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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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 불편하다 '였다. 그런데 이 불편함은 누군가의 날선 비판이나 도덕적 우월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가 자신의 모순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그 솔직함 앞에서, 나 역시 애써 외면해왔던 나 자신의 모습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부정의를 이야기할 때 명확한 악인을 찾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지목하고 비난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나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글이 말하는 '구조 적 부정의'는 그런식의 도피를 허락하지 않는다. 집값이 오르면 안도하고, 배달 앱을 누르면서도 누군가의 고단함을 어렴풋이 의식하고, 좋은 학군을 찾는 것이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라 여기는 이 평범한 욕망들. 그것이 모여 만들어내는 세상의 모습 앞에서 나는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였다.

저자가 자신의 집 문제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나는 묘한 동질감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한때 전세로 쫓겨 다니던 사람이었지만, 어느새 주택연금을 계산하며 안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순전히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절의 집값 폭등 덕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 폭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그 덕을 봤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불편한 이유는, 나 역시 비슷한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가진 사람은 집값 상승에 은밀히 안도하고,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 상승을 원망하면서도 언젠가 자신도 그 대열에 합류하기를 바란다. 부동산이라는 구조는 이렇게 우리 모두를 공범으로 만든다. 투기꾼이 아니어도, 불법을 저지르지 않아도, 우리는 이 시스템 안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부정의를 재생산한다. '중산층의 양심'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양심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양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착한 사람이 부족해서 세상이 이 모양인 게 아니라, 구조 자체가 불평등을 지속시킨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착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구조를 바꾸려는 정치적 실천이다. 하지만 집이 너무 편안하면 불편한 말, 위험한 정치를 시작하기 어렵다. 이것이 중산층이 가진 딜레마다.

저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당 구도가 사실상 서로를 의존하며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라'는 논리는 결국 어느 쪽도 제대로 된 심판을 받지 않게 만들고,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촛불 광장에서 외쳤던 사회 대개혁의 열망은 선거 이후 기득권 챙기기로 변질되고, 우리는 다시 '그래도 저쪽보단 낫지 않냐'는 체념 속에서 또 다른 배신을 목격한다. 저자가 조국 사태를 언급하며 느낀 마음의 분열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부분일 것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는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계급 불평등의 재생산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부모의 인지상정'이라는 말로 정당화되는 특권 세습 앞에서, 한때 민중을 외치던 이들이 보이는 태도 앞에서 느끼는 배신감. 이것은 한 사건에 대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는 집단이 실제로는 어떤 가치를 우선시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잘못할수록 지지할 이유가 더 커지는 정당"이라는 표현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것이 우리가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나도록 반복하고 있는 정치의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구조에 투표로, 묵인으로, 때로는 적극적인 옹호로 참여해왔다. 내란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도, '탄핵 이후의 세상'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 내란을 막으면서 동시에 부자가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 윤석열 혼자 만든 것이 아닌 슬픔들, 다른 정치 세력들에게서 나온 고통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책을 읽으며 계속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구조 속에 있는가. 나의 편안함은 누구의 불편함 위에 세워져 있는가. 내가 누리는 이익은 어떤 시스템에서 나오는가. 이런 질문들은 불편하지만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질문 없이는 변화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우리가 비록 구조 속에 갇혀 있고, 그 구조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힘도 있다. 1987년 군부 독재를 뒤집었고, 2024년 내 란을 막아낸 것도 바로 이 ' 어중간한 사람들 ' 이었다. 윤석열의 부정 식품 발언에 분노했던 것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만 들어낸 것도 우리의 윤리적 감각이었다. 저자가 강조하는 '정치적 책임'은 죄책감을 갖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기에 이 구조를 바꿀 책임도 나에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진짜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책을 읽으 며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시키는 배달, 내가 하는 투표, 내가 외면하는 뉴스들, 이 모든 것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세상에 책임이 있다. 이 불편한 자각이 바로 변화의 시작점이 아닐까. 부끄러움을 견디며, 모순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것. 집이 편안하더라도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 내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도 옳은 것을 선택하려 애쓰는 것.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윤리적 감각을 잃지 않 으려 노력하는 것. 이것이 어중간한 사람으로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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