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사회 교과서 한 번에 통과하기 1 - 교과서 속 10개 주제를 단숨에 꿰뚫는 통합사회 교과서 한 번에 통과하기 1
구정화 지음 / 해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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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지혜로 엮어내는 작업. 그것이 진정한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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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사회 교과서 한 번에 통과하기 1 - 교과서 속 10개 주제를 단숨에 꿰뚫는 통합사회 교과서 한 번에 통과하기 1
구정화 지음 / 해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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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세상을 조각으로 나누어 보기 시작했을까. 수학, 국어, 영어, 과학, 사회로 분절된 시간표 속에서 학생들은 각각의 교실을 오가며 마치 서로 다른 세계를 여행하듯 공부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한 잔의 커피에도 경제학, 환경학, 윤리학, 지리학이 녹아 있고, 행복이라는 단어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사회학, 철학과 경제학을 동원해야 한다. 특히 이제 현대는 AI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구정화 교수의 <통합사회 교과서 한 번에 통과하기 1>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교육과정의 변화를 따라가는 참고서가 아니라, 왜 우리가 통합적으로 사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한국 학생들에게 사회 과목은 오랫동안 '암기 과목'의 대명사였다. 연도를 외우고, 용어를 달달 외우고, 정책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공부의 전부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의 도입부에서 단호하게 선언한다. "공부는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어린아이가 "이게 뭐예요?"라고 끊임없이 문던 그 호기심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 철학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우는 것. 주어진 지식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의 출발점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각 장마다 제시되는 '작품으로 보는 시리즈'다. 행복을 다루면서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환경 문제를 다루면서 영화 <불편한 진실>을, 불평등을 논할 때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연결하는 방식은 지식을 삶과 예술 속에 녹여낸다. 교과서의 딱딱한 문장이 소설의 장면으로, 영화의 이미지로, 뮤지컬의 노래로 변주되면서 학생들은 사회 현상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첫 번째 주제는 '행복'이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경제 지표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올랐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도는 여전히 낮다. 수저계급론, 헬조선 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들 나라 역시 지금의 평등과 신뢰를 단번에 이룬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들어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행복한 사회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시민들의 요구와 정부의 응답, 제도의 개선과 문화의 성숙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학생들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 질문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실천적 질문으로 나아가게 된다. 탈조선이 아니라 조선을 바꾸는 것.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진정한 행 복 추구의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이외에 자연환경과 생활공간을 다룬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왔지만, 동시에 자연을 극복하고 개조하며 문명을 건설해왔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의 뾰족한 지붕, 더운 지역의 높은 천장, 습한 지역의 고상식 가옥 등은 모두 자연환경에 적용한 결과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은 이런 수동적 적응을 넘어 능동적 개조를 가능하게 했다. 사막에 도시를 건설하고, 극지방에서도 생활하며, 심지어 우주 공간에서도 거주 가능성을 탐색한다. 문제는 이런 자연 극복이 과연 축복인가, 재앙인가 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경고다. 인간의 욕심이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그 결과는 다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공존이라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 다양한 생명체를 존중하는 태도,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 중 하나다. 불과 백여 년 사이에 인류의 대다수가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했고,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 되었다. 도시는 기회와 자유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익명성과 무관심의 장소이기도 하다.


문화는 오늘날 가장 첨예한 사회적 쟁점 중 하나다.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도 이주민이 급증하고 있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저자는 문화 상대주의와 보편적 가치 사이의 긴장을 솔직하게 다룬다. 모든 문화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은 옳지만, 인권을 침해하는 관습까지 용인할 수는 없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열쇠는 '다름을 인정 하는 열린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갈등의 원인은 다문화 자체가 아니라,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함에 있 다. 다양성을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민의식,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민주주의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으로 시작된다.


