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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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5년 5월 8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는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숨죽이며 발코니에 나타날 새 교황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 발표된 이름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시카고 출신의 로버트 프란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 레오 14세로 선출된 것이다. 미국인 교황의 탄생은 가톨릭교회 2천 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책은 바로 이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책이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마지막 날들부터 콘클라베 과정, 그리고 새로운 교황의 선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저널리즘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교황청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내밀한 대화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달한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주교성성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화이트는 그와 직접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러한 개인적 접촉은 책 전반에 걸쳐 깊이와 신뢰성을 더해준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재임 기간과 그의 주요 업적들을 다룬다. 화이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혁명적인 변화들,시노드 방식의 도입, 이민자 문제에 대한 강력한 목소리, 기후 변화를 사회 정의의 문제로 재정립한 것 등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평가한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큰 성과가 "권력에 집중하는 교회에서 사목적 봉사에 집중하는 교회로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었다고 평가한다. 동시에 교황청 개혁에서의 실패나 저항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성급한 성인 시성을 피하고 객관성을 유지한다. 중반부는 콘클라베 과정의 신비를 벗겨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순간들, 사망 선언, 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반응을 거쳐, 고대의 비밀 유지 관행과 소셜 미디어 차단이 뒤섞인 콘클라베 과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화이트는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면서도, 부상하는 유력 후보들과 무대 뒤의 대화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책의 백미는 후반부인 3부다. 여기서 화이트는 프레보스트의 선출 과정과 그의 생애를 상세히 다룬다.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에서 자란 어린 시절, 성소를 키워준 교회, 페루의 시골 교구에서의 사목 경험, 그리고 로마에서 주교들을 심사하는 역할까지, 레오 14세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펼쳐진다.

교황 레오 14세를 이해하는 핵심은 그의 페루 경험에 있다. 화이트가 강조하듯, 프레보스트의 사목 방식은 페루의 시골 지역에서 형성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평신도들 및 지역 지도자들과의 협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었다. 이러한 협력적이고 참여적인 리더십 스타일은 그의 정체성의 핵심이 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프레보스트가 단순히 미국인 사제가 아니라, 국제적 경험을 쌓은 글로벌 사목자라는 사실이다. 페루와 미국을 오가며 그는 라틴 아메리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발전시켰고, 이는 그를 미국 주교회의의 다른 주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로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이 국제적 시야가 그를 글로벌 교회의 지도자로 만든 자산이 되었다. 프레보스트가 교황 레오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역사적으로 레오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들은 강력한 리더십과 개혁 정신으로 알려져 있다. 화이트는 이 선택에 담긴 의미를 추측하면서, 새 교황의 비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었다면, 레오 14세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출신 첫 교황이다. 그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어머니 성 모니카에 대한 헌신은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교황으로 선출된 후 첫 발코니 등장에서 그는 추기경 서품 시 받은 십자가를 착용했는데, 이 십자가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모니카의 유물이 담겨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유산(내면의 성찰, 은총에 대한 강조, 공동체의 중요성)은 레오 14세의 교황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는 레오 14세를 "내성적이지만 결단력 있고, 협의를 중시하지만 비전이 명확한" 인물로 묘사한다.

