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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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5년,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을까? 더 나아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식민지 조선을 관통한 '붉은 시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까?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박노자의 <붉은 시대> 잊혀진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이라는 의미와 함께,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상상력의 원천을 제시한다. 책이 드러내는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꿈은 독립을 넘어선 사회 전체의 혁신적 쇄신에 대한 비전이었으며, 그 유산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1919년은 "반란의 해"였다. 1968년보다도 더 급진적인 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대전과 스페인독감 팬데믹, 그리고 경제 불황이 겹치면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폭발 직전"에 있다는 절박감이 전 지구를 덮고 있었다. 이러한 전 지구적 맥락에서 조선의 3·1운동과 이후 사회주의 운동의 부상을 이해해야 한다.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꿈꾼 것은 독립 회복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안적 근대성"을 추구했다. 서구 자본주의 근대성의 모순과 한계를 날카롭게 통찰하면서, 조선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이들의 비전에는 8시간 노동제, 최저임금 보장, 성평등, 무상교육, 무상의료, 토지개혁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극도로 급진적인 의제들이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제도들의 원형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의 국제주의적 시각이다.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조선의 해방을 중국, 팔레스타인 등 전 세계 피억압 민족의 해방과 연결해서 사고했다. 그들에게 민족 해방은 세계 혁명의 일부였으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는 글로벌한 투쟁의 고리였다. 이러한 초국경적 연대 의식은 오늘날 기후 위기나 불평등 문제 등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조선 사회주의자들의 가장 탁월한 통찰 중 하나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었다. 1930년대 중후반 전체주의적 국가 이데올로기가 유럽과 일본에서 득세하고 있을 때,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파시즘의 철학적·사회정치적 뿌리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박치우를 비롯한 이들은 '민족문화'의 보수적 본질화와 단군 신화에 기반한 혈통주의적 민족 담론의 위험성을 일찍이 경고했다. 그들은 민족을 "근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태어나"는 역사적 산물로 파악하고, '민족성'으로 표현되는 "영구하고 탈역사적인 불변의 특성"이 허구임을 명확히 했다. 이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혈통 중심의 민족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을 강조했다. 파시즘이 개인을 민족(국민)국가의 유기적 부분으로만 허용하고 개인의 자유를 국가의 요구에 의해 제한하는 것과 달리,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적 모순에 대한 "주체적" 이해를 통해 역사 발전을 이끌어가는 개인의 능동적 역할을 중시했다. 이러한 주체성 개념은 훗날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그 원래 의미는 개인의 비판적 사고와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동원"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엘리트 지식인들의 관념적 운동이 아니라, 백정, 기생, 여성, 청소년까지 포함하는 "유례없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었다. 적색노동조합과 적색농민조합, 야학과 독서회를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대중"이 "사회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이 꿈꾼 사회주의 사회는 특권층의 지배를 타파하고 노동자와 농민이 "생산과정과 자신이 속한 현장의 문제에서 더욱 주인이 되"는 사회였다. 현장 민주주의를 통해 노동자의 주체성을 강화하고, 무상 고등교육을 통해 "비특권층 출신의 계층 이동 가능성"을 보장하려 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경제적 의미에서 더 민주적인 사회"의 모델을 제시한다. 특히 이들의 강령에 포함된 여성 관련 의제들은 주목할 만하다. 성평등, 성매매 철폐, 출산수당과 모성 휴가 보장, 여성과 아동의 위험한 노동 금지 등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이러한 젠더 관점은 민족주의 계열 단체들에도 영향을 미쳐, 신간회 같은 조직들도 성평등 의제를 지지하게 만들었다.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제시한 사회 비전은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제도들의 원형이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노령연금, 실업수당, 8시간 노동제, 파업권 보장 등은 모두 이들이 먼저 주장한 것들이었다. 해방 후 북조선이 "1950년대 중반에 공식적으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최초의 제3세계 복지국가 가운데 하나"가 된 것도 이러한 유산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남한에서도 이러한 영향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초안한 유진오는 본래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헌법은 처음부터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조화"를 기본 정신으로 삼았다. 심지어 박정희의 경제 개발도 '경제 계획'이라는 사회주의적 개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사회주의적 사고가 훨씬 깊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복지국가 개념,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적 발상 등은 모두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전 지구적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 변화, 심화되는 불평등, 민주주의의 후퇴, 파시즘의 부활 등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자들의 비전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들의 국제주의적 시각은 오늘날 전 지구적 과제 해결에 필요한 연대 의식을 제공한다. 기후 위기나 팬데믹 같은 문제는 일국적 해결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전 지구적 협력이 필요하다.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보여준 초국경적 연대 정신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다. 둘째,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현재 한국 사회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강력한 혈통 중심 민족주의는 사회 통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민족을 역사적 구성물로 이해하고 보편적 휴머니즘을 추구했던 이들의 시각은 "포스트 종족-민족주의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셋째,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참여적 의사결정에 대한 강조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유용하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 현장 민주주의, 시민의 정치 참여 확대 등은 민주주의를 더욱 실질적이고 포용적으로 만드는 방안이다. 넷째, 복지국가와 사회적 평등에 대한 비전은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기본소득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들의 포괄적인 사회보장 구상은 여전히 유효한 참고 자료다.


물론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자들의 비전에도 한계는 있었다. 소련에 대한 지나치게 이상화된 인식, 스탈린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무지, 급진적 변혁에 대한 성급한 기대 등이 그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모스크바 기행문에 나타난 "장밋빛 관찰"은 소비에트 사회의 모순들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누락시켰다. 또한 이들의 운동이 결국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지하 조직의 한계, 대중 기반의 취약성, 분파주의적 갈등 등은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했다. 이러한 한계들은 오늘날 사회 변혁을 꿈꾸는 이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상주의적 열정과 급진적 상상력은 여전히 값진 유산이다. 현실의 제약에 굴복하지 않고 근본적 변화를 추구했던 그들의 정신은, 점진적 개혁과 타협에 안주하기 쉬운 현재의 진보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과거의 망각은 미래의 더 풍부한 가능성의 망실로 이어진다"고 했다.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망각해온 것은 우리 자신의 뿌리에 대한 무지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현재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상력의 빈곤을 초래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80년대 민주화 운동, 2000년대 진보 정당의 창당 등으로 이어진 계보는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현재의 과제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특히 기후 위기 대응이나 돌봄 경제 구축 등 새로운 사회경제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에서, 경제 전반을 "과감히 새로 기획"했던 이들의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한계를 통찰하고 대안적 사회를 구상했던 그들의 지적 유산은 현재의 전환기에 필요한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꿈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그들이 꿈꾼 "더욱 민주적인 사회", "아래로부터의 참여", "사회적 평등"은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다. 이제는 의도된 망각을 거부하고, 우리 안에 잠재된 '해방 공간'의 상상력을 복원해야 할 때다. 그것이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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