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지음,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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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잠든 아기 옆에서 피곤에 빠진 어머니가 지쳐 쓰러져 있는 순간을 그린 그림이 있다. Krohg의 <Mother and Child>다. 작품은 1883년에 그린 유화 작품으로, 노르웨이의 현실주의 화가인 Krohg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당시의 노동 계급 여성들의 삶과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동정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 작품은 가로 47.7cm, 세로 53cm의 작은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배경은 어두운 회색과 갈색으로 칠해져 있고, 전경에는 어머니와 아이가 앉아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어머니는 흰색과 파란색의 체크 무늬 드레스를 입고 있고, 아이는 분홍색과 흰색의 옷을 입고 있다. 어머니는 왼손으로 아이의 몸을 감싸고 있고, 오른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고, 아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두 사람의 표정은 차분하고 평화로운 것으로 보인다.

파리에서 들려온 한 소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어디에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모나의 눈> 속 열 살 소녀 모나는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직면하고, 할아버지 앙리는 물리적인 눈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모나의 내면에 영원히 남을 '아름다움의 저수지'를 만들어 주기로 결심합니다. 매주 미술관으로 향하 는 이들의 여정은 나들이가 아닌, 예술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마음의 눈을 뜨는 숭고한 과정입니다. 이는 예 술이 단지 보고 감상하는 것을 넘어, 우리 존재의 근원에 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증거이기도 합니다.

<모나의 눈>에서 베르메르의 작품을 이야기하며 "아주 위대한 천재들에겐 기민하고 눈 밝은 관객들이 필요하단다, 모나 야!"라고 말하는 할아버지 앙리의 대사는 예술을 감상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예술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스쳐 지나가는 시선이 아니라, 작품 속 깊이 담 긴 의미를 찾아내고, 그 안에 스며든 작가의 의도와 감정을 헤아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배경 지식이 필요한 문 학적 접근으로, 때로는 순수한 감성의 공명으로, 우리는 예술 작품과 대화하며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합니다. 이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삶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예술을 배우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다채로운 시선을 획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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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힘 - 생각을 현실화하는
요코카와 히로유키 지음, 김정환 옮김 / 알파미디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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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사라지거나, 막연한 형태로 남아있을 뿐이다. "언젠가는 이런 일을 해보고 싶어",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같은 생각들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생각들이 현실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왜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생각이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생각을 구체적이고 명확한 형태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문자화'다. 이번에 이 문자화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신간을 읽었다. 문자화란 생각을 글로 쓰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보이는 형태로 변환시키는 강력한 도구이며, 꿈과 현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마법과 같은 힘이다.

복잡한 수학 문제를 생각해보면, 구구단이나 간단한 덧셈은 암산으로도 충분하지만, 세 자리 수의 곱셈이나 복잡한 연산은 종이에 써서 계산해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일상적 판단은 머릿속에서도 가능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나 복잡한 문제 해결은 문자로 정리해야 명확해진다. 문자화는 생각의 정확성을 높여준다. 머릿속에서는 막연했던 아이디어가 글로 쓰이는 순간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성공하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이 "1년 내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서 월 수입 500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로 변화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문자의 양은 생각의 양과 정확히 비례한다. 많이 생각한 사람은 많이 쓸 수 있고, 생각이 부족한 사람은 쓸 말이 없다.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많은데 막상 쓰려니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실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맴돌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생각이란 명확한 형태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명확함은 문자를 통해 검증된다. 쓸 수 없는 생각은 아직 생각이 아니라 느낌이나 인상에 불과하다. 문자화의 또 다른 놀라운 효과는 뇌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다. 생각을 종이에 적으면 그 생각에 대해 더 이상 뇌의 메모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마치 컴퓨터에서 파일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면 RAM이 비워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렇게 비워진 뇌의 공간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생각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처음 계획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문자화가 단순히 기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생각은 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언젠가는 해야지"라는 생각만 반복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자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결국 더 큰 목표에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문자화는 이런 악순환을 끊는 강력한 도구다. 생각을 글로 쓰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해야 할 일'로 성격이 바뀐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은 자연스럽게 행동을 촉발한다. '사즉실행'이란 생각한 것을 즉시 실행한다는 의미다. 생각과 행동 사이의 시간 간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성급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 유지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긴다는 전략적 접근이다. 인간의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 새로운 시도나 도전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면 자동으로 그것을 방해하는 생각들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시기가 아니야", "준비가 부족해", "실패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들이다. 이런 저항이 시작되기 전에 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사즉실행의 핵심이다. 사즉실행은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방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일단 책상 한 구석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일단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축적되면서 '생각하면 행동한다'는 자기 신뢰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 신뢰가 더 큰 도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작은 성공의 축적이 인생을 바꾸는 큰 변화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자신감을 키우는 문자화의 비결 중 하나는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인 것 같습니다" 같은 모호한 표현 대신 "~입니다", "~하겠습니다" 같은 명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표현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수십 년간 모호한 표현에 익숙했던 뇌가 새로운 패턴을 학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단정적 표현에 익숙해질수록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신이 강해지고, 그것이 행동력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학습의 목표를 '정답 찾기'에 둔다. 완벽한 방법, 확실한 해답을 찾은 후에 행동하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는 100% 확실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방법에는 성공 가능성과 실패 가능성이 공존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학습의 목표를 '아이디어 실천하기'에 둔다. 80% 정도의 가능성만 보여도 일단 시도해본다. 그리고 실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피드백을 받는다. 문자화는 이런 실험적 사고방식을 뒷받침한다. 아이디어를 글로 정리하면서 가설을 세우고, 실행 계획을 구체화하며, 예상되는 결과와 대응 방안을 미리 준비한다. 이는 과학자가 실험을 설계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성공하면 대박, 실패해도 배움"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시도에서 얻은 교훈들을 문자로 정리하여 다음 도전의 밑거름으로 활용한다.

