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시대
스티븐 J. 파인 지음, 김시내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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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별들이 핵융합의 불꽃으로 빛나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한 지구만이 화학적 연소의 불이 존재하는 유일한 세계이다. 그리고 이 행성에서 오직 인간만이 불을 의도적으로 다룰 줄 아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불과 인간은 공진화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빚어왔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파이로센(Pyrocene)', 즉 불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스티븐 파인이 제시한 이 개념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위기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더 이상 불을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불에 의해 지배당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캘리포니아의 메가파이어,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 화재, 호주의 대륙적 규모 산불들—이 모든 현상은 인간이 창조한 새로운 형태의 불이 역으로 창조자를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인의 분석에 따르면, 불의 역사는 세 개의 뚜렷한 막으로 나뉜다. 첫 번째 막인 '제1의 불'은 4억 2천만 년 전 식물이 육지를 덮기 시작하면서 등장했다. 번개가 만든 이 원시의 불은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일부였다. 숲이 타고 재생되는 순환 속에서 불은 생명체들과 공존했고, 심지어 일부 식물들은 발아를 위해 불에 의존하게 되었다. '제2의 불'은 인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불을 길들이기 시작한 순간, 불은 단순한 자연현상에서 문화적 도구로 변모했다. 하지만 파인이 지적하듯, 불은 여타의 도구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도끼나 창처럼 선반에 올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붙이면 계속 돌봐주어야 하는 '최초의 가축'이었던 것이다. 이 제2의 불은 인간 문명의 근간이 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계획적인 방화를 통해 초원을 관리했고, 호주 원주민들은 '파이어스틱 농업'으로 대륙 전체의 생태계를 조각했다. 불은 사냥터를 넓히고, 해충을 박멸하며,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생태적 도구였다. 인간은 불을 통해 자연을 재편했지만, 여전히 자연의 리듬과 한계 안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18세기 말, 인류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불을 발견했다. '제3의 불', 즉 화석연료의 연소가 그것이다. 이는 단순한 연료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론적 전환이었다. 살아있는 풍경을 태우던 인간이 이제 석화된 풍경, 즉 수억 년 전의 고대 생물들이 압축되어 만들어진 석탄과 석유를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파인이 '파이로 전환'이라고 명명한 이 변화는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다. 이전의 불은 계절과 기후, 식물의 성장 주기에 제약을 받았다. 겨울에는 연료가 부족했고, 가뭄에는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자연은 자체적인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에서 캐낸 화석연료는 이런 생태학적 한계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석탄은 계절을 타지 않았고, 석유는 기후에 구애받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탄소 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렸다는 점이다. 나무를 태우면 나무가 살아있을 때 흡수했던 탄소가 다시 공기 중으로 돌아갈 뿐이지만, 석탄을 태우면 3억 년 전의 탄소가 현재의 대기로 분출된다. 이 전환의 아이러니는 곧 명백해졌다. 인간은 불 없이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화석연료는 인간 없이는 타오를 수 없었다. 관계의 역학이 뒤바뀐 것이다. 우리는 불의 주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불을 먹여 살리는 종속적 존재가 되어버렸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불은 일상생활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벽난로는 중앙난방으로, 촛불은 전등으로, 아궁이는 가스레인지로 대체되었다. 불은 기계 속으로 숨어들어 갔고, 사람들은 불을 보지도 만지지도 않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불을 소비하게 되었다. 자동차 엔진 안에서, 발전소 터빈 안에서, 화학공장의 반응기 안에서—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명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생태학적 결과는 곧 나타나기 시작했다. 농업에서는 불 대신 화학비료와 농약이 사용되었다. 불이 수행하던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기능—해충 박멸, 토양 비옥화, 잡초 제거, 식물 질병 예방—을 개별적인 산업 제품들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생태계를 공장처럼 단순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산불에 대한 정책 변화였다. 20세기 내내 서구 사회는 산불을 무조건 진압하는 정책을 펼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위해 사용된 도구들—헬리콥터, 소방차, 불도저—은 모두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기계들이었다. 말 그대로 불로 불과 싸우는 셈이었다. 이런 진압 정책의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자연스러운 소규모 화재가 억압되면서 숲 바닥에는 수십 년치의 연료가 쌓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불이 터져 나왔을 때, 그것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와 강도의 메가파이어였다. 1950년대에 들어서야 화재 생태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등장하면서 불의 생태적 역할이 재인식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전례 없는 규모의 화재들을 목격하고 있다. 2003년 캘리포니아 산불, 2009년 호주 블랙 새터데이, 2020년 호주 블랙 서머, 그리고 매년 반복되는 캘리포니아와 지중해, 시베리아의 대형 산불들. 이것들은 더 이상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불이다. 이 메가파이어들의 특징은 전통적인 산불과는 완전히 다르다. 온도가 더 높고, 더 빠르게 번지며, 더 오래 지속된다. 무엇보다 도시까지 침입한다. 