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 일을 마무리하는 힘 - 일을 끝내고 성장을 시작하는 끝맺음의 기술
양은우 지음 / 경이로움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상 서랍을 열면 반쯤 쓴 노트들이 나온다. 첫 페이지는 언제나 깔끔하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색색의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열심히 기록한 흔적들. 하지만 5페이지, 길어야 10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나머지는 백지다. 새해 다짐으로 샀던 다이어리도 마찬가지다. 1월은 빼곡하지만 2월부터 성기고, 3월이면 아예 공백이다. 이런 풍경이 나만의 것은 아닐 거라 확신한다. 우리는 모두 '시작의 천재'이자 '완성의 초보자'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의 설렘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그 설렘이 식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꿈꾸며, 이전의 미완성을 애써 잊으려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들은 정말 잊혔을까? 아니다. 끝내지 못한 일들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은근히 우리를 괴롭힌다. 보이지 않는 짐처럼 어깨를 짓누른다.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마다 "이번에도 어차피.."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흔히 '끝'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성공 아니면 실패. 완수 아니면 포기. 하지만 현실의 끝맺음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어떤 일은 성공적으로 완료되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의도적으로 중단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일은 그냥 흐지부지 사라지기도 한다. 문제는 세 번째 경우다. 명확한 중단의 선언 없이,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것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형태의 '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환상을 남겨두면서, 동시에 지금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가 일주일 만에 그만둔 경험이 많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넘기고, 그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된다. 결국 운동화는 현관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다. 이렇게 애매하게 남겨진 일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정신적 여유 공간은 좁아진다. 컴퓨터로 치면 백그라운드에서 계속 돌아가는 프 로그램 같은 것이다. 겉으로는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리소스를 소모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끝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완벽주의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100%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70%쯤 진행된 일도 "이 정도로는 부족해"라며 멈춰버린다. 하지만 여기엔 역설이 있다. 완벽을 추구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하는 것과, 불완전하더라도 하나를 끝내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을까? 후자가 훨씬 가치 있다. 왜냐하면 끝을 내본 경험 자체가 다음 시도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초고는 쓰레기여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일 단 끝까지 써내는 것이다. 고치고 다듬는 건 그다음이다. 완성되지 않은 글은 아무리 좋은 문장이 들어있어도 글이 아니다. 반면 서툴더라도 끝맺음이 있는 글은 최소한 글의 형태를 갖춘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불완전한 실행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행 과정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머릿속 계획은 아무리 정교해도 실제 세계의 변수를 담아낼 수 없다. 부딪혀보고, 넘어져보고, 그래도 끝까지 가본 사람 만이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다.

반대로, 때로는 중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모든 일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상황이 바뀌었거나,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확한 중단'이다. "이 일은 여기까지 한다. 왜냐하면.."이라는 선언이 필요하다. 그냥 흐지부지 놓아버리는 것과, 의식적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프로젝트를 중간에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다. 실패했어, 창피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포기하는 대신, "이 프로젝트는 여기까지 진행했고, 이런 이유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정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를 기록으로 남긴다. 이렇게 의식적인 마무리를 하면 두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 그 일에 대한 미련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마음 한구 석에 찝찝함이 남지 않는다. 둘째, 실패에서도 의미를 건진다. 단순히 ’안 됐던 일'이 아니라, '이런 것을 배운 일'로 재정의된다.

거창한 목표의 완성만이 마무리는 아니다. 오히려 일상 속 작은 끝맺음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는 것, 저녁에 설거지를 끝내고 싱크대를 닦는 것, 읽은 책을 제자리에 꽂는 것. 이런 사소한 행동 들이 쌓여 '마무리하는 습관'을 만든다. 작은 일을 끝내는 경험이 쌓이면 큰 일을 끝낼 수 있는 체력이 생긴다. 마치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마무리 근육도 훈련이 필요하다. 매일 조금씩, 작은 것들을 완결시키는 연습이 결국 큰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또한 작은 마무리는 즉각적인 성취감을 준다. "오늘 할 일"을 모두 체크하고 하루를 마감할 때의 뿌듯함. 그 감정이 내일을 시작하는 에너지가 된다. 반대로 미완의 것들이 쌓이면 무기력이 찾아온다.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일까"라는 자책이 시작되고, 그 자책이 다시 실행력을 떨어뜨린다.

