉 셀을 하게 만든다. 책에는 그 조급함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말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감 정으로 매수하지 않는다. 이유 없는 매도는 하지 않는다.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되,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나는 메모 앱에 그 대로 옮겨 적었다. 투자 원칙이란 것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 세 줄이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으로 매수 하지 않는다"는 말은 FOMO를 정면으로 겨냥한 말처럼 느껴졌다. 코스피가 6,000을 넘었다는 뉴스에 흥분해서, 남들이 다 산다는 이야기에 흔들려서 매수 버튼을 누르는 행위. 그것이 바로 감정으로 하는 매수다. 그리고 손절에 관한 이야기도 가슴을 찔렀다. "아무 리 어렵더라도 손절이 안 되면 투자 인생에 다음 단계는 없습니다." 과거의 나는 손절을 못 했다. 떨어지면 언젠가 오르겠지, 하는 막연 한 희망으로 버티다가 더 크게 잃었다. 손절은 패배가 아니라 다음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물타기도 마찬가지였다. 평균 단가를 낮추면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샀다가, 결국 한 종목에 모든 돈이 물려버린 경험. 책은 단호하게 말한다. 물타기는 하지 마 라. "매수는 천천히, 매도는 신속하게." 내가 해온 것과 정반대였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처음보다 훨씬 눈에 들어온 챕터가 있었다. ETF에 관한 부분이다. 예전에는 그냥 '펀드 비슷한 것' 정도로 이해하 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게 읽혔다. 개별 종목은 성공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부실해져 상장폐지되는 등 망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러나 시장 전체는 망하지 않는다. ETF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우리가 개별 종목을 고를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기 업이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다. 아무리 공부해도, 아무리 재무제표를 들여다봐도, 기업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워 런 버핏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장 전체는 다르다. 한국 경제 전체가 망하는 일은 개별 기업이 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 리고 코스피가 장기적으로 우상향해 왔다는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왔다. ETF는 그 '시장 전체'에 투자하는 방법이다. KODEX 200 갈 은 국내 ETF 하나를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대표 200개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잠시 주춤해도 한 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오르고, 하이닉스가 조정을 받아도 또 다른 기업이 버텨주는 구조.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의 가장 손쉬 운 실천이 ETF다. 여기에 더해 요즘은 ETF의 종류도 눈부시게 다양해졌다. 미국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사면 애플, 엔비디 아,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세계 최고 기업들에 자동으로 투자하는 것과 같다. AI 반도체 테마 ETF, 배당주 ETF, 국채 ETF까지. 한때 기 관투자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분산투자 전략을 이제는 개인도 소액으로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비용 면에서도 ETF는 압도 적이다. 일반 펀드는 운용 보수가 연 12%를 넘는 경우가 많지만, ETF는 대부분 0.10.5% 수준이다. 장기 투자에서 비용은 수의률을 갉아먹는 조용한 적이다. 30년 복리 투자에서 연 1%의 비용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그런 의미에서 ETF는 초 보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첫 발걸음이다. 물론 ETF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다. 레버리지 ETF나 인버스 ETF처럼 방향성을 베팅하거나 수익률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상품들은 손실도 그만큼 커진다. 그러므로 처음 시작하는 투자자라면 시 장 전체를 추종하는 기본형 ETF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FOMO에 흔들려 테마형 ETF를 단기로 사고파는 행위는 결국 개별 종목 단타와 다를 것이 없다.


