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리포트 - 인생 제2막을 위한 융 심리상담
대릴 샤프 지음, 정여울 옮김 / CRETA(크레타)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지금껏 잘 작동하던 삶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일어나 회사에 나가고,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일상의 리듬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데도, 무언가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오랫동안 들어왔던 음악이 어느 순간부터 소음처럼 들리기 시작하듯이. 이것이 중년의 위기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노먼이라는 인물은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사회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너진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동안 자신이 구축해온 삶이 사실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었는지를 비로소 직면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카를 구스타프 융의 통찰이 빛을 발한다. 융은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본질적으로 다른 과제를 요구하는 두 개의 국면으로 보았다. 전반부의 삶은 바깥 세계를 향해 있다. 사회적 역할을 익히고, 직업을 얻고, 관계를 맺고, 가정을 꾸리는 일들이 중심을 이룬다. 이 시기의 에너지는 대체로 외향적이고 목표 지향적이다. 그런데 중년에 이르면 이 방향이 뒤집힌다.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향해야 할 때가 온다. 지금까지 무시하거나 억압해왔던 내면의 목소리들이 마침내 들끓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년의 위기는 단순한 병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면이 보내는 신호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변해야 한다는, 아직 만나지 못한 자기 자신과 조우해야 한다는 신호. 노먼이 분석실 문을 두드린 것은 패배가 아니라, 어쩌면 그의 삶에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융은 이것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본래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융은 이를 빌려와 우리가 사회와 상호작용하기 위해 발전시킨 외적 인격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페르소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가면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가면을 자신의 진짜 얼굴로 착각할 때 시작된다. 노먼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좋은 남편', '책임감 있는 아버지', '유능한 세일즈맨'이라는 페르소나를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왔다. 그 역할들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곧 자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중년에 이르러 그 가면들이 갑자기 얼굴에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는 충격에 빠진다. 가면 뒤에 있는 진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실 그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 현대 사회는 페르소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취업 면접에서는 '강점'만을 말해야 하고, SNS에서는 가장 빛나는 순간만을 공유하며, 사람들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이 환경에서 우리는 점점 더 두꺼운 가면을 쓰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그 가면이 충분히 두꺼워졌을 때, 내면의 진짜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년의 위기는 종종 이 페르소나가 균열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더 이상 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 혹은 연기를 계속할 의욕 자체를 잃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뒤에 있는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두렵고 낯설지만, 바로 이 만남이 진정한 자기 발견의 출발점이 된다.


페르소나가 우리가 세상에 내보이는 모습이라면, 그림자는 우리가 보이고 싶지 않아 숨겨온 모든 것들이다. 의식이 거부하고 억압해온 욕구들, 충동들, 감정들, 특성들이 그림자를 이룬다. 그림자는 부정적인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사회가 허용하지 않거나 자신이 감당하기 두렵다고 느껴서 억눌러온 긍정적인 잠재력들도 그 안에 잠들어 있다. 그림자가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억압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의식이 인정하기를 거부하면, 그림자는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 특정 사람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이나 혐오, 반복되는 실수와 자기파괴적인 행동 패턴,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편한 특성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노먼이 아내 낸시에게 집착하며 그녀의 감정 상태에 따라 자신의 기분이 결정되는 것도, 융의 시각에서 보면 자신의 내면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결과였다. 융 분석이 요구하는 가장 힘든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이 그림자와의 대면이다. 분석실에서 환자는 자신이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부분들과 조우하게 된다. 샤프는 이 과정을 '그림자와 악수하기'라고 표현한다. 단순히 그림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그림자를 통합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더 완전하고 솔직한 이해를 얻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해 위에서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해진다. 중년에 이르러 그림자와 대면하는 것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무거운 일이 된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쌓아온 억압의 층위가 두껍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년은 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과 성숙함을 갖추는 시기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에는 생존을 위해 어느 정도의 억압이 필요했다. 이제는 그 억압을 조금씩 풀어낼 때다.


