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내가 되어가는 시간
조이연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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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빨리 읽기'에만 익숙해졌을까. 화면을 스크롤하고, 요약본을 찾고, 핵심만 추려내는 데 능숙해진 동안, 정작 우리 안에 남는 것은 점점 가벼워졌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사유는 메말라가고, 수많은 문장을 눈으로 지만 가슴에 새겨지는 것은 거의 없다. 필사는 이런 시대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다. 타인의 문장을 그대로 베껴 쓴다는 행위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침잠의 시간이 담긴다.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는 동안, 우리는 그 문장의 속도로 느려진 다. 문장이 의도한 쉼표에서 함께 멈추고, 단어의 무게를 손끝으로 느끼며, 문장 너머의 침묵까지 함께 옮겨 적게 된다. 니 체가 말한 "운명을 사랑하라"는 문장을 그저 읽을 때와, 펜을 들고 한 글자씩 써 내려갈 때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읽을 때 는 개념으로 스쳐 지나가지만, 쓸 때는 그 문장이 내 몸을 통과한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나는 나의 운명을 떠올리 고, '사랑하라'는 동사를 적으면서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문장은 더 이상 저자의 것이 아니라, 나 의 질문이 되고, 나의 과제가 되며, 나의 위로가 된다. 책이 제시하는 100개의 문장은 그저 아름다운 글귀의 모음이 아니 다. 그것은 100번의 멈춤이자, 100번의 질문이며, 100번의 자기 대면이다. 서두르지 않고 한 문장씩 천천히 옮겨 적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속도를 되찾는다.

우리 사회는 '단단한 사람'을 칭송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상처를 감추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쓴 다. 마치 단단함이 견고한 돌처럼 꿈쩍하지 않는 상태라고 믿는 것처럼. 하지만 진짜 단단함은 무너지지 않음이 아니라, 무너진 후 다시 일어서는 힘에 있다. 폭풍에도 꺾이지 않는 떡갈나무보다, 바람에 휘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대 나무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단단함은 경직성이 아니라 유연성이며, 고정됨이 아니라 복원력 이다. '잘 견뎌낸 하루보다 솔직하게 흔들린 하루가 더 의미 있을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견디기'를 미덕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견딘다는 것은 때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상처를 인정하지 않으며, 도움을 요 청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솔직하게 흔들린다는 것은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 끼며, 필요하다면 무너질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흔들릴 때 더 깊이 배운다. 평온한 시간은 우 리를 안정시키지만, 흔들리는 시간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슬픔 속에서 우리는 공감의 깊이를 배우고, 실패 속에서 겸손함 을 익히며, 불안 속에서 진짜 욕망을 발견한다. 흔들림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성장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책이 말하는 '되 어 가는 시간'은 바로 이 흔들림을 허락하는 시간이다. 완성된 단단함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고 다시 쌓이는 과정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단단해진다. 돌처럼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뿌리처럼 깊어지는 방식이다.

책의 목차를 훑어보면 하나의 여정이 보인다. 버림에서 시작해, 자기 탐험을 거쳐, 관계를 이해하고, 삶의 철학을 세우며, 결국 '계속 살아간다는 것'에 이른다. 이것은 단순한 주제별 분류가 아니라, 자기 이해의 단계적 심화 과정이다.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쩌면 쓰여진 문장이 아니라 남겨진 여백일지도 모른다. 페이지마다 마련된 빈 공간은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독자에게 허락된 침묵의 시간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다. 현대인들은 여 백을 두려워한다. 잠깐의 틈도 없이 일정을 채우고, 조용한 순간에는 즉시 스마트폰을 다. 침묵은 불안하고, 비어 있음은 낭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진짜 사유는 여백에서 일어난다.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비워진 공간에서, 소음이 아니라 침 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책 속 여백에 문장을 옮겨 적는 행위는 그래서 필사만의 의미가 아니 다. 그것은 능동적인 사유의 과정이다. 어떤 문장을 선택할 것인가, 그 문장을 어떤 속도로 옮길 것인가, 쓰면서 어떤 생각 이 떠오르는가-이 모든 것이 자기 이해의 과정이 된다. 때로는 문장을 쓰다가 멈추고 창밖을 바라볼 수도 있다. 때로는 한 문장을 쓰고 나서 책을 덮고 산책을 나갈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의도한 속도다. 빨리 읽고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머물고 깊이 사유하는 것. 100개의 문장을 하루에 다 읽을 수도 있지만, 100일에 걸쳐 하루에 하나씩 읽 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권수가 아니라 깊이다.

진짜 변화는 느리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처럼, 상처가 아무는 속도처럼, 계절이 바뀌는 속도처럼. 우리는 결과만 보려 하지만, 진짜 의미는 과정에 있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완성이 아니라 과정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필사는 이 느린 변화에 딱 맞는 방법이다. 한 문장을 옮겨 적는 데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문장이 마음에 스며드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문장은 처음 쓸 때는 별 감흥이 없다가, 몇 달 후 어떤 경험을 하고 나 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와닿기도 한다.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다.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 보는 책, 인생의 다른 단계에서 다시 돌아오는 책, 시간이 지나며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책이다. 스물다섯에 읽는 '용기의 정의'와 쉰다섯에 읽는 '용기의 정의'는 같은 문장이지만 다른 울림을 가질 것이다.

책은 빨리 읽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많이 읽혀지기보다 깊이 읽혀지기를 바란다. 한 번 읽히고 잊혀지기보다 계속 곁에 머물기를 희망한다.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아, 한 문장을 천천히 옮겨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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