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장사 - 대박은 아니어도 폐업은 없다! 사장이 꼭 알아야 할 생존의 룰
박호영 지음 / 라온북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매출 - 비용 = 이익'이라는 공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산술이다. 그런데 왜 이 간단한 공식을 알면서도 수많은 가게가 문을 닫는 걸까. 문제는 공식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공식을 읽는 방향에 있었다. 저자는 이 익숙한 등식을 180도 뒤집으라고 말한다. '이익 = 매출 - 비용'으로. 좌변과 우변의 위치만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수학이 아니라 철학의 전환이다. 매출을 쫓는 것과 이익을 설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태도다. 전자는 희망에 기대 고, 후자는 현실을 직시한다. 장사란 결국 내일도 문을 열 수 있느냐'의 문제다. 대박을 꿈꾸는 것도 좋지만, 폐업을 막는 구조를 먼저 설계하지 않으면 그 꿈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이 책은 그 냉정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고깃집 사장의 사례.. 맛도 괜찮고, 청결도 문제없고, 위치도 나쁘지 않은데 유독 손님이 줄어드는 가게.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다. 사장이 직원에게 던지는 초 단위의 잔소리, 그 긴장감이 공기를 통해 고객에게까지 전염된 것이다. 이것은 서비스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문제다. 직원이 웃을 수 없는 공간에서 고객이 편안할 리 없다. 사장이 여유를 잃으면 가게 전체가 경직된다. 그리고 고객은 그 경직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저자가 영상을 찍어 보여준 장면은 거울과도 같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목소리로 하루를 보내는지 모른다. 바쁘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는 무심코 가게 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든다. 그리고 그 무게는 고스란히 매출로 돌아온다. 직원에게 격려 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이 매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저비용 고효율의 경영 전략이 아닐까?

'가치'라는 단어는 추상적이다. 철학책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를 장사 현장에 그대로 가져오면 혼란만 가중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호한 개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식당의 가치란, 꼭 그 식당에서 먹어야 하는 이유다! 이 정의는 명쾌하다. 같은 김치찌개를 파는 가게가 동네에 열 곳이 있다면, 고객은 왜 내 가게를 선택해야 하는가. 가격이 싸서? 양이 많아서?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가치'라고 부르기 어렵다. 가격과 양은 곧 경쟁에 노출되고, 결국 소모전으로 이어진다. 진짜 가치는 복제할 수 없는 것에서 나온다. 사장의 인사, 단골에게 건네는 한마디, 계절마다 바뀌는 밑반찬, 손님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정된 음악과 조명. 이 모든 것들이 쌓여서 '좋은 경험'이라는 감정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감정이 입소문으로 번진다. 입소문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가게 내부에서 시작된다.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고, 고객이 행복해야 그들의 입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것이 진짜 마케팅이다.

손익분기점은 익숙한 개념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간다. '생존분기점'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단순히 적자를 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이 건강을 유지하고, 직원을 지속적으로 고용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남겨두는 매출 수준. 그것이 진짜 생존의 기준이다. 많은 사장들이 적자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상태로는 3개월, 6개월, 1년을 버티기 어렵다. 몸이 먼저 무너지고, 마음이 지치고, 결국 가게를 놓게 된다. 생존분기점은 그래서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의 문제다. 책이 제안하는 것은 '얼마나 벌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버틸 것인가'다. 그리고 그 버팀의 기준을 스스로 설계하라고 말한다.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내 가게, 내 상황, 내 체력에 맞는 기준을 세우는 것. 그것이 생존 장사의 출발점이다.

