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시대
스티븐 J. 파인 지음, 김시내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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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별들이 핵융합의 불꽃으로 빛나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한 지구만이 화학적 연소의 불이 존재하는 유일한 세계이다. 그리고 이 행성에서 오직 인간만이 불을 의도적으로 다룰 줄 아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불과 인간은 공진화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빚어왔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파이로센(Pyrocene)', 즉 불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스티븐 파인이 제시한 이 개념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위기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더 이상 불을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불에 의해 지배당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캘리포니아의 메가파이어,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 화재, 호주의 대륙적 규모 산불들—이 모든 현상은 인간이 창조한 새로운 형태의 불이 역으로 창조자를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인의 분석에 따르면, 불의 역사는 세 개의 뚜렷한 막으로 나뉜다. 첫 번째 막인 '제1의 불'은 4억 2천만 년 전 식물이 육지를 덮기 시작하면서 등장했다. 번개가 만든 이 원시의 불은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일부였다. 숲이 타고 재생되는 순환 속에서 불은 생명체들과 공존했고, 심지어 일부 식물들은 발아를 위해 불에 의존하게 되었다. '제2의 불'은 인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불을 길들이기 시작한 순간, 불은 단순한 자연현상에서 문화적 도구로 변모했다. 하지만 파인이 지적하듯, 불은 여타의 도구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도끼나 창처럼 선반에 올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붙이면 계속 돌봐주어야 하는 '최초의 가축'이었던 것이다. 이 제2의 불은 인간 문명의 근간이 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계획적인 방화를 통해 초원을 관리했고, 호주 원주민들은 '파이어스틱 농업'으로 대륙 전체의 생태계를 조각했다. 불은 사냥터를 넓히고, 해충을 박멸하며,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생태적 도구였다. 인간은 불을 통해 자연을 재편했지만, 여전히 자연의 리듬과 한계 안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18세기 말, 인류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불을 발견했다. '제3의 불', 즉 화석연료의 연소가 그것이다. 이는 단순한 연료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론적 전환이었다. 살아있는 풍경을 태우던 인간이 이제 석화된 풍경, 즉 수억 년 전의 고대 생물들이 압축되어 만들어진 석탄과 석유를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파인이 '파이로 전환'이라고 명명한 이 변화는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다. 이전의 불은 계절과 기후, 식물의 성장 주기에 제약을 받았다. 겨울에는 연료가 부족했고, 가뭄에는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자연은 자체적인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에서 캐낸 화석연료는 이런 생태학적 한계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석탄은 계절을 타지 않았고, 석유는 기후에 구애받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탄소 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렸다는 점이다. 나무를 태우면 나무가 살아있을 때 흡수했던 탄소가 다시 공기 중으로 돌아갈 뿐이지만, 석탄을 태우면 3억 년 전의 탄소가 현재의 대기로 분출된다. 이 전환의 아이러니는 곧 명백해졌다. 인간은 불 없이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화석연료는 인간 없이는 타오를 수 없었다. 관계의 역학이 뒤바뀐 것이다. 우리는 불의 주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불을 먹여 살리는 종속적 존재가 되어버렸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불은 일상생활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벽난로는 중앙난방으로, 촛불은 전등으로, 아궁이는 가스레인지로 대체되었다. 불은 기계 속으로 숨어들어 갔고, 사람들은 불을 보지도 만지지도 않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불을 소비하게 되었다. 자동차 엔진 안에서, 발전소 터빈 안에서, 화학공장의 반응기 안에서—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명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생태학적 결과는 곧 나타나기 시작했다. 농업에서는 불 대신 화학비료와 농약이 사용되었다. 불이 수행하던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기능—해충 박멸, 토양 비옥화, 잡초 제거, 식물 질병 예방—을 개별적인 산업 제품들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생태계를 공장처럼 단순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산불에 대한 정책 변화였다. 20세기 내내 서구 사회는 산불을 무조건 진압하는 정책을 펼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위해 사용된 도구들—헬리콥터, 소방차, 불도저—은 모두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기계들이었다. 말 그대로 불로 불과 싸우는 셈이었다. 