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을 부정하라 - 부정적인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감정 훈련법
앤서니 이아나리노 지음, 김하린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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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는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 감정과 사고에 휩쓸리고 있다. Anthony Iannarino의 <부정을 부정하라 :The Negativity Fast>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부정적 사고의 덫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부정성은 개인의 성격적 특성이나 일시적 감정 상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심리학적 배경과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결합된 복합적 현상이다. 따라서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긍정 사고나 일회성 동기부여가 아닌, 과학적 근거와 실천적 방법론에 기반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정 금식(Negativity Fast)이라는 개념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과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생활 철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21세기 들어 인류는 연이은 충격적 사건들을 경험했다. 9·11 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대규모 사회적 충격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형성했으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친 불안감과 회의주의를 증폭시켰다. 이러한 거시적 사건들 외에도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긴장, 기후변화와 같은 지속적 스트레스 요인들이 개인의 일상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부정성이 외부 환경의 악화로 인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뇌는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하는데, 이는 긍정적 정보보다 부정적 정보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더 오래 기억하며, 더 강하게 반응하는 인지적 편향을 의미한다.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부정적 자극에 대한 예민한 반응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맹수의 소리를 놓치거나 독성 식물을 잘못 판단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반면 달콤한 과일을 놓치는 것은 아쉽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이러한 비대칭적 생존 압력이 수십만 년에 걸쳐 인간의 뇌구조에 각인되어, 현대인들도 여전히 부정적 정보에 더 강하게 반응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부정성 편향은 세 가지 주요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강한 부정적 감정의 경험이다. 부정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느끼는 감정의 강도는 동일한 수준의 긍정적 사건에서 느끼는 감정보다 훨씬 크다. 둘째, 부정적 사건에 대한 집중적 주의 할당이다. 인간의 주의 체계는 위험 신호에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도록 설계되어 있어, 부정적 정보가 인지적 자원을 독점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부정적 경험의 복잡성과 지속성이다. 부정적 사건은 긍정적 사건보다 더 복잡한 인지적 처리를 요구하며, 장기 기억에 더 깊이 저장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예견했던 바와 같이, 현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인간의 적응 능력을 초과하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 글로벌화로 인한 복잡성 증가, 일과 삶의 경계 모호화 등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를 만들어낸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정보 처리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켰지만, 인간의 인지적 처리 능력은 여전히 생물학적 한계 내에 머물러 있어 이러한 불균형이 정신 건강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간은 만성적인 각성 상태에 놓이게 되며, 이는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지속적 분비를 야기한다. 장기간 지속되는 스트레스 반응은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인지 기능을 저하시키며, 우울과 불안 장애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현대인의 부정성 문제는 사회 전체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공중 보건 이슈로 인식되어야 한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부정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뉴스 매체들은 주로 부정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며,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기존의 믿음과 편견을 증폭시키는 에코챔버(echo chamber)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정보 환경은 우리의 부정편향을 더욱 강화하고, 사회적, 정치적 상호작용에서 부정성을 확산시킨다. 가족 관계에서의 갈등부터 직장 내 분쟁까지, 우리 주변의 사회적 환경은 종종 스트레스와 부정성의 원천이 된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정치적 신념이 개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단순한 반대자가 아닌 자신의 핵심 믿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며, 이는 지속적인 부정성과 갈등의 순환을 만든다.