책이 특별한 이유는 위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면 된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같은 공허한 격려 대신, "지금 이 대로 1년 더 가면, 당신 가게는 없다"는 냉정한 경고를 던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경고가 더 힘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관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진짜 걱정하는 사람은 달콤한 말을 하지 않는다. 아픈 진실을 말한다. 20년 넘게 장사를 해온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며 불편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것은 이 책이 노하우만이 아니라, 사장 자신 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장인가, 아니면 가게에 묶인 직원인가. 매출을 올리려는가, 아니면 폐업을 늦추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불편하다. 하지만 필요하다. 불편함을 견디는 사람만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살아남아야 한다."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묵묵히 버티는 가게들의 이야기. 그것이 지금 시대에 더 절실한 서사다. 대박을 꿈꾸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전에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는다. 생존이 먼저고, 성장은 그 다음이다. 이 순서를 바꾸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책은 폐업률 100만 시대를 살아가는 자영 업자들에게 교과서가 될 수 있다. 단, 읽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실천해야 한다. 오늘 당장 내 가게의 네이버플레이스 정 보를 점검하고, 직원에게 격려 한마디를 건네고, 생존분기점을 다시 계산해보는 것. 그 작은 실천이 쌓여서 생존의 구조를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 불편하다 '였다. 그런데 이 불편함은 누군가의 날선 비판이나 도덕적 우월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가 자신의 모순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그 솔직함 앞에서, 나 역시 애써 외면해왔던 나 자신의 모습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부정의를 이야기할 때 명확한 악인을 찾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지목하고 비난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나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글이 말하는 '구조 적 부정의'는 그런식의 도피를 허락하지 않는다. 집값이 오르면 안도하고, 배달 앱을 누르면서도 누군가의 고단함을 어렴풋이 의식하고, 좋은 학군을 찾는 것이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라 여기는 이 평범한 욕망들. 그것이 모여 만들어내는 세상의 모습 앞에서 나는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였다.

저자가 자신의 집 문제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나는 묘한 동질감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한때 전세로 쫓겨 다니던 사람이었지만, 어느새 주택연금을 계산하며 안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순전히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절의 집값 폭등 덕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 폭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그 덕을 봤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불편한 이유는, 나 역시 비슷한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가진 사람은 집값 상승에 은밀히 안도하고,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 상승을 원망하면서도 언젠가 자신도 그 대열에 합류하기를 바란다. 부동산이라는 구조는 이렇게 우리 모두를 공범으로 만든다. 투기꾼이 아니어도, 불법을 저지르지 않아도, 우리는 이 시스템 안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부정의를 재생산한다. '중산층의 양심'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양심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양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착한 사람이 부족해서 세상이 이 모양인 게 아니라, 구조 자체가 불평등을 지속시킨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착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구조를 바꾸려는 정치적 실천이다. 하지만 집이 너무 편안하면 불편한 말, 위험한 정치를 시작하기 어렵다. 이것이 중산층이 가진 딜레마다.

