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 부자 아빠가 들려주는 부자 수업
배장훈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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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제목이 재미있다. <장인 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책 속의 저자의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돈 많다고 행복한 게 아니야." 어린 시절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이야기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 만난 한 사람이 저자 인생의 모든 관념을 뒤흔들어 놓았다. 바로 연인의 아버지,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던 그분이다. 첫 만남에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한 것 같다. 장지갑을 건네며 던진 질문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너는 돈을 리스펙 하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돈에 대해 얼마나 무례했는지를 알게한다.

부자 아빠의 가르침은 단순했지만 혁명적이었다. "돈을 리스펙한다는 건 돈을 좇으라는게 아니다. 돈의 가치를 인정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 말은 교회에서 "돈을 사랑함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분은 돈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돈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돈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라는 것이었다. 돈은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우리의 인격을 드러낸다는 깨달음이었다. 이런 관점의 전환은 내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돈을 부끄러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가난을 미화하거나 소박함을 핑계로 경제적 무관심을 정당화하던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부자 아빠의 일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업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6시에 회사에 도착하는 생활패턴은 단순한 부지런함을 넘어선 철학이었다. 남들이 출근하는 러시아워를 피해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것은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분의 절약 정신이었다. 결혼 때 받은 110V용 다리미를 여전히 변압기와 함께 사용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부자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허세나 과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필요 없는 지출을 철저히 경계하며 모든 돈의 쓰임을 신중하게 생각했다. "사고는 대부분 서두르다 일어난다"며 항상 여유를 두고 행동하는 습관, 기분이 나쁠 때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원칙, 건강을 가장 우선시하는 태도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일관된 철학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2017년 가상화폐 열풍이 불 때 부자 아빠가 제시한 투자 원칙은 충격적이었다. "절대 매도하지 마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는 두 가지 약속이었다. 이는 단순한 투자 기법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지혜였다. 사람들이 투자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적 분석 부족이 아니라 감정 조절의 실패 때문이다. 욕심과 공포, 조급함과 불안이 합리적 판단을 흐린다. 부자 아빠는 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하룻밤에 15억이 사라져도 "간밤에 저 별장이 날아갔네"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부자의 심리적 여유를 엿볼 수 있었다. 돈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여유, 그것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나누는 진짜 차이점이었다.

사업에 대한 부자 아빠의 조언은 현실적이면서도 엄중했다. "사업가는 직장인보다 20배는 더 벌어야 한다"면서도 "그러려면 20배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달콤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말이었다. 교사로서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지금이 좋아 보이는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느냐"며 신중함을 요구했다. 이는 사업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충고였다. 사업을 하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건강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그 과정에서 치른 대가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솔직함이 오히려 더 큰 신뢰를 주었다.

부자 아빠에게서 가장 감명 깊었던 점은 책임감이었다. 회사가 부도 위험에 처했을 때 사비를 털어 직원들 월급을 채워준 이야기, 자신을 촛불에 비유하며 가족을 위해서는 몸을 녹여서라도 지키겠다는 각오에서 진정한 부자의 품격을 볼 수 있었다. "부자의 마음에는 탐심이 아닌 책임이 가득하다"는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돈만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이 가져다주는 영향력과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 진짜 부자의 자세라는 깨달음이었다. 경제적 자유를 얻었음에도 매일매일 직원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에서, 부자가 된다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안락함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더 큰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부자의 진짜 소명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마음가짐이었다. "내 인생 팔자에 부자가 될 운은 없다"고 체념하며 살던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구체적인 확신으로 발전했다. 부자 아빠는 내게 돈의 쓸모뿐만 아니라 가능성까지 심어주었다. 가난하고 소박한 삶에서 행복을 찾으려던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부를 추구하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대화와 관찰, 그리고 실제 경험을 통해 서서히 내면에 자리잡은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이 개인의 욕망 충족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는 인식이 생겼을 때, 비로소 진정한 동기부여가 시작되었다.