스마트폰이 손에 있는 한, MTS를 열고 싶은 유혹은 언제나 찾아온다. 점심을 먹다가도, 회의 중간에도, 자기 전 침대에서도. 그 화면 속 숫자들이 실시간으로 요동칠 때마다 뇌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사거나, 팔거나. 그리고 그 충동의 대부분은 틀린 판단으로 이어진다. 기업의 가치는 하루에 바뀌지 않는다. 좋은 기업은 오늘 내가 매수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내일도 좋은 기업이다. 그러나 주가는 하루에도 수십 번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으면, 결국 그 흔들림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멀리서 보아야 추세가 보이고, 방향이 보이고, 자신의 원칙이 보인다. 책을 덮으면서 투자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하나 했다. 매일 아침 딱 10 분만, MTS를 열어 시가와 거래량을 확인하고 관심 종목의 뉴스를 읽겠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화면을 닫겠다는 것. 빠른 수 익보다 올바른 습관이 먼저라는 것을, 이번에는 진짜로 이해했다. 코스피 6,000 시대는 분명 기회의 시대다. 그러나 그 기회는 FOMO에 흔들린 사람이 아니라, 원칙을 가진 사람에게 온다. 나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계좌를 다시 열지 않았고, 첫 ETF 를 아직 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이유가 있는 매수를 할 것이고, 원칙 있는 매도를 할 것이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식 화면은, 되도록 멀리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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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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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누군가의 고통이 나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의 고통 위에 내가 아무렇지 않게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구조라는 이름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그것을 불의라고 부르지 않고 '당연한 질서'라고 부른다. 나는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누군가를 일부러 짓밟으려 하지 않았고, 혐오를 입에 달고 살지도 않았으며, 약자를 조롱하는 커뮤니티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쾌감을 느끼는 부류와 나는 다르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착한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이, 사실은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않겠다는 선언 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진지하게 마주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처음 든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어딘가 나를 겨누는 것 같은 느낌. '남자라서 잘못이냐'는 방어 본능이 먼저 일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조금만 더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불편함이란 결국 익숙한 것이 흔들릴 때 생기는 감각이고, 익숙한 것이 흔들린다는 건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는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강한 남자'라는 신화를 팔아왔다. 그리고 그 신화는 남자들에게도 잔인했다. 울지 말 것, 약하게 보이지 말 것,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 책임을 질 것, 부양할 것. 남성성이라는 이름의 감옥은 실제로 존재했고, 그 안에 갇힌 남성들의 고통도 실재한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 고통의 출구를 잘못된 방향에서 찾을 때, 비극이 시작된다. 자신이 힘든 이유를 '여성들이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서'라고 믿기 시작하면, 그 믿음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혐오를 낳고, 혐오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다른 누군가를 짓밟는 것으로 끝난다. 문제를 만든 구조는 여전히 그대로인 채로. 그 구 조 안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누리던 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말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구닥다리'라는 말이 흘러다닌다. 이미 여성들의 지위가 충분히 높아졌다는 뉘앙스를 품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묻고 싶어진다. 어디서 보셨나요. 데이트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들의 뉴스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직장에서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임신을 숨기는 여성들이 여전히 있고,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일상이 박살나는 것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이 현실을 '이미 충분히 나아졌다'는 말로 덮어버리는 건, 현실을 보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 문제가 단지 '나쁜 남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젠더폭력은 개인의 악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성을 특정 방식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유머가 되고 밈이 되고 문화가 되는 구조, 그 구조 안에서 무감각하게 자란 감각들, 그것이 문제다.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를 가장 오래 붙든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가? 회의실에서 자연스럽게 발언권을 가졌던 것, 밤길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걸었던 것, 능력 있다는 말을 들을 때 성별이 단서로 붙지 않았던 것들. 이것들이 모두에게 주어진 게 아니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아니, 알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직하다. '착한 남자'라는 정체성은 종종 성찰을 막는 방어막이 된다.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으니까, 나는 차별하지 않으니까, 나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이 논리는 ‘그렇다면 나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결론으로 쉽게 이어진다. 하지만 구조적 불평등은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만의 작품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 불편하지만 괜찮은 척하는 사람들, 알고 있지만 나서지 않는 사람들의 침묵이 함께 만든 것이다. 그 침묵의 공모자였던 순간들을 기억해 본다. 모른 척했던 농담들, 흘려들었던 불편한 발언들, 신경 쓰지 않았던 관행들. 그것이 부끄럽 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평등이 왜 남성에게도 해방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가부장제는 여성만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자답지 않은' 남성도 억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은 남성도 억압하고,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살고 싶은 남성도 억압한다. 강함만을 허용하는 구조는 그 강함의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사람을 주변부로 밀어낸다. 그 기준 안에 완벽히 들어맞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다. 그래서 모두가 조금씩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성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그 억압적인 기준 자체를 부수는 일이다. 눈물을 흘려도 괜찮고, 약해도 괜찮고, 돌봄의 역할을 맡아도 괜찮고, 누군가에게 기대도 괜찮은 세상. 그것이 여성에게만 좋은 세상이 아닐 것이다. 경쟁하지 않고 나란히 설 수 있는 세상을 바래본다. 누가 더 아프냐고 다투지 않고, 각자의 고통을 인정하며, 그 고통을 만든 구조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불편함을 기꺼이 마주하는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늘어날 때, 아주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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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 - AI와 로봇, 그리고 거인들의 투자법
박상준 지음 / 책밥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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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냉전이 끝난 이후 세계는 잠시 하나의 질서 아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 체제와 글로벌 공급망은 국경을 넘어 연결되었고, 세계 경제는 상호 의존이라는 이름 아래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그 연결의 시대는 예상보다 빨리 끝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무역 분쟁이나 외교 갈등만이 아니다. 기술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두 거인이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하는, 말 그대로 21세기형 패권 전쟁이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이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지만, 그 파급력은 어떤 전통적 전쟁보다 강력하다. 반도체 수출 규제 하나가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고, 인공지능 기술의 우위가 국가 경쟁력 전체를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관망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 흐름을 읽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주체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은 바로 그 선택의 기로에서 나침반이 되어주는 책이다.