저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당 구도가 사실상 서로를 의존하며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라'는 논리는 결국 어느 쪽도 제대로 된 심판을 받지 않게 만들고,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촛불 광장에서 외쳤던 사회 대개혁의 열망은 선거 이후 기득권 챙기기로 변질되고, 우리는 다시 '그래도 저쪽보단 낫지 않냐'는 체념 속에서 또 다른 배신을 목격한다. 저자가 조국 사태를 언급하며 느낀 마음의 분열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부분일 것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는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계급 불평등의 재생산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부모의 인지상정'이라는 말로 정당화되는 특권 세습 앞에서, 한때 민중을 외치던 이들이 보이는 태도 앞에서 느끼는 배신감. 이것은 한 사건에 대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는 집단이 실제로는 어떤 가치를 우선시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잘못할수록 지지할 이유가 더 커지는 정당"이라는 표현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것이 우리가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나도록 반복하고 있는 정치의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구조에 투표로, 묵인으로, 때로는 적극적인 옹호로 참여해왔다. 내란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도, '탄핵 이후의 세상'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 내란을 막으면서 동시에 부자가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 윤석열 혼자 만든 것이 아닌 슬픔들, 다른 정치 세력들에게서 나온 고통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책을 읽으며 계속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구조 속에 있는가. 나의 편안함은 누구의 불편함 위에 세워져 있는가. 내가 누리는 이익은 어떤 시스템에서 나오는가. 이런 질문들은 불편하지만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질문 없이는 변화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우리가 비록 구조 속에 갇혀 있고, 그 구조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힘도 있다. 1987년 군부 독재를 뒤집었고, 2024년 내 란을 막아낸 것도 바로 이 ' 어중간한 사람들 ' 이었다. 윤석열의 부정 식품 발언에 분노했던 것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만 들어낸 것도 우리의 윤리적 감각이었다. 저자가 강조하는 '정치적 책임'은 죄책감을 갖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기에 이 구조를 바꿀 책임도 나에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진짜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책을 읽으 며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시키는 배달, 내가 하는 투표, 내가 외면하는 뉴스들, 이 모든 것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세상에 책임이 있다. 이 불편한 자각이 바로 변화의 시작점이 아닐까. 부끄러움을 견디며, 모순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것. 집이 편안하더라도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 내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도 옳은 것을 선택하려 애쓰는 것.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윤리적 감각을 잃지 않 으려 노력하는 것. 이것이 어중간한 사람으로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욕의 심리학
현도 지음 / 민족사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이 가진 세대다. 스마트폰 하나면 세계와 연결되고, 클릭 몇 번이면 원하는 물건이 문 앞에 도착한다. 부모 세대가 평생 모아야 살 수 있었던 집을 젊은이들은 대출로 앞당겨 소유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우리는 이토록 많이 가졌는데도 불안한가. 왜 통장 잔고가 늘어날수록 더 큰 숫자를 갈망하게 되는가. 현도 스님의 '탐욕의 심리학'은 탐욕을 도덕적 비난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로, 학습되고 반복되는 심리적 패턴으로 접근한다. 탐욕은 나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내면화한 삶의 방식이다. 더 많이 벌고,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빨리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이 욕망의 사다리에는 끝이 없다는 점이다. 연봉 5천만 원을 목표로 했던 사람은 그것을 달성하는 순간 7천만 원을 꿈꾼다.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면 두 채를, 한 지역에서의 성공을 이루면 더 넓은 무대를 원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준점의 이동 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불만족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욕망은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다.

책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불교 철학과 현대 심리학을 절묘하게 교차시키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갈애 (tanha)'는 단순한 욕구가 아니다. 그것은 필요를 넘어선 집착, 반복 학습된 심리적 습관이다.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자연 스러운 욕구지만, 배부른데도 계속 먹고 싶어 하는 것은 갈애다. 생존에 필요한 만큼을 가지는 것은 정당하지만, 이미 충분한데도 더 쌓아두려는 강박은 탐욕이다. 현대 심리학은 이를 '보상 회로의 둔감화'로 설명한다. 처음에는 작은 만족으로 도 충분했던 뇌가, 반복된 자극에 점점 무뎌지면서 더 큰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파민 시스템은 성취 그 자체 보다 '더 큰 성취에 대한 기대'에 반응한다. 그래서 우리는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의 기쁨보다, 그 다음 목표를 설정하는 순 간의 조바심을 더 자주 경험한다. 저자는 이를 '마음의 작동 방식'이라고 표현한다. 탐욕은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뇌가 학습한 패턴이다. 우리는 '더 많이 가져야 안전하다'는 신호를 반복적으로 학습해왔다. 어릴 적 부모의 불안, 학창시절의 서열 경쟁, 취업 시장의 치열함, 부동산 광풍 속의 패닉 바잉. 이 모든 경험이 '부족함에 대한 공포'를 내면 깊숙이 각인시킨다. 그리고 그 공포는 끝없는 축적의 욕망으로 전환된다.

