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궁 맑음
권용순 지음 / 고유명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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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성의 몸에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곳은 생명의 시작점이면서 동시에 고통의 근원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마치 금기어처럼, 혹은 부끄러운 비밀처럼 감춰두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이번에 읽은 한 의사의 기록을 통해 만난 것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절망,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며 삶을 지켜내려는 의지였다. 자궁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가능합니다." 세 글자의 대답이 한 여성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던 순간, 한 의사는 다른 길을 제시했다. 그 길은 험난했지만 희망이 있었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의사는 사람이다. 같은 증상을 보고도 어떤 의사는 포기를 권하고, 어떤 의사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기술의 차이일까, 경험의 차이일까, 아니면 환자를 바라보는 마음의 차이일까. 나는 이 기록을 읽으며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들의 한 마디는 누군가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의 사다리를 내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사다리를 거둬들이기도 한다.

​내시경 클립을 이용한 혈관 차단술. 의학 용어로는 차갑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환자를 살리려는 뜨거운 마음이 담겨 있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의사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혁신은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이기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의사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환자를 위한 길을 찾아냈다. 이런 순간들이 의학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한 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한 간절함이 결국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이어지는 것. 그 과정에서 의사가 감내해야 하는 무게감은 상상하기 어렵다.

36주를 넘기고 싶어했던 산모. 하루라도 더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던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기다려준 의사들. 주말을 포기하고 병원에 남겠다는 교수의 말에는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선근종 수술 후 첫 임신인 산모의 출산. 그것은 자신의 치료가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자,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기적의 순간이기도 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의사들은 환자와 가족들이 모르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걱정과 준비를 하고 있을까. 그들의 노심초사가 있기에 우리는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다.

환자를 잃은 의사의 눈물. 그 장면이 가장 가슴 깊이 와닿았다. 의사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 환자의 죽음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것도 인간의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좋은 의사가 되실 거예요." 환자 가족의 마지막 인사말이 오히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한 생명 앞에서, 의사는 자신의 한계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한계 앞에서 엉엉 울었다. 이런 경험들이 의사를 성장시키는 것일까. 고통 속에서 더 나은 의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일까. 상실의 경험이 오히려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만드는 것일까.

진정한 명의는 자신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문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 돈과 권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의료에 대한 꿈.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좋은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때로는 인맥까지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의사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모든 환자가 평등하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이런 의사들이 있기에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치료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의사는 '사람 같은' 생명체가 아닌, '사람'을 치료한다." 이 문장이 가장 깊이 남는다. 의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질병이나 증상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존재다. 그렇기에 환자의 죽음은 단순한 치료 실패가 아니라 인간적인 상실감을 가져다준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별함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다른 어떤 직업보다 인간의 생사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감정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환자를 마주하고 치료하는 의사들의 용기가 존경스럽다.

'오늘 자궁 맑음'이라는 제목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하지만 이 기록들을 읽고 나니 그 의미가 선명해졌다. 그것은 온전한 삶에 대한 선언이었다. 몸의 고통이 사라지면 마음도 따라서 회복된다는 말이 깊이 와닿는다. 우리는 종종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건강해지면 몸도 따라서 회복된다. 이 의사의 기록을 통해 본 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살리려는 진심이었다. 그 진심 앞에서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세상에는 아직도 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며 치료하려는 의사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오늘도 누군가는 병원에서 희망을 찾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길을 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들 곁에는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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