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스님 나의 음식 (백양사 고불매 리커버 양장 에디션)
정관 지음, 후남 셀만 글, 양혜영 옮김, 베로니크 회거 사진 / 윌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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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설날 아침, 철학자의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관스님을 다시 보게되었다. 화려한 플레이팅도, 복잡한 소스도 없었다. 그저 제철 채소 몇 가지와 정성스레 담근 장으로 만든 소박한 한 그릇이었는데, 그 안에서 나는 정관스님의 손길을 보았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 시간과 침묵, 그리고 기다림이 빚어낸 맛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빠른 것을 찾는다. 10분 만에 완성되는 요리, 30분이면 배달되는 음식, 즉석에서 끓여 먹는 국. 그런데 정관스님의 부엌에는 몇 년씩 묵은 장들이 용기 속에서 숨 쉬고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 그리고 온갖 청과 장아찌들. 그것들은 조미료가 아니라, 시간이 쌓인 기록이자 계절의 증언이다. 나는 요즘 자주 생각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 단지 맛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하고. 정관스님이 봄에 담근 참죽장아찌는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어서야 제 맛을 낸다. 김장 무를 소금에 절여 1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속이 노랗게 익어간다. 이 과정은 요리라기보다는 수행에 가깝다. 재료를 다듬고, 소금을 뿌리고, 항아리에 담고, 그리고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무언가가 변화한다. 재료만이 아니라, 그것을 담근 사람도. 발효는 인내를 가르친다. 서두를 수 없고, 조작할 수 없으며, 오로지 자연의 시간표에 몸을 맡겨야 한다. 나는 그것이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되는 시대에, 1년을 기다려야만 맛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그것이 주는 위로와 깨달음이다.

정관스님은 말한다. "각각의 식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자라나고, 언제 꽃을 피우고,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마트에서 사계절 내내 똑같이 진열된 채소들 사이에서 '제철'의 의미를 잊고 살아왔다. 겨울에도 토마토를 사고, 여름에도 감자를 먹으며, 계절의 리듬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스님은 호박과 죽순, 연근을 잘라 단면을 보여주며 그것들이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한다. 이것은 요리 재료를 고르는 법이 아니다. 세상을 보는 태도, 생명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이야기다. 각각의 채소가 지닌 고유한 리듬과 형태를 존중하고, 그것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그래서 스님의 요리는 재료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드러 내는' 것에 가깝다. 내가 요즘 부엌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것이다. 무엇을 '넣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빼 낼' 것인가. 마늘도, 파도, 고춧가루도 넣지 않은 정관스님의 요리는 처음엔 너무 밋밋해 보였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버섯 본연의 향이, 호박 자체의 단맛이, 쌀이 지닌 구수함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우리는 너무 많이 더하는 데 익숙해져서, 덜어냄'의 미학을 잊어버렸다.

스님의 부엌에서 국수 요리를 '승소'라고 부른다는 대목이 특히 좋았다. '스님의 미소.' 누군가 "오늘 국수 먹을까요?" 하면 모두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분주해진다는 그 장면. 나는 그 풍경을 상상하며 오래 머물렀다. 음식이 사람들에게 미소를 선사한다는 것. 그것은 단지 맛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함께 준비하는 과정, 누군가는 물을 끓이고 누군가는 반죽을 밀고 누군가는 텃밭으로 달려가는 그 협업의 즐거움. 그리고 그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 서 있는 노스님의 조금 뽐내듯 하는 모 습.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 그릇 국수가 된다. 요즘 우리는 혼자 먹는 데 너무 익숙해졌다. 혼밥, 혼술이 일상이 되었고, 배달 앱으로 주문한 음식을 혼자 방에서 먹는 일이 낯설지 않다. 효율적이고 편리하지만, 무언가 빠져 있다. 바로 '함께 만 들고 나누는 기쁨'이다. 정관스님의 부엌에서는 요리가 고립된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행위다. 서로 돕고, 웃고, 기다리 고, 함께 먹는다. 그 안에서 음식은 영양 공급을 넘어 관계의 매개가 된다.