산불이 도시를 집어삼키는 '도시-산불 인터페이스' 현상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자연의 불과 문명의 불이 합쳐져서 새로운 종류의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화재들이 기후변화를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불타는 숲은 저장하고 있던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수천 년 동안 얼어있던 유기물들이 불타기 시작했다. 이는 온실가스를 더욱 증가시키고, 그 결과 더 건조하고 뜨거워진 환경에서 더 큰 화재가 발생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산불의 증가만이 아니다. 현대 문명 자체가 화석연료라는 제3의 불 위에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입는 옷, 사는 집, 타는 차—모든 것이 석유의 연소 없이는 불가능하다. 석유로 만든 비료로 기른 곡물을 석유로 만든 트럭으로 운반하여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에 포장해서 석유로 움직이는 자동차로 가져오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연소 기계가 되었다. 뉴욕시가 하루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작은 국가 전체의 소비량과 맞먹는다. 서울의 열섬 현상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로처럼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불꽃을 보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활동이 어디선가 무언가를 태우고 있다. 이것이 파인이 말하는 파이로센의 핵심이다. 우리는 불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 불은 더 이상 인간의 통제 하에 있지 않다. 대신 불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 기름값이 오르면 경제가 흔들리고, 정전이 되면 도시가 마비된다. 우리는 불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파인은 절망적인 현실 진단과 함께 희망의 단서도 제시한다. 핵심은 불의 생태학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불을 적으로 여기지 말고 복잡한 생태계의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불 관리 지식이 여기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호주 원주민들의 '쿨 번(cool burn)' 기법이나 캘리포니아 인디언들의 계절별 방화 관행은 수천 년에 걸쳐 검증된 지속가능한 불 관리법이다. 이들은 불을 생태계의 파트너로 여겼고, 그 결과 건강하고 회복력 있는 풍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대의 처방 화소(prescribed burning)도 이런 전통 지식에서 배운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강도로 계획적인 화재를 일으켜서 연료를 미리 소모시키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파인의 가장 도전적인 제안은 화석연료를 땅속에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지금 당장 모든 석유와 석탄을 태우는 대신, 먼 미래의 빙하기를 대비해서 남겨두자는 것이다. 이는 지구공학적 상상력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기후 위기 대응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다. 우리는 다시 불과 친숙해져야 한다. 벽난로를 피우고, 캠프파이어를 하고, 촛불을 켜면서 불의 본질을 체감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불'을 소비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도시 계획에서부터 농업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불의 생태학을 고려해야 한다. 화재에 취약한 지역의 개발을 제한하고, 도시 주변에 완충 녹지를 조성하며, 건물의 내화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농업에서도 화학 투입재 대신 통합적인 생태 관리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파이로센은 위기의 시대이지만 동시에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류사상 처음으로 불의 행성적 영향력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의지와 실행이다. 불은 창조와 파괴,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양면의 존재다. 인간과 불의 관계 역시 지배나 종속이 아니라 상호 의존과 공존이어야 한다. 우리는 불을 정복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대신 불과 함께 춤을 춰야 한다. 그 춤의 안무는 겸손과 지혜에서 나온다. 원주민들이 수천 년간 실천해온 그런 지혜 말이다. 불을 두려워하지도 무시하지도 말고, 그 힘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롭게 어울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파이로센을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이며,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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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궁 맑음
권용순 지음 / 고유명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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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성의 몸에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곳은 생명의 시작점이면서 동시에 고통의 근원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마치 금기어처럼, 혹은 부끄러운 비밀처럼 감춰두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이번에 읽은 한 의사의 기록을 통해 만난 것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절망,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며 삶을 지켜내려는 의지였다. 자궁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가능합니다." 세 글자의 대답이 한 여성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던 순간, 한 의사는 다른 길을 제시했다. 그 길은 험난했지만 희망이 있었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의사는 사람이다. 같은 증상을 보고도 어떤 의사는 포기를 권하고, 어떤 의사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기술의 차이일까, 경험의 차이일까, 아니면 환자를 바라보는 마음의 차이일까. 나는 이 기록을 읽으며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들의 한 마디는 누군가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의 사다리를 내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사다리를 거둬들이기도 한다.