마무리는 자기 신뢰의 문제다. 내가 시작한 일을 내가 끝낼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이 있어야 새로운 도전도 가능하다. 끝내지 못한 일들이 많아지면 스스로를 믿기 어려워진다. "어차피 나는 해도 안 돼"라는 패배주의가 자리 잡는다. 그러면 시도 자체를 꺼리게 된다.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건 악순환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할 기회도 없다. 그리고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쌓여야 자신감이 생긴다. 그 자신감이 다시 더 큰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끝내는 연습'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결과가 아니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나와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 권력 - 네 말이 아니라 내 말로 살기로 했다
박비주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침묵을 미덕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말을 아끼는 것이 성숙함이라 믿었고, 참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번에 <언어 권력>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지켜온 것은 관계가 아니라 불균형이 었고, 내가 선택한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패배 선언이었다. 책은 독자의 자기 위로를 가차없이 깨뜨린다. "착한 게 아니고 호구였다"는 선언은 수많은 사람들이 '배려'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갉아먹어 온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조차 "내가 예민한가?"라고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훈련받아 왔다. 타인의 무례함은 그들의 솔직함으로 포장되고, 나의 정당한 불편함은 유난으로 치부된다. 이런 관계 속에서 침묵은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존재를 지우는 행위에 가깝다. 저자가 말하는 '감정 배출구'라는 표현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자처해 온 시간들이 있었다. 친구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 우정이라 믿었고, 상사의 불합리한 요구에 "네"라고 답하는 것이 직장 생활의 기본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 감정은 어디에도 자리하지 못했다. 분노는 삼켜야 했고, 억울함은 혼자 삭혀야 했으 며, 상처는 아물기도 전에 덧나곤 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개념은 '감정을 번역한다'는 표현이었다. 감정을 참거나 폭발시키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그 것을 정확한 언어로 옮기는 작업.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의사소통의 핵심이다. "나는 지금 네 말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구조는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내 존재를 명확히 드러낸다. 이는 감정 표현이 곧 싸움을 의미한다고 배워온 우리에게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실제로 나는 최근 이 방식을 시도해 보았다.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별다른 사과 없이 농담으로 넘기려는 지인에게, 예전 같으면 어색하게 웃으며 "괜찮아"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약속 시간은 나에게 중요해. 다음부터는 늦을 것 같으면 미리 알려줬으면 좋겠어"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상대는 잠시 당황했지만, 관계는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 약속에서 그는 시간을 더 잘 지켰고, 나는 그 관계를 더 편하게 여기게 되었다. 감정 번역의 핵심은 '나 전달법(1-message)'에 있다. "너는 왜 맨날 그래?"가 아니라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느껴"로 말하는 것. 이 미묘한 차이가 대화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 전자는 비난과 방어의 악순환을 만들지만, 후자는 상대에게 나의 경험을 이해할 기회를 준다. 물론 이것이 항상 통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에 관심이 없거나, 자기 기준만을 절대시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단호함'이다.

