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게 살지만 부자는 되고 싶어
예프리 지음 / 모티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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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게으르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게으름은 때로 효율성의 다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살면서도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에 읽은 <게으르게 살지만 부자는 되고 싶어>는 바로 이 모순적인 두 가지 욕구를 현실적으로 조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솔직히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게으르면 서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 서 저자가 말하는 '게으름'의 의미가 나태함만이 아니라,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을 통해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돈이 모이고 불어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자 예프리는 자신을 생각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매일 가계부를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최대 4일을 넘기지 못했다는 솔직한 고백이 공감됩니다. 저 역시 수많은 재테크 계획을 세웠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예프리는 움직일 수밖에 없는 환경 설정을 통해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여기서 깨달은 것은 우리의 의지력만으로는 경제적 자유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소비 유혹, 하락장의 공포, 그리고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돈 빠져 나가는 구멍들'을 의지만으로 막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자동화 '에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없어도 24시간 돌아가는 '자동 머니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조언합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첫째,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자동 저축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도매 약국 이용하기, 알뜰폰으로 갈아타기, TV 수신료 해지하기 같은 소소한 팁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금액을만들어냅니다. 둘째, 축적된 자금으로 '자동 투자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DC형 퇴직연금, 연금저축계좌, ISA 등 절세 계좌를 활용해 S&P500과 같은 안정적인 지수에 정기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예프리의 말처럼 "돈은 작은 데서부터 샌다"는 말이 얼마나 진실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일 사 마시는 커피, 필요 없는 구독료, 충동구매... 이런 소소한 지출들이 모여 결국 큰 금액이 되어버립니다. 워런 버핏의 말처럼 우리는 큰돈에는 예민하면 서도 반복되는 소소한 지출에는 관대합니다.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런 작은 지출들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투자에 필요한 종잣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자산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동차, 명품가방, 최신폰'과 같은 소비재가 아닌,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오르는 '진짜 자산'—주식, 부동산, 배당주 등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소비, 열등감이나 경쟁심에서 비롯된 지출이 결국 나를 더 가난하게 만들 뿐이라는 직설적인 조언은 자극적이지만 정확합니다. 그동안 SNS에 현혹되어 구매했던 물건들, 남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그것들이 과연 나의 자산 가치를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까?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배당주 투자와 환테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배당 블루칩, 챔피언, 귀족, 킹 등 배당주의 등급을 나누어 소개하고, 장기적인 현금 흐름 확보 수단으로 배당주 투자를 권하는 부분은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노동 없이 들어오는 돈'이라는 개념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내가 직접 일하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배당금은 경제적 자유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환테크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습니다. 환율이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원칙이지만, 세금이 없고 소액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초보 투자자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몸값을 키우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투자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결국 투자의 원천이 되는 수입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입니다. 차별화 된 콘텐츠를 통해 가치를 극대화하고 수익화하는 방법은 현대 사회에서 특히 유효한 전략입니다. 예프리 자신이 경제 인플루언서로서1,200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조언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제 전문성과 강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발전시켜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월급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부가적인 수익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완벽한 준비보다는 작은 실천"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재테크 서적들이 복잡한 이론과 전략을 설명하지만, 정작 실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프리는 당장 오늘부터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을 제안합니다. 불필요한 지출 줄이기, 절세계좌 개설하기, 지수 ETF에 소액으로 투자 시작하기 등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들입니다. 저자는 "자동화 머니 시스템"을 만든 이유가 돈만을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에서 자유로워진 시간 속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돈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목적처럼 여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 있는 경고이자, 삶의 방향을 점검하게 만드는 조언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저는 몇 가지 작은 변화 들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불필요한 구독 서비스를 정리하고, 매일 커피값으로 나가던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금액이지만 한 달이 지나자 생각보다 상당한 액수가 모였습니다.그리고 DC형 퇴직연금으로 전환해 S&P500 ETF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매달 자동으로 투자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니, 더 이상 투자 타이밍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직 '게으른 부자'의 길은 멀었지만, 작은 변화들이 모여 언젠가는 제가 상상하던 경제적 자유를 가져 다 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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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 1인분의 육아와 살림 노동 사이 여전히 나인 것들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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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김수민의 글을 만났을 때, 나는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숨이 턱 막혔다. "토네이도처럼 '나' 말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서 주위를 쓸어가버린" 경험으로서의 출산과 육아. 그 문장이 주는 강렬함과 고독함에 나는 오래도록 사로잡혔다. 그녀는 내가 알지 못했던 어른됨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듯했다. 사회가 정의하는 ' 엄마다움 '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가. ‘모성애 ', '희생과 헌신 ', ' 나를 갈아 넣는 육아' , ' 억척스러움 ' 이라는 단어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무게는 출산과 육아라는 경험 자체보다도 더 무거울지 모른다. 그리고 김수민은 그 무게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