어떤 목표든 혼자의 힘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 조언, 격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간과한다. 문자화는 이런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목표를 네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더 큰 책임감과 동기를 만들어낸다. 목표 달성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문자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관계를 강화하고 지속적인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이다. 또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문자화해보자.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는 관계는 지속되기 어렵다.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진정한 협력 관계다. 문자화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꾸준히 해야 하는 습관이다. 하루 15분만 투자해서 그날의 생각, 감정, 계획, 성찰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 15분이 쌓이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생각이 더 명확해지고, 감정이 안정되며, 목표가 구체화되고, 행동력이 향상된다. 마치 매일 조금씩 근육을 단련하는 것처럼, 매일 조금씩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 강해진다. 문자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문법이 틀려도 괜찮고, 내용이 체계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A4 용지 한 장과 펜, 15분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복잡한 도구나 시스템은 오히려 지속을 방해할 수 있다. 간단하게 시작해서 꾸준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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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주 투자 수익의 정석 - 20년간 연간손실 0원, 국가대표 프랍 트레이더의 완벽한 ‘손익비’ 전략
김진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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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주식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경쟁, 글로벌 관세 전쟁 등 수많은 변수들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끊임없이 불확실성과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년간 연간 손실 0원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프랍 트레이더 김진이 제시하는 투자철학은 강력하다: 예측이 아닌 대응으로 시장을 공략하라다. 전통적인 투자 접근법들은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에 기반한다.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내거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을 선별하거나,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김진의 관점은 이와 다르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려 하지 않고, 대신 현재 시장이 보여주는 신호에 집중한다. 이것이 바로 추세추종 투자의 핵심이다.

추세란 주가의 상승과 하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산이 미래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일정한 방향성이며, 한 기업의 가치 변화 과정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김진은 이를 "시장이 들려주는 가장 확실한 목소리"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투자자의 역할은 시장을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메시지를 정확히 해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모든 자산을 추세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시장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투자 힌트를 제공한다. 경기 상황, 주도 산업, 투자 타이밍 등 모든 정보가 추세를 통해 드러나며, 투자 의사결정은 "지금 시장이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메시지다. 이는 근본적으로 겸손한 투자 철학이다. 시장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주관적 판단보다는 시장의 객관적 신호를 신뢰하는 접근법이다. 특히 개인투자자에게는 더욱 현실적인 전략이다. 기관투자자나 외국인 투자자에 비해 정보력이나 자금력에서 불리한 개인투자자가 시장과 정면승부를 벌이기보다는, 시장의 흐름에 순응하며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강조하는 주도주는 상승률만이 높은 종목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도주는 시장이 좋을 때만 존재하는 특별한 주식이다. 경기가 좋고 증시 전체가 상승할 때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들 종목의 존재 자체가 증시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주도주의 특징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주도주는 처음에는 극히 일부 종목군을 중심으로 형성되지만, 해당 산업이 경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주도주군으로 포함되는 종목들이 계속 증가한다. 둘째, 주도주의 일시적 조정 여부에 따라 전체 증시는 조정을 보이기도 하고 강한 랠리를 보이기도 한다. 셋째, 주도주가 시장에 존재한다면 적극적으로 주도주를 중심으로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러한 주도주에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개인투자자일수록 시장을 이끄는 대형 주도주가 답이라는 것이 김진의 확신이다. 공개된 정보가 많은, 누구나 아는 대형주만이 개인투자자가 기관 및 외국인과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매수할 때 전문적인 지식이나 독점적 정보가 필요하지 않으며, 추세로 시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대응하면 충분하다.