스님이 아버지를 위해 산에서 표고버섯 조청 조림을 만든 이야기는 가슴을 울렸다. 출가한 딸을 7년 만에 처음 찾아온 아버지. 그 어색함과 서운함,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한 그릇 음식. "고기보다 맛있다"고 말한 아버지의 그 한마디 속에 얼 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을까. 음식은 때로 말보다 웅변적이다. 표고버섯 조림이라는 단순한 요리 한 그릇이 7년간의 침묵을 녹였다. 그것은 화려한 설득이나 논리적인 설명이 아니라, 정성과 시간이 빚어낸 맛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또 다른 것을 떠올렸다. 음식으로 마음을 전하는 법. 말로 하기 어려운 사과, 감사, 사랑을 한 끼 식사에 담아내는 능력이다. 요즘은 선물도 배달시키고, 식사도 기프티콘으로 대신한다. 편리하지만, 그 안에 '손 길'이 없다. 정관스님이 직접 산에 올라 불을 지피고 버섯을 조리며 아버지를 위해 쏟은 그 시간과 정성.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선물이었다.

정관스님은 스스로를 "셰프가 아니라 수행자"라고 말한다. 수행자는 '행동과 습관을 바꾸려고 힘쓰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요리는 그에게 수행의 한 형태다. 재료를 다루는 손길 하나, 불을 조절하는 호흡 하나가 모두 수행이다. 나는 이 태도가 현대인에게 절실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고, 너무 빠르게 살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 스님의 부엌은 정반대다. 최소한의 재료, 최소한의 양념, 최대한의 정성. 그 안에서 오히려 풍요로움이 드러난다. 겨울 호박과 표고 버섯으로 만든 밥 한 그릇. 소금만으로 간한 호박 수프. 이런 음식들은 '부족함'이 아니라 '충분함'을 보여준다. 재료 본연의 맛이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 복잡하게 만들지 않아도 완전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음식뿐 아니라 삶 전체에 적용되는 지혜다. 정관스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자꾸 멈칫거렸다. 책장을 넘기는 손이 느려졌고, 호흡이 깊어졌다. 이것은 시간을 대하는 태도,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 타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법에 관한 책이었다. 우리는 빠른 시대를 살지만, 어떤 것들은 여전히 느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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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략집
한진우 지음 / 모티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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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간절함'을 미덕으로 배워왔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열심히 노력하면 보상받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한진우 저자의 이야기는 그 믿음의 허상을 정면으로 찌른다. 빛 2억 원, 통장 잔고 106원, 폐암 환자인 아버지 앞에서 1인실조차 망설여야 했던 그 순간, 간절함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간절함은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출발선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간절함 자체를 목적지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간절해"라고 되뇌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주사위를 한두 번 던져보고 6이 나오지 않으면 운이 없다고 체념한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더 간절해지려고' 노력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 방식이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간절함에서 벗어나 구조로 이동하라는 것이다.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의지가 아니라 설계로, 노력이 아니라 레버리지로. 자본주의는 착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돈은 준비된 구조에게만 흘러간다. 우리는 박수와 돈을 혼동해왔다. 성실함에 대한 칭찬과 실제 부의 축적을 같은 것으로 착각해왔다.


가장 위험한 선택은 무엇인가? 저자는 '평범한 선택'이라고 답한다. 안정적인 월급, 적당한 소비, 남들처럼 사는 삶.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도박이다. 왜냐하면 평범함은 현상 유지를 약속하지만,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험을 회피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큰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다. 도전하지 않는 것, 변화하지 않는 것, 새로운 시도를 미루는 것. 이 모든 '안전한 선택'들이 쌓여서 결국 우리를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는다. 돈도 없고, 지식도 부족하고, 마케팅도 못하는데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안정이 아니라 정지다. 저자는 휴대폰 판매왕이 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다수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폰팔이', '차팔이'라는 손가락질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남들의 시선을 버리고, 오직 '돈이 되는 선택'만을 추구했다. 자존심보다 결과를, 체면보다 생존을, 착한 척보다 실질적 성과를 택했다. 이것은 냉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함과 냉혹함은 다르다. 저자는 자신의 무력함 앞에서 치를 떨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돈이 있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는 탐욕이 아니라 책임의 언어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독창성을 숭배한다. 나만의 길, 나만의 방식, 나만의 아이템.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를 말한다. "맨땅에 헤딩하지 말 고 1등의 답안지를 베껴라." 이것은 게으름이나 표절이 아니라, 효율성과 현실 감각의 문제다. 0에서 시작하는 사람에게 독창성은 사치다.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로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벤치마킹은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한 구조를 분석하고,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내 상황에 맞게 재설계하 는 과정이다. 복제는 출발점이고, 증식은 목적지다. 1등을 철저히 연구해서 그 시스템을 훔치고, 하루 18시간씩 몸을 갈 아 넣어 '0에서 1을 만드는' 바닥의 법칙을 익힌다. 그리고 그 1을 2로, 2를 4로, 4를 8로 늘려가는 구조를 만든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증식의 기술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레버리지"다. 혼자서는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세계가 있다. “당신의 연봉은 당신이 만나는 5명의 평균이다"라는 말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환경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정보를 접하고, 어떤 시스템 안에 자신을 배치하느냐가 결과를 결정한다.