과거의 패권 경쟁은 영토와 자원, 그리고 군사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21세기의 패권은 전혀 다른 곳에서 결정된다. 누가 더 빠른 반도체를 설계하느냐, 누가 더 정교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하느냐, 그리고 누가 더 광범위한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느나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갈린다. 기술이 곧 권력이 된 세계에서는 실리콘 밸리의 연구소가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의 군사 기지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 된다. 미국이 엔비디아의 AI 가속 칩 수출을 규제하고,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국 판매를 차단한 것은 이러한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최첨단 칩 하나가 핵무기만큼이나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엔비디아의 H100 GPU는 AI 군비 경쟁의 핵심 자산이며, 이를 누가 보유하느냐에 따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 자체가 달라진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로 이어지는 미국의 AI 생태계는 바로 이 압도적인 컴퓨팅 파워 위에 세워져 있다. 중국의 대응 전략은 다르지만 결코 덜 야심차지 않다. 화웨이가 외부의 예상을 깨고 7나노 공정의 자체 칩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을 때, 세계는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가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확인했다. SMIC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국산화 전략, 막대한 국가 자본이 투입되는 AI 인프라 투자, 그리고 데이터 주권을 지렛대로 삼는 디지털 산업 확장은 미국의 봉쇄 전략에 맞서는 중국만의 대응 방식이다. 이 경쟁은 어느 한쪽이 쉽게 백기를 드 는 구도가 아니다. 오히려 양측 모두 기술 자립을 향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으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와 AI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전선이 있다. 바로 로봇과 자동화 기술이다. 로봇 산업은 단순히 공장 자동화의 문제가 아니다. 로봇이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고, 얼마나 빠르게 학습하며, 얼마나 광범위한 환경에 적용될 수 있느냐는 곧 한 나라의 제조 경쟁력 전체를 결정짓는 문제다. 미국은 소프트웨어와 AI 기술을 결합한 고부가가치 로봇 기술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인간형 로봇들은 기계를 넘어 인공지능이 체화된 물리적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세계 최대의 제조업 기반과 저렴한 생산 비용을 바탕으로 산업용 로봇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나가고 있다. 이미 중국은 세계 최대의 산업용 로봇 도입국이 되었으며, 자국 로봇 제조 기업들의 기술력 또한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두 나라의 전략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지만, 결국 같은 목표를 겨냥한다. 미래의 생산 시스템을 누가 장악하느냐의 문제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로봇 기술을 지배하는 국가가 곧 글로벌 제조 패권을 쥐게 된다. 이것이 로봇 산업이 국가 전략 산업의 핵심으로 부상한 이유다. 자동화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흐름에서 뒤처지는 국가는 제조 경쟁력의 토대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곧 투자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책은 개별 종목 투자부터 ETF를 활용한 분산 투자까지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패권 경쟁이 집중하는 산업군을 정확히 식별하고, 그 안에서 경쟁 우위가 지속 가능한 기업들을 선별하는 안목이다. Al 소프트웨어, 첨단 반도체, 로봇, 데이터 인프라, 에너지 기술은 단기적 트렌드가 아니라 향후 수십 년을 관통하는 구조적 성장 산업이다. 이 분야에 대한 장기적 시각의 투자는 패권 경쟁이 만들어내는 역설적 기회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한국의 위치는 특수하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과 깊이 연결된 한국은 어느 한쪽에 완전히 편승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중립을 유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딜레마는 다른 시각에서 보면 독특한 전략적 가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핵심 역량이다. 특히 AI 산업의 성장과 함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적 우위는 미중 양국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전략 자산이다. 배터리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의 핵심인 배터리 기술에서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의 최상위에 위치해 있다. 이는 단순히 몇몇 기업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이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어느 하나의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전략 가치를 지닌 플레이어임을 의미한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기반을 재건하려 하고, 중국은 기술 자립의 범위를 메모리 반도체로 확장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한국이 이 전략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을 멈추지 않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충돌의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가기 위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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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뇌과학 - 늙지 않는 뇌를 만드는
