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 만난 수업 - 죽음이 가르쳐준 후회 없는 삶
에리카 하야사키 지음, 이은주 옮김 / 북모먼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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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3년을 기다려야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있다. 뉴저지의 한 대학에서 노마 보우 교수가 가르치는 <죽음에 대한 관점>이라는 수업이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이토록 인기 있는 강좌가 될 수 있다니, 처음엔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에리카 하야사키의 책을 따라가다 보면, 이 역설이 사실은 가장 자연스러운 귀결임을 깨닫게 된다. 젊음의 한가운데 서 있는 학생들이야 말로 죽음에 대해 가장 절실한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마 교수는 학생들을 호스피스로, 교도소 로, 영안실로, 묘지로 데려간다. 때로는 묘비 사이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그녀가 보기에 묘지는 역사책이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숨 쉬는 곳이었다. 우리 발밑에 놓인, 간과되고 활용되지 않은 교실이었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배움의 공간을 외면하며 살아가는지 생각했다. 우리는 죽음을 삶의 변두리로 밀어내고, 애도를 사적인 영역으로 격리시키며, 상실을 빨리 극복해야 할 장애물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노마의 교실은 정반대의 철학 위에 세워져 있다. 죽음을 중심에 두고, 애도를 공유하며, 상실을 통해 배운다. 간호사였던 노마는 죽음을 임상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죽음이 다가올 때 나타나는 신체의 징후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이 이야기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어쩌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진지한 물음들을 던진다. 어떤 학생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슬픔을 안고 수업에 온다. 또 어떤 학생은 가족의 자살 시도, 약물 중독, 폭력의 경험을 이해하려 애쓴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가는 젊은이들. 그들에게 죽음에 대한 수업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에리카 하야사키는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취재한 저널리스트다. 그녀는 그 이후로 수년간 죽음의 무자 비함과 의미를 파악하려 애썼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노마를 인터뷰한 후, 그녀는 연구 목적으로 교수를 따라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노마는 한 가지 조건을 단다. 저자는 반드시 수업에 온전히 참여해야 한다는 것. 관찰자가 아니라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 이 조건이 책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하야사키는 학생들과 함께 묘지를 걸었 고, 자신의 추도사를 썼고, 작별 편지를 썼다. 각 장 사이에 삽입된 과제들 예를 들어, " 잃어버린 누군가에게 작별 편지를 쓰세요 ", “당신 자신의 추도사를 작성하세요 " 은 때로는 학생들의 답변으로, 때로는 하야사키 자신의 답변으로 채워진다. 기자와 취재 대상 사이의 경계가 부드럽게 허물어지는 순간들이다. 노마 보우라는 사람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 같다.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와 마피아와 연루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결국 할머니 손에 자란 여자. 보통 사람들은 흔돈과 역기능에서 도망치지만, 노마는 오히려 그쪽으로 달려갔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때마다 말이다. 학생들은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감지한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위로와 연민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삶 자체가 이미 하나의 교재다. 버려졌지만 생존했고, 상처받았지만 치유자가 되었으며, 죽음을 수없이 목격했지만 삶을 가 르치는 사람. 노마의 만트라는 간결하다. 다른 사람을 도우라. 그리고 그녀는 말한 대로 산다. 학생들이 고민을 안고 찾아 오면,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상담하고 돕는다. 그녀의 학생들도 그 본을 따른다. '변화가 되자(Be the Change)'라는 지역사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협력하고 함께 일하며 변화를 만들어내는 법을 배운다.

책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읽기 편하지 않다. 약물 남용, 자살 시도, 정신 질환, 폭력에 대해 읽고 싶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케이틀린과 그녀의 남자친구 조나단, 조나단의 형제 조시의 이야기는 정신 질환, 중독, 살인, 자살을 포함한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희망적인 선율을 울린다. 나는 이 불편함이 책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책이 추상적이고 철학적이기만 하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회피일 것이다. 하야사키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선택했다. 한 특정한 시간의 한 특정한 교실 이야기. 보편적인 죽음의 탐구라기보다는, 매우 특수하고 구체적인 경험의 기록. 나는 이것이 정직함이라고 본다. 죽음과 삶에 대한 '정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은 각자의 씨름, 각자의 질문, 각자의 의미 만들기뿐이다. 하야사키는 자신이 그 정답을 찾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한 학기 동안, 그리고 그 후 3년 반 동안 노마와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목격한 것을 보여준다. 소설처럼 읽히는 서사 구조, 각 장마다 초점을 바꾸며 여러 이야기 선을 엮어가는 방식은 책에 중독성있게 한다.

'The Death Class'를 읽으며 나는 계속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내 추도사에 무엇이 쓰이기를 바라는가? 내가 작별을 고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되돌리기 버튼이 있다면 나는 무엇을 바꿀 것인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해방적이다.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 결국 더 온전하게 사는 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노마가 가르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죽음을 관점에 두고(in perspective) 삶을 바라보는 법. 끝이 있기에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 상실을 피할 수 없기에 연결이 의미 있다는 것. 우리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평등하게 하고 인간답게 만드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책은 한 학기의 수업에 대한 기록이지만, 동시에 훨씬 더 큰 것에 대한 질문이다. 어떻게 고통을 의미로 전환할 것인가? 어떻게 상실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배우며 삶을 더 깊이 살 것인가? 하야 사키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함께 걷는다. 묘지를 거닐고, 과제를 쓰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한다. 이 불편하지만 필수적인 여정에 동참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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