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 설계의 기술 - 시간 도둑에게 빼앗긴 행복을 되찾고 시간 부자가 되는 법
캐시 홈스 지음, 신솔잎 옮김 / 청림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흔한 고민은 무엇일까? 바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시계와 싸우며 살아간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시간은 마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이러한 현대인의 보편적 고민에 대해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의 캐시 홈즈(Cassie Holmes) 교수가 제시하는 혁신적인 해답이 바로 '내 시간 설계의 기술(Happier Hour)'이다. 홈즈 교수는 시간과 행복의 교차점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시간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시간을 어떻게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연구는 NPR,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언론에서 주목받으며, 시간 관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홈즈 교수가 정의하는 '시간 빈곤(Time Poverty)'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그것을 처리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극심한 느낌을 의미한다. 전국 규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거의 절반이 시간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흥미롭게도 시간 빈곤은 특정 계층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하는 부모들이 특히 심한 시간 빈곤을 느끼고, 엄마들이 아빠들보다 더 시간 부족을 호소하지만, 자녀가 없는 사람들이나 유급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시간 부족을 경험한다. 더 나아가 이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로, 급박한 생활 리듬과 시간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지구촌 곳곳에 존재한다. 시간 빈곤의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연구에 따르면 시간에 쫓긴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더 건강하지 못하다. 운동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실제로 운동을 덜 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도울 여유가 없어 친절함이 줄어든다. 또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전반적인 행복감도 감소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것을 기대받게 되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24시간 연결 상태를 만들어내며, 일과 개인 시간의 경계를 흐리게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객관적으로는 더 많은 도구와 효율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관적으로는 더 시간에 쫓기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


일반적인 직감과는 달리, 홈즈 교수의 연구는 시간 빈곤의 해결책이 '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냈다. 오히려 특정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시간 풍요감(Time Affluence)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운동은 시간 풍요감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침 조깅이나 헬스장 가는 것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운동에 시간을 투자하면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향상된다. 자기효능감이란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감을 의미한다. 운동을 통해 얻은 자기효능감은 일상의 다른 영역으로 전이된다. 운동으로 체력과 집중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하며, 전반적인 에너지 레벨이 올라간다. 이러한 변화는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시간이 충분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급하게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홈즈 교수의 실험 연구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 현상의 메커니즘은 심리학적으로 명확하다. 누군가를 도왔을 때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이러한 성취감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만족감으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는 인식을 만들어낸다. 시간을 주었는데 시간이 돌아오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경외감(Awe)을 경험하는 것도 시간 인식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자연 속에서 산책하거나, 감동적인 음악을 듣거나, 깊은 인간적 연결을 경험할 때 우리는 경외감을 느낀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경외감은 우리의 관점과 시간 감각을 확장시킨다. 경외감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일상의 소소한 걱정들로부터 벗어나 더 큰 그림을 보게 된다. 이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마치 높은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평소에 크게 보였던 건물들이 작게 보이는 것처럼, 경외감은 우리의 시간적 관점을 확장시켜 현재의 급박함을 상대화한다.


