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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 일을 마무리하는 힘 - 일을 끝내고 성장을 시작하는 끝맺음의 기술
양은우 지음 / 경이로움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상 서랍을 열면 반쯤 쓴 노트들이 나온다. 첫 페이지는 언제나 깔끔하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색색의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열심히 기록한 흔적들. 하지만 5페이지, 길어야 10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나머지는 백지다. 새해 다짐으로 샀던 다이어리도 마찬가지다. 1월은 빼곡하지만 2월부터 성기고, 3월이면 아예 공백이다. 이런 풍경이 나만의 것은 아닐 거라 확신한다. 우리는 모두 '시작의 천재'이자 '완성의 초보자'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의 설렘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그 설렘이 식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꿈꾸며, 이전의 미완성을 애써 잊으려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들은 정말 잊혔을까? 아니다. 끝내지 못한 일들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은근히 우리를 괴롭힌다. 보이지 않는 짐처럼 어깨를 짓누른다.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마다 "이번에도 어차피.."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흔히 '끝'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성공 아니면 실패. 완수 아니면 포기. 하지만 현실의 끝맺음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어떤 일은 성공적으로 완료되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의도적으로 중단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일은 그냥 흐지부지 사라지기도 한다. 문제는 세 번째 경우다. 명확한 중단의 선언 없이,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것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형태의 '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환상을 남겨두면서, 동시에 지금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가 일주일 만에 그만둔 경험이 많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넘기고, 그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된다. 결국 운동화는 현관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다. 이렇게 애매하게 남겨진 일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정신적 여유 공간은 좁아진다. 컴퓨터로 치면 백그라운드에서 계속 돌아가는 프 로그램 같은 것이다. 겉으로는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리소스를 소모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끝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완벽주의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100%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70%쯤 진행된 일도 "이 정도로는 부족해"라며 멈춰버린다. 하지만 여기엔 역설이 있다. 완벽을 추구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하는 것과, 불완전하더라도 하나를 끝내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을까? 후자가 훨씬 가치 있다. 왜냐하면 끝을 내본 경험 자체가 다음 시도의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초고는 쓰레기여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일 단 끝까지 써내는 것이다. 고치고 다듬는 건 그다음이다. 완성되지 않은 글은 아무리 좋은 문장이 들어있어도 글이 아니다. 반면 서툴더라도 끝맺음이 있는 글은 최소한 글의 형태를 갖춘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불완전한 실행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행 과정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머릿속 계획은 아무리 정교해도 실제 세계의 변수를 담아낼 수 없다. 부딪혀보고, 넘어져보고, 그래도 끝까지 가본 사람 만이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다.
반대로, 때로는 중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 모든 일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상황이 바뀌었거나,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확한 중단'이다. "이 일은 여기까지 한다. 왜냐하면.."이라는 선언이 필요하다. 그냥 흐지부지 놓아버리는 것과, 의식적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프로젝트를 중간에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다. 실패했어, 창피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포기하는 대신, "이 프로젝트는 여기까지 진행했고, 이런 이유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정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를 기록으로 남긴다. 이렇게 의식적인 마무리를 하면 두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 그 일에 대한 미련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마음 한구 석에 찝찝함이 남지 않는다. 둘째, 실패에서도 의미를 건진다. 단순히 ’안 됐던 일'이 아니라, '이런 것을 배운 일'로 재정의된다.
거창한 목표의 완성만이 마무리는 아니다. 오히려 일상 속 작은 끝맺음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는 것, 저녁에 설거지를 끝내고 싱크대를 닦는 것, 읽은 책을 제자리에 꽂는 것. 이런 사소한 행동 들이 쌓여 '마무리하는 습관'을 만든다. 작은 일을 끝내는 경험이 쌓이면 큰 일을 끝낼 수 있는 체력이 생긴다. 마치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마무리 근육도 훈련이 필요하다. 매일 조금씩, 작은 것들을 완결시키는 연습이 결국 큰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또한 작은 마무리는 즉각적인 성취감을 준다. "오늘 할 일"을 모두 체크하고 하루를 마감할 때의 뿌듯함. 그 감정이 내일을 시작하는 에너지가 된다. 반대로 미완의 것들이 쌓이면 무기력이 찾아온다.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일까"라는 자책이 시작되고, 그 자책이 다시 실행력을 떨어뜨린다.
마무리는 자기 신뢰의 문제다. 내가 시작한 일을 내가 끝낼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이 있어야 새로운 도전도 가능하다. 끝내지 못한 일들이 많아지면 스스로를 믿기 어려워진다. "어차피 나는 해도 안 돼"라는 패배주의가 자리 잡는다. 그러면 시도 자체를 꺼리게 된다.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건 악순환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할 기회도 없다. 그리고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쌓여야 자신감이 생긴다. 그 자신감이 다시 더 큰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끝내는 연습'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결과가 아니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나와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