탐욕은 개인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우리는 비교와 경쟁을 구조화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SNS는 타인의 성공을 실시간으로 전시하고, 알고리즘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끊임없이 추천한다. '남들은 다 가졌는데 나만 없다'는 상대적 박탈감은 이제 일상의 감정이 되었다. 청소년들은 성공을 재산과 명성으로 측정하는 법을 배운다. 가상자산 열풍은 한탕주의를 부추기고, 영끌 빚투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정당화한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사회적 압력이다. 시스템이 우리에게 '더 많이 가지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속삭이고, 우리는 그 속삭임을 내면화한다. 책은 이를 '시대의 병'이라고 진단한다. 탐욕은 더 이상 개인의 윤리적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성장 중심의 경제 체제, 승자독식의 경쟁 논리, 소비를 미덕으로 포장하는 자본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집단적 증상이다. 우리는 모두 이 시스 템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공모자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현도 스님은 불교를 금욕의 종교로 오해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불교는 욕망을 억누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신 불교는 욕망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과정을 거쳐 탐욕으로 변질되는지를 '관찰'하라고 말한다. 관찰은 곧 자유의 시작이다. 내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이 욕망이 진짜 필요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비교와 불안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그 욕망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 다. 탐욕은 무의식적일 때 가장 강력하다. 그것을 의식의 빛 아래 꺼내는 순간, 절대적 힘은 약해진다. 책이 제안하는 것은 ‘덜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덜 지배당하는 삶'이다. 소유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소유가 나를 정의하고, 내 가치를 결정하며, 내 불안을 좌우하는 방식이 문제다. 재물이 삶의 수단일 때는 자유롭지만, 재물이 삶의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정명, 즉 바른 생계는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재물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을 어떻게 얻고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성찰하라는 것이다. 탐욕의 반대는 가난이 아니라 자족이다. 자족은 적게 가진 상태가 아니라, 가진 것으로 충분함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소유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 가진 것 ' 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려 했다. 학벌, 직장, 연봉, 집, 차, 명품. 이 모든 것이 나를 규정하는 기호가 되었다. 그러나 이 기호들은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쳐간다. 책은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가진 사람인가, 아니면 어떤 사람인가. 당신의 가치 는 소유로 측정되는가, 아니면 존재 자체로 충분한가. 이 질문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매일 아침 일어날 때, 타인과 나 를 비교할 때, 무언가를 사려고 할 때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실천적 질문이다. 탐욕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탐욕 에 포획되지 않는 길은, 결국 마음의 회복에 있다. 불안을 소유로 메우려 하지 말고, 불안의 뿌리를 직시하는 것. 결핍을 채 우려 애쓰지 말고, 결핍이 어디서 오는지를 이해하는 것.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충분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탐욕의 심리학'은 불안과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의 제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단한 내가 되어가는 시간
조이연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빨리 읽기'에만 익숙해졌을까. 화면을 스크롤하고, 요약본을 찾고, 핵심만 추려내는 데 능숙해진 동안, 정작 우리 안에 남는 것은 점점 가벼워졌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사유는 메말라가고, 수많은 문장을 눈으로 지만 가슴에 새겨지는 것은 거의 없다. 필사는 이런 시대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다. 타인의 문장을 그대로 베껴 쓴다는 행위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침잠의 시간이 담긴다.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는 동안, 우리는 그 문장의 속도로 느려진 다. 문장이 의도한 쉼표에서 함께 멈추고, 단어의 무게를 손끝으로 느끼며, 문장 너머의 침묵까지 함께 옮겨 적게 된다. 니 체가 말한 "운명을 사랑하라"는 문장을 그저 읽을 때와, 펜을 들고 한 글자씩 써 내려갈 때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읽을 때 는 개념으로 스쳐 지나가지만, 쓸 때는 그 문장이 내 몸을 통과한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나는 나의 운명을 떠올리 고, '사랑하라'는 동사를 적으면서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문장은 더 이상 저자의 것이 아니라, 나 의 질문이 되고, 나의 과제가 되며, 나의 위로가 된다. 책이 제시하는 100개의 문장은 그저 아름다운 글귀의 모음이 아니 다. 그것은 100번의 멈춤이자, 100번의 질문이며, 100번의 자기 대면이다. 서두르지 않고 한 문장씩 천천히 옮겨 적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속도를 되찾는다.