책에서 강조되는 개념이 '경계 설정'이다. "그건 네 기준이지, 난 다르다" 타인의 잣대를 거부하고 나만의 기준을 선언하는 행위다. 우리 사회는 유독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원래 그런 거야", "다들 그렇게 하는데"라는 말로 개인의 기준을 무력화시킨다. 하지만 '원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들'이라는 주체는 실체가 없다. 그것은 단지 자기 기준을 강요하기 위한 수사일 뿐이다. 나는 직장에서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 야근이 당연시되는 문화 속에서 정시 퇴근을 하면 열정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말 회식을 거절하면 "팀워크가 부족하다"는 낙인이 찍힌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계를 세운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선을 긋지 않으면 결국 선을 넘는 사람에게 당한다. 경계가 없는 관계는 존중이 아니라 침해를 낳는다. 단호함이 곧 무례함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명확히 밝히는 것을 공격적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싫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나를 긍정하는 행위다.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함이 아니라 자기 한계를 아는 성숙함이다. 이런 언어들은 관계를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 계의 질을 높인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할 때 비로소 진짜 소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말은 세게가 아니라 정확하게"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나는 많은 오해를 풀 수 있었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강한 어조를 쓰는 것이 힘 있는 언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진짜 힘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논리의 명료함에서 나온다. 상대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대화를 정리하는 능력. 이것이 언어 권력의 실체다. "그건 네 해석이야"라는 것이 좋은 예다. 누군가 나의 행동을 자기 방식으로 재단하려 할 때, 해석의 주체를 다시 나에게 돌려놓는다. ”너는 항상 그래"라는 일반화된 비난에 대해서는 "그건 네가 본 일부일 뿐이야"라고 응수할 수 있다. 이런 언어들은 감정적으로 맞대응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프레임을 거부한다. 대화의 주도권을 쥐는 사람은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는 사람이라는 저자의 통찰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책의 조언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한계도 있을 것 같다. 모든 관계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사와 부하, 부모와 자녀, 갑과 을의 관계에서 정확한 말 만으로 균형을 맞추기는 어렵다. 권력 구조가 언어보다 강할 때가 분명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호함은 때로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자기 보호를 위해 말은 필요하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자기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 될 수는 있다.

책이 말하는 '언어 권력'의 본질은 타인을 지배하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이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며, 필요할 때 명확히 거절하고, 관계의 경계를 스스로 정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책을 읽으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신과 의사에게 배우는 자존감 대화법 - 개정판
문지현 지음, 니나킴 그림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에서 문지현 작가가 제시한 자전거 비유는 내게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화가 날 때 욕을 하면 화가 풀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욕을 할수록 분노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마치 자전거를 멈추고 싶으면서도 페달을 더 세게 밟는 것과 같다는 설명은 너무나 명쾌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친구들에게 그 사람의 잘못을 늘어놓으면 속이 시원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화가 치밀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분노는 증폭되었다. 결국 욕이나 비난의 말들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분노를 멈추고 싶다면 화내는 말을 멈추라고 조언한다. 처음엔 쉽지 않지만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하면 차츰 분노가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실천하기에는 상당한 용기와 자제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출과 증폭은 다르다. 감정을 인정하되 그것을 키우는 말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감정 조절의 시작인 것 같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통찰 중 하나는 "듣는 사람은 그 말을 한 번 듣지만 말하는 사람은 말하기 전과 말할 때 두 번 듣는다"는 구절이었다. 입 밖으로 나온 말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머무는 말도 우리 뇌가 듣고 해석한다는 사실은 말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했다. 