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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에게 배우는 자존감 대화법 - 개정판
문지현 지음, 니나킴 그림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에서 문지현 작가가 제시한 자전거 비유는 내게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화가 날 때 욕을 하면 화가 풀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욕을 할수록 분노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마치 자전거를 멈추고 싶으면서도 페달을 더 세게 밟는 것과 같다는 설명은 너무나 명쾌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친구들에게 그 사람의 잘못을 늘어놓으면 속이 시원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화가 치밀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분노는 증폭되었다. 결국 욕이나 비난의 말들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분노를 멈추고 싶다면 화내는 말을 멈추라고 조언한다. 처음엔 쉽지 않지만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하면 차츰 분노가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실천하기에는 상당한 용기와 자제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출과 증폭은 다르다. 감정을 인정하되 그것을 키우는 말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감정 조절의 시작인 것 같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통찰 중 하나는 "듣는 사람은 그 말을 한 번 듣지만 말하는 사람은 말하기 전과 말할 때 두 번 듣는다"는 구절이었다. 입 밖으로 나온 말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머무는 말도 우리 뇌가 듣고 해석한다는 사실은 말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했다. 나는 평소 남들에게는 비교적 친절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가혹한 말을 많이 한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해?", "역시 난 안 돼", "이번에도 실패했네"같은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말들이 내 무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속 말은 타인에게 들리지 않기 때문에 더 무방비하게 내뱉게 된다.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으니까,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많이 상처받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타인이 나에게 하는 말보다 훨씬 더 깊이 파고든다. 외부에서 오는 비난은 방어할 수 있지만, 내부에서 오는 비난은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순하고 착한 말의 씨앗을 마음에 심으면 그것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독하고 악한 말의 씨앗을 심으면 자신을 품은 사람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상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 만들어진다. 긍정적 자기 대화는 자존감을 키우 고, 부정적 자기 대화는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저자가 설명하는 경청의 개념도 새로웠다.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아니라 몸 전체를 기울여 듣는다는 것.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눈을 빛내며, 내용을 받아 적으려 노력하는 자세가 오히려 마음의 집중을 돕는다는 설명은 역설적이지만 설득력 있었다. 우리는 보통 마음이 먼저 준비되어야 몸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몸의 자세가 마음의 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열성적인 자세를 취하면 실제로 관심이 생기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면 긴장이 풀어진다. 나는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다음에 내가 할 말을 준비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눈으로는 상대를 보지만 머릿속으로는 반박 논리를 구성하고, 내 경험담을 떠올리고, 조언할 내용을 정리했다. 그것은 듣기가 아니라 기다리기였다. 진정한 경청은 상대의 말 속에 온전히 머무는 것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내 경험을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상대의 경험과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상대는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고, 마음을 열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저자가 발견한 통찰은 특별하다. 마음의 병이 말의 문제, 언어의 문제와 긴밀히 연 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말의 회복, 언어의 회복이 마음속 병의 치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뻔한 조언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인지 구조를 형성하고, 그 인지 구조가 다시 우리의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학적 원리에 기반한다. 우울한 사람은 우울한 언어를 사용하고, 우울한 언어는 다시 우울을 강화한다. 불안한 사람은 불안한 언어를 사용하고, 불안한 언어는 불안을 증폭시킨다. 반대로, 의식적으로 언어를 바꾸면 마음도 바뀔 수 있다. "나는 불안해"를 "나는 지금 긴장하고 있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로 바꾸는 것. "나는 실패자야"를 이번엔 잘 안 됐지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로 바꾸는 것. 이런 작은 언어의 변화가 축적되면 자아상이 바뀌고, 자아상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평소 얼마나 무심코 말을 사용해왔는지 깨달았다. 타인에게 하는 말도, 나 자신에게 하는 말도 충분히 돌아보지 않았다. 말이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자아를 형성하고, 삶을 설계하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내가 하는 말을 더 의식적으로 선택하려 한다. 마음속 말부터 점검하고, 긍정적 표현을 연습하고, 진정으로 경청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이루 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한다면, 차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