부자 아빠와의 만남은 멘토링을 넘어선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돈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건전한 부자 마인드셋을 기를 수 있게 해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분이 가르쳐준 것은 투자 기법이나 사업 노하우가 아니었다. 돈과 건전한 관계를 맺는 방법, 책임감 있는 부자가 되는 길,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 용기였다. 연봉 5천만 원의 평범한 교사가 100억 자산가를 꿈꾸게 된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자 아빠의 가르침을 통해 그것이 망상이 아닌 실현 가능한 목표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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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복리의 법칙 - 느려 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빠른 지름길!
정석원 지음 / 트러스트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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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나무는 하루아침에 거대해지지 않는다. 봄의 새싹이 여름을 거쳐 가을의 열매로 익어가는 과정처럼, 진정한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된다. 우리는 흔히 극적인 순간을 기대한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의 성장은 그보다 훨씬 미묘하고 점진적이다. 정석원님의 <인생 복리의 법칙>을 읽었다. 인생에서도 통하는 복리의 법칙이 궁금하다. 금융에서 말하는 복리가 시간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듯, 인생의 작은 선택들도 비슷한 원리로 작동한다. 오늘 10분간 책을 읽는 것이 내일 당장 나를 현자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365일, 3650일이 지나고 나면 그 축적된 지식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는다.

우리는 투자할 때 원금과 수익률을 계산한다. 그런데 인생에서는 무엇이 원금이고 무엇이 수익률일까? 시간이 원금이라면, 우리가 그 시간에 무엇을 담느냐가 수익률을 결정한다. 매일 30분씩 운동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건강 격차는 처음에는 미미하다. 하지만 10년, 20년이 지나면 그 차이는 삶의 질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인사, 진심어린 관심, 작은 도움의 손길들이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작은 투자들이 신뢰라는 거대한 자산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그동안 쌓아온 관계의 복리가 예상치 못한 기회로 찾아온다.

흥미롭게도 복리의 법칙은 긍정적인 것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습관들도 똑같이 복리로 쌓인다. 매일 조금씩 미루는 습관, 작은 거짓말, 건강을 소홀히 하는 행동들도 시간이 지나면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낳는다. 이것이 복리의 양면성이다. 하루에 담배 한 개비가 당장 폐암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20년간 하루 한 갑씩 피운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반대로 하루 물 한 잔 더 마시고, 계단을 오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당장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즉각적인 만족을 요구한다. 빠른 결과, 급속한 성장, 단숨에 이루어지는 성공 스토리가 미디어를 장식한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성장의 원리를 놓치게 만든다. 마치 단거리 경주에만 익숙해진 선수가 마라톤의 페이스 조절을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진짜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근육이 자라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없듯이,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깊어지는 과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다. 변화가 보이지 않으니 노력이 헛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복리의 특성상 초기에는 변화가 미미하다가 어느 순간 급격히 가속화된다. 이 '어느 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성공과 포기를 가르는 분수령이 된다.

우리는 종종 작은 것을 무시한다. 하루 10분의 독서, 매일 쓰는 일기, 짧은 산책, 감사 인사... 이런 것들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어렵다. 하지만 복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작은 습관들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변화의 도구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그들 대부분이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저 꾸준히 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복리의 마법이다. 당사자조차 정확히 언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는지 모를 만큼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변화 말이다. 하지만 복리가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복리가 쌓이면 오히려 해가 된다. 그래서 초기에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각도의 차이도 멀리 가면 엄청난 거리 차이가 되는 것처럼, 인생의 방향성은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떤 책을 읽을지, 어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지, 어떤 습관을 들일지... 이런 선택들이 인생의 복리 방향을 결정한다. 같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방향에 따라 결과는 천지차이가 난다.

복리의 법칙을 인생에 적용하려면 과정을 믿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변화가 미미해 보여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다면 계속해야 한다. 이것이 쉽지 않다. 주변에서는 더 빠른 방법, 더 확실한 결과를 제시하는 유혹이 끊임없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지름길이 없다. 나무가 깊이 뿌리를 내려야 큰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듯, 인생의 토대도 천천히 단단히 쌓아야 한다. 급하게 쌓아올린 성과는 쉽게 무너지지만, 복리로 쌓아올린 성취는 오래간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어떻게 복리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거창한 계획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 조금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투자하면 된다. 출퇴근 시간에 음악 대신 오디오북을 듣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줄이고 가족과 대화하기... 이런 작은 변화들이 1년, 10년 후 우리를 완전히 다른 곳에 데려다 놓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하루 2시간 운동을 일주일 하고 그만두는 것보다, 하루 20분씩 1년 내내 하는 것이 훨씬 큰 변화를 만든다.