나는 평소 남들에게는 비교적 친절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가혹한 말을 많이 한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해?", "역시 난 안 돼", "이번에도 실패했네"같은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말들이 내 무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속 말은 타인에게 들리지 않기 때문에 더 무방비하게 내뱉게 된다.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으니까,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많이 상처받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타인이 나에게 하는 말보다 훨씬 더 깊이 파고든다. 외부에서 오는 비난은 방어할 수 있지만, 내부에서 오는 비난은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순하고 착한 말의 씨앗을 마음에 심으면 그것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독하고 악한 말의 씨앗을 심으면 자신을 품은 사람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상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 만들어진다. 긍정적 자기 대화는 자존감을 키우 고, 부정적 자기 대화는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저자가 설명하는 경청의 개념도 새로웠다.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아니라 몸 전체를 기울여 듣는다는 것.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눈을 빛내며, 내용을 받아 적으려 노력하는 자세가 오히려 마음의 집중을 돕는다는 설명은 역설적이지만 설득력 있었다. 우리는 보통 마음이 먼저 준비되어야 몸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몸의 자세가 마음의 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열성적인 자세를 취하면 실제로 관심이 생기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면 긴장이 풀어진다. 나는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다음에 내가 할 말을 준비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눈으로는 상대를 보지만 머릿속으로는 반박 논리를 구성하고, 내 경험담을 떠올리고, 조언할 내용을 정리했다. 그것은 듣기가 아니라 기다리기였다. 진정한 경청은 상대의 말 속에 온전히 머무는 것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내 경험을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상대의 경험과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상대는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고, 마음을 열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저자가 발견한 통찰은 특별하다. 마음의 병이 말의 문제, 언어의 문제와 긴밀히 연 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말의 회복, 언어의 회복이 마음속 병의 치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뻔한 조언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인지 구조를 형성하고, 그 인지 구조가 다시 우리의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학적 원리에 기반한다. 우울한 사람은 우울한 언어를 사용하고, 우울한 언어는 다시 우울을 강화한다. 불안한 사람은 불안한 언어를 사용하고, 불안한 언어는 불안을 증폭시킨다. 반대로, 의식적으로 언어를 바꾸면 마음도 바뀔 수 있다. "나는 불안해"를 "나는 지금 긴장하고 있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로 바꾸는 것. "나는 실패자야"를 이번엔 잘 안 됐지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로 바꾸는 것. 이런 작은 언어의 변화가 축적되면 자아상이 바뀌고, 자아상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평소 얼마나 무심코 말을 사용해왔는지 깨달았다. 타인에게 하는 말도, 나 자신에게 하는 말도 충분히 돌아보지 않았다. 말이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자아를 형성하고, 삶을 설계하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내가 하는 말을 더 의식적으로 선택하려 한다. 마음속 말부터 점검하고, 긍정적 표현을 연습하고, 진정으로 경청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이루 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한다면, 차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짜 말 잘하고 싶었어 - 스피치 라엘의 성장과 꿈을 만드는 공감의 언어
최윤정(스피치 라엘) 지음 / 북스고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를 오해하며 살았다. 유창함이 곧 실력이라 믿었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소통 능력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말은 공간을 채우지만 마음은 채우지 못한다. 말은 많지만 전달되는 것은 없고, 길게 늘어놓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렇게 처음으로 결핍을 느꼈다. 진짜 말을 하고 싶다는, 내 마음이 담긴 언어를 전하고 싶다는 갈망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 읽은 <진짜 말 잘하고 싶었어>는 그 결핍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주는 책이다. 책이 특별한 이유는 스피치 기술서가 아니라 마음 회복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을 꾸미는 법 대신, 말을 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발표 시간만 되면 숨고 싶던 아이, 이름이 불릴까 두려워 고개를 숙이던 그 소녀가 기상캐스터가 되고 19년차 스피치 강사로 성장한 과정은 흔히 이야기되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마주하고,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진짜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회복의 기록이다.