이 책이 다른 자기계발서와 다른 지점은 명확하다. 투자 기법을 알려주지 않고, 단기 성공 공식을 제시하지 않으며, 감정적인 동기부여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노동과 시간에만 의존하는 선택을 계속할 것인가? 0에서 1을 만드는 사고를 해본 적이 있는가? 자본주의 안에서 소모되는 사람이 될 것인가,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이 질 문들은 불편하다. 왜냐하면 대답하려면 자신의 현재를 정직하게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본도, 시스템 도, 확실한 무기도 없다. 가진 것은 시간뿐인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인생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우주에 빌고, 긍정 확언을 되뇌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는다. 저자의 메시지는 가혹할 정도로 직설적이다. "우주에 빌지 말고 당장 전단지라도 돌려라." 돈을 벌겠다는 결심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다. 꿈은 나중이고, 먼저 돈이 되는 일을 하라. 좋아하는 일을 찾다가 굶어 죽지 말고, 먹고 사는 일을 확보한 다음 선택하라. 이것이 냉소주의일까?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생존주의자의 현실주의다. 저자는 14살에 부모의 이혼을 겪고, 17살부터 온갖 알바를 전전하며, 빛 2억 원과 아버지의 폐암을 마주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착함으로는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다"는 진실이었다. 착한 사람은 박수를 받지만 부자가 되지는 못한다. 성실한 사람은 인정받지만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책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돈에 대한 본능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돈이 어디서 생기는지, 어떻게 흐르는지, 어떤 구조에서 증식되는지를 감지하는 능력. 이것은 탐욕이 아니라 생존 감각이다. 사업의 구조는 단순하다. 돈이 엄청나게 많거나, 정보와 지식이 많아서 마케팅을 잘하거나. 둘 다 없다면? 직접 나서서 알리는 수밖에 없다. 이 구조를 벗어나서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단순한 구조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기다린다. 저 자는 기다리지 말라고, 움직이라고, 던져보라고 말한다. 다만 '뇌 빼고 무작정 '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각도를 바꿔보고, 힘을 조절하며, 던지는 방식 자체를 바꿔보라고 조언한다. 동전 던지기에서 중요한 것은 횟수가 아니라 방식이다. 책을 읽으며 불편했다. 내가 그동안 간절함을 전략으로 착각하고, 평범함을 안전으로 오해하고, 독창성을 핑계로 시작을 미뤄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함은 변화의 신호다. 지금 편안하다면, 그것은 바꾸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대신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말고, 열심히 시도하고 노력해서 부를 쌓은 사람들을 욕하지 말아야 한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소모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간절함으로 답할 수 없다. 오직 행동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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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김부장의 늦지 않은 연금 공부 - 은퇴 후 500만 원을 만드는 연금 포트폴리오
이영주.배한호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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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가슴을 후벼팠다. <50세 김부장의 늦지 않은 연금공부> 제목 속 김부장이 마치 거울 속 내 모습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애써 외면해온 또 다른 나였다. 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승진도 제때 했고, 월급도 꼬박꼬박 받았다. 그런데 지난주 임원이 슬쩍 던진 “요즘 명예퇴직 패키지가 괜찮던데 "라는 말 한마디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회사 밖 세상을 준비한 적이 없다는 것을. 월급은 생활비로, 보너스는 아이들 학원비로, 명 절 상여금은 부모님 용돈으로 새어 나갔고, '노후'라는 단어는 늘 "나중에 생각하지 뭐"로 미뤄왔다. 국민연금? 매달 빠져 나가는 걸 알지만 내가 얼마나 받을지는 모른다. 퇴직연금? 