책의 중심 질문 중 하나는 레오 14세가 프란치스코의 개혁 의제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수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화이트는 역사적 유추를 활용한다. 레오 14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은 베네딕토 16세처럼 전임자의 업적을 조용히,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게 이어가는 교황이 될 것인가? 아니면 요한 23세의 뒤를 이은 바오로 6세처럼 전임자의 원대한 비전을 실행하는 교황이 될 것인가? 저자는 신중하게도 단정적인 예측을 피한다. 대신 레오 14세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유형의 교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현명한 접근이다. 프레보스트 본인도 아직 자신이 어떤 교황이 될지 완전히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단서는 있다. 여성들과 함께 대학원 공부를 했고, 평신도 권한 강화를 중시했던 사제. 어린 시절부터 성소가 분명했고, 협력적 리더십을 실천해온 목자. 화이트가 희망하듯, 레오 14세는 "정치적 혼란의 시대에 도덕적 목소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화이트의 책은 역사적 순간의 첫 기록이다. 이는 최종적인 평가가 아니라, 여정의 시작점에 대한 스냅샷이다. 교황 레오 14세가 어떤 교황이 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여정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데 필요한 맥락과 통찰을 제공한다.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미국인이든 아니든, 이 책은 21세기 가톨릭교회가 직면한 도전과 기회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출발점이다. 화이트의 균형 잡힌 저널리즘과 내부자적 시각은 복잡한 주제를 접근 가능하게 만든다. 책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명확하다. 어린 시절부터 성소가 분명했고, 여성들과 함께 배웠으며, 평신도 권한 강화로 특징지어진 사목을 펼친 교황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화이트가 희망하듯, 정치적 혼란의 시대에 레오 14세가 진정한 도덕적 목소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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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 - 김주하 앵커가 단단한 목소리로 전하는 위로
김주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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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주하. 그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뉴스 화면 속 단정한 모습과 또렷한 발음이었다. 그런 그가 에세이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궁금했다. 카메라 앞에서 세상의 소식을 전하던 그 목소리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어떤 온도를 가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저 독특한 제목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서점에서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하얀 빙판과 작은 생명체의 실루엣.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 이상하게도 이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위태로움과 고독함, 그리면서도 어딘가 아름다운 이미지. 결국 나는 그 이미지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느꼈다. 이건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구나. 김주하는 자신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목소리 때문에 낙방했던 이야기,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산산조각 나던 순간, 아이와 나눈 절절한 대화들. 그 모든 것이 과장이나 미화 없이, 있는 그대로 적혀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유명인의 에세이가 결국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고통의 과정을 지나치게 축약하고 결과만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김주하는 무너지는 순간을 세밀하게 묘사했고, 그 과정에서 느낀 수치심과 절망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읽으면서 나는 여러 번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어떤 문장들은 너무 아파서, 어떤 문장들은 너무 따뜻해서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그의 글은 위로하려는 의도로 쓰인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뿐인데, 그 진정성이 역설적으로 깊은 위안이 되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이미지는 역시 제목에 담긴 그 장면이다. 겨울 한강, 단단하게 얼어붙은 강 위를 홀로 걸어가는 고양이. 김주하는 이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을 은유한다. 얼음 위를 걷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언제 금이 갈지, 언제 발이 빠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걷는다. 조심스럽지만 멈추지 않고, 외롭지만 앞으로 나아간다. 이 이미지가 주는 힘은 대단했다. 화려하거나 극적이지 않지만, 묵묵히 견디는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문득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직장에서 버티고 있는 동료, 육아로 지쳐 보이는 친구, SNS에는 웃는 얼굴만 올리지만 힘들어하는 지인들. 우리 모두 각자의 빙판 위를 걷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사실을 서로 모른 채, 혼자라고 생각하며 견디고 있는 건 아닐까.

김주하가 이 책에서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개인의 아픔이 어떻게 사회적 연대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흔히 상처를 극복의 대상으로만 본다. 빨리 치유하고, 잊고, 다시 일어서야 할 무언가로. 하지만 김주하는 다른 제안을 한다. 상처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연대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물론 이것이 상처를 미화하자는 말은 아니다. 아픔은 여전히 아프고, 힘든 시간은 여전히 힘들다. 다만 그 경험이 나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통찰이 책 전체를 관통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책을 덮고 며칠이 지났지만, 한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당신은 오늘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했나요?" 김주하가 던진 이 물음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거창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일상 속에서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고, 작은 친절을 실천할 기회를 찾으라고 말한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 힘들어 보이는 동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혹은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 책을 읽은 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대화할 때 더 주의 깊게 듣게 되었다. 완전히 변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명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혼자라는 느낌에 지친 사람들에게 책은 동행이 되어줄 것이다. 반짝이는 성공담이 아니라 진짜 삶의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사회에 발을 딛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그러면서도 때때로 무너지는 우리들.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괜찮다고,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그리고 함께 걸어갈 수 있다고.