우리는 종종 말의 문제를 기술의 문제로 치환한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법, 목소리를 크고 또렷하게 내는 법. 그러나 저자가 발견한 진실은 다르다. 말이 막히는 이유는 발음이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 속 상처와 압박감이 만들어낸 불안 때문이라는 것. 마음이 닫혀 있으면 아무리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도 공허할 뿐이다. 반대로 마음이 열려 있으면 서툰 표현도 진심으로 전달된다. 결국 말의 시작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기상캐스터가 된 저자의 이야기는 이를 증명한다. 그녀를 합격 시킨 것은 화려한 스펙이 아니었다. 인생을 계절에 빗대어 쓴 자기소개서, 기상캐스터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확신에 찬 답변. 그 안에는 자신만의 이야기와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말은 결국 마음의 확신에서 나온다. 그 확신이 있을 때 단어 하나에도 진심이 묻어나고, 그 진심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깊이 공감한 부분은 '말을 잘하려 애쓰느라 지쳤던 사람'이라는 표현이었다. 정확히 내 이야기였다. 나는 말을 잘하려고 노력했지만, 정작 내 마음을 전하는 데는 실패했다. 분위기를 끊지 않으려 계속 말을 이었지만, 그 말들은 표면만 맴돌았다. 깊이가 없었고, 같은 이야기를 길게 늘여 반복했다. 전달은 되는데 공감은 남지 않았다. 왜일까. 이제야 안다. 내가 정작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하기의 어려움이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발표 시간의 두려움, 사람들 앞에 서면 빨개 지던 얼굴, 실수를 했을 때의 창피함. 이런 기억들이 쌓여 말 앞에서 움츠러드는 마음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언어를 제한한다. 말하기 전에 이미 실패를 예상하고, 거절당할까 두려워 진심을 숨긴다. 그렇게 우리는 안전한 말, 상처받지 않을 말만 골라 하게 된다.

책에는 이론만 담긴 것이 아니다. '스피치 비밀 노트'와 '오늘의 미션'이라는 실천 도구가 있어 독자가 직접 체득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말하기는 결국 실천을 통해서만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 사이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저자는 19년간 스피치 강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수강생들과 함께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 연습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따뜻하다. 말을 못해서 괴로웠던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가 느껴진다. 저자 자신이 그 길을 걸어왔기에 독자의 두려움과 불안을 이해한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말의 기술보다 말을 만드는 마음의 상태가 먼저라고, 그 마음이 회복되면 말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말한다.

나는 책을 두 번 읽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공감했고, 두 번째 읽을 때는 깊이를 느꼈다. 같은 문장인데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기술적인 조언을 찾았다면, 두 번째는 그 조언 뒤에 숨은 마음을 보게 되었다. 진짜 말을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유창함이 아니라 진정성이고, 많은 말이 아니라 필요한 말이며, 화려한 표현이 아니라 진심 어린 전달이다. 말하기는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말하는 사람의 진심이 전달된다. 그래서 저자는 먼저 상대의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한다. 칭찬이라는 긍정의 언어로 분위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진짜 소통이 일어나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19년 경력이 만들어낸 통찰이다. 우리는 말을 잘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원하는 것은 다르다. 진짜 내 마음 을 전하고 싶고, 상대의 마음에 닿고 싶으며, 말로 관계를 만들고 싶다. 말을 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수단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 <진짜 말 잘하고 싶었어>는 정확하다. '진짜'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가짜 말, 꾸며진 말, 안전한 말이 아니라 진짜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말하기다.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더 이상 말을 많이 하려 애쓰지 않겠다. 대신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겠다. 말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이 말이 진심인지 물어보겠다. 그리고 확신이 서면 그때 말하겠다. 서툴더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내가 담겨 있는가이다. 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상처를 안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말을 하게 되었 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회복이 일어난다. 말의 회복이 곧 마음의 회복이고, 마음의 회복이 곧 삶의 회복이다. 저자가 말을 못하던 아이에서 스피치 강사가 된 것처럼, 우리도 변화할 수 있다. 천천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번던스 코드 - 당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우는 기적의 비밀코드
윤유리 지음 / 서사원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 더 나은 직장, 더 높은 연봉, 더 많은 인정.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것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마치 바닥 없는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처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이것이 바로 결핍의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함정이다. 이번에 읽은 <어번던스 코드>의 저자가 제시하는 풍요의 코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자기위안만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자체를 전환하는 근본적인 변화다. 승무원에서 변호사로, 다시 영국 로펌의 파트너로 이어지는 그녀의 여정은 외형적 성취의 서사가 아니라 내면의 확장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성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부산물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사실. 외부의 기준으로 자신을 재단하며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할 때, 우리는 이미 결핍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하지만 내면의 기준을 세우고 자신만의 성장 곡선을 그릴 때, 비로소 온전한 나로 존재하게 된다.