부정성에 빠지는 과정에서 외부 상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내적 대화이다. 우리 내면의 목소리는 종종 가혹한 비평가 역할을 하며, 사소한 좌절이나 두려움을 압도적인 스트레스와 부정성의 원천으로 바꿔버린다. 이러한 내적 대화의 힘을 인식하는 것이 부정단식의 첫 번째 단계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를 부정성으로 이끄는 내면의 목소리가 완전히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는 살아오면서 경험한 다양한 영향들의 amalgamation(혼합체)일 가능성이 크다. 부모, 교사, 동료, 미디어 등으로부터 내재화된 서사들이 우리의 사고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내재화된 서사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수정할 수 있게 된다. 많은 부정성의 근원에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는 사소한 불편함에 대한 두려움까지. 하지만 구체적인 결과를 수반하는 현실적인 두려움과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구별하는 것이 부정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에 등록한다. 변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로 가득 차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발걸음이 뜸해지고, 결국 거의 가지 않게 된다. 이는 자기기만의 일반적인 형태로, 우리는 새로운 목표에 대한 헌신과 인내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챙김(mindfulness)은 판단 없이 현재 순간에 완전히 집중하고 참여하는 연습이다. 이는 부정성을 관리하는 강력한 도구로, 우리와 우리의 생각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 더 명확한 관점을 제공한다. 많은 성공한 개인들이 실천하는 마음챙김은 감정을 조절하고, 연민을 향상시키며, 인지 기능을 개선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챙김이 부정적인 생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부정적인 경험을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삶의 긍정적인 측면들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마음챙김을 통해 우리는 관점을 전환할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경험들을 공감과 역경을 통한 개인적 변화의 도구로 바라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해에 헬스장이 붐비는 상황에서 짜증을 내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변화 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점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자기기만에서 공감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헌신과 인내를 과대평가하지만, 이를 인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패턴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현재 정치적 분열의 심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분열은 단순한 의견 차이나 이념의 문제를 넘어서, 정보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뉴스 미디어와 특히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공공 인식과 담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뉴스와 정보 소스에서 에코챔버로 진화했다. 기존의 믿음과 편견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상호작용에서 부정성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며, 이는 부정편향을 더욱 강화한다. 정치가 개인의 정체성과 얽히게 되면 그 영향은 심각하다. 정치적 신념이 정체성의 중심이 되도록 허용한다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단순한 반대자가 아닌 자신의 핵심 믿음에 대한 위협으로 보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지속적인 부정성과 갈등의 순환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믿음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영역 밖에서 개인적인 기쁨과 성취를 가져다주는 영역에 집중하는 것은 정치적 분열로 인한 부정성의 순환에서 벗어나는 강력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부정단식은 현대인이 직면한 부정성의 홍수 속에서 정신적 건강과 웰빙을 회복하는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부정성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부정편향, 급속한 사회 변화, 미디어의 영향, 정치적 양극화 등 현대 부정성의 다양한 원인들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음챙김과 관점의 전환을 통해 내적 대화를 개선하고,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통해 부정성 유발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부정단식은 완벽한 긍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경험과 긍정적인 경험이 공존하는 균형잡힌 삶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현실의 도전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기를 수 있다. 현대사회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내적 평화와 긍정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부정단식의 궁극적 목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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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말하고 삽시다 - 수천 명을 변화시킨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말하는 법
오창균 지음 / 북스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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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의 필요성에 직면한다. 직장에서의 발표, 일상적인 대화, 소셜미디어에서의 표현까지 모든 순간이 타인과의 연결을 위한 기회이자 도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유창하게, 더 완벽하게 말할 수 있을까'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소통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진정한 소통은 화려한 수사법이나 완벽한 발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진실함에서 시작된다. 이번에 오창균님의 <나답게 말하고 삽시다>를 통해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


많은 소통 전문가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내면적 토대가다. 아무리 뛰어난 화법을 배워도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면, 그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만의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말은 비록 서투를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닿는다. 자존감이 탄탄한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확신은 자연스럽게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듣는 이들은 이런 진정성 있는 에너지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무의식적으로 그 말에 더 집중하게 된다. 또한 진정한 자존감은 타인을 향한 존중과 공감 능력으로도 이어진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타인의 존재 역시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이들은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듣고,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결국 진정한 소통은 자기 확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해진다.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조화롭게 작용해야 한다. 첫째는 전문성이다.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전문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해도, 그것을 기계적으로 전달한다면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두 번째 요소인 진정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해진다.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한 진심어린 믿음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그것을 나누고 싶은지에 대한 분명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이런 진정성은 말하는 이의 표정, 목소리 톤, 몸짓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전체적인 메시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마지막으로 정체성은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경험을 의미한다. 똑같은 주제라도 각자의 삶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표현될 수 있다. 이런 개인적 색채가 바로 소통에 매력을 더하는 요소다. 사람들은 뻔하고 예측 가능한 것보다는 신선하고 독창적인 시각에 더 흥미를 느낀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표현할 때, 그 말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특별함을 갖게 된다.