얼어붙은 한강 위를 걷는 고양이의 이미지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위태롭지만 아름답고, 외롭지만 당당한 그 모습.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초상이 아닐까. 책은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상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작은 용기들이 모여 누군가의 길이 된다는 것을 조용히 일깨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오늘 나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발밑의 얼음은 지금 얼마나 단단할까. 질문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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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마주하면 길이 보인다 - 내 삶을 가로막는 핵심 감정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사는 법
문요한 지음 / 서스테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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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문득, 별일도 아닌데 가슴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마음을 짓누르거나, 혼자 있는 밤이면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오는 순간들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감정들을 '그냥 그런 날'이라고 치부하며 지나친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문요한님의 저서 <감정을 마주하면 길이 보인다>는 이러한 반복되는 감정의 무너짐 뒤에 더 깊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특별한 종류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핵심 감정'이라 부른다. 이는 기분이 나쁜 상태를 넘어서,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 자체를 결정짓는 힘을 가진 감정이다. 마치 화산 아래 잠든 마그마처럼,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특정한 순간이 오면 격렬하게 분출하여 우리 삶을 흔들어놓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핵심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건강한 감정 상태에서는 서운한 일이 있으면 서운함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 감정이 흘러간다. 하지만 핵심 감정에 지배받는 사람들은 다르다.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나, 작은 실수 하나에 자신을 형편없는 인간이라 단정 짓는다. 현재의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굳어진 감정 패턴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핵심 감정의 주요 유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는 근본적 불안이다. "언제든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둘째는 울분으로,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억눌린 분노가 끓고 있는 상태다. 셋째는 만성적 공허감이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쇼핑을 하고, SNS를 끊임없이 확인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이 있다. 넷째는 무력감으로,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마지막으로 원초적 수치심은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가장 깊은 고통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과거의 특정 순간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하며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가 맺는 관계의 패턴, 선택하는 길, 심지어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모두 이 핵심 감정의 영향 아래 있다.

그렇다면 이 핵심 감정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감정적 방치'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신체적 학대나 폭력보다 훨씬 미묘하고 흔하지만, 그만큼 오래 지속되는 상처다. "울지 마", "그 정도로 힘들다고 하면 안 돼", "예민하게 굴지 마"와 같은 말들이 반복될 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배운다. 부모가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부모 자신도 감정을 억압하는 문화에서 자랐기에, 아이의 감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뿐이다. 문제는 감정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 마치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속에서 말이다.

변화의 첫걸음은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감정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심리학자 다이애나 포샤는 이 순간을 '찰칵 경험'이라 명명했다. 오랫동안 잠긴 방문에 딱 맞는 열쇠가 맞물리는 느낌이다. 상담 현장에서 사람들은 종종 이런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한다. "아, 이게 불안이었구나", "내가 느낀 건 공허감이었어", "나는 무기력한 게 아니라 수치심 때문에 그랬던 거야". 그 순간 뭔가 달라진다. 막막하기만 하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것의 정체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핵심 감정을 자신의 본질로 착각한다. "나는 원래 무기력한 사람이야", "나는 쓸모없어"라고 자신을 규정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착각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형편없다고 생각하며 나온 사람은 없다. 이러한 부정적 정체성은 본질이 아니라 상처가 굳어진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이런 감정을 품고 자란 사람들은 그 상처가 마치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자기답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핵심 감정이 정체성을 이루고 성격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기력하지 않았던 시간도, 의욕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 순간의 당신도 당신이다.

