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 - 김주하 앵커가 단단한 목소리로 전하는 위로
김주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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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주하. 그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뉴스 화면 속 단정한 모습과 또렷한 발음이었다. 그런 그가 에세이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궁금했다. 카메라 앞에서 세상의 소식을 전하던 그 목소리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어떤 온도를 가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저 독특한 제목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서점에서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하얀 빙판과 작은 생명체의 실루엣.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 이상하게도 이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위태로움과 고독함, 그리면서도 어딘가 아름다운 이미지. 결국 나는 그 이미지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느꼈다. 이건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구나. 김주하는 자신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목소리 때문에 낙방했던 이야기,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산산조각 나던 순간, 아이와 나눈 절절한 대화들. 그 모든 것이 과장이나 미화 없이, 있는 그대로 적혀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유명인의 에세이가 결국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고통의 과정을 지나치게 축약하고 결과만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김주하는 무너지는 순간을 세밀하게 묘사했고, 그 과정에서 느낀 수치심과 절망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읽으면서 나는 여러 번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어떤 문장들은 너무 아파서, 어떤 문장들은 너무 따뜻해서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그의 글은 위로하려는 의도로 쓰인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뿐인데, 그 진정성이 역설적으로 깊은 위안이 되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이미지는 역시 제목에 담긴 그 장면이다. 겨울 한강, 단단하게 얼어붙은 강 위를 홀로 걸어가는 고양이. 김주하는 이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을 은유한다. 얼음 위를 걷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언제 금이 갈지, 언제 발이 빠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걷는다. 조심스럽지만 멈추지 않고, 외롭지만 앞으로 나아간다. 이 이미지가 주는 힘은 대단했다. 화려하거나 극적이지 않지만, 묵묵히 견디는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문득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직장에서 버티고 있는 동료, 육아로 지쳐 보이는 친구, SNS에는 웃는 얼굴만 올리지만 힘들어하는 지인들. 우리 모두 각자의 빙판 위를 걷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사실을 서로 모른 채, 혼자라고 생각하며 견디고 있는 건 아닐까.

김주하가 이 책에서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개인의 아픔이 어떻게 사회적 연대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흔히 상처를 극복의 대상으로만 본다. 빨리 치유하고, 잊고, 다시 일어서야 할 무언가로. 하지만 김주하는 다른 제안을 한다. 상처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연대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물론 이것이 상처를 미화하자는 말은 아니다. 아픔은 여전히 아프고, 힘든 시간은 여전히 힘들다. 다만 그 경험이 나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통찰이 책 전체를 관통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책을 덮고 며칠이 지났지만, 한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당신은 오늘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했나요?" 김주하가 던진 이 물음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거창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일상 속에서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고, 작은 친절을 실천할 기회를 찾으라고 말한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 힘들어 보이는 동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혹은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 책을 읽은 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대화할 때 더 주의 깊게 듣게 되었다. 완전히 변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명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혼자라는 느낌에 지친 사람들에게 책은 동행이 되어줄 것이다. 반짝이는 성공담이 아니라 진짜 삶의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사회에 발을 딛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그러면서도 때때로 무너지는 우리들.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괜찮다고,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그리고 함께 걸어갈 수 있다고.

얼어붙은 한강 위를 걷는 고양이의 이미지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위태롭지만 아름답고, 외롭지만 당당한 그 모습.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초상이 아닐까. 책은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상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작은 용기들이 모여 누군가의 길이 된다는 것을 조용히 일깨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오늘 나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발밑의 얼음은 지금 얼마나 단단할까. 질문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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