융은 남성의 무의식 속에는 여성적인 원형적 이미지가, 여성의 무의식 속에는 남성적인 원형적 이미지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전자를 아니마, 후자를 아니무스라고 불렀다. 이 개념은 '남성도 여성적인 면이 있다' 혹은 '여성도 남성적인 면이 있다'는 식의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심리 구조 속에 깃든 타자성, 즉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내면의 이질적인 차원에 관한 것이다. 아니마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대인 관계, 특히 친밀한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니마를 인식하지 못하는 남성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여성적 이미지를 실제 여성에게 투사한다. 연애의 초기에 상대방에게 비현실적으로 매료되는 것, 이상화했다가 幻滅하는 반복적 패턴, 특정 유형의 여성에 대한 강박적인 끌림, 이 모두가 투사된 아니마의 표현일 수 있다. 노먼과 낸시의 관계는 이 역학의 전형적인 예다. 노먼이 낸시에게 보이는 집착적인 의존성, 그녀의 냉담함에도 불구하고 끊어내지 못하는 관계는 단순히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낸시라는 실제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니마를 그녀 위에 덧씌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분석을 통해 이 투사를 거두어들이는 작업, 즉 낸시는 낸시이고 자신의 내면적 이미지는 별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곧 그의 성장의 일부였다. 아니마를 인식하고 통합한다는 것은 관계에서의 투사를 거두어들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기 내면의 풍부함을 발견하는 일이다. 억눌러온 감수성, 직관, 창의성, 연결에 대한 욕구 — 이런 것들이 아니마의 영역에 속한다. 중년 이후의 삶에서 이것들을 되찾는 것은 단순한 심리적 치유가 아니라, 삶 자체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융이 심리적 성숙의 목표로 제시한 개성화(individuation)는 종종 오해를 받는 개념이다. '더 강해지는 것', '완전한 자아실현', 혹은 '완벽한 심리적 균형에 도달하는 것' 같은 이미지로 오해되곤 한다. 하지만 융이 말한 개성화는 그런 거창한 도달점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이고 방향이며, 분열된 것들을 하나로 통합해나가는 끊임없는 작업이다. 개성화의 핵심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것, 즉 외부의 기대나 역할 대신 자신의 가장 깊은 본성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림자를 인식하고, 투사를 회수하고,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와 관계를 맺고, 자아(ego)와 더 큰 자기(Self) 사이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작업들이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선형으로 반복되고, 퇴행하고, 다시 진전하는 방식으로 천천히 펼쳐진다.

오늘날 중년의 위기는 여러 방식으로 표출된다. 충동적인 이직, 갑작스러운 관계의 파탄,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 이유를 모를 분노나 슬픔. 이것들을 단순한 호르몬의 문제나 의지력의 부족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쉬운 답이다. 융의 시각에서 이것들은 내면이 보내는 메시지다. '이제는 나를 좀 들여다보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할 때'라는 신호다. 책을 덮으며 남는 것은 한 가지 확신이다. 무너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는 것. 위기는 변장한 초대장일 수 있다는 것. 그 초대에 응할 용기, 낯설고 두려운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갈 용기가 두 번째 삶의 시작이다. 그 여정은 빠르지도 않고, 쉽지도 않고, 보장된 결말이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에서 마주한 캠핑장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충격적이어야 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서 더 슬펐다. 코끼리 코 열 바퀴를 돌아야 하는 게임에서 여덟 바퀴만 돌고 깃발을 선취한 아이가 1등을 했다. 그 아이의 부모와 운영진이 친한 사이였기에 아무도 항의하지 못했고, 정직하게 규칙을 지킨 아이들은 의기소침해졌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분노 보다 깊은 허탈함을 느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이런 장면을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 지어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도. 공정하다고 믿었던 경쟁이 사실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었다는 것을. 규칙은 힘없는 자만 지키면 되고, 연줄과 배경이 실력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위조된 표창장'이라고 표현했다. 얼마나 정확한 비유인가.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표창장을 나눠주면서도, 그것이 진짜 노력의 결과인지는 묻지 않는다. 아니, 묻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이 시스템의 공범이거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불편했다. 그것은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이 나를 향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인가? 나는 정말 공동체를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 역시 내 아이만을 위한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탐욕스러운 돌봄'이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한동안 그 단어를 곱씹었다. 탐욕과 돌봄. 이 두 단어가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돌봄은 본래 가장 순수하고 이타적인 행위여야 하는데, 그것이 탐욕이 될 수 있다니. 하지만 책을 읽어 가면서 나는 점점 더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고, 동시에 내 안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사랑은 진심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오직 내 아이만을 향할 때, 그것은 어느새 사랑이 아니라 탐욕이 되어버 린다. 