핵심 감정을 해소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회복의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자기연민과 자기돌봄 없이 상처를 마주하면 오히려 다시 상처받을 수 있다. 안전한 심리적 공간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는 몸의 감각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감정은 생각보다 먼저 몸으로 온다. 가슴의 답답함, 어깨의 긴장, 목의 뜨거움 등 몸은 언제나 감정의 첫 번째 증언자다. 세 번째는 억눌렀던 핵심 감정을 다시 경험하고 처리하는 것이다. 그 감정이 하고 싶었던 말을 들어준다. "감정은 감정으로 치유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반응 패턴을 구축한다. 핵심 감정이 올라올 때 예전과 다르게 반응하는 법을 연습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핵심 감정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전환된다.

나는 늘 생각으로 삶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 삶을 진짜로 결정짓는 것은 생각보다 더 빠르고 선명한 감정이다. 잘 느끼지 못하면 잘 살아갈 수 없다. 감정을 회피하면 미래를 잃는다. 감정을 마주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때로는 숨이 멎을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어선 자리에 우리가 오래도록 찾던 삶의 방향이 기다린다. 빛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빛은 감정의 어둠을 통과하며 우리 안에서 켜진다. 이것이 문요한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마음속 가시를 뽑아낼 용기를 가질 때, 삶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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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6-02-2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떻게 이렇게 기가막히게 잘쓰지?
 
무통 혁명 - 5분 운동으로 재발 없이
홍경진(닥터홍선생)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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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인의 삶에서 통증은 낯선 방문객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뻐 근한 목,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다 느껴지는 허리의 묵직함, 스마트 폰을 보다 찾아오는 어깨의 불편함. 우리는 이런 통증들과 함께 살아 가며, 때로는 그것이 삶의 일부라고 체념하기도 한다. 정형외과 전문 의 홍경진이 쓴 <무통 혁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관절 건강 과 통증 관리에 필수적인 지식을 담고 있다. 통증을 참고 견디거나 일 시적으로 완화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로 읽어 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은 통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 좋아지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픈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통증의 대부분은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자세와 움직임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어깨 충돌증후군을 예로 들어보자. 병원에서 염증 부위에 주사를 맞으면 당장은 증상이 좋아진다. 하지만 통증을 유발했던 일상의 동작과 자세가 그대로라면, 회전근개는 계속해서 견봉과 상완골 사이에 끼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염증은 재발하고, 반복되는 충돌은 회전근개 파열이라는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약물과 시술은 증상을 완화시킬 뿐, 통증을 만드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관점은 미국의 물리치료학자 셜리 샤먼의 이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잘못된 자세와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의 특성을 바꾸고, 결국 통증과 손상을 불러온다.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자세, 한쪽으로만 누워 자는 습관, 같은 방향으로만 몸을 돌리는 작업. 이런 무의식적인 반복이 관절과 근육에 지속적인 자극을 주며 조직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통증을 해결하려면 그 동작을 만드는 일상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메시지다.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개념은 '최소 저항의 경로'다. 전류가 저항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우리 몸의 움직임도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관절과 근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허리를 펴고 어깨를 펴며 바른 자세를 의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리는 구부정해지고 엉덩이는 뒤로 빠진다. 왜일까?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덜 힘든 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땅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허리가 뻣뻣한 사람은 허리를 편 채로 무릎이나 등을 더 구부려서 물건을 줍는다. 고관절이 뻣뻣하다면 허리를 많이 굽히면서 줍게 된다. 한두 번은 문제없지만, 이런 동작이 반복되면 많이 사용하는 관절에 무리가 가고 퇴행성 변화나 통증이 발생한다. 이는 상대적인 유연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한 부위가 뻣뻣하면, 상대적으로 유연한 다른 부위가 그 역할을 대신하며 과도하게 사용된다. 척추관 협착증 수술 후 고정한 부위는 멀쩡한데 그 위아래에서 퇴행성 변화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원리다. 따라서 우리 몸 어느 한 부위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신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통증 예방의 핵심이 된다.