투자 철학에서 또 다른 핵심은 손익비 전략이다. 주식투자를 승률 게임이 아닌 손익비 게임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손익비는 평균 이익을 평균 손실로 나눈 값으로, 높은 손익비를 유지하면 승률이 낮더라도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전통적인 투자 관점에서는 종종 승률, 즉 얼마나 많은 투자에서 수익을 냈는지에 집중한다. 하지만 김진은 이보다 한 번의 수익이 한 번의 손실보다 얼마나 큰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10번의 투자 중 3번만 성공하더라도, 그 3번의 성공에서 얻은 수익이 7번의 실패로 인한 손실보다 크다면 전체적으로는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손익비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명확한 손익비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손익비 3:1을 목표로 한다면, 목표 수익은 항상 손실의 3배 이상이 되도록 설정해야 한다. 둘째, 손익비 관점에서 유리한 상황에서만 매매하고, 손실이 커지기 전에 손절매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셋째, 자금 관리와 밀접하게 연결하여 위험 감수 금액을 사전에 설정하고, 손실이 확대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투자 철학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매도에 대한 관점이다. 그는 주식투자를 "사는 게임"보다는 "파는 게임"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결국 파는 것을 잘해야 성과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주가 상승 시점에서 매도 결정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가가 상승을 멈추고 하락하는 초기 시점에는 해당 기업의 펀더멘털이 특별히 악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애널리스트들은 여전히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밸류에이션도 더 매력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미 주가는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오히려 팔지 말아야 할 논리, 더 사야 하는 논리가 강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김진이 제시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기존의 상승 논리가 이전처럼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전의 상승 논리를 버리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세의 변화를 감지했을 때는 다른 모든 요소보다 추세 신호를 우선시해야 한다. 또한 기회비용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추세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주식으로 단기에 수익을 냈다고 해서 함부로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손실 위험과 기회비용 위험을 같은 수준으로 취급해야 하며, 이는 급등주를 무조건 쫓아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꾸준한 상승 추세를 보이는 종목에서 성급하게 빠져나오지 말라는 의미이다.

개인투자자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 내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시장을 이기려 하지 않고 시장과 함께 가며, 예측에 의존하지 않고 대응에 집중하는 이 접근법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대 금융시장에서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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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본주의 - 인생 최고의 수익률, 나에게 베팅하는 법
정태승 지음 / 재재책집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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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적 내가 알던 부자는 오직 텔레비전 속에만 존재했다. 현실에서 마주한 어른들은 모두 바쁘게 살았고, 늘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그때는 몰랐다. 가난이 단순히 돈의 부족이 아니라, 선택지의 부족이라는 것을.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는 날과 없는 날을 구분해야 하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훗날 내가 모든 것을 자본으로 바라보게 만든 출발점이었음을 알게됬다. 이 책의 저자처럼 나 역시 가난을 '위대한 유산'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난은 나에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주었다. 모든 것이 한정되어 있고,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어머니가 마트에서 두 제품의 가격을 비교하며 고민하던 모습, 아버지가 야근수당을 받기 위해 늦은 밤까지 일하던 뒷모습. 그 모든 것이 내게는 경제학 교과서보다 생생한 자본주의 교육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삼두체제'를 통해 사업을 운영한다는 대목이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해내는 힘,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협력의 가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관계자본이 아닐까. 나는 문득 내 주변의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진정한 신뢰를 쌓고 있을까?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는 관계는 아닐까? 상대방에게도 가치를 제공하고 있을까? 저자가 미국 업체 사장과의 관계에서 보여준 것처럼, 진정한 관계자본은 즉각적인 이익을 바라지 않는 진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 동창들과의 모임에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느끼는 것이 있다. 졸업 후 10년이 지나면서, 각자의 관계자본이 얼마나 다르게 형성되었는지가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친구는 여전히 학창시절 친구들과만 어울리며 비슷한 대화를 반복하고, 어떤 친구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간다. 관계도 투자의 대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투자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오리지널리티'는 자신만의 가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트렌드를 따라가되 휩쓸리지 않고, 변화에 적응하되 본질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기자본주의의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평가받는다. SNS는 이런 비교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남들의 성공 스토리를 보며 조급해하고, 트렌드에 뒤처질까 봐 불안해한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남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나온다. 나는 요즘 '나만의 성공 지표'를 만들어보고 있다. 연봉이나 직급 같은 외적 지표가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들을 기준으로 한 지표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는가, 얼마나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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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의 함정
무라카미 야스히코 지음, 김준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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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재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숫자로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학생들은 편차치로 자신의 가치를 측정당하고, 직장인들은 성과 지표로 평가받으며, 환자들은 확률과 리스크로 자신의 미래를 계산한다. 이러한 '객관적' 지표들이 진리를 대변한다고 믿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일본의 사회학자가 제기하는 이 근본적 질문은 현대인이 직면한 실존적 고민의 핵심을 건드린다. 저자는 <객관성의 함정>에서 새로운 관점의 객관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객관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객관적'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주관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으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의 객관성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때, 우리는 객관성을 절대적 진리가 아닌 특정한 시대적 산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객관성의 역사는 권위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17세기 과학혁명 이전까지 서구 사회에서 진리의 최종 심급은 신과 교회였다. 성서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이 절대적 권위를 지녔던 시대에, 갈릴레오와 같은 과학자들의 발견은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하지만 신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진리 검증 방식이 필요했고, 초기에는 권위 있는 학자들의 증언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흥미롭게도 초기 과학 연구 성과의 검증 모델은 재판에서 차용되었다. 17세기 런던 왕립협회에서는 권위 있는 학자가 실험에 입회하여 그 신빙성을 증언함으로써 진리를 판단했다. 이는 '인간의 증언'을 '사물의 증거'보다 우선시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점차 이러한 인간 중심적 검증 방식은 한계를 드러냈고, 기계에 의한 측정이 더욱 '객관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기계적 객관성의 확립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객관성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먼저 존재했고, 사진과 같은 신기술은 그러한 요청에 부응하는 수단이 되었다. 사진 기술 자체는 위조와 수정이 가능했지만, 그것이 '객관적'인 것으로 여겨진 것은 기계적 객관성에 대한 강한 욕망 때문이었다. 19세기 말 물리학자 앙리 푸앵카레의 통찰은 객관성 개념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그는 과학의 객관적 가치가 "사물의 진정한 성질"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진정한 관계"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개별 대상에서 법칙성으로, 구체적 사물에서 추상적 관계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결국 자연과학은 자연의 리얼한 질감을 놓치고 수치화된 자연만을 다루게 되었다.