인생의 복리는 시간이 증명한다. 지금 당장은 차이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나이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2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꾸준히 자신에게 투자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복리의 힘은 인내하는 자의 것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과정을 신뢰하며,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사람에게 시간은 가장 강력한 동반자가 된다. 오늘의 작은 선택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각자의 복리를 차근차근 쌓아나가면 된다. 변화는 조용히 찾아온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드는 것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작은 선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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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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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5년,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을까? 더 나아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식민지 조선을 관통한 '붉은 시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까?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박노자의 <붉은 시대> 잊혀진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이라는 의미와 함께,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상상력의 원천을 제시한다. 책이 드러내는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꿈은 독립을 넘어선 사회 전체의 혁신적 쇄신에 대한 비전이었으며, 그 유산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1919년은 "반란의 해"였다. 1968년보다도 더 급진적인 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대전과 스페인독감 팬데믹, 그리고 경제 불황이 겹치면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폭발 직전"에 있다는 절박감이 전 지구를 덮고 있었다. 이러한 전 지구적 맥락에서 조선의 3·1운동과 이후 사회주의 운동의 부상을 이해해야 한다.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꿈꾼 것은 독립 회복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안적 근대성"을 추구했다. 서구 자본주의 근대성의 모순과 한계를 날카롭게 통찰하면서, 조선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이들의 비전에는 8시간 노동제, 최저임금 보장, 성평등, 무상교육, 무상의료, 토지개혁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극도로 급진적인 의제들이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제도들의 원형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의 국제주의적 시각이다.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조선의 해방을 중국, 팔레스타인 등 전 세계 피억압 민족의 해방과 연결해서 사고했다. 그들에게 민족 해방은 세계 혁명의 일부였으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는 글로벌한 투쟁의 고리였다. 이러한 초국경적 연대 의식은 오늘날 기후 위기나 불평등 문제 등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조선 사회주의자들의 가장 탁월한 통찰 중 하나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었다. 1930년대 중후반 전체주의적 국가 이데올로기가 유럽과 일본에서 득세하고 있을 때,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파시즘의 철학적·사회정치적 뿌리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박치우를 비롯한 이들은 '민족문화'의 보수적 본질화와 단군 신화에 기반한 혈통주의적 민족 담론의 위험성을 일찍이 경고했다. 그들은 민족을 "근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태어나"는 역사적 산물로 파악하고, '민족성'으로 표현되는 "영구하고 탈역사적인 불변의 특성"이 허구임을 명확히 했다. 이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혈통 중심의 민족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을 강조했다. 파시즘이 개인을 민족(국민)국가의 유기적 부분으로만 허용하고 개인의 자유를 국가의 요구에 의해 제한하는 것과 달리,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적 모순에 대한 "주체적" 이해를 통해 역사 발전을 이끌어가는 개인의 능동적 역할을 중시했다. 이러한 주체성 개념은 훗날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그 원래 의미는 개인의 비판적 사고와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동원"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엘리트 지식인들의 관념적 운동이 아니라, 백정, 기생, 여성, 청소년까지 포함하는 "유례없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었다. 적색노동조합과 적색농민조합, 야학과 독서회를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대중"이 "사회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이 꿈꾼 사회주의 사회는 특권층의 지배를 타파하고 노동자와 농민이 "생산과정과 자신이 속한 현장의 문제에서 더욱 주인이 되"는 사회였다. 현장 민주주의를 통해 노동자의 주체성을 강화하고, 무상 고등교육을 통해 "비특권층 출신의 계층 이동 가능성"을 보장하려 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경제적 의미에서 더 민주적인 사회"의 모델을 제시한다. 특히 이들의 강령에 포함된 여성 관련 의제들은 주목할 만하다. 성평등, 성매매 철폐, 출산수당과 모성 휴가 보장, 여성과 아동의 위험한 노동 금지 등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이러한 젠더 관점은 민족주의 계열 단체들에도 영향을 미쳐, 신간회 같은 조직들도 성평등 의제를 지지하게 만들었다.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제시한 사회 비전은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제도들의 원형이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노령연금, 실업수당, 8시간 노동제, 파업권 보장 등은 모두 이들이 먼저 주장한 것들이었다. 해방 후 북조선이 "1950년대 중반에 공식적으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최초의 제3세계 복지국가 가운데 하나"가 된 것도 이러한 유산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남한에서도 이러한 영향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초안한 유진오는 본래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헌법은 처음부터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조화"를 기본 정신으로 삼았다. 심지어 박정희의 경제 개발도 '경제 계획'이라는 사회주의적 개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사회주의적 사고가 훨씬 깊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복지국가 개념,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적 발상 등은 모두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전 지구적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 변화, 심화되는 불평등, 민주주의의 후퇴, 파시즘의 부활 등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자들의 비전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들의 국제주의적 시각은 오늘날 전 지구적 과제 해결에 필요한 연대 의식을 제공한다. 기후 위기나 팬데믹 같은 문제는 일국적 해결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전 지구적 협력이 필요하다.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보여준 초국경적 연대 정신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다. 둘째,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현재 한국 사회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강력한 혈통 중심 민족주의는 사회 통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민족을 역사적 구성물로 이해하고 보편적 휴머니즘을 추구했던 이들의 시각은 "포스트 종족-민족주의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셋째,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참여적 의사결정에 대한 강조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유용하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 현장 민주주의, 시민의 정치 참여 확대 등은 민주주의를 더욱 실질적이고 포용적으로 만드는 방안이다. 넷째, 복지국가와 사회적 평등에 대한 비전은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기본소득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들의 포괄적인 사회보장 구상은 여전히 유효한 참고 자료다.