현대 사회는 완벽함을 요구하는 듯 보인다. 소셜미디어에는 완벽한 모습들만 올라오고, 직장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프레젠테이션이 선호된다. 하지만 이런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진정한 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 완벽하게 말하려는 욕심이 클수록, 자신의 진심을 숨기게 되고, 결국 생동감 없는 말만 하게 된다.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감동받는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완벽하게 다듬어진 연설보다는 진심이 담긴 투박한 말들인 경우가 많다. 결혼식에서 신랑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서툰 고백, 회사에서 동료가 실수를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 친구가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순간들 말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그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에 깊이 공감하고 연결감을 느낀다. 따라서 말하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창함이나 완벽함이 아니라 진실함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흥미롭게도 가장 자기다울 때 오히려 타인과 더 깊게 연결된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개성을 드러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감정,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듣는 이들도 자신 안의 비슷한 경험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되면서 공감의 다리가 놓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신의 실패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할 때, 듣는 이들은 그 사람의 특별한 상황보다는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 등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에 주목한다. 이처럼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일수록 오히려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반대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말들은 아무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 이런 연결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어든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특이함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 오히려 그것이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무분별하게 자신을 드러내라는 의미는 아니다. 상황과 관계를 고려한 적절한 자기 표현이 필요하다.


이론적 이해를 넘어서 실제 생활에서 이런 원칙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 일상대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나 가족과 대화할 때,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보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은 유지하되, 자신을 억지로 포장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에서 발언할 때, 완벽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자신만의 관점에서 본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데 집중해보는 것이다. 때로는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같은 전제를 달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고유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더 신뢰감을 줄 것이다. 무대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자신이 진심으로 믿는 메시지에 집중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려 노력해 보고자 한다. 청중들은 연사의 진정성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아무리 멋진 말이라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진정한 소통의 힘은 경쟁이 아닌 치유에서 나온다. 서로를 이기려 하거나 자신을 뽐내려 하는 소통은 결국 모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반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소통은 모든 참여자에게 힘을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소통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말 잘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를 온전히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을 기르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균형감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치유하고 격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힘은 개인의 행복과 성공에도 직결된다.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는 사람들은 더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고,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며, 결국 더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나답게 말하며 사는 삶의 궁극적 가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말이 막히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진실을 잃지 않고, 타인을 향한 진심어린 관심을 유지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더 나은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다. 기술적 완벽함보다는 인간적 진실함을, 화려함보다는 진정성을, 경쟁보다는 공감을 선택할 때, 우리의 말은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소통을 통해 우리는 더 풍요로운 관계와 더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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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인사이트·디자인
터너 더크워스.자일스 링우드 지음, 정상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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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브랜드라는 단어는 화려하게 포장된 마케팅 언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무겁고 다루기 까다로운 개념이다. 수많은 기업과 마케터들이 ‘아이코닉 브랜드’라는 수식어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30년 넘게 브랜드 디자인에 몰두해온 터너 더크워스는 바로 이 어려운 지점에서 명확한 통찰을 제시한다. 그의 철학은 단순하다. 브랜드를 살리고 성장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힘은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를 실제 프로젝트와 성과를 통해 그 진리를 증명해왔다. <브랜딩·인사이트·디자인 I LOVE IT. WHAT IS IT?> 에서 직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힘, ‘디자인은 피할 수 없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마케팅의 거의 모든 시도를 회피할 수 있다. 광고는 스킵하고, 팝업은 차단하며, 유료 구독을 통해 방해 없는 콘텐츠를 즐긴다. 그러나 소비자가 회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디자인’이다. 터너 더크워스가 강조하듯, 사람들은 원치 않아도 브랜드의 디자인과 마주하게 된다. 매장에서 손에 쥔 제품의 포장, 거리에서 스치는 로고,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이미지 등 이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 더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이를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겁게 맞이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아이폰이 공개될 때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나이키의 새로운 스니커즈는 ‘디자인의 상징’으로 소비자들의 열망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디자인은 ‘강제된 마케팅’이 아니라 ‘환영받는 경험’이다. 터너 더크워스의 낙관적인 통찰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는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와 관계 맺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렇기에 완성도 높은 브랜드 전략은 반드시 디자인을 최전선에 배치해야 한다.