​내시경 클립을 이용한 혈관 차단술. 의학 용어로는 차갑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환자를 살리려는 뜨거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의사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혁신은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이기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의사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환자를 위한 길을 찾아냈다. 이런 순간들이 의학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한 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한 간절함이 결국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이어지는 것. 그 과정에서 의사가 감내해야 하는 무게감은 상상하기 어렵다.

36주를 넘기고 싶어했던 산모. 하루라도 더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던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기다려준 의사들. 주말을 포기하고 병원에 남겠다는 교수의 말에는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선근종 수술 후 첫 임신인 산모의 출산. 그것은 자신의 치료가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자,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기적의 순간이기도 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의사들은 환자와 가족들이 모르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걱정과 준비를 하고 있을까. 그들의 노심초사가 있기에 우리는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다.

환자를 잃은 의사의 눈물. 그 장면이 가장 가슴 깊이 와닿았다. 의사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 환자의 죽음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것도 인간의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좋은 의사가 되실 거예요." 환자 가족의 마지막 인사말이 오히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한 생명 앞에서, 의사는 자신의 한계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한계 앞에서 엉엉 울었다. 이런 경험들이 의사를 성장시키는 것일까. 고통 속에서 더 나은 의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일까. 상실의 경험이 오히려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만드는 것일까.

진정한 명의는 자신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문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 돈과 권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의료에 대한 꿈.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좋은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때로는 인맥까지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의사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모든 환자가 평등하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이런 의사들이 있기에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치료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의사는 '사람 같은' 생명체가 아닌, '사람'을 치료한다." 이 문장이 가장 깊이 남는다. 의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질병이나 증상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존재다. 그렇기에 환자의 죽음은 단순한 치료 실패가 아니라 인간적인 상실감을 가져다준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별함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다른 어떤 직업보다 인간의 생사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감정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환자를 마주하고 치료하는 의사들의 용기가 존경스럽다.

'오늘 자궁 맑음'이라는 제목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하지만 이 기록들을 읽고 나니 그 의미가 선명해졌다. 그것은 온전한 삶에 대한 선언이었다. 몸의 고통이 사라지면 마음도 따라서 회복된다는 말이 깊이 와닿는다. 우리는 종종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건강해지면 몸도 따라서 회복된다. 이 의사의 기록을 통해 본 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살리려는 진심이었다. 그 진심 앞에서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세상에는 아직도 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며 치료하려는 의사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오늘도 누군가는 병원에서 희망을 찾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길을 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들 곁에는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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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바꿀 새로운 양자 혁명
쥘리앙 보브로프 지음, 조선혜 옮김, 조명래 감수 / 북스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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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1세기 첨단 기술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양자컴퓨팅이다. 그러나 이를 '혁명'이라고만 부르는 것은 과연 적절한 표현일까?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등장이 물리학계에 가져온 충격적 변화와 비교할 때,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변화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20세기 초의 양자역학 탄생은 말 그대로 과학적 대혁명이었다. 뉴턴역학이 지배하던 기존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고, 원자와 입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전혀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비트코인과 함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양자컴퓨터도 그 분야의 하나일 것이다. 이번에 이름은 익히 듣고 있으나 그 내용 측면에서 알지 못했던 양자 혁명에 대한 신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세상을 뒤바꿀 새로운 양자 혁명>이었다. 기존과는 또다른 대 혁명을 예고하는 양자 혁명에 대해 읽어보았다.