회사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싶어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다. 개 인연금? 보험설계사가 권유했을 때 "나중에요"라고 대답한 게 벌써 5년 전이다. 그렇게 나는 오십 중반까지 '연금 문맹'으로 살아왔다. 나는 이제야 연금 공부를 시작한다. 창피하게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다. 위기가 와야 움직이는 본성. 하지만 이 책이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월 500만 원' 이라는 명확한 목표였다. 재테크 책들은 대부분 " 충분히 준비하세요", " 여유 있게 모으세요 " 같은 추상적인 조언만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월 500만 원. 세후 기준으로 부부가 노 후에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선.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막연한 불안이 구체적인 과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500만 원을 만드는 방법도 명쾌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소위 말하는 3층 연금 구조. 나는 지금껏 이 세 가지를 따로 따로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생각조차 안 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세 개의 기둥이 서로를 지탱하며 하나의 튼튼 한 집을 짓는 구조였다. 국민연금은 기본 토대다. 임의가입이나 추납 제도를 활용하면 수령액을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 음 알았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알아서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운용 방법을 선택해야 효율이 오른다. 그동안 나는 퇴 직연금 계좌를 그냥 방치해뒀다. 마치 은행 적금처럼 1%대 수익률로. 개인연금은 세제 혜택이 핵심이다. 연말정산 때 몇 십만 원 환급받으려고 영수증 모으는 것보다, 연금저축이나 IRP에 꾸준히 넣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 다. 책은 이 세 가지를 단순하게 '많이 넣으세요'가 아니라, 어떻게 배분하고, 언제 시작하며, 어떤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지 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과세 이연' 개념이었다. 지금 당장 세금을 덜 내는 게 아니라, 세금을 나중 으로 미루면서 그 돈까지 복리로 굴린다는 발상. 50대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가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전략적 적립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설득력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부분이 가슴에 남았다. 주식 시장이 폭락했을 때, 추가 자금이 필요할 때, 대부분 사람들은 연금 계좌 를 해지한다. 나도 그럴 것 같았다. 급한 불을 끄려다 미래를 태워버리는 선택. 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더 많이 쌓 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중도 해지는 곧 세제 혜택 박탈이다. 그동안 쌓아온 과세 이연 효과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대 신 담보 대출이나 일부 인출 제도를 활용하면 계좌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자금을 쓸 수 있다. 이런 디테일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10년 후 수백만 원의 차이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심리적 근육이었다. 연금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50대에 시작했다면 60대 중반까지 약 10~15년. 그 기간 동안 시장은 몇 번이고 요동칠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적립하는 사람만이 복리의 마법을 경험한다. 영상 속 김부장이 시장 하락기에도 정 액 적립을 유지하며 평단가를 낮춰가는 장면은, 마치 내게 "너도 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즘 주식 커 뮤니티를 덜 보게 됐다. 단기 수익률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장기적인 현금흐름 설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TF, 배당주, 커버드콜 같은 화려한 용어들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영상에서 경고했듯 전체 시스템 없이 부분 전술에만 매몰되면 위험 하다. 나는 이제 기초 체력부터 다지고 있다.