홈즈 교수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서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고압적인 직업과 신생아로 인해 극심한 시간 빈곤을 경험했던 그녀는 처음에 명확한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가족과 보낼 시간도 늘어나고, 하고 싶은 다른 일들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더 많은 시간이 있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경력을 포기하기 전에, 그녀는 이러한 가정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기로 했다.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사람들의 하루 중 자유 시간의 양과 행복감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연구 결과는 놀랍게도 거꾸로 된 U자 형태, 즉 무지개나 아치 같은 패턴을 보여줬다. 한쪽에서는 시간이 너무 적을 때 스트레스로 인한 행복감 저하가 나타났는데, 이는 이미 알려진 현상이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도 행복감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즉, 시간이 너무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패턴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사람들이 생산적이고자 하는 욕구와 게으름을 거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보여줄 것이 없으면, 사람들은 목적의식 부족을 느끼고 불만족스러워한다. 일에서 목적을 찾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결과는 홈즈 교수에게 단순히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것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 발견은 행복의 핵심이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질에 있음을 보여준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수준은 사용 가능한 시간의 양과 관련이 없다. 진정한 만족의 답은 시간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시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현대인의 또 다른 큰 문제는 산만함이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거의 절반의 시간 동안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이는 즐거운 활동을 하고 있을 때조차 잠재적인 기쁨을 놓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활동들은 종종 단순하고 일상적인 경험들이다.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일들이 매일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결과적으로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홈즈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미래에 특정 활동을 할 수 있는 횟수를 계산하고, 그것이 인생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산출해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을 통해 우리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홈즈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든다. 7살 딸과 함께하는 커피 데이트가 전체 인생에서 35%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이 시간을 일정에서 확보하고 보호하려는 강한 동기를 느꼈다. 더 중요한 것은 딸과 함께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바삭한 크루아상을 나눠 먹는 그 순간에 완전히 집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30분 동안 그녀는 휴대폰을 치워두고 머릿속의 할 일 목록을 조용히 만든다. 이는 그들만의 시간이며, 그 시간의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단순한 일상 활동을 의미 있고 깊이 있는 경험으로 변화시킨다. 이 개념은 불교의 정념(Mindfulness)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현재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고, 판단 없이 현재의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홈즈 교수의 접근법은 더욱 구체적이고 계량적이다. 남은 기회의 수를 계산함으로써 추상적인 마음챙김을 구체적인 동기로 전환시킨다.


홈즈 교수가 제시하는 마지막 통찰은 다소 무겁지만 극도로 강력하다. 바로 인생의 끝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떻게 기억되고 묘사되기를 원하는가? 겉보기에는 병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사고 실험이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내다보고 살고 싶은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우리의 가치와 목적을 명확하게 해준다. 실제로 홈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시간에 대해 더 넓은 관점을 취하는 사람들, 즉 시간 단위가 아닌 연도 단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큰 행복과 삶의 의미를 경험한다. 이는 그들이 단순히 긴급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라는 고대 로마의 철학과 연결된다. 죽음의 필연성을 인식하는 것이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는 개념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를 '죽음 현저성(Mortality Salience)'이라 부르며, 자신의 죽음을 의식할 때 사람들이 더 의미 있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할 때, 후회 없이 되돌아볼 수 있는 삶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족스러운 삶은 더 행복한 한 시간부터 시작된다. 이는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선택들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를 무의미하게 스크롤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시간으로 바꾸거나, TV를 보는 시간을 책 읽기나 취미 활동으로 대체하는 것 같은 작은 변화들이다. 이러한 선택들이 쌓여서 우리가 마지막에 되돌아보고 싶은 삶을 만들어간다.


