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김부장의 늦지 않은 연금 공부 - 은퇴 후 500만 원을 만드는 연금 포트폴리오
이영주.배한호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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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가슴을 후벼팠다. <50세 김부장의 늦지 않은 연금공부> 제목 속 김부장이 마치 거울 속 내 모습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애써 외면해온 또 다른 나였다. 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승진도 제때 했고, 월급도 꼬박꼬박 받았다. 그런데 지난주 임원이 슬쩍 던진 “요즘 명예퇴직 패키지가 괜찮던데 "라는 말 한마디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회사 밖 세상을 준비한 적이 없다는 것을. 월급은 생활비로, 보너스는 아이들 학원비로, 명 절 상여금은 부모님 용돈으로 새어 나갔고, '노후'라는 단어는 늘 "나중에 생각하지 뭐"로 미뤄왔다. 국민연금? 매달 빠져 나가는 걸 알지만 내가 얼마나 받을지는 모른다. 퇴직연금? 회사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싶어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다. 개 인연금? 보험설계사가 권유했을 때 "나중에요"라고 대답한 게 벌써 5년 전이다. 그렇게 나는 오십 중반까지 '연금 문맹'으로 살아왔다. 나는 이제야 연금 공부를 시작한다. 창피하게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다. 위기가 와야 움직이는 본성. 하지만 이 책이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월 500만 원' 이라는 명확한 목표였다. 재테크 책들은 대부분 " 충분히 준비하세요", " 여유 있게 모으세요 " 같은 추상적인 조언만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월 500만 원. 세후 기준으로 부부가 노 후에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선.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막연한 불안이 구체적인 과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500만 원을 만드는 방법도 명쾌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소위 말하는 3층 연금 구조. 나는 지금껏 이 세 가지를 따로 따로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생각조차 안 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세 개의 기둥이 서로를 지탱하며 하나의 튼튼 한 집을 짓는 구조였다. 국민연금은 기본 토대다. 임의가입이나 추납 제도를 활용하면 수령액을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 음 알았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알아서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운용 방법을 선택해야 효율이 오른다. 그동안 나는 퇴 직연금 계좌를 그냥 방치해뒀다. 마치 은행 적금처럼 1%대 수익률로. 개인연금은 세제 혜택이 핵심이다. 연말정산 때 몇 십만 원 환급받으려고 영수증 모으는 것보다, 연금저축이나 IRP에 꾸준히 넣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 다. 책은 이 세 가지를 단순하게 '많이 넣으세요'가 아니라, 어떻게 배분하고, 언제 시작하며, 어떤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지 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과세 이연' 개념이었다. 지금 당장 세금을 덜 내는 게 아니라, 세금을 나중 으로 미루면서 그 돈까지 복리로 굴린다는 발상. 50대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가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전략적 적립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설득력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부분이 가슴에 남았다. 주식 시장이 폭락했을 때, 추가 자금이 필요할 때, 대부분 사람들은 연금 계좌 를 해지한다. 나도 그럴 것 같았다. 급한 불을 끄려다 미래를 태워버리는 선택. 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더 많이 쌓 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중도 해지는 곧 세제 혜택 박탈이다. 그동안 쌓아온 과세 이연 효과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대 신 담보 대출이나 일부 인출 제도를 활용하면 계좌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자금을 쓸 수 있다. 이런 디테일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10년 후 수백만 원의 차이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심리적 근육이었다. 연금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50대에 시작했다면 60대 중반까지 약 10~15년. 그 기간 동안 시장은 몇 번이고 요동칠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적립하는 사람만이 복리의 마법을 경험한다. 영상 속 김부장이 시장 하락기에도 정 액 적립을 유지하며 평단가를 낮춰가는 장면은, 마치 내게 "너도 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즘 주식 커 뮤니티를 덜 보게 됐다. 단기 수익률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장기적인 현금흐름 설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TF, 배당주, 커버드콜 같은 화려한 용어들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영상에서 경고했듯 전체 시스템 없이 부분 전술에만 매몰되면 위험 하다. 나는 이제 기초 체력부터 다지고 있다.