저자는 통증 치료에서 근막의 역할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의학계는 뼈와 근육 중심의 부위별 치료에 집중해왔다. 어깨가 아프면 어깨만, 허리가 아프면 허리만 보는 식이었다. 하지만 근막은 거미줄처럼 우리 몸 전체를 덮고 연결하고 있어서, 한 부위의 문제가 연결된 다른 부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토마스 마이어스가 제시한 '근막 경선' 이론은 이를 잘 보여준다. 어떤 근막은 목 뒤에서 복부를 지나 반대쪽 다리로 이어지고, 다른 근막은 목 뒤에서 허리를 거쳐 양쪽 다리 뒤로 연결되어 있다. 책에서 소개된 사례가 이를 생생히 보여준다. 만성 목 통증으로 1년간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던 환자가 있었다. 검사 결과 경추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지만, 과거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복부 근막을 확인했다. 복부 수술 부위의 근막에 문제가 있었고, 이를 치료하자 목 통증이 점차 사라졌다. 이처럼 통증의 원인은 아픈 부위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근막은 잘못된 자세나 과사용, 수술 등으로 두꺼워지고 딱딱해진다. 긴장된 근막이 주변 신경이나 혈관을 압박하면 통증이 생기고, 움직임이 제한된 부위를 보상하기 위해 다른 부위의 근막이 늘어나며 모양이 변한다. 따라서 두껍고 딱딱해진 근막을 이완시키고 풀어주는 치료를 병행해야 균형 잡힌 몸의 정렬을 회복하고 통증 없이 움직일 수 있다.

책은 근육의 역할을 속근육과 겉근육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속근육은 몸을 움직일 때 중심을 잡아 안정시키는 역할을, 겉근육은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크게 움직일 때 힘을 내는 역할을 한다. 이 둘의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속근육이 약해져 척추를 제대로 지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겉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척추와 디스크에 과도한 부담이 쌓이며 손상이 생긴다. 반대로 속근육은 튼튼한데 겉근육이 약하면, 큰 움직임에 필요한 힘이 곧바로 디스크에 전달되어 역시 손상과 통증을 일으킨다. 저자는 코어근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풍선에 비유한다. 배 안에 풍선이 있고, 코어근육이 사방에서 그 풍선을 감싸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코어근육이 튼튼하면 풍선 내부의 압력이 높게 유지되면서 척추와 골반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다. 위쪽의 폐와 흉부까지 단단히 받쳐주어 허리와 등이 곧게 설 수 있다. 하지만 코어근육이 약해지면 척추와 골반을 지지하지 못해 허리가 굽고, 흉부를 받쳐주지 못해 라운드숄더와 거북목이 된다. 거북목은 목 뒤쪽 근육의 긴장을 높여 통증을 유발하고, 라운드숄더는 어깨 충돌증후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깨가 아프면 팔꿈치나 손목에 더 힘을 주게 되고, 결국 이런 부분에도 힘줄염이나 퇴행성 변화가 발생한다. 코어가 무너지면 우리 몸 전체에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운동법은 명확한 순서를 따른다. 1단계는 스트레칭, 2단계는 안정화 운동, 3단계는 강화 운동이다. 통증이 발생하면 우리 몸은 반사적으로 주변 근육을 긴장시켜 척추를 보호하려 한다. 일시적이라면 문제없지만, 잘못된 자세가 지속되면 근육 긴장이 유지되고 혈류가 감소하며 조직 회복이 방해받는다. 스트레칭은 이런 근육 긴장을 풀고 이완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경직된 근육과 인대는 정상적인 움직임을 제한하며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데, 스트레칭은 조직의 유연성을 회복시켜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넓히고 통증을 완화한다. 책에서는 정적 스트레칭, 동적 스트레칭, 자가근막이완의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정적 스트레칭은 정지된 상태에서 천천히 근육을 늘리는 방식으로, 15~30초씩 유지하며 총 60초 정도 실시하는 것이 좋다. 동적 스트레칭은 관절을 움직이면서 근육을 푸는 방식으로 주로 운동 전 준비운동에 해당한다. 자가근막이완은 마사지에 가까운 방법으로, 폼롤러 등을 이용해 긴장된 근육 부위에 가볍게 압력을 가하며 천천히 굴려준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칭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이다. 아파야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통증을 참아가며 스트레칭하면 오히려 근육과 근막이 손상될 수 있다. 가벼운 불편감이나 긴장이 느껴지는 정도까지만 하면서 점차 부하를 늘려가야 한다. 또한 짧고 빠르게 해야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근육을 늘린 채로 15초 이상 유지해야 우리 몸이 근육의 늘어난 길이에 익숙해지면서 가동 범위를 늘릴 수 있다. 안정화 운동은 코어근육을 강화하는 단계다. 저자는 횡격막 호흡법, 케겔 운동, 고양이-소 자세 등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운동을 소개한다. 이런 운동들은 복횡근과 다열근 같은 속근육을 활성화시켜 척추와 골반의 안정성을 높인다. 강화 운동은 마지막 단계로, 관절이 어느 정도 풀어지고 안정성이 확보된 후에 진행한다. 회전근개와 견갑골 주변 근육, 대둔근 같은 주요 근육을 강화하여 재발을 방지한다.