책은 각 장마다 제시된 프로젝트 활동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큰 주제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접근할 지 단계별 가이드를 제공한다. 인터넷 자료 조사부터 포트폴리오 작성, 발표 준비까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AI 시대에 통합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책은 교과서의 충실한 안내서이면서, 동시에 교과서를 넘어서는 책이다. 지식의 파편들 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지혜로 엮어내는 작업. 그것이 통합이고, 그것이 진정한 배움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도,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고자 하는 일반 독자에게도,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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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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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작가는 쓰기 위해 산다. 바바라몰리나르(Barbara Molinard)는 썼지만, 동시에 파괴했다. 1960년 부터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그 헌신의 결과물은 한 권의 책, <Viens>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녀 자신의 손으로 찢겨졌다. 몰리나르는 쓰고 또 썼지만, 쓴 즉시 파괴했다. 이 강박적인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글쓰기가 그녀에게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자기파괴 였던 것은 아닐까? <Viens>에 수록된 14편의 이야기는 뒤라스와 그녀의 남편 파트리스 몰리나르가 간신히 구해낸 파편들이다.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가져간 것도 뒤라스였다. 몰리나르 자신은 아마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얼마나 될까? 수천 ? 수만 ?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이 14편의 이야기 뒤에는, 영원히 사라진 무수한 이야기들의 유령이 떠돈다.


몰리나르의 이야기들은 기괴하거나 초현실적인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경험한 삶 그 자체다. 그녀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뒤틀리고, 유령 같고, 광기 어린 것이었다. 그녀는 그 광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았고, 그것을 증언했다. <행복(Happiness)>은 이러한 몰리나르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바닷가 집을 구입하고 황홀한 기쁨에 빠진다. "내 집!" 그녀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삶은 경이롭다." 하지만 우리는 곧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한다. 같은 글씨체로 쓰인 수많은 편지들, 우표가 떼어진 봉투들, 빗속을 걷는 사람들이 바다로 걸어 들어가 사라지는 광경. 클라리스의 " 행복 " 은 처음부터 균열되어 있고, 그 균열은 점점 더 벌어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클라리스의 현실감각은 와해된다. 그녀는 캐비어와 샴페인을 사러 나갔다가 햄과 사이다를 사온다. 그녀가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조차 혼동한다. Karadec인가, Desanges인가? 마침내 그녀는 창문에서 바다로 뛰어든다고 믿으며 몸을 던진다. 하지만 그녀가 있던 곳은 파리의 오페라 거리였고, 그녀는 60대의 여성으로 인도에 추락한 채 발견된다. 결말은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이야기 전체를 소급적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클라리스는 정신병원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집"은 파리의 어느 건물 꼭대기 방이었고, 그녀는 망상 속에서 바닷가에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몰리나르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클라리스에게 그 경험이 절대적으로 "실재"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느낀 행복도, 바다도, 친구들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황 홀한 기대감도 모두 그녀에게는 진짜였다.

"바바라몰리나르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다." 몰리나르의 글쓰기는 표현이나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 전략이었고, 동시에 불가능한 탈출 시도였다. 그녀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을까? 그녀가 경험한 세계의 광기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아니면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공포로부터? 어떻게 보면 그녀는 모든 이들로부터, 심지어 자신의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된여성이었다. 이 소외감은 존재론적 차원의 것이었을 것이다. 몰리나르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세계에 살지 않았다. 그녀가 본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녀가 느낀 것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썼다. 그리고 찢었다. 쓰기와 찢기의 반복은 그녀의 실존적 투쟁의 리듬이었다. 쓰는 행위는 그 공포를 언어로 고정시키려는 시도였고, 찢는 행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그 공포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너무 견딜 수 없어서, 쓴 즉시 파괴해야만 했던 것일까? 몰리나르가 글쓰기를 통해 탈출하려 했던 것을 완전히 탈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글은 다른 이들에게 그들 자신의 내면의 공포와 마주할 용기를 준다. <행복>의 클라리스는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광기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그녀가 본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꽃놀이, 녹아내리는 버터의 폭포, 이 모든 환영들은 그녀가 현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만들 어낸 것이다. 그녀의 "행복"은 방어기제이자 동시에 자기파괴의 서곡이다. 몰리나르 자신도 클라리스처럼 자신 만의 바다를 보았을까?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그 바다로 뛰어드는 시도였을까? 그리고 남편과 뒤라스 가 구해낸 이 14편의 이야기는, 그녀가 마침내 익사하지 않고 해변으로 밀려온 증거일까?