책은 연금 공부라는 느낌이 없다. 금융 서적 특유의 딱딱함, 수식과 법령으로 가득한 페이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 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식이 쌓인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듯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머릿속에는 3 층 연금 구조, 과세 이연 전략, 포트폴리오 설계 원칙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나 같은 금융 문맹에게 이런 형식은 구원이었 다. 전문 용어를 외우려 애쓸 필요 없이, 김부장이 상담사와 대화하는 장면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개념을 익혔다. '아, 이럴 땐 이렇게 하는구나', '저 실수는 나도 할 뻔했네' 하며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연금 설계의 기본 틀을 이해하고 있었 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나이 듦에 대한 패배감을 희망으로 바꿔줬다. 향후 나의 변화된 삶. 희망퇴직을 두려워하는 대신, 월500만 원의 연금 시스템을 갖춘 뒤 당당하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모습. 경제적 자립이 곧 심리적 안정이고, 그것이 노년 의 자존감을 지킨다는 메시지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나는 이제 '늦었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기로 했다. 50대는 끝이 아니 라 새로운 설계의 시작점이다. 앞으로 10년, 길게는 15년. 그 시간이 내 노후 30년을 지탱할 기둥을 세우는 골든타임이다.

불안은 무지에서 온다. 알면 두렵지 않다. 50대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라, 제대로 준비하기에 딱 좋은 나이 다. 복리의 마법이 짧아진 만큼 세제 혜택과 전략적 배분으로 그 시간을 압축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지금 시작하느냐, 마느 냐다. 지금 이 순간이, 나머지 인생을 바꿀 가장 이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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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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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는 주로 승전국의 시각에서 서술되어 왔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미드웨이 해전 같은 대규 모 전투들이 역사책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서사의 그늘 아래에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약소국들의 이야기가 있다. 생각해 보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강대국 이외의 야소국들, 예를 들어 벨기에, 핀란드, 불가리아 같은 나라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팽창의 야욕도, 세계 지배의 꿈도 없었다. 단지 평화롭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욕망은 이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중립이냐 동맹이냐, 저항이냐 항복이냐의 기로에서 이들이 내린 선택과 그 결과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훈을 전달해 준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타이완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은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약소국들의 제2차 세계대전 경험은 이러한 현대의 문제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 같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중, 약소국들의 대응과 그 결과에 대해서 여러 측면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의 두께 만큼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빠른 시간에 읽기는 어려웠다. 책 내용중, 작년에 유럽 여름 휴가를 다녀왔던 벨기에와 핀란드 그리고 불가리아에 대해 궁금증이 커서 먼저 상세히 읽어 보았다.


벨기에의 역사는 지정학적 저주의 전형이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위치한 이 나라는 두 강대국이 충돌할 때마다 전쟁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국토의 95%가 독일군 수중에 넘어갔고, 4년간 4만여 명이 전사했다. 이러한 참혹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벨기에는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1920년 프랑스와 맺은 군사협정은 상호 불신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1925년 로카르노 조약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이 벨기에의 영토를 보장하자, 벨기에는 19세기의 평화가 돌아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1936년 라인란트 위기에서 프랑스가 히틀러 앞에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본 벨기에는 실망했다. 레오폴드3세는 1936년 중립을 선언하고 1937년에는 독일과 중립조약까지 맺었다. 자신들이 독일을 자극하지 않으면 독일도 넘보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었다. 더 큰 문제는 방어 태세였다. 벨기에는 동부 국경에 '작은 마지노'로 불린 에방 에말 요새를 건설했지만, 독일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군비 증강은 최소화했다. 전차는 ’공격용 무기'라는 이유로 거의 확보하지 않았다. 1940년 개전 당시 제대로 된 전차는 10대에 불과했고, 공군의 주력은 1920년대 복엽기였다.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아르덴 방어였다. 프랑스군 총사령은 ’천연 방벽'이라며 독일군이 통과할 리 없다고 단언했다. 벨기에도 이에 동조하여 22개 사단 중 단 2개만 배치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누가 아르덴을 방어할지 제대로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결과는 무방비 상태였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이 침공하자 에방에말 요새는 85명의 공수부대에게 하루 만에 함락 되었다. 구데리안의 기갑부대는 각성제 페르비틴에 의존하며 57시간 만에 아르덴을 돌파했다.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일이었다. 벨기에는 18일 만에 항복했고, 이후 52개월간 나치 점령 아래 신음했다. 중립도, 조약도, 요새 벨기에를 지켜주지 못했다.