그녀는 이야기 한다. “세상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 엄마 ' 이미지 중 되고 싶은 엄마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만난 많은 여성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모성과 개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뇌하고, 매일의 선택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듯한 불안을 토로하던 친구들의 얼굴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엄마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역할과 의무를 부여하고, 그 무게를 오롯이 여성의 어깨에 얹는다. 그 무게가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 나는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 사이의 균열, 그 틈새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그리움. 그것은 엄마가 된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 모든 이들이 경험하는 보편적 고통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성, 특히 엄마에게 이 균열은 더 깊고 날카롭다. 사회는 여성에게 '완벽한 엄마'와 '성공한 개인'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모두 요구하면서도, 그 사이의 갈등과 충돌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러나 나는 책에서 김수민님이 찾아낸 화해의 실마리를 본다. 엄마 됨의 시간이 단지 자아의 상실만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성장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묻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왜 늘 희생과 헌신의 이미지로만 그려지는가? 왜 우리는 엄마가 된 여성의 개인적 욕망과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가? 어쩌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 자신의 커리어는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나 '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욕망과 꿈을 끝까지 밀어 붙이겠다는 그 단단한 결심이 마음에 와닿았다. 엄마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로스쿨에 도전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 모성 ' 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용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생각한다. 이런 포기하지않음의 서사가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김수민님 자신도 남편의 " 당신은 꼭, 결혼하고도, 출산 후에도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라는 응원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슈퍼 우먼 콤플렉스 , 즉 모든 영역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은 오히려 여성을 더 고립시키고 지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자의 이야기가 주는 힘은 분명하다. 그것은 '나'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권리, 엄마라는 정체성에 매몰되지 않고 여전히 성장하고 도전할 권리에 엄마만 되지는 말자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어쩌면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육아의 일상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시간들의 연속이다. 아이가 잠든 새벽, 만삭의 무거운 몸으로도 티끌을 모으는 사람처럼 공부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현대 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찾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본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서 '엄마의 시간'은 종종 타인을 위한 시간으로만 정의된다. 아이를 위한 시간, 가족을 위한 시간. 그러나 엄마 역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육아와 가사 속에서 틈새의 시간을 찾아 자신의 꿈을 이어나가는 저자의 모습은, 시간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여성의 적극적 행위로 읽힌다. 때로는 밀려오는 대로 흘러가며, 때로는 강하게 저항하며, 그렇게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오늘날 여성이, 엄마 가 자신의 시간을 되찾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고독을 이야기 한다. 김수민님이 말하는 고독은 외로움이나 고립감만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에 선 존재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느끼는 존재적 고립감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불가피하게 이 고독을 떠안는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역할, 누구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경험. 하지만 김수민은 질문한다. "이 고독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고독한 자리에 서있기에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 자신만의 자리를 더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로서의 고독.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아름다운 것들이 저마다 고독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괴로움은 필연적으로 아름답다." 역설적 깨달음을 본다. 고독함이 주는 아픔이 동시에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더 깊은 이해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고독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는 그녀의 의지가 빛난다.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여성상, 다양한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획일화된 '좋은 엄마'의 상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엄마됨을 정의하고 실천하는 다채로운 모습들. 김수민님의 글이 내게 강렬한 울림을 준 이유는, 그녀의 고백이 단지 개인적 경험의 토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모성과 여성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 내 삶은 아름다울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나?" 이러한 질문들은 엄마가 된 여성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던져진 화두이기도 하다. 나는 김수민의 글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것은 '엄마'라는 이름 속 에서도 여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고독과 상실감조차 나를 더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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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글은 처음이라 - 한번 깨달으면 평생 써먹는 글쓰기 수업
제갈현열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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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SNS를 처음 했을때가 기억난다. 내 글이 읽혀지지 않아 좌절했던 그 시절을 아직도 기억한다. "왜 내 글은 아무도 읽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수없이 시달렸다. 몇 년의 좌절과 실패 끝에 깨달은 것은 글쓰기의 본질은 '나의 표현'이 아니라 ' 고객과의 대화'라는 사실이었다. 비슷한 주제로 글을 썼지만 어떤 글에는 구독자가 몰렸고, 제 글은 외면받았다. 그 차이는 간단했다. 그 글은 구독자의 욕구를 읽고 글을 썼고, 저는 제 생각을 주장했을 뿐이었다. 단 한 줄의 차이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시장이 선택하는 '팔리는 글'과 외면당하는 '안 팔리는 글'의 결정적 차이다. 이번에 이에 대해서 분석과 함께 조언을 해 주는 신간을 읽었다. 제갈현열님의<팔리는 글은 처음이라>였다.