책은 연금 공부라는 느낌이 없다. 금융 서적 특유의 딱딱함, 수식과 법령으로 가득한 페이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 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식이 쌓인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듯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머릿속에는 3 층 연금 구조, 과세 이연 전략, 포트폴리오 설계 원칙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나 같은 금융 문맹에게 이런 형식은 구원이었 다. 전문 용어를 외우려 애쓸 필요 없이, 김부장이 상담사와 대화하는 장면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개념을 익혔다. '아, 이럴 땐 이렇게 하는구나', '저 실수는 나도 할 뻔했네' 하며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연금 설계의 기본 틀을 이해하고 있었 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나이 듦에 대한 패배감을 희망으로 바꿔줬다. 향후 나의 변화된 삶. 희망퇴직을 두려워하는 대신, 월500만 원의 연금 시스템을 갖춘 뒤 당당하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모습. 경제적 자립이 곧 심리적 안정이고, 그것이 노년 의 자존감을 지킨다는 메시지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나는 이제 '늦었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기로 했다. 50대는 끝이 아니 라 새로운 설계의 시작점이다. 앞으로 10년, 길게는 15년. 그 시간이 내 노후 30년을 지탱할 기둥을 세우는 골든타임이다.

불안은 무지에서 온다. 알면 두렵지 않다. 50대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라, 제대로 준비하기에 딱 좋은 나이 다. 복리의 마법이 짧아진 만큼 세제 혜택과 전략적 배분으로 그 시간을 압축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지금 시작하느냐, 마느 냐다. 지금 이 순간이, 나머지 인생을 바꿀 가장 이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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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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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는 주로 승전국의 시각에서 서술되어 왔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미드웨이 해전 같은 대규 모 전투들이 역사책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서사의 그늘 아래에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약소국들의 이야기가 있다. 생각해 보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강대국 이외의 야소국들, 예를 들어 벨기에, 핀란드, 불가리아 같은 나라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팽창의 야욕도, 세계 지배의 꿈도 없었다. 단지 평화롭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욕망은 이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중립이냐 동맹이냐, 저항이냐 항복이냐의 기로에서 이들이 내린 선택과 그 결과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훈을 전달해 준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타이완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은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약소국들의 제2차 세계대전 경험은 이러한 현대의 문제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 같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중, 약소국들의 대응과 그 결과에 대해서 여러 측면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의 두께 만큼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빠른 시간에 읽기는 어려웠다. 책 내용중, 작년에 유럽 여름 휴가를 다녀왔던 벨기에와 핀란드 그리고 불가리아에 대해 궁금증이 커서 먼저 상세히 읽어 보았다.


벨기에의 역사는 지정학적 저주의 전형이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위치한 이 나라는 두 강대국이 충돌할 때마다 전쟁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국토의 95%가 독일군 수중에 넘어갔고, 4년간 4만여 명이 전사했다. 이러한 참혹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벨기에는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1920년 프랑스와 맺은 군사협정은 상호 불신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1925년 로카르노 조약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이 벨기에의 영토를 보장하자, 벨기에는 19세기의 평화가 돌아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1936년 라인란트 위기에서 프랑스가 히틀러 앞에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본 벨기에는 실망했다. 레오폴드3세는 1936년 중립을 선언하고 1937년에는 독일과 중립조약까지 맺었다. 자신들이 독일을 자극하지 않으면 독일도 넘보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었다. 더 큰 문제는 방어 태세였다. 벨기에는 동부 국경에 '작은 마지노'로 불린 에방 에말 요새를 건설했지만, 독일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군비 증강은 최소화했다. 전차는 ’공격용 무기'라는 이유로 거의 확보하지 않았다. 1940년 개전 당시 제대로 된 전차는 10대에 불과했고, 공군의 주력은 1920년대 복엽기였다.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아르덴 방어였다. 프랑스군 총사령은 ’천연 방벽'이라며 독일군이 통과할 리 없다고 단언했다. 벨기에도 이에 동조하여 22개 사단 중 단 2개만 배치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누가 아르덴을 방어할지 제대로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결과는 무방비 상태였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이 침공하자 에방에말 요새는 85명의 공수부대에게 하루 만에 함락 되었다. 구데리안의 기갑부대는 각성제 페르비틴에 의존하며 57시간 만에 아르덴을 돌파했다.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일이었다. 벨기에는 18일 만에 항복했고, 이후 52개월간 나치 점령 아래 신음했다. 중립도, 조약도, 요새 벨기에를 지켜주지 못했다.