핀란드의 상황은 벨기에보다 훨씬 절망적이었다. 1939년 스탈린이 카렐리아 지협을 요구하자 핀란드가 거부했고, 11월 30일 소련 군 45만 명과 전차 2,500대가 침공했다. 핀란드군은 18만 명에 전차는 사실상 없었다. 보유한 르노 FT-17은 제1차 세계대전 유물이었고, 빅커스 6T는 돈을 아끼려고 차체만 구입해 주포와 무전기가 없는 빈 껍데기였다. 그러나 핀란드는 놀라운 저항을 보여주었다. 시모 해위해는 105일간 542명을 저격하여 '하얀 사신'으로 불렸다. 스키 부대는 삼림과 추위를 이용해 소련군을 각개격파했다. 몰로 토프 칵테일로 소련 전차를 불태웠다. 소련군은 20만 명의 전사자를 냈다. 핀란드는 1940년 3월 국토의 11%를 잃었지만 독립은 지켰고, 소련군에게서 T-26 100여 대, BT 60여 대를 노획해 오히려 전력이 강화되었다. 1941년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핀란드는 신중하게 대응했다. 소련이 먼저 폭격하자 '계속전쟁'을 선언하고 빼앗긴 땅을 되찾았지만, 만네르하임은 여기서 멈췄다. 히틀러가 레닌그라드 공격을 압박했지만 거부했다. 미국·영국의 반발을 우려했고, 거대 도시 공격은 핀란드의 능력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형식적으로 추축국이었지만 소련에 선전포고하지 않았고, 국내 반공 활동도 금지했다. 이러한 신중함은 전후 처리에서 빛을 발했다. 다른 추축국들과 달리 핀란드는 소련의 위성국이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했다. 핀란드의 교훈은 명확하다. 약소국이라도 강한 의지와 현 명한 전략이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불필요한 모험을 피하며, 강대국 사이에서 실리를 챙기는 것이다.


불가리아는 또 다른 유형이었다. 한때 발칸의 강자였지만 연이은 패전으로 영토를 잃고 군비를 제한당했다. 국왕 보리스 3세는 실리주의자였다. 1941년 3월 추축에 가입하여 루마니아로부터 남부 도브루자를 되찾았고, 독일의 발칸 침공 때 길을 빌려주고 유고슬라 비아와 그리스 영토를 받았다. 하지만 보리스 3세는 히틀러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독소전쟁 참전을 거부했고,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는 것도 거부했다. 1943년 8월 히틀러와 회담 후 급사하여 암살설이 돌았다. 1944년 9월 소련이 선전포고하자 불가리아는 재빨리 편을 바꿔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불가리아는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수 있지만, 생존의 관점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전략으로 최악의 결과를 피했다.