홈즈 교수의 이론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 우리의 시간 사용 패턴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일주일 동안 시간 일기를 써보는 것이 좋다. 실제로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어떤 활동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의미를 느끼는지 기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시간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자. 금융 투자처럼 시간도 다양한 영역에 분산 투자해야 한다. 건강(운동, 수면), 관계(가족, 친구), 성장(학습, 취미), 기여(봉사, 도움)의 네 영역에 균형 있게 시간을 배분하는 것이다. 기술과의 건강한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체크해보고, 알림 설정을 조정하여 불필요한 방해를 줄이자. 특정 시간대에는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여 진정한 휴식과 집중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한 '아니오'라고 말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모든 요청을 수락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가치와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활동들에 대해서는 정중하지만 명확하게 거절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캐시 홈즈의 '해피어 아워'는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한다. 더 많은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진 시간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해답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살아가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홈즈 교수의 연구는 이러한 양적 접근법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시간의 양이 아닌 질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다. 시간 빈곤에서 시간 풍요로의 여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하기, 친절 베풀기, 경외감 느끼기, 현재에 집중하기, 그리고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보기 같은 작은 실천들이 누적되면서 우리의 시간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해피어 아워'는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변화에서 시작된다.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하는 것으로,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으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우리는 매 순간을 더욱 의미 있고 만족스럽게 만들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24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홈즈 교수의 통찰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아닌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진정으로 '해피어 아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뜨거운 여름날 여름을 주제로 한 산문집을 읽어 보았다. 서한나의 <여름에 내가 원한 것>을 덮고 나니, 마치 한여름 오후 에어컨이 고장 난 방에서 나온 것처럼 온몸이 뜨겁다. 책은 계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삶의 태도에 관한 고백서였다. 작가가 말하는 '여름의 상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작가가 여름을 "무언가를 향한 안달복달과 그 후에 오는 소강상태"라고 정의했을 때, 나는 순간 움찔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간절히 원하고, 애타게 기다리고, 그것을 얻거나 잃은 후에 오는 허탈감. 그 반복되는 리듬이 여름의 본질이라니 말이다. 우리는 흔히 여름을 뜨겁고 화려한 계절로만 생각하지만, 서한나는 그 이면의 권태와 나른함도 함께 포착한다. 밤새 뒤척이다 잠든 후 오는 늦은 오후의 무기력함,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정작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는 막막함. 이런 감정들이 여름이라는 계절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것을 그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 역시 여름이면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기분이 된다. 특별한 만남이나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들. 그 사이의 간극에서 느끼는 애매한 감정을 작가는 너무나 정확하게 포착해냈다.

"사랑의 시작은 그와 헤어지고 그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오래 멈춰 서 있었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 만남이 아니라 이별 후 그리움이라는 역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맞다. 진짜 사랑은 상대가 없을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작가는 과거의 연인과 함께 들었던 노래, 함께 달렸던 길이 그 사람 없이는 더 이상 같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결국 기억을 재편하는 작업이고, 일상의 모든 것에 그 사람의 흔적을 새겨넣는 일이다. 그리고 이별 후에는 그 모든 것들이 아프게 남는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자주 가던 카페에 혼자 갔을 때의 어색함, 그 사람이 좋아했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 사랑이 끝난 후에도 세상은 그 사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작가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모르는 언어로 하는 사랑 고백 같았다"는 표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통찰. 눈빛으로, 침묵으로, 아주 작은 몸짓으로 전해지는 감정들이 오히려 더 진실할 때가 있다. 하지만 작가는 동시에 "모든 것을 말로 확인하는"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확신을 원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관계의 모호함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간절함. 이런 솔직함이 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누구에게나 방어벽이 있으며 그것을 무너뜨리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으며 산다".. 마치 차가운 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실망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배우는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정한 친밀감의 가능성도 함께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보다 자신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 그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런 태도에서 나는 작가의 성숙함을 본다.