현대의 양자혁명은 기존의 과학적 혁명과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핵심은 '노하우'의 측면에 있다. 과학자들이 개별 입자를 정밀하게 조작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전에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원하는 현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2차 양자혁명'의 핵심이다. 제1차 양자혁명과 제2차 양자혁명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과학자들의 접근 방식에 있다. 과거에는 실험 장치가 자연 현상을 관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과학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현상을 측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현재의 양자 기술 연구자들은 전혀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존 현상을 측정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신 실험실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양자 현상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간섭 현상을 생성해 정밀한 가속도계를 개발하고, 얽힘 상태를 조작해 암호화 시스템을 구축하며, 중첩 상태를 활용해 컴퓨팅 시스템을 설계한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다. 기존 컴퓨터는 '비트'라는 단위를 사용해 정보를 0 또는 1의 명확한 상태로만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를 사용하며, 이는 양자역학의 독특한 성질인 '중첩' 현상 덕분에 0과 1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다. 중첩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전하는 동전의 비유가 유용하다. 공중에서 회전하는 동전은 착지하기 전까지 앞면과 뒷면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큐비트는 측정하기 전까지 여러 상태의 확률적 조합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양자컴퓨터는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계산할 수 있는 엄청난 병렬처리 능력을 갖게 된다.

​'얽힘'은 또 다른 핵심 개념이다. 두 개 이상의 큐비트가 얽힘 상태에 있으면, 이들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처럼 행동한다. 한 큐비트의 상태를 측정하는 순간, 다른 큐비트의 상태도 즉시 결정된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유령 같은 원격작용"이라고 불렀던 현상으로, 양자컴퓨터의 연산 속도를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양자역학적 특성들을 조합하면, 양자컴퓨터는 특정 문제들에 대해 기존 컴퓨터로는 불가능한 속도로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특히 암호 해독, 최적화 문제, 분자 시뮬레이션 등의 영역에서 그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컴퓨터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실용화까지는 여전히 수많은 기술적 장벽이 존재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오류'다. 양자 상태는 극도로 민감해서 외부 환경의 미세한 변화에도 쉽게 붕괴된다. 게이트 오류, 위상 오류, 비트 오류 등 다양한 형태의 오류들이 양자 연산의 정확성을 위협한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실용적인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려면 최소 100만 개의 큐비트가 필요하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강력한 양자컴퓨터 프로토타입도 100개 내외의 큐비트만을 탑재하고 있다. 이는 목표치와 10,000배 이상의 격차를 의미한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접근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무차별 대입'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의 큐비트를 단순히 늘리는 것이다. 구글이나 IBM 같은 대기업들이 이 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 기술을 활용해 대량의 양자 회로를 제작하려 한다. 두 번째는 '품질 개선' 방식이다. 큐비트 개수를 늘리는 대신 각 큐비트의 성능을 드라마틱하게 향상시켜 오류율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필요한 성능 향상 수준이 워낙 높아서(10,000배)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 번째는 '혁신적 돌파구'를 기다리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큐비트나 오류 수정 방법이 발견되어 기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이다. 위상 큐비트와 같은 이론적 개념들이 이런 돌파구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제2차 양자혁명은 분명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20세기 초의 이론적 혁명과는 다른 성격의 기술적 혁명이다. 그 핵심은 양자 현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창조하고 조작하는 것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 양자컴퓨터의 완전한 실용화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기술적 도전들을 고려할 때, 최소 10년 이상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의 혁신과 응용이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과도한 기대와 성급한 판단을 피하면서도, 이 기술이 갖는 변혁적 잠재력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다. 양자 혁명에 대해 조금은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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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똑똑한 부자는 뭐가 다른데? - 무작정 벌지 않고 전략적으로 부자 되는 법
스티브 애드콕 지음, 김광수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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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서완 리뷰입니다.

​현대인의 하루는 대부분 날카로운 알람 소리로 시작된다. 그 소리는 잠에서 깨우는 신호가 아니라, 누군가가 정해놓은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강제적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그 알람 없이도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그날 하루를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계획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재정적 자립이 약속하는 궁극적인 자유의 모습이다. 이번에 제목부터 흥미로운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부자는 뭐가 다른데> 였다. 흥미로운 주제다.