이들 국가들의 2차 세계 대전사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중립은 그 자체로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벨기에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 모두에서 전쟁터가 되었다. 중립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스위스가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선언 때문이 아니라 산악 지형과 철저한 국방 준비 덕분이었다. 또한 강대국의 약속은 믿을 수 없다. 1914년 런던조약은 벨기에의 중립을 보장했지만 독일은 ' 종이조각 '이라며 무시했다. 194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국제 조약과 동맹은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자국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힘이다. 소통과 협력의 실패는 재앙을 부른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서로 불신했고, 아르덴 방어에 대해 제대로 된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벨기에는 프랑스가 알아서 할 것이라 여겼고, 프랑스 는 벨기에가 맡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는 무방비 상태였다. 안일함과 희망적 사고는 치명적이다. 가물랭은 독일군이 아르덴을 통과 하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이며, 그 사이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57시간 만에 돌파했다. 준비되지 않은 낙관은 재앙의 지름길이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우리는 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경험을 했다. 21세기 들어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선택을 강요받는다. 벨기에의 실패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균형 외교'라는 이름으로 이쪽도 저쪽도 자극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정작 위기가 왔을 때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동시에 핀란드의 지혜도 필요하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실리를 챙기되, 결코 우리의 생존권을 담보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체 국방력이다. 벨기에는 전차를 '공격용 무기'라며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 핀란드는 돈을 아끼려다 주포도 없는 전차를 샀다가 전쟁에서 쓰지도 못했다. 이런 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역설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는 약자에게 가혹하다. 하지만 현명한 약자는 살아남는다. 벨기에와 핀란드의 상반된 운명은,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우리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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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꼭 읽어야 할 20세기 세계사 - 세계를 바꾼 결정적 장면들
이영숙 지음 / 블랙피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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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며칠 전 아침 뉴스에서 중동 분쟁 소식이 흘러나왔다. 앵커는 진지한 표정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심화되 고 있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 갈등의 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또 싸우는구나" 하는 피상적인 이해만 있을 뿐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미중 패권 경쟁도, 브렉시트도 마찬가지였다. 뉴스는 매일 쏟아지는데, 나는 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까? 이번에 이영숙 작가의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20세기 세계사>를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내 가 몰랐던 건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다. 20세기라는 거대한 뿌리를 모르니, 21세기라는 나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오늘을 읽는 해독제 같은 책이었다. 책은 사진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저자는 20세기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선별하고, 그 사진 한 컷에서 출발해 역사의 물줄기를 풀어낸다. 마치 사진관에 들어가 액자 속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 다보는 것처럼, 그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예를 들어 형형한 눈빛의 수도승 라스푸틴 사진은 한 인물의 조상이 아니다. 그 눈빛 너머로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이, 러시아 혁명의 전야가, 그리고 권력에 기생하는 비선 실세의 끈질긴 생명력이 보인다. 손을 맞잡고 웃는 세 명의 지도자 사진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미소 뒤에는 중동의 피 묻은 역사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분쟁의 씨앗이 숨어 있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지만, 저자는 그 순간의 전후를 촘촘하게 연결한다. 그래서 마치 시간 여행자가 된 것처럼 1917년 러시아로, 1945년 히로시마로, 1989년 베를린으로 순간 이동한다. 이것이 바로 책이 지닌 마법 같은 힘이다.

저자는 고백한다. 책을 쓰는 동안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고 느꼈다고. 20세기의 무게가 그 이전 19세기까지의 모든 세계사를 합친 것과 견주어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깨 달았다고 말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그 무게를 실감했다.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가장 참혹한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냉전이라는 이념 대결로 세계는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동시에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했고, 인권과 평등을 향한 투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100년이라는 시간 속에 전쟁과 평화, 억압과 자유, 증오와 화해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의 파편이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구성하고 있다. 유엔이 왜 생겼는지, NATO가 무엇인지, 중동이 왜 불안한지, 한반도가 왜 분단되었는지, 이 모든 질문의 답이 20세 기에 있다. 그러니 20세기를 모르고서는 오늘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이유다.

역사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딱딱한 연대기, 암기해야 할 인물과 사건들, 지루한 서술. 하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마치 손주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처럼, 혹은 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사를 '공부'가 아닌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한다. 저자는 역사 속 인물들을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 고뇌와 결단을 지닌 살아 있는 사람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그들의 눈물에 공감하고,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며,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강대국의 오만이 약소국에게 남긴 상처를 다루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르완다 대학살을 다루며 이렇게 쓴다. "잘못은 강대국이 하고, 그 결과로서의 잔혹한 비극은 약소국이 떠안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 제국주의 시대,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마음대로 나누고 지배했다. 그들은 현지의 역사와 문화, 민족 구성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편의대로 국경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부주의하고 무 책임한 선택이 수십 년 뒤 끔찍한 인종 갈등과 대학살로 이어졌다. 한국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38선은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은 선이었다. 하지만 그 선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고, 수천만 명이 이산의 아픔을 겪었다. 약소국의 운명이 강대국의 회의실에서 결정되는 비극. 이것이 20세기가 우리에게 남긴 뼈아픈 교훈이다. 저자는 이러한 불평등한 세계 구조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한다. 국내 자료뿐 아니라 수 많은 외국 역사서와 사료를 연구한 덕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편협한 민족주의나 특정 이념에 갇히지 않고, 진정한 세계 시민의 관점을 제공한다.