"여름밤은 아무리 써도 닳아지지 않는다"는 표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여름밤의 그 특별한 마법 같은 것. 시간이 무한히 늘어나는 것 같은 착각,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작가는 이런 감각을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 습한 공기 속을 걸어 들어가는 기분,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달리는 사람들, 전화를 하며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는 학생. 여름밤의 풍경들이 하나하나 살아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습기가 싫다고 말하지만 정말은 습기가 좋은" 우리의 이중적인 마음과 맞닿아 있다. 작가가 "공간에 얽혀 있는 기억이 너무 무섭다"고 말할 때, 나는 깊이 공감했다. 어떤 장소에 가면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경험.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면서 현재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기억들이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가고시마의 바다, 남해의 운동장, 태국의 어느 섬. 이런 공간들은 지명만이 아니라 감정의 지도가 된다. 작가는 이런 장소들을 통해 자신의 사랑과 그리움을 구체적인 형태로 남겨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여름의 상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였다. 작가에게 여름은 하나의 삶의 철학이다. 권태와 매혹이 공존하는 복잡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재를 포기하지 않는 것,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여름이 아닌 계절에도 여름밤의 냄새를 찾아다니는 작가의 모습에서, 나는 잃어버린 감각들을 되찾으려는 인간의 애틋한 노력을 본다.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찾아 헤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섞이는 것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타인과 섞이고, 과거와 현재가 섞이고, 기대와 실망이 섞이는 것. 작가는 그런 혼재 상태를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여름에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아니,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노천에서 사람 구경을 하고, 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누군가를 만나러 먼 곳까지 가는 것. 이 모든 행위들이 결국은 세상과 섞이려는 시도들이다. 안전한 거리를 포기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짜 경험을 추구하는 것인 것 같다. 이제 끝이 없을 듯한 무더위도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있다. 가을이 기다려 진다... 계절이 바뀌어도 이 온도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여름의 상태로 산다는 것, 그것은 결국 삶의 모든 순간을 감각적으로, 충만하게 경험하겠다는 선언이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VITAL - AI 시대 자기 계발 프레임워크의 끝판왕
구자봉 외 지음 / 북랩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공지능의 물결이 우리 일상의 모든 영역을 뒤바꾸고 있다. 기술적 진보의 차원을 넘어서, 이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재정의하는 거대한 전환점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어제와는 다른 세상에 발을 딛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인간의 적응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이번에 읽은 'VITAL' 프레임워크 속 5명의 전문가가 북촌 카페에서 시작한 작은 대화가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에 대한 해답으로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VITAL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술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을 담고 있다.