<Panics>(Viens의 영어 제목)은 작은 공포들이다. 이것은 거대한 재앙이나 명백한 공포가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든 미세한 균열들, 현실감각의 작은 미끄러짐들, 정상성에서의 미묘한 일탈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클라리스의 이야기에서,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인다. 한 여성이 새 집을 샀고, 기쁘다. 하지만 곧 작은 이상 함들이 축적된다. 우표가 사라진 편지들. 빗속을 걷다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주문한 것과 다른 물건들. 이 작은 공포들은 서서히 증폭되어, 마침내 전체 현실을 잠식한다. 이것이 몰리나르가 경험한 세계였다. 그녀에게 광기는 갑작스러운 침입이 아니라 천천히 일상을 침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정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클라리스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바다로 뛰어드는 황홀함을 기대한다. 우리는 모두 작은 공포들과 함께 산다. 우리의 현실감각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몰리나르는 그 취약함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소름끼치면서도 이상하게 아름답다.

나는 자꾸 생각한다. 몰리나르 그녀도 클라리스처럼 바다를 보았을까? 자신만의 황홀한 도약을 꿈꾸었을까?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바다로 뛰어드는 이야기. 계속해서 인도에 떨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또 쓰고, 또 찢고, 또 뛰어내리는 이야기. Viens는 그 무한한 반복 속에서 간신히 건져 올려진 14개의 파편이다. 뒤라스와 남편이 없었다면 이것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많은 것 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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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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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0년 뒤 당신은 무얼 하고 있을까요? 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춘다. 답십리역 앞 원룸에서 밀린 월세를 걱정하던 시인처럼, 나 역시 미래라는 단어 앞에서 머릿속이 까매지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모든 것 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5년 계획, 10년 계획, 인생 로드맵. 그러나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생활의 조급함과 이번은 다를 거라는 “순진한 낙관" 사이를 오가며 우리는 그저 걷는다. 때로는 비틀거리고, 때로는 주저앉으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위로를 받는다. 답할 수 없다는 것, 알 수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은 건 '보잘것없음을 정직하게 마주한다'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 로를 크게, 대단하게, 의미 있게 만들려고 애쓰는가. SNS에는 성공한 순간들만 올리고, 약한 모습은 숨긴다. 그런데 시인은 을지로 골목 한가운데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러워서다. 가까이서 멀리서 지켜보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그 솔직함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왔나. 사라져가는 골목들, 밀려나는 사람들, 누군가의 슬픔. 그것들을 보면서도 모른 척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문학은 얼마나 무력한가. 무력하더라도, 계속해야 한다는 걸 안다. 더 큰 문제는 무력과 무능을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해온 일들을 떠올렸다.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반복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날들. 하지만 중요한 건 무력함을 인정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답이 없다고 해서 물음을 멈출 수는 없다"는 그의 말처럼, 모른다는 이유로 질문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잊힐 것이 뻔하더라도, 쓸모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걸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노래할 이유도 없다"는 말이 오래 맴돈다. 사랑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순간도 분명있다. 바라 던 모양과 다를 때, 이것이 정말 사랑인지 의심하게 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희미해진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사람을, 일을, 순간을, 풍경을. 때로는 그 사랑이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너무 많이 사랑해서 상처받고, 기대해서 실망한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어떤 삶이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 삶은 불행하다." 나는 나를 위 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살고 싶다. 구렁텅이에 나를 던지지 않으면서. 겨울 호수를 걷던 두 사람처럼, 우리는 모르는 사이 변해간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고,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다른 사람 같다. 그 변화가 두렵기도 하지만, 그것이 삶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뿐이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지나고 나서야 붙일 수 있는 이름이라는 것. 그때는 그저 힘들고 간절했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던 날들. 하지만 그래도 살자"고, "괜찮아지는 때가 올 거라고" 되뇌는 것. 그것이 무책임하게 들릴지라도, 우리에게는 삶이 있다고 말하 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괜찮아질 거라고, 지나갈 거라고. 때로는 그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정말 괜찮아질까? 정말 지나갈까? 하지만 시인의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그 말을 건네는 마음이 아닐까. 함께 있어주는 것, 울음을 그치지 않는 이를 끌어안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의미는 뒤에 온다. 인간이 제멋대로 정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의미는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아도 된다. 뒤돌아보았을 때, 혹은 훨씬 후에, 그때의 의 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그 의미를 불러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낼 때 일상은 오롯이 빛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얼마나 많은 혹을 달고 살았나.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시간을 쏟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도 삶의 일부일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경험해봐야 필요한 것을 알게 되니까.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노래는 시작된다. 누군가 있었으나 이제는 없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그곳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이야기는 부재의 그림자라는 말이 아프게 와닿는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라진 것들을 기억한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게 한다. 바닷가에서 아버지가 테트라포드까지 수영해 굴을 따오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야카 씨처럼, 가족들이 모래사장에 둘러앉아 굴을 구워 먹던 기억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느낀 뭉클한 기분처럼. 이 런 순간들이 삶을 만든다.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작고 소박한 순간들이.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는 것을 일러주는 장소들. 한 사람의 역사가 깃든 공간들. 우리는 각자의 장소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우리를 만 든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따뜻한 그 기억들.