책을 읽으며 소름 돋았던 순간이 있었다. 20세기에 일어났던 일들이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다. 라스푸틴 같은 비선 실세는 여전히 권력 주변에 존재한다. 뮌헨 협정처럼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약소국을 희생시키는 일은 지금도 벌어진다. 인종 갈등과 증오 범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역사를 모르는 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20세기의 교훈을 제대로 배웠다면, 독재와 전 쟁, 차별과 혐오가 어떤 결말을 낳는지 알았다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역사를 잊지 말라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라고. 그것이 바로 역사를 배우는 진짜 이유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또 하나의 진실은, 역사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거대한 전쟁과 혁명, 협정과 조약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결단을 내린 지도자, 희생당한 민중, 저항한 혁명가, 침묵한 방관자. 그들 모두가 역사를 만들었다. 저자는 그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 두려움과 용기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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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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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 국방부 예산이 사상 최초로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회계상의 이정표가 아니다. 윌리엄 하텅이 지적 하듯, 이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전쟁 산업을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음을 의미한다. 9/11 이후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쏟아부은 돈만 8조 달러에 달한다. 이 돈이면 미국 전체의 전력망을 탄소 제로로 전환하고, 모든 학자금 대출을 탕감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 돈은 사막과 산악 지대에서 증발했고,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참전 군인들에게는 치유되지 않는 정신적 상처만 남겼다. 그런데도 전쟁은 계속된다. 왜일까? 하의 답은 명확하다. " 미국의 정책은 이윤에 기반한다. " 록히드 마틴, RTX(구 레이시온),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노스럽그루먼 등 이른바 ' 빅 파이브' 방산업체들은 9/11 이후 2조 1천억 달러 이상의 국방 계약을 따냈다. 현재 미국 국방 예산의 절반 이상이 민간 계약업체로 흘러간다. 이들에게 전쟁은 사업이고, 평화는 손실이다. 베네수엘라 인근 해상에서 무고한 민 간인들이 " 마약 운반선"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혐의로 미 해군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 동안, 워싱턴의 방산업체 주가는 상승했다. 이 시스템에서 전쟁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무기는 안보를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생산된다. 국방부조차 필요 없다고 판단한 M1 에이브럼스 탱크가 계속 생산된 이유는 국방 계약업체들이 후원하는 싱크 탱크들이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해군이 전투에 부적합하다고 경고한 연안 전투함(LCS, 일명 '형편없는 작은 배)이 계 속 건조된 것도 정치적 압력 때문이다. 전략이 아니라 로비가 무기 체계를 결정한다.


