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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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에서 마주한 캠핑장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충격적이어야 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서 더 슬펐다. 코끼리 코 열 바퀴를 돌아야 하는 게임에서 여덟 바퀴만 돌고 깃발을 선취한 아이가 1등을 했다. 그 아이의 부모와 운영진이 친한 사이였기에 아무도 항의하지 못했고, 정직하게 규칙을 지킨 아이들은 의기소침해졌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분노 보다 깊은 허탈함을 느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이런 장면을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 지어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도. 공정하다고 믿었던 경쟁이 사실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었다는 것을. 규칙은 힘없는 자만 지키면 되고, 연줄과 배경이 실력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위조된 표창장'이라고 표현했다. 얼마나 정확한 비유인가.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표창장을 나눠주면서도, 그것이 진짜 노력의 결과인지는 묻지 않는다. 아니, 묻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이 시스템의 공범이거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불편했다. 그것은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이 나를 향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인가? 나는 정말 공동체를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 역시 내 아이만을 위한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탐욕스러운 돌봄'이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한동안 그 단어를 곱씹었다. 탐욕과 돌봄. 이 두 단어가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돌봄은 본래 가장 순수하고 이타적인 행위여야 하는데, 그것이 탐욕이 될 수 있다니. 하지만 책을 읽어 가면서 나는 점점 더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고, 동시에 내 안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사랑은 진심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오직 내 아이만을 향할 때, 그것은 어느새 사랑이 아니라 탐욕이 되어버 린다. 저자가 소개한 '탐스러운 결혼'이라는 사회학 용어처럼,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내 아이, 내 가족. 그 바깥의 세계는 경쟁자이거나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이웃의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고, 다른 가정이 돌봄의 어려움으로 무너지는 것은 그들의 문제라고 치부한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냐하면 나 역시, 내 주변의 사람들 역시 이런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에 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더 나은 교육환경, 더 많은 경험, 더 풍부한 기회.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다. 내 아이의 성공을 위해 다른 아이의 기회를 빼앗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 내 아이 의 표창장을 위해 다른 아이들이 들러리가 되는 것을 묵인할 때, 우리는 이미 사랑의 영역을 벗어나 탐욕의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책에는 초등학교 때 이미 장래희망을 명확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컨설턴트 이야기. 적성이나 진로를 천천히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최단거리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돌봄'의 실체다. 여행도 '사진과 경험'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할 만한 콘텐츠'로 변질된다. 그 정점이 바로 '··에서 한 달 살기'라 는 저자의 지적은 얼마나 냉소적이면서도 정확한가. 관광에서 체험으로, 체험에서 생활로 부모의 과제는 수시로 갱신되지만, 그 모든 것의 목적은 결국 하나다. 대학입시다.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아이들의 삶을, 아이들의 시간을, 아이들의 경험을 모두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도구화하고 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학교생활기록부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이를 경쟁의 도구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의 행복보다 아이의 성공을, 아이의 현재보다 아이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이것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불안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마음이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동력으로 삼기에, 아무리 성실하게 내달려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인 것은 아닐까?

책을 덮으며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저자가 던진 질문들은 답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답해야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한 명의 어른도,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사회. 누구나 충분한 기회를 얻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 돌봄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 전체로 확장되는 곳. 샤오메이가 더 이상 NPC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세상. 열 바퀴를 정직하게 돌고도 웃을 수 있는 아이들, 부모의 경제력이나 배경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 로 평가받는 청년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이상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작은 것이라도 시작하려 한다. 내 아이에게 남들 다 한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것, 다른 아이 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 불공정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침묵하지 않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결국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은 육아서가 아니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을 위한 성찰서다. 부모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탐욕이 아니라 진정한 돌봄으로, 지성보다는 용기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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