우리 사회는 '단단한 사람'을 칭송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상처를 감추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쓴 다. 마치 단단함이 견고한 돌처럼 꿈쩍하지 않는 상태라고 믿는 것처럼. 하지만 진짜 단단함은 무너지지 않음이 아니라, 무너진 후 다시 일어서는 힘에 있다. 폭풍에도 꺾이지 않는 떡갈나무보다, 바람에 휘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대 나무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단단함은 경직성이 아니라 유연성이며, 고정됨이 아니라 복원력 이다. '잘 견뎌낸 하루보다 솔직하게 흔들린 하루가 더 의미 있을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견디기'를 미덕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견딘다는 것은 때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상처를 인정하지 않으며, 도움을 요 청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솔직하게 흔들린다는 것은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 끼며, 필요하다면 무너질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흔들릴 때 더 깊이 배운다. 평온한 시간은 우 리를 안정시키지만, 흔들리는 시간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슬픔 속에서 우리는 공감의 깊이를 배우고, 실패 속에서 겸손함 을 익히며, 불안 속에서 진짜 욕망을 발견한다. 흔들림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성장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책이 말하는 '되 어 가는 시간'은 바로 이 흔들림을 허락하는 시간이다. 완성된 단단함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고 다시 쌓이는 과정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단단해진다. 돌처럼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뿌리처럼 깊어지는 방식이다.

책의 목차를 훑어보면 하나의 여정이 보인다. 버림에서 시작해, 자기 탐험을 거쳐, 관계를 이해하고, 삶의 철학을 세우며, 결국 '계속 살아간다는 것'에 이른다. 이것은 단순한 주제별 분류가 아니라, 자기 이해의 단계적 심화 과정이다.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쩌면 쓰여진 문장이 아니라 남겨진 여백일지도 모른다. 페이지마다 마련된 빈 공간은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독자에게 허락된 침묵의 시간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다. 현대인들은 여 백을 두려워한다. 잠깐의 틈도 없이 일정을 채우고, 조용한 순간에는 즉시 스마트폰을 다. 침묵은 불안하고, 비어 있음은 낭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진짜 사유는 여백에서 일어난다.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비워진 공간에서, 소음이 아니라 침 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책 속 여백에 문장을 옮겨 적는 행위는 그래서 필사만의 의미가 아니 다. 그것은 능동적인 사유의 과정이다. 어떤 문장을 선택할 것인가, 그 문장을 어떤 속도로 옮길 것인가, 쓰면서 어떤 생각 이 떠오르는가-이 모든 것이 자기 이해의 과정이 된다. 때로는 문장을 쓰다가 멈추고 창밖을 바라볼 수도 있다. 때로는 한 문장을 쓰고 나서 책을 덮고 산책을 나갈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의도한 속도다. 빨리 읽고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머물고 깊이 사유하는 것. 100개의 문장을 하루에 다 읽을 수도 있지만, 100일에 걸쳐 하루에 하나씩 읽 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권수가 아니라 깊이다.

진짜 변화는 느리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처럼, 상처가 아무는 속도처럼, 계절이 바뀌는 속도처럼. 우리는 결과만 보려 하지만, 진짜 의미는 과정에 있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완성이 아니라 과정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필사는 이 느린 변화에 딱 맞는 방법이다. 한 문장을 옮겨 적는 데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문장이 마음에 스며드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문장은 처음 쓸 때는 별 감흥이 없다가, 몇 달 후 어떤 경험을 하고 나 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와닿기도 한다.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다.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 보는 책, 인생의 다른 단계에서 다시 돌아오는 책, 시간이 지나며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책이다. 스물다섯에 읽는 '용기의 정의'와 쉰다섯에 읽는 '용기의 정의'는 같은 문장이지만 다른 울림을 가질 것이다.