945명의 로비스트들이 국방 계약업체들을 위해 일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외국 정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으로도 등록되어 있다. 전직 국회의원, 국방부 관료, 심지어 국가 최고 지도자의 비서실장들이 퇴임 후 무기를 팔기 위해 문을 회전하듯 드나든다. 이들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같은 권위주의 정권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대가로 수백만 달러의 보수를 받는다. 저널리스트 자말카슈끄지가 살해되었을 때, 미 의회는 잠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수출을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로비스트들이 무대 뒤에서 움직였고, 같은 주에 의원들의 선거 캠페인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이 모든 것이 뇌물처럼 보이지만, 완벽히 합법이다. 왜냐하면 군산복합체는 워싱턴의 법적, 규제적, 문화적 DNA 속에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화요일의 일상이다. 이 기계는 미디어도, 학계도, 심지어 할리우드도 포획했다. 국방부는 영화 제작자 들에게 군사 장비 사용을 허가해주는 대가로 대본을 수정하게 한다. 방산업체가 후원하는 싱크탱크들은 더 많은 무기 구매를 권고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TV 네트워크는 전쟁 기획자들을 전문가로 출연시킨다. 존스 홉킨스 대학은 탄도 미사일 연구를 위해 연간 10억 달러를 받지만, 캠퍼스의 평범한 학생은 이 사실을 모른다. 연구소가 6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버클리는 핵무기 연구소 운영을 돕지만, 학생들은 역시 모른다. 많은 언론사들은 이제 국방부 전담 기자조차 두지 않는다. 그저 국방부 보도자료를 베껴 쓰고, 마지막 32번째 문단에 하텅 같은 비판자의 짧은 인용을 넣어 균형을 맞췄다고 생각한다. 전체 프레임 자체가 친군사적이다. 세계 어딘가에서무언가가 일어나면,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군사적으로 개입할 때마다 재앙이 벌어지는데도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선거 캠페인에서 "끝없는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젭 부 시와 힐러리 클린턴을 비난하며 정치적 자본을 쌓았다. 하지만 이것은 전술일 뿐이다. 트럼프는 필요할 때마다 이 도구를 꺼내 든다. 전쟁과 기업 복지에 지친 유권자층에게 보내는 신호다. 일부는 그가 덜 개입주의적일 것이라 믿고 투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베네수엘라 앞바다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폭격하고,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돕는 무기 지원을 계속하 며, 방산업체들에게 "돈을 주고 규제하지 않을 테니 원하는 대로 하라"고 선언했다. 국방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연설에서 무기 생산 속도를 높이고, 독립적인 무기 실험도 생략하겠다고 말했다. 하텅은 경고한다. " 무기에 있어서, 속도는 죽음을 초래한다." 트럼프의 첫 임기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가까워지며 기록적인 양의 무기를 판매했고, 사우디를 "미국의 일자리 창출자"라고 칭송했다. 실제로 방산업체들은 그를 정치적 동맹으로 본다. 그는 가끔 "핵무기가 너무 많다"고 말하지만, 정책적으로는 핵무기 지출을 늘리고 있다. 그의 발언은 일관성이 없지만, 목적은 명확하다. 전쟁에 회의적인 지지층을 붙잡아두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실리콘밸리 군산복합체의 부상이다. 팔머러키 같은 인물들은 "2년 안에 중국과 전쟁이 날 것"이라며 더 많은 탄약을 외친다. 이들은 자신들이 외교정책을 주도하는 양 행동하며, 스스로를 새로운 기술 메시아로 여긴다. 팔란티르는 가자 전쟁 중 이스라엘에서 이사회를 열었고, 폭격을 가속화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다.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다른 기업들에게 이스라엘 지지를 더 목소리 높여 표현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부통령 JD 밴스는 실리콘밸리에서 성장했고, 피터 틸에게 정치 경력을 빚지고 있다. 그가 부통령으로 지명되자 실리콘밸리에서는 샴페인 코르크가 터졌고, 막대한 자금이 트럼프에게 몰려들었다. 이들은 록히드 마틴 같은 거대 기업들을 대체하려 한다. 정부는 양쪽 모두에게 돈을 지불할 것이다. 록히드 마틴의 하드웨어, 안두의 소프트웨어. 1조 달러는 곧 뒷거울에 비칠 숫자가 될 것이다.