자연과학에서 시작된 객관화의 흐름은 곧 사회과학과 인간 연구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랑케는 자료 수집, 자료 비판, 사실 기술이라는 체계적 방법론을 통해 역사학을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회학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객관성에 근거하는 학문으로 성립되었다. 이로써 인간의 삶과 사회는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어 객관적 관찰과 측정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 현장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의 편차치 제도는 1957년 한 중학교 교사가 진로 지도의 객관적 지표로 도입한 것이 시초였다. 원래 교사들의 주관적 판단을 보완하려는 목적이었지만, 편차치는 점차 독자적 생명력을 갖게 되어 교육의 목적 자체가 되어버렸다.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영어 사용이 아니라 영어 시험의 편차치 향상이 되는 것처럼, 수단이 목적을 대체하는 전도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단지 교육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서 교수들은 논문 편수와 연구비 확보액으로 평가받고, 학부는 수치적 목표 달성률로 평가받는다. 개인부터 조직,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에서 수치에 근거한 계획 수립과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전면적 수치화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통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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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니시나리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풀뿌리 운동들은 수치와 경쟁이 아닌 다른 원리로 조직되는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곳의 다양한 커뮤니티들은 강압적 규범이나 경제적 가치가 아닌 개개인의 목소리와 작은 바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린이 식당, 장애인 지원 단체, 다문화 가정 지원 네트워크 등이 서로 연결되어 촘촘한 안전망을 형성한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특징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연령, 장애 여부, 국적 등의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나누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받아들인다. 이는 기존 제도의 '틈새'에 떨어진 사람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의 복지 제도가 세분화된 기준으로 인해 배제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작은 커뮤니티만으로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제도적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객관성의 함정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자신의 가치를 정의하는 방식과 직결되어 있다. 수치와 통계가 제공하는 정보가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경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객관성과 주관성, 일반성과 개별성, 법칙과 우연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편차치로 환원될 수 없는 각자의 흥미와 재능, 통계로 포착되지 않는 개별적 경험의 가치, 확률 계산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만남의 소중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무도 외면당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 책임이 있다. 그것은 수치적 우수성이 아닌 존재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세계, 경쟁이 아닌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 효율성보다 돌봄을 중시하는 세계다. 이러한 사회는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작은 실천들을 통해 만들어갈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다. 객관성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숫자 너머에 있는 인간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 통계 뒤에 숨겨진 개별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모든 존재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객관적'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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