책은 빨리 읽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많이 읽혀지기보다 깊이 읽혀지기를 바란다. 한 번 읽히고 잊혀지기보다 계속 곁에 머물기를 희망한다.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아, 한 문장을 천천히 옮겨 적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어의 길을 바꾸는 워드 시프트
최정숙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단어장을 펼치고 'acquire = 얻다'라고 외운다. 시험 전날 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수백 개의 단어를 머릿속에 주입한다. 하지만 정작 독해 지문을 만났을 때, 분명 외웠던 단어임에도 문장의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왜 그럴까? 문제는 우리가 단어를 '고정된 의미의 조각'으로만 인식해왔다는 데 있다. 책은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어휘 학습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단순히 새로운 단어 목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접근법 자체를 재설계하자고 제안한다. 마치 지도를 보는 방식을 바꾸면 같은 길도 전혀 다르게 보이듯, 단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면 영어 독해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단어 학습법은 단어를 박제된 표본처럼 다룬다. 하나의 단어에 하나 또는 몇 개의 고정된 뜻을 부여하고, 그것을 암기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는 그렇게 정적인 것이 아니다. 단어는 문장이라는 생태계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주변 단어들과의 관계, 글의 전체적인 맥락, 저자의 의도에 따라 끊임없이 그 의미를 조정하고 변화킨다다. 'acquire'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중학교 수준에서는 '얻다'라고 배운다. 하지만 고등 레벨에 올라가면 이 단어는 '노력과 수고 끝에 획 득하다, '돈을 주고 인수하다', 심지어 '후천적인'이라는 형용사적 의미까지 품게 된다. 같은 단어지만 "acquire knowledge"와 "acauire a company", "acquired disease"에서의 뉘앙스는 각기 다르다. 이것이 바로 '워드 시프 트'의 본질이다. 단어의 의미가 맥락에 따라 이동하고 확장되는 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독해의 무기로 삼는 것이다.

우리가 영어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품사 전환의 유연성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하나의 어근이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로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 acquire '가' acquisition 이 되고, ' acquired 라는 형용사가 되는 과정을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의미의 확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품사가 바뀌면 단어가 문장에서 맡는 역할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전체 문장의 구조와 의미도 변화한다. "The company's acquisition of new technology"라는 표현에서 ‘acquisition'은 단순히 '획득'이라는 동작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자 전략적 행위로 명사화된다.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문장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어원 학습은 단어의 계보학이라 할 수 있다. 라틴어' acquirere(ad-+ quaerere, ’~을 향해 찾다 ')'에서 유래한 ‘acquire '는 그 자체로 ' 목적을 향한 적극적 추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어원적 이해는 단어를 입체적으로 파악 하게 해준다. 어원을 알면 처음 보는 단어도 두렵지 않다. 'acquire'의 어근을 알면 'inquire(안으로 찾다 = 문의하다), require(다시 찾다 = 요구하다), 'quest(찾기 = 탐구)' 같은 연관 단어들이 마치 가족처럼 연결되어 보인다. 이는 단순 암기가 아닌, 단어 간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학습법이다. ’얻다'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는 'acquire' 외에도'get, 'obtain','gain','earn 등 여러 개가 있다. 초보 학습자는 이 들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만, 수능과 내신은 정확히 이 차이를 묻는다. 'get'은 가장 중립적이고 일반적인 표현이다. ‘obtain'은 공식적이고 절차를 거쳐 얻는 느낌이 강하다. 'gain'은 증가나 이득의 뉘앙스가 있고, 'earn'은 노력이나 자격 을 통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얻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acquire'는 앞서 말했듯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 끝에 습득한 다는 느낌이다. 저자는 이런 미묘한 차이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킨다. 단어 선택은 곧 표현의 정확성이며, 시험에서는 이 정 확성이 곧 정답과 오답을 가른다. 특히 빈칸 추론 문제에서 유의어 간의 뉘앙스 차이를 모르면 절대 정답을 고를 수 없다.