많은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지만 금방 포기한다. 저자는 이것이 의지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짜 이유는 습관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습관은 신호, 행동, 보상의 3단계 구조로 형성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양치하는 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도 이 구조 때문이다. 운동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한 5단계 방법이 제시된다. 첫째, 명확한 신호를 결정한다. 시간, 장소, 감정, 행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둘째, 아주 단순한 것부터 시작한다. 거창한 목표는 금방 포기하게 만든다. 작은 운동 하나만 시작해도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운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운동 후 즉각적인 보상을 준다. 운동은 효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다른 즉각적인 보상을 정해야 한다. 넷째, 운동을 좋아하는 활동과 연결한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운동하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섯째, 다른 사람과 함께하거나 알린다. 사회적 연결이 습관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다. 습관이 잘 형성되면 뇌는 자동으로 이 행동을 반복하려 한다. 이를 '골든 루프'라고 한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운동을 특별한 일로 생각하지 않고 일상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운동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듯이 정해진 시간에 운동한다.

책이 제공하는 가장 큰 가치는 통증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통증은 제거해야 할 불편함이 아니라,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다. 잘못된 자세와 움직임, 불균형한 근육 사용, 경직된 근막. 이런 요소들이 오랜 시간 쌓여 통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일시적인 증상 완화가 아니라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통증은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나쁜 자세가 천천히 쌓여 나타난 결과다. 일상에서 나쁜 자세와 동작 습관을 바꾸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다. 이 책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스트레칭으로 긴장을 풀고, 안정화 운동으로 중심을 잡고, 강화 운동으로 재발을 방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 지속 가능하게 한다. 통증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통증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무통 혁명』이 제안하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특별한 도구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루 5분, 내 몸의 신호를 듣고 올바른 움직임을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오랫동안 통증으로 고생해온 사람들에게, 이 책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몸을 다시 회복시키는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통혁명 #통증해방 #5분운동 #체인지업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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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로 여는 새로운 세계 - 유전학자가 들려주는 60가지 과학의 순간들
천원성 지음, 박영란 옮김 / 미디어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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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내리고, 점심에는 볶음밥을 만들고, 저녁에는 탄산수를 마신다. 이 모든 순간이 그저 일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천원성 교수의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이 사실은 과학 그 자체였다는 것. 일상 속에서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앤더슨의 실험 이야기였다. 시험관에 녹말을 넣고 가열한 뒤 망치로 깨뜨리는 실험. 세 개는 폭발했지만 네 번째는 다공성 덩어리가 되었다. 여기서 그가 멈추지 않고 "이것으로 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우리가 즐겨 먹는 뻥튀기가 바로 이런 과학적 호기심에서 탄생했다니. 나는 얼마나 자주 질문하며 살아왔을까. 학창 시절, 과학은 암기해야 할 공식들의 나열이었다. 시험을 위해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잊어버리는 지식. 하지만 진짜 과학은 그게 아니었다. 과학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되고, "그렇다면?"이라는 상상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여정이었다.