저자가 소개한 '탐스러운 결혼'이라는 사회학 용어처럼,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내 아이, 내 가족. 그 바깥의 세계는 경쟁자이거나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이웃의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고, 다른 가정이 돌봄의 어려움으로 무너지는 것은 그들의 문제라고 치부한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냐하면 나 역시, 내 주변의 사람들 역시 이런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에 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더 나은 교육환경, 더 많은 경험, 더 풍부한 기회.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다. 내 아이의 성공을 위해 다른 아이의 기회를 빼앗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 내 아이 의 표창장을 위해 다른 아이들이 들러리가 되는 것을 묵인할 때, 우리는 이미 사랑의 영역을 벗어나 탐욕의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책에는 초등학교 때 이미 장래희망을 명확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컨설턴트 이야기. 적성이나 진로를 천천히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최단거리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돌봄'의 실체다. 여행도 '사진과 경험'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할 만한 콘텐츠'로 변질된다. 그 정점이 바로 '··에서 한 달 살기'라 는 저자의 지적은 얼마나 냉소적이면서도 정확한가. 관광에서 체험으로, 체험에서 생활로 부모의 과제는 수시로 갱신되지만, 그 모든 것의 목적은 결국 하나다. 대학입시다.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아이들의 삶을, 아이들의 시간을, 아이들의 경험을 모두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도구화하고 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학교생활기록부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이를 경쟁의 도구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의 행복보다 아이의 성공을, 아이의 현재보다 아이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이것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불안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마음이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동력으로 삼기에, 아무리 성실하게 내달려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인 것은 아닐까?

책을 덮으며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저자가 던진 질문들은 답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답해야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한 명의 어른도,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사회. 누구나 충분한 기회를 얻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 돌봄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 전체로 확장되는 곳. 샤오메이가 더 이상 NPC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세상. 열 바퀴를 정직하게 돌고도 웃을 수 있는 아이들, 부모의 경제력이나 배경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 로 평가받는 청년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이상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작은 것이라도 시작하려 한다. 내 아이에게 남들 다 한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것, 다른 아이 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 불공정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침묵하지 않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결국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은 육아서가 아니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을 위한 성찰서다. 부모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탐욕이 아니라 진정한 돌봄으로, 지성보다는 용기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 들어 보여서 미치겠어요 - 천천히 나이 드는 얼굴을 위한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정진호 지음 / 해냄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 들어 보여서 미치겠어요 - 천천히 나이 드는 얼굴을 위한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정진호 지음 / 해냄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화장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시간의 잔인함을 느낀다. 언제부터인가 눈가에 자리 잡은 잔주름, 점점 깊어지는 법령 선, 예전처럼 빛나지 않는 피부. 이 모든 것들이 '나이 듦'이라는 이름으로 내 얼굴에 각인되어 있다. 처음에는 부정했고, 그다음에는 체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다들 그렇게 늙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위로는 진정한 평화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무력감만 키웠을 뿐이다. '나이 들어 보여서 미치겠어요'를 펼친 것은 그런 무력감에서 벗어 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40년간 피부노화를 연구한 세계적 권위자가 전하는 이야기라면, 혹시 내가 모르던 무언가가 있 지 않을까. 그저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통찰을 주었다. 피부 노화에 관한 지식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건강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내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법까지 깨닫게 해주었다.