물론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자들의 비전에도 한계는 있었다. 소련에 대한 지나치게 이상화된 인식, 스탈린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무지, 급진적 변혁에 대한 성급한 기대 등이 그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모스크바 기행문에 나타난 "장밋빛 관찰"은 소비에트 사회의 모순들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누락시켰다. 또한 이들의 운동이 결국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지하 조직의 한계, 대중 기반의 취약성, 분파주의적 갈등 등은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했다. 이러한 한계들은 오늘날 사회 변혁을 꿈꾸는 이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상주의적 열정과 급진적 상상력은 여전히 값진 유산이다. 현실의 제약에 굴복하지 않고 근본적 변화를 추구했던 그들의 정신은, 점진적 개혁과 타협에 안주하기 쉬운 현재의 진보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과거의 망각은 미래의 더 풍부한 가능성의 망실로 이어진다"고 했다.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망각해온 것은 우리 자신의 뿌리에 대한 무지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현재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상력의 빈곤을 초래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80년대 민주화 운동, 2000년대 진보 정당의 창당 등으로 이어진 계보는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현재의 과제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특히 기후 위기 대응이나 돌봄 경제 구축 등 새로운 사회경제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에서, 경제 전반을 "과감히 새로 기획"했던 이들의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한계를 통찰하고 대안적 사회를 구상했던 그들의 지적 유산은 현재의 전환기에 필요한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꿈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그들이 꿈꾼 "더욱 민주적인 사회", "아래로부터의 참여", "사회적 평등"은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다. 이제는 의도된 망각을 거부하고, 우리 안에 잠재된 '해방 공간'의 상상력을 복원해야 할 때다. 그것이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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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을 부정하라 - 부정적인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감정 훈련법
앤서니 이아나리노 지음, 김하린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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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는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 감정과 사고에 휩쓸리고 있다. Anthony Iannarino의 <부정을 부정하라 :The Negativity Fast>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부정적 사고의 덫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부정성은 개인의 성격적 특성이나 일시적 감정 상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심리학적 배경과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결합된 복합적 현상이다. 따라서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긍정 사고나 일회성 동기부여가 아닌, 과학적 근거와 실천적 방법론에 기반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정 금식(Negativity Fast)이라는 개념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과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생활 철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21세기 들어 인류는 연이은 충격적 사건들을 경험했다. 9·11 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대규모 사회적 충격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형성했으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친 불안감과 회의주의를 증폭시켰다. 이러한 거시적 사건들 외에도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긴장, 기후변화와 같은 지속적 스트레스 요인들이 개인의 일상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부정성이 외부 환경의 악화로 인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뇌는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하는데, 이는 긍정적 정보보다 부정적 정보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이를 더 오래 기억하며, 더 강하게 반응하는 인지적 편향을 의미한다.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부정적 자극에 대한 예민한 반응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맹수의 소리를 놓치거나 독성 식물을 잘못 판단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반면 달콤한 과일을 놓치는 것은 아쉽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이러한 비대칭적 생존 압력이 수십만 년에 걸쳐 인간의 뇌구조에 각인되어, 현대인들도 여전히 부정적 정보에 더 강하게 반응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부정성 편향은 세 가지 주요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강한 부정적 감정의 경험이다. 부정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느끼는 감정의 강도는 동일한 수준의 긍정적 사건에서 느끼는 감정보다 훨씬 크다. 둘째, 부정적 사건에 대한 집중적 주의 할당이다. 인간의 주의 체계는 위험 신호에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도록 설계되어 있어, 부정적 정보가 인지적 자원을 독점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부정적 경험의 복잡성과 지속성이다. 부정적 사건은 긍정적 사건보다 더 복잡한 인지적 처리를 요구하며, 장기 기억에 더 깊이 저장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예견했던 바와 같이, 현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인간의 적응 능력을 초과하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 글로벌화로 인한 복잡성 증가, 일과 삶의 경계 모호화 등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를 만들어낸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정보 처리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켰지만, 인간의 인지적 처리 능력은 여전히 생물학적 한계 내에 머물러 있어 이러한 불균형이 정신 건강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간은 만성적인 각성 상태에 놓이게 되며, 이는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지속적 분비를 야기한다. 장기간 지속되는 스트레스 반응은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인지 기능을 저하시키며, 우울과 불안 장애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현대인의 부정성 문제는 사회 전체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공중 보건 이슈로 인식되어야 한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부정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뉴스 매체들은 주로 부정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며,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기존의 믿음과 편견을 증폭시키는 에코챔버(echo chamber)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정보 환경은 우리의 부정편향을 더욱 강화하고, 사회적, 정치적 상호작용에서 부정성을 확산시킨다. 가족 관계에서의 갈등부터 직장 내 분쟁까지, 우리 주변의 사회적 환경은 종종 스트레스와 부정성의 원천이 된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정치적 신념이 개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단순한 반대자가 아닌 자신의 핵심 믿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며, 이는 지속적인 부정성과 갈등의 순환을 만든다.