고산 지역의 암 발생률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인과관계를 착각하는지 보여준다. 맑은 공기와 건강한 식단에도 불구하고 암 발생률이 높다면, 사람들은 쉽게 "건강한 생활이 소용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오래 살기 때문이었다. 장수 자체가 암의 위험 요인인데, 이를 간과하고 표면적인 상관관계만 본 것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통계를 보고, 뉴스를 읽고, 누군가의 경험담을 들으며 우리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 과학적 사고란 바로 이런 함정을 경계하는 태도가 아닐까. 겉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진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퓨린 농도에 관한 설명을 읽으며 내가 먹는 음식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새싹이나 어린잎에 퓨린이 더 많은 이유가 세포 분열이 활발하기 때문이라니. 식물의 생장점에서는 새로운 세포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물질들의 농도가 달라진다. "콩나물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넘어서, 왜 그런지를 세포 수준에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주방에서 쌀국수를 볶을 때도, 커피를 내릴 때도 과학이 작동하고 있었다. 겔 여과라는 기술이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화학 반응이 새로운 맛을 창조했다. 요리를 하면서 "왜 이렇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더라면, 나는 더 나은 요리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윈의 이야기는 특히 가슴에 남았다.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도 평생 병을 앓았고, 자녀들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는 자신의 근친혼이 아이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영국 의회에까지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의회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과학자도 한 명의 인간이다. 불안해하고, 후회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멈추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의 길이다. 책에서 소개된 여러 과학자들의 일화는 과학이 완벽한 천재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끈질긴 호기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발전해 왔음을 보여준다. 카페인과 광 회복 메커니즘에 관한 농담 같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발터 하름 교수의 연구를 듣고 배구 전에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걱정했다는 이야기. 나중에야 인간에게는 애초에 그런 메커니즘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우스운 결말. 과학자들도 이렇게 웃고, 오해하고, 서로에게 배운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떠오른다. 사과는 교환해도 하나지만, 아이디어는 교환하면 둘이 된다. 과학의 발전은 바로 이런 아이디어의 교환에서 비롯되었다. 위대한 과학자도, 위대한 발견도 진공 상태에서 홀로 탄생하지 않는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논쟁하면서 과학은 전진해 왔다. 현대의 mRNA 백신도 마찬가지다. 유전자를 화학적으로 합성하고, RNA 중합 효소를 이용하며, 나노지질입자로 감싸는 복잡한 과정. 이 모든 것이 수많은 과학자들의 협력과 축적된 지식의 결과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 앞에서 과학은 놀라운 속도로 해답을 찾아냈다. 특히 흥미로웠던 개념은 억제 돌연변이였다.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가지고도 발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들의 유전체에는 그 돌연변이를 상쇄하는 또 다른 돌연변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유전학의 원리를 넘어서, 인생의 비유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른 요소들이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 약점이 있어도 강점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 과학이 때로는 이렇게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도, 저녁에 바라보는 하늘에서도 과학을 본다. 왜 이렇게 되는지, 어떤 원리가 작용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품고 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 과학은 어려운 공식이나 복잡한 이론이 아니다.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고, 질문하는 용기이며,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천원성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질문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본다. 나는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왜?"라고 물었을까.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의문을 품었을까. 과학적 사고란 실험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일상 속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좀 더 천천히, 좀 더 주의 깊게 세상을 관찰하고 싶다. 음식을 먹을 때도, 거리를 걸을 때도,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과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이니까.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자세, 생각하는 방법, 그리고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태도에 관한 책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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