문제일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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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손등을 생각한다. 주름지고 거칠어진 그 손등 위에 맺혀 있던 햇살의 온도, 그리고 어머니가 끓이던 된장찌개 냄새. 지금도 그 냄새가 코끝에 스치면, 나는 단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그 주방으로 되돌아간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기억만큼은 조금도 바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왜 그럴까. 냄새는 어째서 이토록 완강하게 과거를 붙들고 있는 것일까? 뇌과학은 이 질문에 꽤 담담하게 대답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정보는 뇌의 이성적인 영역을 한 바퀴 돌아 분석된다. 하지만 코로 맡는 냄새는 다르다. 후각 신경은 감정과 기억의 중추인 변연계로 직행한다. 논리적 판단을 거칠 틈도 없이, 냄새는 곧장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서랍을 열어버린다. 그래서 냄새에 의한 기억은 언제나 선명하고, 언제나 뜨겁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으로 잃어버린 시간 전체를 건져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냄새가 그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심장부를 바로 두드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감각은 뇌를 깨우는 일이고, 뇌를 깨운다는 것은 결국 살아 있다는 것의 가장 적극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뇌를 고정된 무언가로 상상한다. 나이가 들면 뇌도 굳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딱딱한 기계가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억이 흐려 지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뇌과학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뇌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다. ‘함께 발화하는 뉴런은 서로 연결된다'는 법칙은, 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자주 쓰이는 연결은 강화되고, 사용되지 않는 연결은 사라진다. 즉, 뇌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뇌가 늙지 않을 수 있는가. 저자의 답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다. 감각하고, 느끼고, 연결되는 것. 그것이 전부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우리는 이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매 순간 세상과 접속한다. 눈이 아름다운 빛을 포착하고, 귀가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담고, 피부가 온기를 느끼는 그 순간마다, 뇌 속의 뉴런들은 일제히 깨어나 신호를 주고받는다. 감각은 뇌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말처럼, 감각이 차단된다는 것은 곧 뇌를 굶기는 것이다. 굶주린 뇌는 빠르게 쇠퇴한다. 특히 눈 맞춤에 대한 연구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어른이 아기와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러줄 때 두 사람의 뇌파는 놀라운 수준으로 동기화된다고 한다. 두 개의 뇌가 하나처럼 진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감각의 교환만이 아니다. 두 존재가 서로를 향해 완전히 열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 뇌는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분비하고, 신경 가소성을 유지하며, 노화의 속도를 늦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래된 친구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나누는 대화 한 시간이, 어떤 값비싼 뇌 건강 보 조제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

왕따, 고독사 등 현대 사회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사회적 고립은 뇌를 파괴한다. 고립된 개체의 뇌는 뉴런 간의 연결이 끊어지고, 염증 수치가 높아지며,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환의 위험이 급격히 상승한다. 독방 수감이 인간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인 이유는, 그것이 신체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뇌를 가두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결된 뇌는 강하다. 미국 듀크대학교의 브레인넷 실험은 세 마리의 원숭이 뇌를 연결했을 때, 개체 하나하나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협력을 통해 풀어냈음을 보여주었다. 뇌는 연결될수록 더 강해진다. 이것은 비단 원숭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도,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각자가 가진 능력의 총합을 훌쩍 뛰어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연결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 아침에 가족과 나누는 짧은 눈 맞춤,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 한 줄. 그 작고 소소한 연결들이 쌓여, 우리의 뇌를 매일 조금씩 더 건강하고 젊게 만들어간다.

뇌과학이 밝혀낸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다. 치매는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병이 아니라, 저장된 기억을 꺼내지 못하는 병일 수 있다는 것. MIT의 도네가와 교수 연구진은, 알츠하이머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생쥐의 뇌에서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인출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치매 환자의 뇌는 닫힌 문이 아니라, 열쇠를 잃어버린 잠긴 문이라는 것이다.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잠시 닿지 못할 곳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향기 하나, 손길 하나,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그 잠긴 문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드라마 속 궁녀가 치매에 걸린 왕 앞에서 선향을 피워 달라 청했던 것처럼. 감각은 뇌를 자극하는 도구만이 아니다. 감각은 우리가 여전히 이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이고, 기억이라는 이름의 삶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읽으며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뇌는 평생 완성되어 간다고 한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느끼고 연결되며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늙지 않는 뇌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훈련이나 처방이 아니라 삶을 성실하게 감각하는 것, 그리고 그 감각 속에서 타인과 진심으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자주 바깥의 공기를 맡고, 더 자주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더 자주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모든 순간이 우리 뇌 속 천억 개의 뉴런 들에게 보내는 생존의 신호다. 연결되지 않은 뉴런은 사라진다. 그러나 연결된 뉴런은 강해질 것이다.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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