부정성에 빠지는 과정에서 외부 상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내적 대화이다. 우리 내면의 목소리는 종종 가혹한 비평가 역할을 하며, 사소한 좌절이나 두려움을 압도적인 스트레스와 부정성의 원천으로 바꿔버린다. 이러한 내적 대화의 힘을 인식하는 것이 부정단식의 첫 번째 단계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를 부정성으로 이끄는 내면의 목소리가 완전히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는 살아오면서 경험한 다양한 영향들의 amalgamation(혼합체)일 가능성이 크다. 부모, 교사, 동료, 미디어 등으로부터 내재화된 서사들이 우리의 사고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내재화된 서사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수정할 수 있게 된다. 많은 부정성의 근원에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는 사소한 불편함에 대한 두려움까지. 하지만 구체적인 결과를 수반하는 현실적인 두려움과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구별하는 것이 부정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에 등록한다. 변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로 가득 차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발걸음이 뜸해지고, 결국 거의 가지 않게 된다. 이는 자기기만의 일반적인 형태로, 우리는 새로운 목표에 대한 헌신과 인내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챙김(mindfulness)은 판단 없이 현재 순간에 완전히 집중하고 참여하는 연습이다. 이는 부정성을 관리하는 강력한 도구로, 우리와 우리의 생각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 더 명확한 관점을 제공한다. 많은 성공한 개인들이 실천하는 마음챙김은 감정을 조절하고, 연민을 향상시키며, 인지 기능을 개선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챙김이 부정적인 생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부정적인 경험을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삶의 긍정적인 측면들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마음챙김을 통해 우리는 관점을 전환할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경험들을 공감과 역경을 통한 개인적 변화의 도구로 바라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해에 헬스장이 붐비는 상황에서 짜증을 내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변화 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점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자기기만에서 공감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헌신과 인내를 과대평가하지만, 이를 인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패턴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현재 정치적 분열의 심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분열은 단순한 의견 차이나 이념의 문제를 넘어서, 정보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뉴스 미디어와 특히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공공 인식과 담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뉴스와 정보 소스에서 에코챔버로 진화했다. 기존의 믿음과 편견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상호작용에서 부정성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며, 이는 부정편향을 더욱 강화한다. 정치가 개인의 정체성과 얽히게 되면 그 영향은 심각하다. 정치적 신념이 정체성의 중심이 되도록 허용한다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단순한 반대자가 아닌 자신의 핵심 믿음에 대한 위협으로 보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지속적인 부정성과 갈등의 순환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믿음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영역 밖에서 개인적인 기쁨과 성취를 가져다주는 영역에 집중하는 것은 정치적 분열로 인한 부정성의 순환에서 벗어나는 강력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부정단식은 현대인이 직면한 부정성의 홍수 속에서 정신적 건강과 웰빙을 회복하는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부정성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부정편향, 급속한 사회 변화, 미디어의 영향, 정치적 양극화 등 현대 부정성의 다양한 원인들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음챙김과 관점의 전환을 통해 내적 대화를 개선하고,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통해 부정성 유발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부정단식은 완벽한 긍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경험과 긍정적인 경험이 공존하는 균형잡힌 삶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현실의 도전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기를 수 있다. 현대사회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내적 평화와 긍정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부정단식의 궁극적 목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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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말하고 삽시다 - 수천 명을 변화시킨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말하는 법
오창균 지음 / 북스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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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의 필요성에 직면한다. 직장에서의 발표, 일상적인 대화, 소셜미디어에서의 표현까지 모든 순간이 타인과의 연결을 위한 기회이자 도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유창하게, 더 완벽하게 말할 수 있을까'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소통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진정한 소통은 화려한 수사법이나 완벽한 발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진실함에서 시작된다. 이번에 오창균님의 <나답게 말하고 삽시다>를 통해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