명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정한 명상은 마음만을 비우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무의식의 패턴을 관찰하고,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며, 존재의 본질과 연결되는 과정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명상을 통한 메타인지의 각성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화가 나면 '나는 화난 사람'이 되고, 불안하면 '나는 불안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명상은 이러한 동일시에서 벗어나 '화를 관찰하는 나, '불안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이 미 묘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엄청나다. 생각을 관찰하면 생각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감정을 바라보면 감정이 에너지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우리는 점차 자신의 무의식적 패턴을 알아차리게 된다. 왜 특정 상황에서 항상 같은 반응을 하는지,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 그 뿌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명상이 현실적 문제 해결에도 강력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좌뇌의 논리적 사고와 우뇌의 직관적 통찰 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는 동안, 명상하는 인간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창의적 해결책을 창조한다. 이것이 바로 미래 사회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다.

많은 자기계발서가 습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루틴은 일상적인 습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하루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며, 존재 상태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다. 아침 명상으로 하루를 리셋하고, 저녁 성찰 명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이 단순해 보이는 루틴이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 관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매일 업데이트하는 과정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연결하면서도, 동시에 미래의 나와 접속하는 시간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보드룸 명상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위대한 인물들을 내면의 회의실로 초대하여 조언을 구하는 이 방법은, 단순한 상상력 놀이가 아니라 집단 무의식과의 연결이다. 우리 안에는 이미 모든 지혜가 잠재되어 있고, 명상은 그것을 끌어내는 통로가 된다. 루틴의 힘은 반복에 있지 않다. 그것은 매일 새롭게 자신을 선택하는 자유에 있다. 똑같은 아침이 오지만, 명상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어제와 다른 가능성으로 열린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존재 상태로 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실존적 과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역할, 타인의 기대, 외부의 기준으로 구성된 가짜 자아를 자신이라고 착각한다. 진정한 자기 인식은 자신의 장단점만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 내면의 열망,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살아있게 하는지, 어떤 순간에 가장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지, 어떤 미래를 창조하고 싶은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외부에 없다. 오직 내면 깊은 곳에서만 발견된다. 저자가 강조하듯, 자기 인식은 자신감의 원천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신감은 근거 없는 자기 확신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과 연결되었을 때 생기는 존재의 단단함이다. 외부 상황이 아무리 흔들려도 중심을 잃지 않는 힘.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멈추는 것을 두려워한다. 쉬지 않고 달려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고, 잠시라도 속도를 늦추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발견한 역설은 이것이다. 멈추고 싶을 때가 바로 멈춰야 할 때이며, 동시에 새롭게 시작해야 할 순간이라는 것이다. 에너지가 고갈된 것처럼 느껴질 때, 이는 기존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다는 신호다. 같은 방향으로 계속 달려봤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내면의 경고등. 이때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명상은 바로 이 멈춤의 기술이다. 하지만 그것 은 수동적인 정지가 아니라 능동적인 전환이다.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명확해진다. 복잡하게 얽힌 생각의 실타래가 풀리고, 진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분된다. 그리고 그 명료함에서 다음 행동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현대 사회는 우리를 점점 더 분리시킨다. 일과 삶, 이성과 감성, 성공과 행복, 나와 타인.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별개의 영역으로 나누고, 각각을 따로 관리하려 애쓴다. 하지만 진정한 풍요는 통합에서 온다. 분리된 것들을 다시 연결하고, 조각난 자아를 온전히 회복할 때 비로소 삶은 하나의 흐름이 된다. 명상이 가르쳐주는 가장 큰 깨달음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내 안의 작은 변화가 외부 현실을 바꾸고, 내면의 평화가 관계의 질을 변화시키며, 존재의 확장이 커리어의 돌파구를 만든다. 이것은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에너지의 법칙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