해외에서 작동하는 논리는 국내로도 스며든다. 6,500개가 넘는 미국 경찰서가 '1033 프로그램'을 통해 70억 달러 상당의 국방부 잉여 장비를 받았다. 시위대는 이제 군용 소총, 장갑차, 음향 무기, 대반란 작전용으로 개발된 최루탄에 직면한다. 하텅과 프리먼은 "이것은 경찰이 아니라 준군사 조직"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제국의 부메랑'이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자행한 억압과 테러가 이제 미국 공동체로 돌아왔다. 더 충격적인 것은 경제적 정당성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 지출은 미국 경제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일자리 창출 방식이 되었다. 의료, 교육, 기후 회복력, 청정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 록히드 마틴 같은 기업들은 노조 일자리를 역사적인 속도로 없애고 있으며, 혁신보다는 자사주 매입에 수십억 달러를 쓴다. 자동화는 곧 더 많은 일자리를 없앨 것이다. 군사주의와 고용을 연결하던 경제적 거래는 해체되고 있다. 하지만 하텅과프리먼은 절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기계는 무너뜨릴 수 있다. 역사는 내부자들이 저항하고, 내부고발자들이 책임을 강제하며, 활동가들이 해로운 프로그램을 중단시킨 순간들로 가득하다. 여론은 압도적 으로 새로운 핵무기, 끝없는 전쟁, 억압적 동맹국에 대한 백지수표 원조를 반대한다. 그들은 '새로운 평화 네트워크'를 제 안한다. 빈곤, 인종적 불의, 감시, 기후 파괴, 권위주의 뒤에 군사주의가 통합적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운동들의 연대다. 마틴 루터 킹의 비전에 기반한 '가난한 사람들의 캠페인'은 참전 용사, 노동자, 소외된 공동체를 경제적 착취와 전쟁에 맞선 공동 투쟁으로 끌어들인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다. 돈과 군사주의의 연결고리를 끊는 선거 자금 개혁, 싱크탱크의 이해 충돌을 폭로하는 투명성 법안, 부패에 맞서는 내부자를 보호하는 내부고발자 보호법, 끝없는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중심에 두는 연방 지출 우선순위 재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방어를 중심으로 외교정 책을 재구상하는 것이다. 전쟁 기계는 어디에나 있다. 예산, 로비, 대학, 영화, 경찰서, 정치 캠페인, 스포츠 경기, 그리고 우리가 정치, 사회, 문화, 삶을 논할 때 사용하는 언어 속에. 하지만 괴물은 길들여질 수 있다. 방해받고, 재정 지원이 끊기고, 정당성을 잃고, 대체될 수 있다.


미국이 이번 세기에 단 한번도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8조 달러를 쓰고, 수십만 명에게 정신적 상처를 입히고, 전 세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지만, 안보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는 질문을 바꿀 때다. "우리는 왜 전쟁을 계속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전쟁을 멈출 것인가?" 정보를 얻고, 대표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내부고 발자를 지지하고, 진정으로 독립적인 미디어를 따르고 강화하며, 군사주의에 맞서는 운동을 만들고 참여하고, 끝없는 전쟁이 삶과 자유와 시민권의 대가라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전쟁 기계를 멈출 권한과 힘, 그리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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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만난 수업 - 죽음이 가르쳐준 후회 없는 삶
에리카 하야사키 지음, 이은주 옮김 / 북모먼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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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3년을 기다려야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있다. 뉴저지의 한 대학에서 노마 보우 교수가 가르치는 <죽음에 대한 관점>이라는 수업이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이토록 인기 있는 강좌가 될 수 있다니, 처음엔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에리카 하야사키의 책을 따라가다 보면, 이 역설이 사실은 가장 자연스러운 귀결임을 깨닫게 된다. 젊음의 한가운데 서 있는 학생들이야 말로 죽음에 대해 가장 절실한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마 교수는 학생들을 호스피스로, 교도소 로, 영안실로, 묘지로 데려간다. 때로는 묘비 사이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그녀가 보기에 묘지는 역사책이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숨 쉬는 곳이었다. 우리 발밑에 놓인, 간과되고 활용되지 않은 교실이었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배움의 공간을 외면하며 살아가는지 생각했다. 우리는 죽음을 삶의 변두리로 밀어내고, 애도를 사적인 영역으로 격리시키며, 상실을 빨리 극복해야 할 장애물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노마의 교실은 정반대의 철학 위에 세워져 있다. 죽음을 중심에 두고, 애도를 공유하며, 상실을 통해 배운다. 간호사였던 노마는 죽음을 임상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죽음이 다가올 때 나타나는 신체의 징후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이 이야기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어쩌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진지한 물음들을 던진다. 어떤 학생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슬픔을 안고 수업에 온다. 