앞을 내다보는 게 부질없이 느껴질 때, 바다에 가서 파도를 바라본다는 시인처럼, 나도 내 방식으로 견딘다. 어 떤 미래가 닥쳐올지 알 수 없지만, 삶은 미지에서 미지로 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위에서 우리는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또 일어선다.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다. 나는 그 시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이하는 것도 삶이니까. 시인의 말처럼, "시를 쓰고 노래하며 미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음악을 들으며 나를 들여다보고, 친구들의 음악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 면서. 결국 우리에게는 삶이 있다. 지난한 여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지나치고 놓치며 포기하게 되더라도. 그 삶을 살아내는 것. 무력하더라도 계속하는 것. 물음을 멈추지 않는 것. 사랑하는 것. 기억하는 것.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우리가 해야 할 전부다. 10년 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모르는 것이 두렵지 않다.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걸어가는 것이니까. 미지를 향해, 오늘도 나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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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설계하라 - 최소한의 힘으로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법
댄 히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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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많은 조직이 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전략 회의를 반복 하지만 실질적인 개선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에 읽은 <재설계하라>에서 댄 히스는 이러한 실패의 근본 원인 을 정확히 짚어낸다. 우리는 잘못된 곳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레버리지 포인트를 찾고, 그곳에 모든 자원을 집중할 때 일어난다. 작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점, 바로 그곳이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더들은 이 지점을 찾지 못한 채 평균과 집계 데이터에 의존하여 의사결정을 내린다.

테레사 아마빌레와 스티븐 크래머의 연구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직원들을 가장 크게 동기부여하는 요소는 의미 있는 일에서 진전을 경험하는 것이다. 연봉도, 승진도, 인정도 아닌 '진전'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전 세계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단 5%만이 진전을 최우선 동기부여 요소로 꼽았다는 점이다. 통계적 오류가 아니다. 리더십의 근본적인 맹점을 드러낸다. 우리는 직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추측하고, 그 추측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확신이다. 진전을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팀원들이 자신의 성과를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추상적인 목표가 아닌 구체적인 성취, 숫자로 표현되는 개선, 눈에 보이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초기에는 뒤를 돌아보며 이미 이룬 것을 축하하고, 후반부에는 앞을 보며 목표까지의 거리를 확인하는 전략이 효과적인 이유다.