먼저 애드콕이 제시하는 재산 형성의 6단계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설계도와 같다. 이 과정은 마치 건물을 짓는 것처럼 각 단계가 다음 단계의 기초가 되며, 어느 하나도 생략할 수 없는 필수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단계인 '본업과 부업을 통한 수익 창출'은 모든 부의 축적이 결국 수입에서 시작된다는 근본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높은 급여 자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입을 늘려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웹사이트 디자인이든 반려견 산책 서비스든, 작은 부업이라도 추가 수입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돈을 더 버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을 다각화하고, 한 가지 수입원에만 의존하는 위험을 줄이는 전략적 사고의 시작이다. 두 번째 단계인 '비상금 확보'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실제로는 재정적 안정성의 핵심이다. 3-6개월분의 생계비를 비상금으로 확보한다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보험과 같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의료비 지출, 집수리 등의 상황에서 부채를 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인 '가치상승 자산에 대한 투자'와 '자동화 시스템 구축'은 부의 축적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저축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주식, 부동산, 인덱스 펀드 등을 통해 돈이 돈을 벌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자동화 시스템은 인간의 게으름이나 건망증, 감정적 판단을 배제하고 일관된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마치 공장의 자동화 라인처럼 효율적이고 정확한 재산 축적을 보장한다. 다섯 번째 단계인 '사치성 소비 절제'는 아마도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단계일 것이다. 수입이 늘어날 때마다 그에 맞춰 지출도 늘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은 부의 축적에 있어 가장 큰 적이다. 이는 단순한 절약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통제력과 장기적 사고의 문제다. 현대 소비문화는 끊임없이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소유하도록 유혹한다. 소셜미디어는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며,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의 소비 패턴을 통제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지력의 문제를 넘어선 전략적 사고를 요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전한 금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드콕이 강조하는 것은 '균형'이다. 현재의 즐거움을 완전히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더 큰 자유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가 경기를 위해 식단을 관리하는 것과 같다. 목표가 분명할 때, 그 목표를 위한 절제는 고통이 아니라 투자가 된다.

애드콕은 여러가지 주제별로 부자들만의 특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먼저 애드콕이 제시하는 '현명한 이기주의'의 개념은 전통적인 이기심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고다.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를 자신이 먼저 착용해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비유는 이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자신의 재정적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정으로 누구를 도울 수도 없고, 사회에 기여할 수도 없다. 이러한 관점은 개인의 성공과 사회적 책임을 대립적으로 보는 전통적 사고를 벗어난다. 오히려 개인의 재정적 안정이야말로 가족과 지역사회에 진정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전제조건임을 인식하게 한다. 경제적으로 독립된 개인이 많아질수록, 전체 사회의 안정성과 건강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애드콕이 제시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인사이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해다. 2000년 약 12만 달러였던 미국 주택 가격이 현재 38만 달러를 넘어선 현실은 부동산 시장의 변화뿐만 아니라, 화폐 가치 하락의 구체적 증거다. 이는 단순히 돈을 저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평균 3.8%의 인플레이션율은 우리의 구매력을 지속적으로 갉아먹는다. 급여가 인플레이션율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겉보기에는 같은 급여를 받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급여가 삭감되는 것과 같다. 이는 왜 지속적인 수입 증가와 투자가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근본적 이유다. 'Pay Yourself First'라는 개념은 흥미롭다. 다른 모든 지출보다 자신의 미래를 우선시한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 사이의 계약과 같다. 현재의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미래의 더 큰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운동과 같다. 당장은 힘들고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재정적 자립을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소비 욕구를 조절하고, 투자를 우선시하는 것은 미래의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이외에도 많은 부자들만의 다른점을 잘 알 수 있었다. 스티브 애드콕이 제시하는 재정적 자립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나 행운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계적인 계획과 꾸준한 실행, 그리고 장기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과정이다. 재정적 자립을 달성한 저자의 경험은 실제로 실현 가능한 목표임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시작하는 용기와 지속하는 끈기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깨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삶에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삶으로의 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해야만 한다. 미래의 자유로운 자신을 만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애드콕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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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文) 쟁점에 대한 완전 해석 - 광개토왕비와 장군총과 태왕릉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개정증보판
홍재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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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414년, 그 해 가을 국내성 동강에 하나의 비석이 세워졌다. 6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에는 1,775자의 한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는 이 비석은 그 후 1,460여 년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이 돌의 존재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청나라의 봉금제도. 200년간 만주 땅을 금단의 구역으로 만든 이 정책은 역설적으로 광개토왕비를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 인적이 끊긴 황무지 속에서 비석은 홀로 세월을 견뎠다. 그리고 1877년, 봉금이 해제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1,400년 넘게 침묵 속에 서 있던 돌이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의 첩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주는 씁쓸함이었다.