말보다 강력한 언어, ‘디자인은 모든 것을 말한다’ 브루스 더크워스가 던진 이 말은 브랜드 디자인의 본질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광고 스토리텔링이나 슬로건 같은 언어적 장치에 집착하지만, 사실 소비자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하게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디자인이다. 수천 개의 단어보다 하나의 색채, 질감, 형태가 더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터너 더크워스가 참여한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손으로 만든 수공예 위스키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디자인은 차갑고 기계적인 이미지를 전달했다. 브랜드가 아무리 “우리는 수공예다”라고 외쳐도, 소비자는 디자인을 통해 정반대의 메시지를 읽었다. 결국 브랜드는 소비자가 보는 대로 존재하게 된다.이 원칙은 브랜드 전략의 두 번째 핵심을 알려준다. 디자인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이어야 하며, 모든 요소가 메시지를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예쁘게 만들어 주세요”라는 모호한 요구는 전략이 아니다. 구체적이고, 일관적이며, 스토리를 담은 디자인만이 브랜드를 제대로 말하게 한다.

오래 남는 자산, ‘디자인은 기억된다’ 마케팅 콘텐츠는 금방 잊힌다. 광고는 한순간의 이벤트로 지나가고, 캠페인은 다음 시즌이면 교체된다. 그러나 디자인은 다르다. 브랜드의 로고, 색상, 심볼은 소비자의 기억 속에 깊게 각인되며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터너 더크워스는 이를 가장 강력한 자산으로 본다. 카를스버그(Carlsberg)의 로고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Probably’라는 단어만, 자사의 고유한 서체로 보여주었을 뿐인데,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같은 거대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지도를 얻었다. 이는 카피의 힘만이 아니라, 일관되고 보호받은 디자인 자산의 힘이었다. 따라서 브랜드 전략에서 디자인은 시각적 장식만이 아니다. 그것은 제품 품질만큼이나 보호해야 할 자산이며, 경영진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 핵심 요소다. 잘못된 리브랜딩은 소비자를 단번에 멀어지게 하지만, 일관된 디자인은 수십 년간 브랜드를 사랑받게 한다. 이것이 터너 더크워스가 강조하는 ‘디자인의 지속성’이다.

터너 더크워스의 철학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디자인은 소비자가 피할 수 없는 첫 만남이다. 디자인은 브랜드의 진짜 메시지를 말한다. 디자인은 오래 남아 브랜드를 지켜주는 자산이다. 그의 낙관적인 시선은, 결국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원하고 기다리는 것은 ‘아름답고 일관된 경험’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30년간의 경험 속에서 그는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겪었지만, 언제나 디자인이라는 원칙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브랜드 전략의 북극성으로 삼았다. 오늘날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제품을 판매하거나 광고를 집행하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일상 속에 기쁨을 불어넣는 ‘디자인된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터너 더크워스의 노하우와 철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브랜드를 살리고 싶다면, 디자인을 먼저 살려라.. 흥미로운 접근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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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똑같은 개는 없다 - 유치원에 간 강아지, 인지과학을 만나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강병철 옮김 / 디플롯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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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보더콜리가 가장 똑똑하다"는 우리의 상식은 과연 옳을까? 듀크대학교의 개 인지 연구소를 이끄는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 부부는 이 책에서 개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10년간 미국 최대 보조견 단체인 케이나인 컴패니언스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축적한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5만 명의 견주가 참여한 도그니션 프로젝트 데이터 분석 결과, "특정 견종이나 견종군이 '더 영리하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보더콜리, 푸들, 저먼 셰퍼드 같은 '똑똑한' 견종도 어떤 인지 영역에서든 최상위에 오르지 못했다. 저자들이 지적하듯 이는 "인류가 인종, 성별, 피부색 등으로 차별을 자행했던 '흑역사'"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개를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세상에 똑같은 개는 없다>를 통해 상세히 알아본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핵심 개념은 '다중 지능 이론'이다. "개의 털 색깔이 눈 색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듯이, 어떤 개가 길을 찾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의 몸짓을 읽는 능력까지 뛰어난 것은 아니다." 기억력이 좋은 개가 자제력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인지 능력은 "알파벳을 이루는 글자 하나하나와 같다." 이 관점의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더 이상 개를 '똑똑하다/멍청하다'의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아도 된다. 대신 각 개체가 가진 고유한 인지적 장점들을 발견하고 키워줄 수 있다. 보조견 과정에서 탈락한 개들도 다른 영역에서는 놀라운 재능을 보일 수 있다.