기업의 대부분 결정은 회의실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앉아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토론한다. 톰치는 이를 추측 대회라고 불렀다. 데이터를 보고, 보고서를 검토하고, 의견을 교환하지만 정작 실제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MIT 교수 넬슨 레페닝은 다음과 같이 조언을 한다. "일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가서 직접 보라. 교장이라면 학생의 하루를 따라가 보고, 공장장이라면 생산 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고, 컨 설턴트라면 고객 프로젝트의 모든 활동을 지도로 그려보라." 현장에 나가면 당혹스러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오랫동안 방치된 문제들, 익숙해진 나쁜 습관들, 불필요한 절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레페닝의말대로, 만약 당황스럽지 않다면 아직 충분히 자세히 보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 불편한 발견들이 레버리지 포인트가 된다. 수정 가능하면서도 가치 있는 개선점들이다. 평균은 모니터링에는 유용하지만 진단과 해결책 마련에는 무용하다. 매출, 이익률, 고객만족도 같은 집계된 수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줄 뿐,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답은 평균 안에 묻혀 있는 개별 사례들, 특히 밝은 지점들에 있다.

토요타 생산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은 DOWNTIME 원칙은 여덟 가지 낭비 유형을 제시한다. 가상의 베이커리를 예로 들면, 불량품(탄쿠키), 과잉생산(하루 끝에 버려지는 도넛), 대기(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리며 손가락만 빠는 직원), 미활용 인재(접시를 닦는 케이크 데코레이터), 운송(믹서에서 너무 멀리 보관된 밀가루), 재고(상한 우유), 동선(커피포트와 계산대를 오가며 불필요하게 움직이는 직원), 과잉 처리(고객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프랑스식 아이싱 기법) 등이 있다. 낭비의 정의는 명확하다. 고객의 관점에서 가치를 더하지 않는 모든 것이다. 낭비를 발견하면 그 자원을 즉시 재활용하여 레버리지 포인트에 집중할 수 있다. 낭비 제거에는 단점이 없다. 왜냐하면 고객이 가치를 두지 않는 것들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매니지먼트도 거의 보편적인 낭비의 한 형태다. 관리자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직원들의 자율성을 해치며, 실질적인 가치는 거의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런 낭비를 제거하고 그 에너지를 진짜 중요한 곳에 쏟을 때 조직은 도약한다.


많은 리더들이 변화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기획한 후 직원들에게 강요한다. 저항에 부딪히면 놀라며 묻는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동참시키기"는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도 원하게 만들기"의 완곡한 표현이다. 이것은 거꾸로 된 접근이다.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도약하고 싶다면, 에너지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동기를 활용해야 한다. 어떤 개선안이 우리 팀원들에게 가장 열정적으로 받아들여질까를 물어야 한다. 실제로 그보다 복잡할 것이 없다. 프랭크 블레이크 전 홈디포CEO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칭찬과 인정은 공짜 연료다. 팀원들을 어떻게 칭찬하고 인정하여 목표에 도달하려는지 먼저 말해보라. 그런 다음 자원에 대해 이야기하자." 축하하는 것을 얻게 된다. 인정은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위한 최고의 도구다. 목표는 동기를 활용하여 진전을 이끌어내고, 그 진전의 증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동기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점화된 열정은 더 많은 에너지를 위해 다시 활용될 수 있다. 이 순환이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이 된다. 진전이야말로 회의론자를 신봉자로 만드는 불꽃이다.

W. 에드워즈 데밍의 말처럼 "모든 시스템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얻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 현재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Reset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레버리지 포인트를 찾고, 제약 조건에 집중하고, 낭비를 제거하고, 기존의 동기를 활용해야 한다. 추측이 아닌 직접 경험을 기반으로 결정하고, 평균이 아닌 밝은 지점을 연구하라. 목표의 목표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진전을 가시화하며, 성취를 축하해야 한다. 변화는 거창한 계획이나 복잡한 전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지만 정확한 지점을 찾아 집중하는 것, 팀원들이 진전을 보고 느끼게 하는 것, 있는 곳에서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댄 히스가 수백 번의 인터뷰와 연구를 통해 발견한 조직 혁신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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