저자가 제기하는 비문변조설은 충격적이다. 일본이 자국에 유리하도록 비문을 의도적으로 변조했다는 주장. 특히 '래도해파(來渡海破)' 부분의 변조 가능성은 한일 고대사 인식의 근본을 뒤흔든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고대 동아시아사의 상당 부분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든다. 과연 이런 대담한 변조가 가능했을까? 탁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본을 훼손하지 않고도 그렇게 정교한 조작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 질문들 앞에서 나는 역사 연구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는 90세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 복잡한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의 열정과 의지에 경의를 표하지만, 동시에 이런 중대한 주장에는 더욱 신중하고 다각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비문의 문체에 대한 분석이었다. 414년 당시에는 고문과 금문이 혼용되던 시대였고, 따라서 비문도 이러한 복합 문체로 작성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현재의 언어 감각으로 1,600년 전의 글을 해석하려 할 때 얼마나 많은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다. 414년의 고구려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그 글자들을 새겼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현재 한문 해독 능력을 가진 학자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저자의 우려는 단순한 학문적 관심을 넘어선 문화적 위기감을 드러낸다.

고구려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고토'다. 지금은 중국 땅이 된 그 광활한 영역에서 한때 우리 조상들이 웅장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사실은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한다. 광개토왕과 장수왕 시대의 고구려가 보여준 위용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영광의 흔적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책 말미에 소개된 중국의 고구려 유적 파괴 시도는 충격적이다. 광개토왕비각과 태왕릉을 관통하는 도로 건설 계획, 장군총 근처를 지나는 도로 설계. 이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소중한 유산들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저자는 책 중간에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한다. 단일민족은 신화라는 것, 하지만 여전히 단군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내부 결집을 위함일 것이라는 분석. 이는 예리한 통찰이다. 드넓은 대륙의 중국을 보면서 느끼는 우리의 복잡한 감정. 56개 소수민족을 거느린 채 한족 중심의 국가를 유지하는 중국의 정책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만의 정체성에 대해 더욱 절실하게 생각하게 된다. 고구려라는 강력한 고대 국가의 존재는 그런 우리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광개토왕비문을 둘러싼 한중일 3국의 서로 다른 해석은 역사 연구가 결코 순수한 학문적 영역에만 머물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각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비문을 해석하려 한다.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는 근거로, 한국은 고구려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자료로.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해석이 가능할까? 저자의 해석 역시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90세에 가까운 저자가 이 방대한 연구를 완성한 것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시간과의 경주였을 것이다. 한문을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세대가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가진 지식과 통찰을 후세에 남기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중요한 연구가 한 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더 많은 학자들이, 더 체계적인 방법으로,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런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픈 부분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광개토왕비가 재발견되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이 일본의 첩자들이었다는 사실, 초기의 중요한 연구들이 모두 일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북한의 평양 일대에 있는 고구려 유적들은 어떤 상황인가? 남한의 한강 유역 고구려 유적들은 개발 논리 앞에서 안전한가?

130년간 지속된 논쟁을 종결하겠다는 저자의 당당한 선언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진짜 종결은 더 많은 연구와 검증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이 그런 연구들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다. 한문 교육의 강화, 고고학 연구의 체계화, 국제적 공조를 통한 유적 보존, 그리고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의 확산.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1,600년 전 국내성 동강에 세워진 그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인간들의 해석과 논쟁을 지켜보며,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광개토태왕비문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여행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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