핀란드의 상황은 벨기에보다 훨씬 절망적이었다. 1939년 스탈린이 카렐리아 지협을 요구하자 핀란드가 거부했고, 11월 30일 소련 군 45만 명과 전차 2,500대가 침공했다. 핀란드군은 18만 명에 전차는 사실상 없었다. 보유한 르노 FT-17은 제1차 세계대전 유물이었고, 빅커스 6T는 돈을 아끼려고 차체만 구입해 주포와 무전기가 없는 빈 껍데기였다. 그러나 핀란드는 놀라운 저항을 보여주었다. 시모 해위해는 105일간 542명을 저격하여 '하얀 사신'으로 불렸다. 스키 부대는 삼림과 추위를 이용해 소련군을 각개격파했다. 몰로 토프 칵테일로 소련 전차를 불태웠다. 소련군은 20만 명의 전사자를 냈다. 핀란드는 1940년 3월 국토의 11%를 잃었지만 독립은 지켰고, 소련군에게서 T-26 100여 대, BT 60여 대를 노획해 오히려 전력이 강화되었다. 1941년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핀란드는 신중하게 대응했다. 소련이 먼저 폭격하자 '계속전쟁'을 선언하고 빼앗긴 땅을 되찾았지만, 만네르하임은 여기서 멈췄다. 히틀러가 레닌그라드 공격을 압박했지만 거부했다. 미국·영국의 반발을 우려했고, 거대 도시 공격은 핀란드의 능력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형식적으로 추축국이었지만 소련에 선전포고하지 않았고, 국내 반공 활동도 금지했다. 이러한 신중함은 전후 처리에서 빛을 발했다. 다른 추축국들과 달리 핀란드는 소련의 위성국이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했다. 핀란드의 교훈은 명확하다. 약소국이라도 강한 의지와 현 명한 전략이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불필요한 모험을 피하며, 강대국 사이에서 실리를 챙기는 것이다.


불가리아는 또 다른 유형이었다. 한때 발칸의 강자였지만 연이은 패전으로 영토를 잃고 군비를 제한당했다. 국왕 보리스 3세는 실리주의자였다. 1941년 3월 추축에 가입하여 루마니아로부터 남부 도브루자를 되찾았고, 독일의 발칸 침공 때 길을 빌려주고 유고슬라 비아와 그리스 영토를 받았다. 하지만 보리스 3세는 히틀러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독소전쟁 참전을 거부했고,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는 것도 거부했다. 1943년 8월 히틀러와 회담 후 급사하여 암살설이 돌았다. 1944년 9월 소련이 선전포고하자 불가리아는 재빨리 편을 바꿔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불가리아는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수 있지만, 생존의 관점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전략으로 최악의 결과를 피했다.

이들 국가들의 2차 세계 대전사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중립은 그 자체로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벨기에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 모두에서 전쟁터가 되었다. 중립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스위스가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선언 때문이 아니라 산악 지형과 철저한 국방 준비 덕분이었다. 또한 강대국의 약속은 믿을 수 없다. 1914년 런던조약은 벨기에의 중립을 보장했지만 독일은 ' 종이조각 '이라며 무시했다. 194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국제 조약과 동맹은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자국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힘이다. 소통과 협력의 실패는 재앙을 부른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서로 불신했고, 아르덴 방어에 대해 제대로 된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벨기에는 프랑스가 알아서 할 것이라 여겼고, 프랑스 는 벨기에가 맡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는 무방비 상태였다. 안일함과 희망적 사고는 치명적이다. 가물랭은 독일군이 아르덴을 통과 하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이며, 그 사이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57시간 만에 돌파했다. 준비되지 않은 낙관은 재앙의 지름길이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우리는 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경험을 했다. 21세기 들어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선택을 강요받는다. 벨기에의 실패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균형 외교'라는 이름으로 이쪽도 저쪽도 자극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정작 위기가 왔을 때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동시에 핀란드의 지혜도 필요하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실리를 챙기되, 결코 우리의 생존권을 담보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체 국방력이다. 벨기에는 전차를 '공격용 무기'라며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 핀란드는 돈을 아끼려다 주포도 없는 전차를 샀다가 전쟁에서 쓰지도 못했다. 이런 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역설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는 약자에게 가혹하다. 하지만 현명한 약자는 살아남는다. 벨기에와 핀란드의 상반된 운명은,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우리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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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꼭 읽어야 할 20세기 세계사 - 세계를 바꾼 결정적 장면들
이영숙 지음 / 블랙피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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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며칠 전 아침 뉴스에서 중동 분쟁 소식이 흘러나왔다. 앵커는 진지한 표정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심화되 고 있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 갈등의 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또 싸우는구나" 하는 피상적인 이해만 있을 뿐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미중 패권 경쟁도, 브렉시트도 마찬가지였다. 뉴스는 매일 쏟아지는데, 나는 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까? 이번에 이영숙 작가의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20세기 세계사>를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내 가 몰랐던 건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다. 20세기라는 거대한 뿌리를 모르니, 21세기라는 나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오늘을 읽는 해독제 같은 책이었다. 책은 사진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저자는 20세기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선별하고, 그 사진 한 컷에서 출발해 역사의 물줄기를 풀어낸다. 마치 사진관에 들어가 액자 속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 다보는 것처럼, 그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예를 들어 형형한 눈빛의 수도승 라스푸틴 사진은 한 인물의 조상이 아니다. 그 눈빛 너머로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이, 러시아 혁명의 전야가, 그리고 권력에 기생하는 비선 실세의 끈질긴 생명력이 보인다. 손을 맞잡고 웃는 세 명의 지도자 사진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미소 뒤에는 중동의 피 묻은 역사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분쟁의 씨앗이 숨어 있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지만, 저자는 그 순간의 전후를 촘촘하게 연결한다. 그래서 마치 시간 여행자가 된 것처럼 1917년 러시아로, 1945년 히로시마로, 1989년 베를린으로 순간 이동한다. 이것이 바로 책이 지닌 마법 같은 힘이다.