팔리는 글쓰기는 재능이 아닌 기술이며,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이 있다. 리는 모두 시장에 살고 있다. 가족 관계, 직장, 사업, 학교 - 어디서든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판매한다. 이 판매의 핵심에는 언제나 글쓰기가 있다. 이메일 한 통, 보고서 한 장, SNS 게시물 하나가 우리의 가치를 결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추상적인 예술로 여긴다. "영감이 떠올랐을 때 써야 한다", "마음이 통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와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팔리는 글은 다르다. 팔리는 글은 시장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글이다.

글쓰기는 5:3:2의 비율로 이루어진 칵테일과 같다. 50%는 시장이 원하는 욕구 파악, 30%는 명확한 구조 설계, 20%는 효과적인 표현대이다. 부분의 사람들은 이 비율을 거꾸로 적용한다. 화려한 표현에 90%의 에너지를 쏟고, 구조에 8%, 시장 욕구 파악에는 고작 2%만 투자한다. 그래서 글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은 "내가 글을 시장에 판다"에서 "시장이 내 글을 산다"로의 전환이다. 이 미묘한 차이가 모든 것을 바꾼다."내가 글을 시장에 판다"라고 생각하면, 자신의 생각과 표현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시장은 그저 글을 평가하는 대상이 된다. 반면 "시장이 내 글을 산다"라고 생각하면, 시장이 주인공이 된다. 끊임없이 "시장은 무엇을 원하는가?", "시장의 고민은 무엇인 가?", "시장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기네스 맥주의 창업자는 왜 매일 술집으로 출근했을까? 사무실이 아닌 시장(술집)에서 직접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객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욕구를 직접 파악했고, 그 결과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팔리는 글쓰기의 첫 단계는 시장의 욕구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 시장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가?""이 시장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가?!"이 시장은 무엇에 좌절하고 있는가?"이런 질문들은 시장이 스스로 고백하게 만드는 마법의 무기다. 질문을 통해 시장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면, 글을 쓰기도 전에 이미 글은 팔릴 준비가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팔리는 글의 구조는 이미 시장이 만들어 놓았다. 베스트셀러 도서, 인기 있는 칼럼,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게시물들을 분석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들은 모두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장이 이미 선택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팔리는 글의 구조에는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포함된다: 먼저 가치다. 가치는 시장이 얻게 될 이득이다. 그리고 공감이다. 이는 시장의 고통과 욕구에 대한 이해다. 그리고 근거다. 이는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된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제품을 판매하는 글이라면, :가치: " 6주 만에 15kg 감량이 가능합니다." 공감: " 다이어트에 실패할 때마다 느끼는 좌절감, 너무나 이해합니다." 근거: " 하버드 의대 연구에 따르면 이 방법은 기존 방식보다 3배 효과적입니다. " 가 될 것이다. 구조를 세우기 전에 시장의 욕구를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워드 프로세서를 켜기 전에 시장이 원하는 가치, 공감, 근거를 명확히 정리한다면, 글의 절반은 이미 완성된 것이다.

팔리는 글에는 두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익숙함과 새로움. 익숙함은 시장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 시장이 이미 알고 있는 개념, 익숙한 표현,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활용하는 것이다. 익숙함은 시장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한다. 익숙함을 키우는 방법은 단 하나, 끊임없이 쓰는 것이다. 글쓰기는 PT와 같다. 근육이 발달하려면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듯이, 글쓰기 역시 매일의 훈련이 필요하다. 하루에 30분, 매일 글을 쓰는 것이다.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가 일상이 되는 것이다. 새로움은 시장의 주목을 끄는 요소다. 새로운 관점, 신선한 표현, 예상치 못한 통찰은 시장이 글을 선택하는 이유가 된다.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뉴턴의 사과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움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얻어지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 경험, 관점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이 탄생한다. 매일 다른 분야의 책을 읽고, 평소 관심 없던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들이 모여 독창적인 관점을 만들어낼 것이다.