VITAL의 진정한 가치는 추상적 이론이 아닌 실천 가능한 방법론에 있다. 각 요소를 일상에 적용하는 구체적 방법들을 살펴보면, 먼저 Vision Reset은 정기적인 자기 점검 시스템 구축으로 시작된다. 매 분기마다 자신의 성장 궤적을 돌아보고, 새로운 기술 트렌드와 사회적 변화를 고려하여 목표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Identity-based Habits는 AI 도구들을 활용한 개인 루틴 최적화로 구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업무는 인간의 직관적 판단력에 의존하되, 정보 수집과 정리는 AI의 도움을 받는 하이브리드 작업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True Self Branding은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지속적으로 발신하는 것으로 실현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나 전문 플랫폼을 통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되, 그 메시지가 진정성 있는 개인 경험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Authentic Leadership과 Life Emotion Mastery는 특히 대인관계와 조직 환경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AI 시대의 리더는 모든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이 필요하다. 감정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부정적 감정을 적(敵)이 아닌 정보 제공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불안은 준비가 필요한 영역을 알려주는 신호이고, 두려움은 중요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알림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건설적으로 활용할 때, 개인은 변화의 속도에 압도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 흐름을 주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현대 직장인들이 경험하는 번아웃은 단순한 업무 과부하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적응 부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VITAL의 감정 관리 전략은 이러한 적응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서도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VITAL 프레임워크의 궁극적 목표는 외부의 압도적 변화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내적 생명력을 발견하고 키우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AI 시대에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이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주체적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 명의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이다. VITAL은 이 선택의 순간에 필요한 내적 나침반을 제공한다. AI와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가이다. VITAL 프레임워크는 이 질문에 대한 실용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답을 제시한다. 기술의 발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그리고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를 동시에 추구하는 통합적 삶의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VITAL이 추구하는 것은 외부의 변화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변화를 자신의 성장 기회로 전환시키는 능동적 창조다. 이는 AI 시대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기술과 인간이 상호 보완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는 역동적 여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VITAL은 개인의 자기계발을 넘어 인류 전체의 진화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를 보다 2 - 역사의 변곡점을 수놓은 재밌고 놀라운 순간들 역사를 보다 2
박현도 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역사를 보다2>. 두번쨰 작품을 바로 읽어보았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지식의 습득만이 아니었다. 마치 시간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탐정이 된 기분이었다. 각 장을 읽어갈 때마다, 나는 과거의 증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미래의 고고학자가 되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사학자들을 '기록 탐정'에 비유한 대목이었다. 그들이 파편화된 자료들을 모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마치 범죄 현장에서 단서를 수집하는 수사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이 추적하는 '범인'은 이미 수백, 수천 년 전에 사라진 시간 그 자체라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그런 탐정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바퀴벌레를 위협적으로 그린 이유, 젓가락이 나라마다 다른 모양을 갖게 된 배경,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등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이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세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더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발견이었다. 지중해를 둘러싼 고대 문명들의 교류, 실크로드를 통한 기술과 문화의 전파, 심지어 한반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숨겨진 고리들까지...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제지술이 탈라스 전투를 통해 이슬람 세계로 전해졌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단순히 중국의 기술이 서쪽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만지' 기술이 그 과정에 관여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은, 우리가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연결고리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마치 거대한 퍼즐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쾌감을 느꼈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종종 각 지역을 독립된 섬처럼 다뤘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실들로 연결된 거대한 그물망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 중 하나는 종교와 역사의 관계를 다룬 장이었다. 종교가 신앙의 영역이 아니라, 권력과 정치, 경제가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현상이라는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성유물의 제작과 유통에 관한 이야기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다. 중세 시대에 대량으로 만들어진 가짜 성유물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권력과 부를 축적하려 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의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 유통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종교사를 공부하는 학자들을 '종교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쓴웃음이 나왔다. 신앙과 학문의 긴장 관계, 믿음과 비판적 사고 사이의 간극은 종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보편적 딜레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은 것은 '해석'의 중요성이었다. 같은 유물이라도 누가,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발해의 이두 문자, 심지어 버뮤다 삼각지대의 미스터리까지, 모든 것이 해석의 문제였다. 이는 역사 연구에서 다양한 관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서구 중심의 역사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사, 한국 중심의 국사 등 각각의 프레임은 나름의 유용성을 갖지만, 동시에 한계도 분명하다. 여러 시각을 교차하고 비교할 때 비로소 역사의 입체적 모습이 드러난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를 시간 여행자로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나일강 범람에 맞춰 살아가던 고대 이집트인의 일상, 파도의 파장만으로 항해했던 고대 항해사들의 놀라운 기술, 1천 년 넘게 땅속에 묻혀있다가 우연히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의 운명 등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로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는 듯한 생생함을 느꼈다. 특히 고려인과의 대화를 통해 언어의 변화를 설명한 부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문화를 변화시키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고려인의 말이, 맥락과 상황을 통해 조금씩 의미가 통하게 되는 과정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역사 연구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역사책을 읽다 보면 보통 큰 전쟁이나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 책은 오히려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서 역사의 진실을 찾아낸다. 한 장의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 젓가락의 재질이 결정되는 배경, 심지어 고양이가 사랑받는 이유까지도 모두 깊은 역사적 맥락을 품고 있었다. 이런 '작은 역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역사란 거창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무수한 일상의 축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파피루스를 만들기 위해 나일강변의 사초류를 채집했던 고대 이집트인들, 양가죽을 정성스럽게 가공해 양피지를 만들었던 중세 유럽인들, 그들 하나하나의 작은 노동이 모여 인류 문명의 큰 흐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에게 몽골은 그저 '무시무시한 침입자'였고, 이슬람은 '먼 나라의 종교'였으며, 고대 이집트는 '미스터리한 피라미드의 나라'였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이런 단편적 이미지들이 하나씩 해체되고, 그 자리에 훨씬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모습들이 들어섰다. 몽골의 침입이 단순한 파괴만이 아니라 문화와 기술의 전파 통로였다는 점, 이슬람 문명이 그리스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킨 주역이었다는 점, 고대 이집트가 사막이 아닌 나일강변에서 꽃핀 문명이었다는 점 등을 알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를 반성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다른 문화와 민족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비슷한 편견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적의 피아니스트 교육법 - 세계 3대 콩쿠르 우승자는 어떻게 피아노를 배웠는가
카와카미 마사히로 지음, 김소영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조용한 오후, 한 권의 책이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기적의 피아니스트 교육법>이라는 제목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음악 교육을 넘어선 인생의 철학이었다. 시각 장애를 가진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가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그를 12년간 지도한 스승 카와카미 마사히로의 헌신적인 교육 철학. 이들의 이야기는 음악을 넘어 삶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악보를 가지고 살아간다. 때로는 음표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때로는 흐릿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악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선율로 연주해내느냐이다. 노부유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한다. 장애는 한계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가능성이라고 다시한번 이야기 한다.