책은 개별 단어의 의미를 넘어, 그 단어가 지문 전체의 논리 구조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파악하게 한다. 예를 들어 “Expertise is a reflection of acquired skis"라는 문장에서 'acquired'는 단순히 '획득한'이라는 의미를 넘어, 선천적이지 않은, 후천적 노력의 산물'이라는 개념적 대비를 만들어낸다. 수능 영어의 고난도 문제는 대부분 이런 개념적 이해 를 요구한다.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알아도, 그것이 글의 논리 전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면 주제 파악, 제목 찾기, 빈칸 추론 같은 문제를 풀 수 없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까지 학습자를 이끌어간다.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론과 실전의 간극을 메웠다는 점이다. 각 단어마다 실제 수능 기출 문항 정보를 제공한다. "2023 학년도 22번", 2025학년도 21번" 같은 구체적인 출처를 밝히며, 해당 단어가 실제 시험에서 어떤 맥락으로 출제되었는 지 보여준다. 학습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한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면서 ’아, 이래서 이 단어를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부록에서 제공하는 '수능 독해를 헷갈리게 하는 표현과 구조'는 실전 감각을 키우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다.


책은 비록 수능 대비용이지만, 토익을 비롯한 모든 영어 시험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학습 원리를 담고 있다. 토의 역시 단 어의 맥락적 의미, 품사 변화, 유의어 구별을 중요하게 다룬다. Part 5의 문법•어휘 문제, Part 7의 독해 문제는 모두 단어 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측정한다. 특히 토익은 비즈니스 영어를 다루기 때문에, 'acquire'처럼 '인수하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The company acquired a competitor"처럼 M&A 관련 표현은 토익 RC 의 단골 소재다. 따라서 『워드 시프트」에서 배운 단어 학습 전략은 토익 준비에도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영어 교육의 트렌드는 계속 변화해왔다. 문법 번역식에서 의사소통 중심으로, 다시 실용 영어로. 하지만 어떤 방법론이는 기초는 변하지 않는다. 바로 정확한 어휘력이다. 다만 그 '정확함'의 의미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단어 하나에 뜻 하나를 정 확히 대응시키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맥락 속에서 단어의 기능과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을 뜻한다. 인공지능 시대, 기계 번역의 발달로 어휘 암기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 맥 락적 적절성을 판단하는 인간의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챗GPT가 아무리 발달해도, 특정 상황에서 acquire '와' Obtain ' 중 어느 것이 더 적절한지, 왜' acquired disease ' 라고 하는지, 이런 미묘한 차이를 완벽히 설명하고 가르치기는 어렵다. 결국 학습자 스스로 언어의 결을 느끼고 내면화해야 한다. 책은 바로 그 과정을 안내하는 훌륭한 가이드다.


제목에 담긴 '단어의 길을 바꾼다'는 표현은 이중적 의미를 품고 있다. 하나는 단어가 가는 길, 즉 의미의 경로가 맥락에 따라 바뀐다는 언어학적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단어를 대하는 우리의 길, 즉 학습 방법과 태도를 바꾼다는 교육적 제안이다. 많은 학생들이 영어 단어 앞에서 좌절한다. 외워도 외워도 늘지 않는 것 같고, 시험 때만 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지만 문제는 기억력이나 노력의 부족이 아니다. 방향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단어를 죽은 지식으로 쌓기보다, 살아있는 도구 로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에게는 실전 감각을, 토익을 준비하는 성인 학습자에게는 근본적인 어휘력 향상을, 영어를 다시 시작하려는 모든 이에게는 새로운 관점을 선물하는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