팔리는 글쓰기의 비밀은 결국 시장과의 대화에 있다. 독백이 아닌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시장이 글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당신이 함께 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한 줄의 차이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과 시장이 듣고 싶은 것" 사이의 그 한 줄의 차이가 팔리는 글과 팔리지 않는 글을 가른다. 오늘부터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 는 것이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명확한 구조로 설계하고, 익숙함과 새로움의 균형 잡힌 표현으로 전달하 면 될 것이다. 그리고 대가들의 비밀을 훔쳐 자신 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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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하다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깨달은 것들
악셀 하케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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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의 흔적들이 새겨진 몸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의 몸만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악셀 하케의<재채기하다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깨달은 것들>을 읽으며 내 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열렸다. 그의 글은 신체적 변화만의 기록이 아니라, 몸을 통해 삶의 본질을 사유하는 철학적 여정이었다. "재채기를 하다 갈비뼈가 부러졌다고요?"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 비유적 표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저자의 경험이었다. 나이가 들어 약해진 뼈는 간단한 재채기에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현실. 이 순간 나는 내 몸에 대해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종종 몸을 도구처럼 여긴다. 우리의 의지를 실현하는 수단, 우리 정신을 담는 그릇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하케는 몸 자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강건하던 젊은 시절의 몸이 점차 약해지고, 기억이 흐려지고, 기능이 저하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발견한다.

우리 몸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다. 어제의 몸은 오늘의 몸과 같지 않다.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태어난다. 나는 7 년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새롭게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내 의식은 연속적이다.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가 맞는가? 생물학적으로는 달라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연속성을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하케가 말하는 몸의 신비가 아닐까? 몸은 우리의 존재 그 자체이면서도,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여기는 대상이기도 하다. 흉터, 주름, 그리고 기억의 지도내 몸에는 많은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왼쪽 무릎의 흉터는 초등학교 때 자전거에서 넘어진 흔적이고, 손목의 작은 상처는 첫 요리를 하다 생긴 것이다. 오른쪽 눈가의 주름은 웃음을 많이 짓던 날들의 증거이고, 이마의 주름은 깊은 고민의 흔적이다. 하케의 관점처럼 이 모든 것들은 내 삶의 지도다. 누군가 회고록으로 자신의 지적 성취를 기록한다면, 나는 이 몸에 남겨진 흔적들로 내 삶을 기억할 수 있다.

​하케는 피부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쩌면 나는 어제 한때 증조할머니 속에 있던 원자를 소비했고 어느 날에는 증손주 중 한 명을 안개처럼 둘러쌀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몸은 단절된 개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순환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내 피부를 구성하는 원자들은 어쩌면 수백 년 전 살았던 누군가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른 생명의 일부가 될 것이다. 하케가 코의 기억을 설명할 때, 나도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의 된장 냄새가 떠올랐다. 코는 기억의 문이다. 어떤 냄새는 수십 년 전의 기억을 단번에 불러일으킨다. 시골 장터의 고소한 튀김 냄새, 봄비 내린 후의 흙냄새, 첫사랑과 함 께했던 카페의 커피향.... 이 모든 냄새들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의 몸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누구나 나이 들 때 생기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탈모, 주름, 기억력 감퇴... 하지만 하케는 이런 변화들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는 자신의 망가진 기억력을 유머로 승화시킨다. 이 유머는 그저 웃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나도 거울 앞에서 점점 늘어가는 흰머리와 깊어지는 주름을 발견할 때마다 한숨을 쉬곤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종종 상실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젊음, 활력, 아름다움, 건강... 한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그런데 하케의 시선을 빌려보니, 이 모든 변화는 내가 살아온 증거이자 앞으로 살아갈 시간의 흔적이다. 노화는 패배가 아니라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예전에는 노인들의 주름이 그저 나이 들었다는 신호로만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주름 하나하나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웃음과 슬픔, 기쁨과 고통의 흔적들. 하게가 말한 것처럼, 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기록이다. 그 기록을 부끄러워하거나 지우려고 하기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 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하게는 가장 사적인 신체 경험까지도 유머로 풀어낸다. 변비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유쾌한 웃음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신의 배설 문제나 신체적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그것은 너무 사적이고, 때로는 부끄러운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하케는 그런 금기를 과감히 깨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기능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유머와 철학적 통찰을 발견한다. 우리 몸의 가장 평범한 기능마저도 나이가 들면 변한다. 젊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통증과 불편함이 찾아온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소화가 예전 같지 않으며, 작은 상처도 쉽게 아물지 않는다. 하지만 하케는 이것을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의 작은 신호들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존재를 더 깊이 성찰한다. 나도 점점 느려지는 신체 리듬에 좌절하기보다, 그것이 알려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겠 다는 생각이 든다.

