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길을 바꾸는 워드 시프트
최정숙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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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단어장을 펼치고 'acquire = 얻다'라고 외운다. 시험 전날 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수백 개의 단어를 머릿속에 주입한다. 하지만 정작 독해 지문을 만났을 때, 분명 외웠던 단어임에도 문장의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왜 그럴까? 문제는 우리가 단어를 '고정된 의미의 조각'으로만 인식해왔다는 데 있다. 책은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어휘 학습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단순히 새로운 단어 목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접근법 자체를 재설계하자고 제안한다. 마치 지도를 보는 방식을 바꾸면 같은 길도 전혀 다르게 보이듯, 단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면 영어 독해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단어 학습법은 단어를 박제된 표본처럼 다룬다. 하나의 단어에 하나 또는 몇 개의 고정된 뜻을 부여하고, 그것을 암기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는 그렇게 정적인 것이 아니다. 단어는 문장이라는 생태계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주변 단어들과의 관계, 글의 전체적인 맥락, 저자의 의도에 따라 끊임없이 그 의미를 조정하고 변화킨다다. 'acquire'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중학교 수준에서는 '얻다'라고 배운다. 하지만 고등 레벨에 올라가면 이 단어는 '노력과 수고 끝에 획 득하다, '돈을 주고 인수하다', 심지어 '후천적인'이라는 형용사적 의미까지 품게 된다. 같은 단어지만 "acquire knowledge"와 "acauire a company", "acquired disease"에서의 뉘앙스는 각기 다르다. 이것이 바로 '워드 시프 트'의 본질이다. 단어의 의미가 맥락에 따라 이동하고 확장되는 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독해의 무기로 삼는 것이다.

우리가 영어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품사 전환의 유연성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하나의 어근이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로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 acquire '가' acquisition 이 되고, ' acquired 라는 형용사가 되는 과정을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의미의 확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품사가 바뀌면 단어가 문장에서 맡는 역할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전체 문장의 구조와 의미도 변화한다. "The company's acquisition of new technology"라는 표현에서 ‘acquisition'은 단순히 '획득'이라는 동작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자 전략적 행위로 명사화된다.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문장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어원 학습은 단어의 계보학이라 할 수 있다. 라틴어' acquirere(ad-+ quaerere, ’~을 향해 찾다 ')'에서 유래한 ‘acquire '는 그 자체로 ' 목적을 향한 적극적 추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어원적 이해는 단어를 입체적으로 파악 하게 해준다. 어원을 알면 처음 보는 단어도 두렵지 않다. 'acquire'의 어근을 알면 'inquire(안으로 찾다 = 문의하다), require(다시 찾다 = 요구하다), 'quest(찾기 = 탐구)' 같은 연관 단어들이 마치 가족처럼 연결되어 보인다. 이는 단순 암기가 아닌, 단어 간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학습법이다. ’얻다'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는 'acquire' 외에도'get, 'obtain','gain','earn 등 여러 개가 있다. 초보 학습자는 이 들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만, 수능과 내신은 정확히 이 차이를 묻는다. 'get'은 가장 중립적이고 일반적인 표현이다. ‘obtain'은 공식적이고 절차를 거쳐 얻는 느낌이 강하다. 'gain'은 증가나 이득의 뉘앙스가 있고, 'earn'은 노력이나 자격 을 통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얻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acquire'는 앞서 말했듯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 끝에 습득한 다는 느낌이다. 저자는 이런 미묘한 차이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킨다. 단어 선택은 곧 표현의 정확성이며, 시험에서는 이 정 확성이 곧 정답과 오답을 가른다. 특히 빈칸 추론 문제에서 유의어 간의 뉘앙스 차이를 모르면 절대 정답을 고를 수 없다.


책은 개별 단어의 의미를 넘어, 그 단어가 지문 전체의 논리 구조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파악하게 한다. 예를 들어 “Expertise is a reflection of acquired skis"라는 문장에서 'acquired'는 단순히 '획득한'이라는 의미를 넘어, 선천적이지 않은, 후천적 노력의 산물'이라는 개념적 대비를 만들어낸다. 수능 영어의 고난도 문제는 대부분 이런 개념적 이해 를 요구한다.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알아도, 그것이 글의 논리 전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면 주제 파악, 제목 찾기, 빈칸 추론 같은 문제를 풀 수 없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까지 학습자를 이끌어간다.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론과 실전의 간극을 메웠다는 점이다. 각 단어마다 실제 수능 기출 문항 정보를 제공한다. "2023 학년도 22번", 2025학년도 21번" 같은 구체적인 출처를 밝히며, 해당 단어가 실제 시험에서 어떤 맥락으로 출제되었는 지 보여준다. 학습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한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면서 ’아, 이래서 이 단어를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부록에서 제공하는 '수능 독해를 헷갈리게 하는 표현과 구조'는 실전 감각을 키우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다.


책은 비록 수능 대비용이지만, 토익을 비롯한 모든 영어 시험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학습 원리를 담고 있다. 토의 역시 단 어의 맥락적 의미, 품사 변화, 유의어 구별을 중요하게 다룬다. Part 5의 문법•어휘 문제, Part 7의 독해 문제는 모두 단어 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측정한다. 특히 토익은 비즈니스 영어를 다루기 때문에, 'acquire'처럼 '인수하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The company acquired a competitor"처럼 M&A 관련 표현은 토익 RC 의 단골 소재다. 따라서 『워드 시프트」에서 배운 단어 학습 전략은 토익 준비에도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영어 교육의 트렌드는 계속 변화해왔다. 문법 번역식에서 의사소통 중심으로, 다시 실용 영어로. 하지만 어떤 방법론이는 기초는 변하지 않는다. 바로 정확한 어휘력이다. 다만 그 '정확함'의 의미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단어 하나에 뜻 하나를 정 확히 대응시키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맥락 속에서 단어의 기능과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을 뜻한다. 인공지능 시대, 기계 번역의 발달로 어휘 암기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 맥 락적 적절성을 판단하는 인간의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챗GPT가 아무리 발달해도, 특정 상황에서 acquire '와' Obtain ' 중 어느 것이 더 적절한지, 왜' acquired disease ' 라고 하는지, 이런 미묘한 차이를 완벽히 설명하고 가르치기는 어렵다. 결국 학습자 스스로 언어의 결을 느끼고 내면화해야 한다. 책은 바로 그 과정을 안내하는 훌륭한 가이드다.


제목에 담긴 '단어의 길을 바꾼다'는 표현은 이중적 의미를 품고 있다. 하나는 단어가 가는 길, 즉 의미의 경로가 맥락에 따라 바뀐다는 언어학적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단어를 대하는 우리의 길, 즉 학습 방법과 태도를 바꾼다는 교육적 제안이다. 많은 학생들이 영어 단어 앞에서 좌절한다. 외워도 외워도 늘지 않는 것 같고, 시험 때만 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지만 문제는 기억력이나 노력의 부족이 아니다. 방향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단어를 죽은 지식으로 쌓기보다, 살아있는 도구 로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에게는 실전 감각을, 토익을 준비하는 성인 학습자에게는 근본적인 어휘력 향상을, 영어를 다시 시작하려는 모든 이에게는 새로운 관점을 선물하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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