책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메시지는 명확했다. 피부노화의 80%는 생활 습관에 달려 있고, 유전적 요인은 고작 2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노화를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부모님의 피부가 그러하니 나도 그렇게 늙을 것이라고, DNA는 바꿀 수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후성유전학적 조절'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 운명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유전자 염기서열은 바뀌지 않지만, 생활 습관이 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마치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DNA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희망 고문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이 깨달음은 내게 엄청난 힘을 주었다. 내 피부의 미래는 유전자가 아니라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 늙는 것을 멈출 수는 없지만, 어떻게 늙을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 순간 나는 거울 앞에서 느끼던 무력감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정 교수 가 제시한 '피부 손상의 축적 이론'은 노화를 바라보는 내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피부가 99.999%의 치유력을 가지고 있어도, 매일 0.001%의 손상이 쌓이면 60년 후에는 21.9%의 손상으로 누적된다는 계산이다. 이 명료한 수식은 노화 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재앙이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 쌓이는 미세한 변화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하면, 매일매일 조금씩 좋은 습관을 쌓으면 그것 또한 누적되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깨달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었다. 오늘 하루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 그 작은 선택들이 쌓여 미래를 만 든다는 것이다.

자외선에 대한 설명은 더욱 놀라웠다. 평생 받는 자외선의 60%를 18세 이전에 받는다는 연구 결과를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 해변에서 무심히 뛰놀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외선차단제 같은 것은 바르지도 않고, 한여름 뙤약별 아래서도 신나게 놀았던 그 시간들. 그때는 그저 즐거웠을 뿐인데, 그것이 지금 내 피부에 누적된 손상으로 남아 있다니. 더 놀라운 것은 자 외선이 단지 피부암과 노화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기억력을 나쁘게 하고 인지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이었다. 피부는 전신 건강과 연결된 중요한 방어막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외선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나이 들어서의 치매 예방과도 연결될 수 있다니, 피부 관리의 중요성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다가왔다. 정 교수는 SPF 수치의 정확한 의미와 자외선차단제를 얼마나 발라야 효과적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10시간 동안 햇빛에 노출된다면 SPF 20이면 이론적으로 충분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땀으로 씻겨 나가는 것을 고려해 SPF 50+ 정도를 사용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실용적인 조언들은 막연한 '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세요 ' 라는 말보다 훨씬 설득력 있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얼마나 발라야 하는지 과학적 근거와 함께 설명하니 실천 의지가 저절로 생겼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 자외 선차단제를 현관 신발장 위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외출 직전에 바르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다시 거울 앞에 섰다. 같은 얼굴이지만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주름은 더 이상 패배의 증거가 아니라, 앞으로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의 출발점이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작은 습관들이 10년 후, 20년 후의 내 얼굴을 만들 것이 다. 그것은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고, 요행이 아니라 선택이다. 내일 아침부터 실천할 것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자외선차단제를 현관 신발장 위에 두기. 샤워 온도를 조금 낮추기. 세안은 간단하게, 보습은 충분하게. 비싼 화장품을 사는 것보다 이런 작은 습관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이 들어 보여서 미치겠어요'라는 제목은 우리 모두의 솔직한 마음을 대변한다. 거울 속 나이 든 모습을 보고도 속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그 절망은 희망으로 바뀐다. 나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관스님 나의 음식 (백양사 고불매 리커버 양장 에디션)
정관 지음, 후남 셀만 글, 양혜영 옮김, 베로니크 회거 사진 / 윌북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복잡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 단순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맛‘이 아니라 ‘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정관스님이 그러했듯이 나도 그 길을 가보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