책의 백미는 강아지 인지 발달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다. 듀크 대학에서 101마리의 강아지를 생후 8주부터 20주까지 2주마다 추적 관찰한 결과는 혁신적이다. 강아지의 인지 능력은 "스위치를 올리면 켜지는 전구"처럼 갑자기 나타나지도, "점진적으로 밝아지는 조명"처럼 일정한 속도로 발달하지도 않는다. 대신 "빛으로 연주되는 교향곡"과 같다. 각 인지 기능이 서로 다른 시점에 등장하며, 발달 속도도 제각각이다.

케이나인 컴패니언스와의 협력을 통해 저자들은 어떤 강아지가 보조견으로 성공할지 예측하는 지표들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중 하나는 '분식증(똥 먹기)'이었다. "138마리의 안내견 강아지를 기른 사람들이 응답한 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똥을 먹는 개가 보조견 과정을 졸업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역설적 지표들은 우리의 직관이 얼마나 부정확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제력 검사에서 실패하는 것이 오히려 일부 작업견의 성공을 예측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저자들은 양육 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양육이 강아지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했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레인보우라는 강아지에게 잠자는 법을 가르치려다 실패한 경험담은 웃기면서도 교훈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화 시기(8-18주)의 중요성은 강조한다. "이 10주 동안에 빠른 뇌 성장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집에 데려온 후 몇 개월간 강아지는 타고난 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다."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 중 하나는 콩고의 기억 실험이다. 4년 전에 배운 44가지 과제 중 18가지는 그동안 한 번도 연습하지 않았는데, 콩고는 그 중 11가지(61%)를 즉시 기억해냈다. "아무런 연습도 하지 않고 상기해준 적도 없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기술을 정확히 기억해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연상케 한다. "20년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의 개만이 알아보았다는 얘기가 신화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연구의 실용적 가치는 명확하다. 강아지 훈련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각 개체의 고유한 장점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문제 행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예측의 한계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이렇게 많은 강아지를 키워보았지만 여전히 어떤 녀석이 보조견으로 성공을 거둘지 알기는 불가능하다." 위즈덤처럼 모든 사람이 성공을 예측한 강아지도 있지만, 에리스나 스파키처럼 "지금도 어떻게 졸업했는지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녀석들"도 있다.

이 책의 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다양성, 개성, 편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기질이 교향곡이라면, 기질은 그 교향곡이 연주되는 음조에 해당한다"는 표현처럼, 저자들은 과학적 엄밀함과 시적 감수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무엇보다 "훌륭한 개와 함께하는 삶의 단점은 언젠가 녀석을 잃는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축복이기도 하다. 개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준다"는 성찰은 이 책이 과학서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개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에 관한 책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과학적 데이터로 해체하면서도, 각 개체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저자들의 결론은 명확하다. "모든 강아지는 다르다." 그리고 이 다름이야말로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알아맞히기 게임" 같은 직관이 아니라, 각 개체를 이해하려는 과학적 접근이다.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개를 견종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게 되었다. 대신 각각의 개가 가진 고유한 '교향곡'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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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한 수학 사전 - 외계어 같던 개념이 이야기처럼 술술 읽힌다
벤 올린 지음, 노승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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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Ben Orlin : Math for English Majors: A Human Take on the Universal Language> 수학과 인문학의 만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벤 오를린(Ben Orlin)의 최신작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 비수학자를 위한 수학 도서라는 점점 확산되고 있는 장르로 매력적이다. 이 책은 수학이 공식과 지시사항의 집합이 아니라, 영어와 마찬가지로 이해를 전달하고 아름다운 아이디어를 전파하는 언어라는 근본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오를린의 독특한 접근법은 그의 케릭터에서 시작된다. 해부학적으로 부정확하고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선과 원, 그리고 기타 도형들의 집합체인 이 그림들은, 역설적이게도 수학을 살아있게 만드는 기발함을 보여준다. 공식과 지시사항이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출구가 될 수 있다면, 오를린의 재미있는 그림들은 입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수학은 정말로 보편적 언어일까?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처음 제시한 이 아이디어는 수세기를 거쳐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Ben Orlin은 이 질문에 대해 독창적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수학교육자이자 작가인 Orlin은 수학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언어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수학에 대한 두려움과 거리감을 해소하려는 Orlin의 진정성 있는 시도에 있다. 그는 "학생들이 수학을 바라보는 좌절감에 대한 나의 좌절감"에서 이 접근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이들은 다른 과목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수학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며, "영어 시험을 앞두고 악몽을 꾸지는 않는다"는 그의 관찰은 매우 통찰력 있다.

