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文) 쟁점에 대한 완전 해석 - 광개토왕비와 장군총과 태왕릉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개정증보판
홍재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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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414년, 그 해 가을 국내성 동강에 하나의 비석이 세워졌다. 6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에는 1,775자의 한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는 이 비석은 그 후 1,460여 년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이 돌의 존재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청나라의 봉금제도. 200년간 만주 땅을 금단의 구역으로 만든 이 정책은 역설적으로 광개토왕비를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 인적이 끊긴 황무지 속에서 비석은 홀로 세월을 견뎠다. 그리고 1877년, 봉금이 해제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1,400년 넘게 침묵 속에 서 있던 돌이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의 첩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주는 씁쓸함이었다.

저자가 제기하는 비문변조설은 충격적이다. 일본이 자국에 유리하도록 비문을 의도적으로 변조했다는 주장. 특히 '래도해파(來渡海破)' 부분의 변조 가능성은 한일 고대사 인식의 근본을 뒤흔든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고대 동아시아사의 상당 부분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든다. 과연 이런 대담한 변조가 가능했을까? 탁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본을 훼손하지 않고도 그렇게 정교한 조작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 질문들 앞에서 나는 역사 연구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는 90세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 복잡한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의 열정과 의지에 경의를 표하지만, 동시에 이런 중대한 주장에는 더욱 신중하고 다각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비문의 문체에 대한 분석이었다. 414년 당시에는 고문과 금문이 혼용되던 시대였고, 따라서 비문도 이러한 복합 문체로 작성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현재의 언어 감각으로 1,600년 전의 글을 해석하려 할 때 얼마나 많은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다. 414년의 고구려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그 글자들을 새겼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현재 한문 해독 능력을 가진 학자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저자의 우려는 단순한 학문적 관심을 넘어선 문화적 위기감을 드러낸다.

고구려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고토'다. 지금은 중국 땅이 된 그 광활한 영역에서 한때 우리 조상들이 웅장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사실은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한다. 광개토왕과 장수왕 시대의 고구려가 보여준 위용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영광의 흔적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책 말미에 소개된 중국의 고구려 유적 파괴 시도는 충격적이다. 광개토왕비각과 태왕릉을 관통하는 도로 건설 계획, 장군총 근처를 지나는 도로 설계. 이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소중한 유산들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저자는 책 중간에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한다. 단일민족은 신화라는 것, 하지만 여전히 단군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내부 결집을 위함일 것이라는 분석. 이는 예리한 통찰이다. 드넓은 대륙의 중국을 보면서 느끼는 우리의 복잡한 감정. 56개 소수민족을 거느린 채 한족 중심의 국가를 유지하는 중국의 정책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만의 정체성에 대해 더욱 절실하게 생각하게 된다. 고구려라는 강력한 고대 국가의 존재는 그런 우리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광개토왕비문을 둘러싼 한중일 3국의 서로 다른 해석은 역사 연구가 결코 순수한 학문적 영역에만 머물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각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비문을 해석하려 한다.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는 근거로, 한국은 고구려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자료로.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해석이 가능할까? 저자의 해석 역시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90세에 가까운 저자가 이 방대한 연구를 완성한 것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시간과의 경주였을 것이다. 한문을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세대가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가진 지식과 통찰을 후세에 남기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중요한 연구가 한 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더 많은 학자들이, 더 체계적인 방법으로,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런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픈 부분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광개토왕비가 재발견되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이 일본의 첩자들이었다는 사실, 초기의 중요한 연구들이 모두 일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북한의 평양 일대에 있는 고구려 유적들은 어떤 상황인가? 남한의 한강 유역 고구려 유적들은 개발 논리 앞에서 안전한가?

130년간 지속된 논쟁을 종결하겠다는 저자의 당당한 선언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진짜 종결은 더 많은 연구와 검증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이 그런 연구들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다. 한문 교육의 강화, 고고학 연구의 체계화, 국제적 공조를 통한 유적 보존, 그리고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의 확산.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1,600년 전 국내성 동강에 세워진 그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인간들의 해석과 논쟁을 지켜보며,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광개토태왕비문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여행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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