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고로 여는 새로운 세계 - 유전학자가 들려주는 60가지 과학의 순간들
천원성 지음, 박영란 옮김 / 미디어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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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내리고, 점심에는 볶음밥을 만들고, 저녁에는 탄산수를 마신다. 이 모든 순간이 그저 일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천원성 교수의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이 사실은 과학 그 자체였다는 것. 일상 속에서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앤더슨의 실험 이야기였다. 시험관에 녹말을 넣고 가열한 뒤 망치로 깨뜨리는 실험. 세 개는 폭발했지만 네 번째는 다공성 덩어리가 되었다. 여기서 그가 멈추지 않고 "이것으로 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우리가 즐겨 먹는 뻥튀기가 바로 이런 과학적 호기심에서 탄생했다니. 나는 얼마나 자주 질문하며 살아왔을까. 학창 시절, 과학은 암기해야 할 공식들의 나열이었다. 시험을 위해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잊어버리는 지식. 하지만 진짜 과학은 그게 아니었다. 과학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되고, "그렇다면?"이라는 상상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여정이었다.

고산 지역의 암 발생률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인과관계를 착각하는지 보여준다. 맑은 공기와 건강한 식단에도 불구하고 암 발생률이 높다면, 사람들은 쉽게 "건강한 생활이 소용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오래 살기 때문이었다. 장수 자체가 암의 위험 요인인데, 이를 간과하고 표면적인 상관관계만 본 것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통계를 보고, 뉴스를 읽고, 누군가의 경험담을 들으며 우리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 과학적 사고란 바로 이런 함정을 경계하는 태도가 아닐까. 겉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진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퓨린 농도에 관한 설명을 읽으며 내가 먹는 음식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새싹이나 어린잎에 퓨린이 더 많은 이유가 세포 분열이 활발하기 때문이라니. 식물의 생장점에서는 새로운 세포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물질들의 농도가 달라진다. "콩나물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넘어서, 왜 그런지를 세포 수준에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주방에서 쌀국수를 볶을 때도, 커피를 내릴 때도 과학이 작동하고 있었다. 겔 여과라는 기술이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화학 반응이 새로운 맛을 창조했다. 요리를 하면서 "왜 이렇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더라면, 나는 더 나은 요리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윈의 이야기는 특히 가슴에 남았다.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도 평생 병을 앓았고, 자녀들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는 자신의 근친혼이 아이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영국 의회에까지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의회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과학자도 한 명의 인간이다. 불안해하고, 후회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멈추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의 길이다. 책에서 소개된 여러 과학자들의 일화는 과학이 완벽한 천재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끈질긴 호기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발전해 왔음을 보여준다. 카페인과 광 회복 메커니즘에 관한 농담 같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발터 하름 교수의 연구를 듣고 배구 전에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걱정했다는 이야기. 나중에야 인간에게는 애초에 그런 메커니즘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우스운 결말. 과학자들도 이렇게 웃고, 오해하고, 서로에게 배운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떠오른다. 사과는 교환해도 하나지만, 아이디어는 교환하면 둘이 된다. 과학의 발전은 바로 이런 아이디어의 교환에서 비롯되었다. 위대한 과학자도, 위대한 발견도 진공 상태에서 홀로 탄생하지 않는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논쟁하면서 과학은 전진해 왔다. 현대의 mRNA 백신도 마찬가지다. 유전자를 화학적으로 합성하고, RNA 중합 효소를 이용하며, 나노지질입자로 감싸는 복잡한 과정. 이 모든 것이 수많은 과학자들의 협력과 축적된 지식의 결과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 앞에서 과학은 놀라운 속도로 해답을 찾아냈다. 특히 흥미로웠던 개념은 억제 돌연변이였다.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가지고도 발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들의 유전체에는 그 돌연변이를 상쇄하는 또 다른 돌연변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유전학의 원리를 넘어서, 인생의 비유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른 요소들이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 약점이 있어도 강점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 과학이 때로는 이렇게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도, 저녁에 바라보는 하늘에서도 과학을 본다. 왜 이렇게 되는지, 어떤 원리가 작용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품고 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 과학은 어려운 공식이나 복잡한 이론이 아니다.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고, 질문하는 용기이며,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천원성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질문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본다. 나는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왜?"라고 물었을까.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의문을 품었을까. 과학적 사고란 실험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일상 속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좀 더 천천히, 좀 더 주의 깊게 세상을 관찰하고 싶다. 음식을 먹을 때도, 거리를 걸을 때도,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과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이니까.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자세, 생각하는 방법, 그리고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태도에 관한 책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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