카와카미 마사히로 교수의 교육법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학생의 개성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체계적으로 지도했다는 점이다. 그는 노부유키를 위해 악보의 모든 음표와 기호를 일일이 녹음했다. 단순히 멜로디만 들려준 것이 아니라, 음악적 뉘앙스와 해석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가이드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런 스승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를 배운다. 가르침이란 자신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마사히로 교수는 노부유키의 시각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청각적 감수성을 더욱 예민하게 발달시킬 수 있는 특별한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스승이 되어야 하고, 때로는 다른 이에게 스승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기억해야 할 것은 각자의 속도와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배우지 않으며, 같은 속도로 성장하지도 않는다.

노부유키의 성공 뒤에는 헌신적인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모든 레슨에 참여하며 필기를 하고, 연주를 녹음해서 함께 피드백했다. 아들의 음악적 여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지지의 의미를 깨닫는다.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노부유키의 어머니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의 꿈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함께 성장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지지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때로는 가족이고, 때로는 친구이며, 때로는 우연히 만난 인생의 동반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꿈을 함께 꾸고, 그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는 "창조성은 제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진정한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상태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끊임없는 탐구가 축적되었을 때 비로소 개성 있는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는 음악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진리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해결책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꾸준한 학습과 경험의 축적, 그리고 기존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노부유키가 카푸스틴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클래식의 기초를 탄탄히 쌓았기 때문에 재즈적 요소가 가미된 현대 작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초가 없었다면 창조적 해석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사히로 교수가 유럽의 콘서트홀에서 경험한 울림의 차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일본에서만 연주하며 길러진 귀로는 유럽 홀의 풍부한 잔향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환경이 바뀌면서 그의 청각적 감수성도 달라진 것이다. 이는 우리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익숙한 환경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감각도 그 범위에 머물게 된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도전이 우리의 감수성을 확장시킨다. 때로는 불편하고 어색할 수 있지만, 그런 경험들이 결국 우리를 더 풍부한 사람으로 만든다. 노부유키 역시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찾아갔을 것이다. 각각의 홀이 주는 다른 울림을 통해 같은 곡이라도 새로운 표현을 발견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의 다른 면들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다.

...

성공한 예술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꾸준함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성취는 없다. 매일매일의 작은 노력들이 쌓여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 마사히로 교수가 카푸스틴의 전곡을 연구하기 위해 러시아어까지 공부한 것처럼, 진정한 전문가는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를 유지한다. 이런 꾸준함은 반복과는 다르다.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호기심과 더 나아지려는 의지가 함께해야 한다. 노부유키가 매일 연습하면서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하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작은 발전에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결과만을 쫓다 보면 과정의 소중함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그 여정은 결과보다도 더 값진 것이 된다.

음악은 정답이 없는 예술이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이, 우리만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곡을 연주해나가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꿈을 향해 건반을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연주가 세상에 아름다운 울림을 더하듯,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 그것이야말로 노부유키와 그의 스승이 우리에게 들려준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열정적으로. 우리만의 템포로, 우리만의 색깔로 인생이라는 곡을 연주해나가자. 그 연주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에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