Orlin의 핵심 아이디어는 수학의 구성 요소들을 언어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는 숫자를 명사로, 수학적 연산을 동사나 문법 구조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단순히 은유적 비교를 넘어서, 수학적 사고의 본질적 구조를 드러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숫자를 명사로 보는 관점은 특히 흥미롭다. Orlin은 "7"이라는 숫자 자체는 의미가 없으며, "일곱 개의 구슬"에서처럼 다른 것을 설명하는 형용사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마치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에서 "아름다움"이라는 명사가 탄생하듯, "일곱"이라는 형용사에서 "7"이라는 명사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추상적인 수학 개념을 구체적이고 친숙한 언어 개념으로 연결시켜 준다. 연산에 대한 해석은 더욱 도전적이다. 2+3에서 덧셈 기호(+)를 단순한 계산 명령이 아닌 문법적 구조로 보는 관점은 혁신적이다. 이 기호가 "그리고"라는 접속사나 "와 함께"라는 전치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제안은 수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제공한다. 특히 음수 개념을 "해수면 아래 300피트" 또는 "발사 15분 전"과 같은 구체적 상황과 연결시켜 설명하는 방식은 교육적으로 매우 유용해 보인다.

Orlin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은 "계산"에서 "구조 읽기"로의 변화이다. 그는 1+1을 보았을 때 즉시 답을 구하려 하지 말고, 먼저 그 표현의 구조를 관찰하라고 제안한다. 이는 수학을 단순한 연산 도구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로 바라보는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현재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단순히 정답을 찾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Orlin의 방법은 수학을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3×7×11과 같은 식을 보았을 때, 서둘러 계산하려는 학생과 "아, 좋은 수네"라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학생의 대비는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준다.

Orlin의 접근법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수학을 일상생활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다. 그는 수학이 "해외여행 때나 꺼내보는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제안, 아이디어, 위험, 기회들을 이해하는 데 매일 사용해야 하는 언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수학을 언제 사용할까?"라는 학생들의 영원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제공한다. Orlin의 답은 단순하다: "모든 곳에서, 매일 사용해야 한다." 수학은 일상적 질문들에 답하고, 우리가 세상과 우리의 행동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갖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부채 개념을 통해 음수를 설명하는 방식은 이러한 실용적 접근의 좋은 예다. "이웃에게 3달러, 사촌에게 9달러를 빚졌다면, 총 12달러를 빚진 것"이라는 설명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경험과 연결시키는 교육적 효과를 잘 보여준다.

Orlin의 아이디어 중 흥미로운 부분은 문학 작품 속 수학적 메타포들이다. Dave Richeso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쥬라기 공원』의 카오스 이론, 『모비 딕』의 기하학적 특성, 『파이 이야기』의 무리수 개념 등은 수학과 문학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예들은 Orlin의 접근법이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더 큰 시도의 일부임을 나타내 준다. 물론 Orlin의 접근법에 대한 비판도 존재할 것이다. 수학을 "보편적 언어"로 보는 관점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나 언어 기반 학습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오히려 장벽이 될 수 있다. 또한 수학을 더욱 언어 중심적으로 만들 경우, 영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표준화 시험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실용적 우려도 있다. 또한 "명사, 동사, 형용사가 정확히 무엇인지" 여전히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 이는 Orlin의 비유가 완전히 체계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접근 방법은 참신하고 재미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Orlin의 접근법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수학 교육에 대한 근본적 사고의 전환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수학 교육이 주로 절차적 지식과 계산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의 방법은 수학적 사고와 의사소통 능력을 강조한다. Orlin은 수학을 차갑고 추상적인 기호 체계에서 따뜻하고 살아있는 소통의 수단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의 접근법이 수학 교육의 새로운 지평은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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