저자는 고백한다. 책을 쓰는 동안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고 느꼈다고. 20세기의 무게가 그 이전 19세기까지의 모든 세계사를 합친 것과 견주어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깨 달았다고 말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그 무게를 실감했다.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가장 참혹한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냉전이라는 이념 대결로 세계는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동시에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했고, 인권과 평등을 향한 투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100년이라는 시간 속에 전쟁과 평화, 억압과 자유, 증오와 화해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의 파편이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구성하고 있다. 유엔이 왜 생겼는지, NATO가 무엇인지, 중동이 왜 불안한지, 한반도가 왜 분단되었는지, 이 모든 질문의 답이 20세 기에 있다. 그러니 20세기를 모르고서는 오늘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이유다.

역사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딱딱한 연대기, 암기해야 할 인물과 사건들, 지루한 서술. 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마치 손주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처럼, 혹은 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사를 '공부'가 아닌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한다. 저자는 역사 속 인물들을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 고뇌와 결단을 지닌 살아 있는 사람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그들의 눈물에 공감하고,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며,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강대국의 오만이 약소국에게 남긴 상처를 다루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르완다 대학살을 다루며 이렇게 쓴다. "잘못은 강대국이 하고, 그 결과로서의 잔혹한 비극은 약소국이 떠안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 제국주의 시대,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마음대로 나누고 지배했다. 그들은 현지의 역사와 문화, 민족 구성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편의대로 국경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부주의하고 무 책임한 선택이 수십 년 뒤 끔찍한 인종 갈등과 대학살로 이어졌다. 한국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38선은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은 선이었다. 하지만 그 선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고, 수천만 명이 이산의 아픔을 겪었다. 약소국의 운명이 강대국의 회의실에서 결정되는 비극. 이것이 20세기가 우리에게 남긴 뼈아픈 교훈이다. 저자는 이러한 불평등한 세계 구조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한다. 국내 자료뿐 아니라 수 많은 외국 역사서와 사료를 연구한 덕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편협한 민족주의나 특정 이념에 갇히지 않고, 진정한 세계 시민의 관점을 제공한다.

책을 읽으며 소름 돋았던 순간이 있었다. 20세기에 일어났던 일들이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다. 라스푸틴 같은 비선 실세는 여전히 권력 주변에 존재한다. 뮌헨 협정처럼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약소국을 희생시키는 일은 지금도 벌어진다. 인종 갈등과 증오 범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역사를 모르는 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20세기의 교훈을 제대로 배웠다면, 독재와 전 쟁, 차별과 혐오가 어떤 결말을 낳는지 알았다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역사를 잊지 말라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라고. 그것이 바로 역사를 배우는 진짜 이유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또 하나의 진실은, 역사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거대한 전쟁과 혁명, 협정과 조약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결단을 내린 지도자, 희생당한 민중, 저항한 혁명가, 침묵한 방관자. 그들 모두가 역사를 만들었다. 저자는 그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 두려움과 용기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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