많은 소통 전문가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내면적 토대가다. 아무리 뛰어난 화법을 배워도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면, 그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만의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말은 비록 서투를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닿는다. 자존감이 탄탄한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확신은 자연스럽게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듣는 이들은 이런 진정성 있는 에너지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무의식적으로 그 말에 더 집중하게 된다. 또한 진정한 자존감은 타인을 향한 존중과 공감 능력으로도 이어진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타인의 존재 역시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이들은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듣고,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결국 진정한 소통은 자기 확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해진다.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조화롭게 작용해야 한다. 첫째는 전문성이다.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전문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해도, 그것을 기계적으로 전달한다면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두 번째 요소인 진정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해진다.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한 진심어린 믿음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그것을 나누고 싶은지에 대한 분명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이런 진정성은 말하는 이의 표정, 목소리 톤, 몸짓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전체적인 메시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마지막으로 정체성은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경험을 의미한다. 똑같은 주제라도 각자의 삶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표현될 수 있다. 이런 개인적 색채가 바로 소통에 매력을 더하는 요소다. 사람들은 뻔하고 예측 가능한 것보다는 신선하고 독창적인 시각에 더 흥미를 느낀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표현할 때, 그 말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특별함을 갖게 된다.


현대 사회는 완벽함을 요구하는 듯 보인다. 소셜미디어에는 완벽한 모습들만 올라오고, 직장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프레젠테이션이 선호된다. 하지만 이런 완벽함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진정한 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 완벽하게 말하려는 욕심이 클수록, 자신의 진심을 숨기게 되고, 결국 생동감 없는 말만 하게 된다.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감동받는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완벽하게 다듬어진 연설보다는 진심이 담긴 투박한 말들인 경우가 많다. 결혼식에서 신랑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서툰 고백, 회사에서 동료가 실수를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 친구가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순간들 말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그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에 깊이 공감하고 연결감을 느낀다. 따라서 말하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창함이나 완벽함이 아니라 진실함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흥미롭게도 가장 자기다울 때 오히려 타인과 더 깊게 연결된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개성을 드러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감정,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듣는 이들도 자신 안의 비슷한 경험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되면서 공감의 다리가 놓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신의 실패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할 때, 듣는 이들은 그 사람의 특별한 상황보다는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 등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에 주목한다. 이처럼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일수록 오히려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반대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말들은 아무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 이런 연결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어든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특이함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 오히려 그것이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무분별하게 자신을 드러내라는 의미는 아니다. 상황과 관계를 고려한 적절한 자기 표현이 필요하다.


이론적 이해를 넘어서 실제 생활에서 이런 원칙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 일상대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나 가족과 대화할 때,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보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은 유지하되, 자신을 억지로 포장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에서 발언할 때, 완벽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자신만의 관점에서 본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데 집중해보는 것이다. 때로는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같은 전제를 달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고유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더 신뢰감을 줄 것이다. 무대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자신이 진심으로 믿는 메시지에 집중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려 노력해 보고자 한다. 청중들은 연사의 진정성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아무리 멋진 말이라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진정한 소통의 힘은 경쟁이 아닌 치유에서 나온다. 서로를 이기려 하거나 자신을 뽐내려 하는 소통은 결국 모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반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소통은 모든 참여자에게 힘을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소통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말 잘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를 온전히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을 기르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균형감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치유하고 격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힘은 개인의 행복과 성공에도 직결된다.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하는 사람들은 더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고,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며, 결국 더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나답게 말하며 사는 삶의 궁극적 가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말이 막히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진실을 잃지 않고, 타인을 향한 진심어린 관심을 유지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더 나은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다. 기술적 완벽함보다는 인간적 진실함을, 화려함보다는 진정성을, 경쟁보다는 공감을 선택할 때, 우리의 말은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소통을 통해 우리는 더 풍요로운 관계와 더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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