이런 진압 정책의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자연스러운 소규모 화재가 억압되면서 숲 바닥에는 수십 년치의 연료가 쌓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불이 터져 나왔을 때, 그것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와 강도의 메가파이어였다. 1950년대에 들어서야 화재 생태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등장하면서 불의 생태적 역할이 재인식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전례 없는 규모의 화재들을 목격하고 있다. 2003년 캘리포니아 산불, 2009년 호주 블랙 새터데이, 2020년 호주 블랙 서머, 그리고 매년 반복되는 캘리포니아와 지중해, 시베리아의 대형 산불들. 이것들은 더 이상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불이다. 이 메가파이어들의 특징은 전통적인 산불과는 완전히 다르다. 온도가 더 높고, 더 빠르게 번지며, 더 오래 지속된다. 무엇보다 도시까지 침입한다. 산불이 도시를 집어삼키는 '도시-산불 인터페이스' 현상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자연의 불과 문명의 불이 합쳐져서 새로운 종류의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화재들이 기후변화를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불타는 숲은 저장하고 있던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수천 년 동안 얼어있던 유기물들이 불타기 시작했다. 이는 온실가스를 더욱 증가시키고, 그 결과 더 건조하고 뜨거워진 환경에서 더 큰 화재가 발생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산불의 증가만이 아니다. 현대 문명 자체가 화석연료라는 제3의 불 위에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입는 옷, 사는 집, 타는 차—모든 것이 석유의 연소 없이는 불가능하다. 석유로 만든 비료로 기른 곡물을 석유로 만든 트럭으로 운반하여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에 포장해서 석유로 움직이는 자동차로 가져오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연소 기계가 되었다. 뉴욕시가 하루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작은 국가 전체의 소비량과 맞먹는다. 서울의 열섬 현상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로처럼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불꽃을 보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활동이 어디선가 무언가를 태우고 있다. 이것이 파인이 말하는 파이로센의 핵심이다. 우리는 불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 불은 더 이상 인간의 통제 하에 있지 않다. 대신 불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 기름값이 오르면 경제가 흔들리고, 정전이 되면 도시가 마비된다. 우리는 불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파인은 절망적인 현실 진단과 함께 희망의 단서도 제시한다. 핵심은 불의 생태학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불을 적으로 여기지 말고 복잡한 생태계의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불 관리 지식이 여기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호주 원주민들의 '쿨 번(cool burn)' 기법이나 캘리포니아 인디언들의 계절별 방화 관행은 수천 년에 걸쳐 검증된 지속가능한 불 관리법이다. 이들은 불을 생태계의 파트너로 여겼고, 그 결과 건강하고 회복력 있는 풍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대의 처방 화소(prescribed burning)도 이런 전통 지식에서 배운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강도로 계획적인 화재를 일으켜서 연료를 미리 소모시키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파인의 가장 도전적인 제안은 화석연료를 땅속에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지금 당장 모든 석유와 석탄을 태우는 대신, 먼 미래의 빙하기를 대비해서 남겨두자는 것이다. 이는 지구공학적 상상력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기후 위기 대응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다. 우리는 다시 불과 친숙해져야 한다. 벽난로를 피우고, 캠프파이어를 하고, 촛불을 켜면서 불의 본질을 체감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불'을 소비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도시 계획에서부터 농업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불의 생태학을 고려해야 한다. 화재에 취약한 지역의 개발을 제한하고, 도시 주변에 완충 녹지를 조성하며, 건물의 내화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농업에서도 화학 투입재 대신 통합적인 생태 관리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파이로센은 위기의 시대이지만 동시에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류사상 처음으로 불의 행성적 영향력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의지와 실행이다. 불은 창조와 파괴,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양면의 존재다. 인간과 불의 관계 역시 지배나 종속이 아니라 상호 의존과 공존이어야 한다. 우리는 불을 정복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대신 불과 함께 춤을 춰야 한다. 그 춤의 안무는 겸손과 지혜에서 나온다. 원주민들이 수천 년간 실천해온 그런 지혜 말이다. 불을 두려워하지도 무시하지도 말고, 그 힘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롭게 어울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파이로센을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이며,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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