또 어떤 학생은 가족의 자살 시도, 약물 중독, 폭력의 경험을 이해하려 애쓴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가는 젊은이들. 그들에게 죽음에 대한 수업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에리카 하야사키는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취재한 저널리스트다. 그녀는 그 이후로 수년간 죽음의 무자 비함과 의미를 파악하려 애썼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노마를 인터뷰한 후, 그녀는 연구 목적으로 교수를 따라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노마는 한 가지 조건을 단다. 저자는 반드시 수업에 온전히 참여해야 한다는 것. 관찰자가 아니라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 이 조건이 책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하야사키는 학생들과 함께 묘지를 걸었 고, 자신의 추도사를 썼고, 작별 편지를 썼다. 각 장 사이에 삽입된 과제들 예를 들어, " 잃어버린 누군가에게 작별 편지를 쓰세요 ", “당신 자신의 추도사를 작성하세요 " 은 때로는 학생들의 답변으로, 때로는 하야사키 자신의 답변으로 채워진다. 기자와 취재 대상 사이의 경계가 부드럽게 허물어지는 순간들이다. 노마 보우라는 사람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 같다.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와 마피아와 연루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결국 할머니 손에 자란 여자. 보통 사람들은 흔돈과 역기능에서 도망치지만, 노마는 오히려 그쪽으로 달려갔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때마다 말이다. 학생들은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감지한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위로와 연민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삶 자체가 이미 하나의 교재다. 버려졌지만 생존했고, 상처받았지만 치유자가 되었으며, 죽음을 수없이 목격했지만 삶을 가 르치는 사람. 노마의 만트라는 간결하다. 다른 사람을 도우라. 그리고 그녀는 말한 대로 산다. 학생들이 고민을 안고 찾아 오면,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상담하고 돕는다. 그녀의 학생들도 그 본을 따른다. '변화가 되자(Be the Change)'라는 지역사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협력하고 함께 일하며 변화를 만들어내는 법을 배운다.

책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읽기 편하지 않다. 약물 남용, 자살 시도, 정신 질환, 폭력에 대해 읽고 싶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케이틀린과 그녀의 남자친구 조나단, 조나단의 형제 조시의 이야기는 정신 질환, 중독, 살인, 자살을 포함한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희망적인 선율을 울린다. 나는 이 불편함이 책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책이 추상적이고 철학적이기만 하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회피일 것이다. 하야사키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선택했다. 한 특정한 시간의 한 특정한 교실 이야기. 보편적인 죽음의 탐구라기보다는, 매우 특수하고 구체적인 경험의 기록. 나는 이것이 정직함이라고 본다. 죽음과 삶에 대한 '정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은 각자의 씨름, 각자의 질문, 각자의 의미 만들기뿐이다. 하야사키는 자신이 그 정답을 찾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한 학기 동안, 그리고 그 후 3년 반 동안 노마와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목격한 것을 보여준다. 소설처럼 읽히는 서사 구조, 각 장마다 초점을 바꾸며 여러 이야기 선을 엮어가는 방식은 책에 중독성있게 한다.

'The Death Class'를 읽으며 나는 계속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내 추도사에 무엇이 쓰이기를 바라는가? 내가 작별을 고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되돌리기 버튼이 있다면 나는 무엇을 바꿀 것인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해방적이다.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 결국 더 온전하게 사는 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노마가 가르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죽음을 관점에 두고(in perspective) 삶을 바라보는 법. 끝이 있기에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 상실을 피할 수 없기에 연결이 의미 있다는 것. 우리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평등하게 하고 인간답게 만드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책은 한 학기의 수업에 대한 기록이지만, 동시에 훨씬 더 큰 것에 대한 질문이다. 어떻게 고통을 의미로 전환할 것인가? 어떻게 상실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배우며 삶을 더 깊이 살 것인가? 하야 사키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함께 걷는다. 묘지를 거닐고, 과제를 쓰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한다. 이 불편하지만 필수적인 여정에 동참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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