하게는 성기에 대한 챕터도 포함시킬 만큼 몸에 대한 모든 측면을 탐구한다. 성은 종종 금기시되거나 은밀하게 다뤄지는 주제지만, 그에게는 그저 인간 경험의 또 다른 측면일 뿐이다. 유쾌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에 대해 이야기함으로 써, 그는 우리가 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수치심을 깨뜨린다. 나이가 들면서 성적 능력과 욕구도 변한다. 이 부분에서 하게는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접근한다. 젊음의 열정과 성적 에너지가 사라진다고 해서 삶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형태의 친밀감과 교감이 중요해진다. 피부와 피부의 접촉, 따뜻한 포옹, 손을 맞잡는 행위가 큰 위안이 된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욕구의 변화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케는 이 부분에서도 우아하게 나이 듦의 과정을 그려낸다. 욕망의 변화가 상실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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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 것은
김보미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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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가 처음 해금의 음색에 매료된 것은 대학로 작은 공연장에서였습니다. 그날의 공연은 국악과 현대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무대였는데, 무대 한켠에서 해금을 연주하던 연주자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두 줄의 명주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마치 인간의 목소리처럼 울부짖다가 때로는 속삭이는 듯한 표현력에 압도되었습니다. 이번에 김보미님의 에세이 <음악을 한다는 것은>를 읽으며 그날의 감동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어떤 형상도 소리로 옮길 수 있다는 음악을 생각하면서 해금이 가진 무한한 표현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해금은 지판이 없는 악기이기에 연주자의 감성과 기술에 따라 무한한 음역과 표현이 가능합니다. 그 불확실성이 주는 매력이 제게는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클래식 피아노를 무척 좋아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정해진 음계와 규칙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참석한 국악 공연에서 해금의 음색에 매료되었고, 그 후로 해금의 공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서양 음악의 정확한 음정과 리듬에 익숙해 있던 저에게 해금의 유동적인 음정과 표현은 낯설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낯섦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음악적 자유를 발견했습니다. 김보미님이 산조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특히 공감됐습니다. "한 장단 한 장단이 그러해야 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서사를 부여했다". 음악을 소리의 나열이 아닌 하 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녀의 접근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해금을 공부하면서 해금의 연주는 연주하는 것보다 내면의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금의 매력은 정확하게 정의된 음정이 아닌, 연주자의 감성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음색에 있습니다. 서양 악기들이 대부분 정확한 음정과 리듬을 추구하는 반면, 해금은 그 사이의 무수한 음들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보미가 말 한 "절대 영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해금은 슬픔, 기쁨, 그리움 같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잠비나이의 음악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전통의 생김새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아니면 그 탈을 아예 벗어버리든가" 하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닌, 진정한 융합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제게도 오랫동안 고민거리였습니다. 저도 해금 공연을 찾고 음미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고민들•• 자연스럽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해금으로 표현하는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팝송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비나이의 실험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전통음악에 현대적 사운드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영역을 창출해냈습니다. 해금의 울림이 내면에서 시작해 세상과 공명하는 순간, 마치 우주의 일부가 된 듯한 초월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는 해금 공연을 찾고, 배우면서 점차 악기를 넘어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해금은 정확한 음정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손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은 삶에서도 주변에 더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해금은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이제는 제가 누구인지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음악은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는 힘이 있습니다. 잠비나이가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에서 인정받은 것처럼, 진정성 있는 음악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해금을 통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해금 공연을 참가하고, 그곳에서 해금의 소리를 처음 들은 외국인 친구들과 그 낯선 음색에 매료되었고, 저는 그들에게 해금의 역사와 특성을 설명하며 문화적 교류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예술은 우리 스스로를 회복시킨다"라는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음악, 그중에서도 해금은 제게 치유의 도구입니다. 힘든 날들, 복잡한 감정으로 마음이 무거울 때 해금을 연주하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 내면의 깊은 곳과 연결되는 경험입니다. 해금을알게되면서 저는 점점 더 '듣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음정을 잡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과정에서 일상의 소리에도 더 민감해졌고, 바람 소리, 빗소리, 심지어 도시의 소음까지도 하나의 음악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제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데 매뉴얼이란 게 없을 겁니다. 음악은 결국 개인의 감각과 경험에 기반한 주관적인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금과 함께한 시간은 제게 음악적 성장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새로운 통찰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판이 없는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불확실성과 마주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습니다. 정해진 길이 없는 인생에서 우리는 매순간 자신 만의 소리를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의미를 발견해갑니다.

앞으로도 저는 해금과 함께 음악적 여정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김보미가 잠비나이의 활동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소리와 감정, 사람들과의 연결을 소중히 여기며 제 음악적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해금의 선율 속에서 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 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고독하고 힘든 여정이지만, 그 속에서 찾는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꿈을 꾸는 방향으로 삶의 뱃머리가 움직이길 바라며 오늘도 해금의 소리 속에서 위안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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