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 내 뜻을 찰떡같이 전달하는 소통의 비밀
이마이 무쓰미 지음, 이정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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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직장에서 동료와 업무를 논의하고, 가족과 일상을 공유하며, 친구들과 마음을 터놓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주 대화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될까? 왜 분명히 말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소통의 문제를 '표현 방식'의 문제로 여긴다. 더 명확하게 말하면, 더 친절하게 설명하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반복하면 상대방이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접근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인지과학적 접근을 통해 많은 조언을 해 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마이 무쓰미의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였다. 책의 제목이 직설적이다. ^.^

인지과학에서 '스키마'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기본적인 틀을 말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개'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어떤 사람은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을, 다른 사람은 무시무시한 맹견을, 또 다른 사람은 만화 속 귀여운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다. 같은 단어, 하지만 완전히 다른 연상과 감정이 동반되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각자의 경험, 교육,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스키마가 마치 보편적인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다. 상대방과 나의 스키마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효과적인 소통의 첫 번째 단계다.

인간의 기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고 꺼내는 녹음기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기억은 매번 재구성되며, 그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이런 왜곡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회의에서 상사가 한 말을 각자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 이는 '잘못 들었다'는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관심사, 걱정거리, 기대 등이 기억의 형성과 재구성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같은 말을 들었지만,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해석하고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감정이 개입된 상황에서 더욱 심해진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흥분한 상태에서는 선택적 주의가 더욱 강해져서,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놓치기 쉽다. 따라서 중요한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고려하고, 핵심 내용을 여러 방식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는 효율성을 위해 다양한 '지름길'을 사용한다. 이를 휴리스틱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유용하지만 때로는 체계적인 오류를 만들어낸다. 이런 오류를 인지 편향이라고 한다. 확증 편향은 그 중에서도 소통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치는 편향이다. 우리는 자신의 기존 믿음이나 의견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대화 중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상대방의 말 중에서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은 명확하게 들리지만, 다른 부분은 흘려듣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편향은 '저주받은 지식의 편향'이다. 어떤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지식을 모르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어려워한다. 전문가가 초보자에게 설명할 때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 상대방에게는 전혀 새로운 개념일 수 있다는 점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많이 접하고 있는 메타인지는 '인지에 대한 인지', 즉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의 사고 과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능력이다. 소통에서 메타인지가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한계와 편향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메타인지 능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화한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라고 확인하고,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또한 자신의 설명이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반면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이해나 설명에 대해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이렇게 쉽게 설명했는데 왜 이해하지 못하지?"라고 생각하거나, "내 말이 틀릴 리 없어"라고 확신한다. 이런 태도는 소통의 장벽을 높인다. 또한 감정은 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긍정적인 감정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신뢰를 높여 소통을 원활하게 만든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인지 능력을 저하시키고 편향을 강화시켜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스트레스나 분노 상태에서는 뇌의 편도체가 활성화되면서 전전두엽의 기능이 억제된다. 전전두엽은 논리적 사고, 계획, 판단 등을 담당하는 부위이므로, 이 기능이 저하되면 상대방의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대신 자신을 방어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충동이 강해진다. 따라서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적인 감정이 높은 상황에서는 중요한 대화를 피하거나, 감정을 진정시키는 시간을 먼저 갖는 것이 현명하다.

진정한 소통의 달인은 화려한 말솜씨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끊임없이 확인하고 조율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삼고, 설명에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상대방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지과학이 알려주는 소통의 비밀은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고, 각자 다른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런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진정한 마음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 그리고 과학적 통찰에 기반한 실천이 만나는 곳에서 진정한 소통이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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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뉴욕 - 최고의 뉴욕 여행을 위한 가장 완벽한 가이드북, 2026년 최신판 프렌즈 Friends 4
이주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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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바쁜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번 여름 휴가로 뉴욕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유명 관광지만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힐링과 재충전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 나에게 전문 여행작가가 오랜 시간 뉴욕에 머물며 경험한 생생한 정보를 담은 이 가이드북은 어떤 의미가 될까? 이번에 읽은 <프렌즈 뉴욕 2026> 최신판은 뉴욕 여행을 준비하는 나에게 이 가이드북이 어떤 특별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다른 여행서와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힐링의 경험을 줄 수 있는지 가이드를 해 주는 것 같다.

대부분의 여행 가이드북들이 관광객의 시선에서 유명 명소 중심의 정보만을 제공한다면, 이 책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보여 준다. 오랜 시간 뉴욕에 거주하며 그 도시의 일상을 깊이 들여다본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 다. 뉴욕의 화려한 마천루와 유명 랜드마크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뉴욕의 모습들 -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작은 카페, 관광객들이 모르는 숨은 갤러리, 아침마다 신선한 재료를 공급받는 동네 델리까지. 이런 디테일한 정보들은 그 도시의 문화와 일상을 진정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힐링을 위한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획일적인 코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머물고 싶어 하는 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현지인만이 아는 조용한 공간들의 정보는 그런 면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이 가이드북의 또 다른 강점은 다양한 테마별 여행 코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술과 건축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를 위한 미술관 투어, 뉴욕의 진짜 맛을 찾아가는 미식 여행, 도심 속에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도보 여행 등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들이 준비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일정별 추천 코스의 다양성이다. 바쁜 일정으로 3일밖에 머물 수 없는 사람부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7일간 여유롭게 뉴욕을 탐험하고 싶은 사람까지, 각자의 상황에 맞는 최적화된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여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실용적인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여행서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별한 정보들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뉴욕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예술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감상하다가도, 골목을 돌아서면 무명 작가의 그래피티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우연한 만남들이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힐링을 위한 여행에서 예술적 경험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름다운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감동과 여운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씻어내고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준다. 이 가이드북이 소개하는 크고 작은 갤러리들, 그리고 각각의 특색과 관람 포인트에 대한 정보는 나만의 예술적 여정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관광객들로 붐비는 유명 미술관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아늑한 작은 갤러리들의 정보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때로는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작품과 대화하는 것이 더 깊은 힐링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한 요소이자, 그 자체로 훌륭한 힐링의 수단이다. 특히 뉴욕처럼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집약된 도시에서는 음식을 통해 그 도시의 정체성과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가이드북이 제시하는 음식 정보의 폭과 깊이는 다른 여행서와 확연히 구별된다. 뉴욕을 대표하는 피자와 베이글 같은 클래식한 음식부터, 다양한 에스닉푸드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단 순히 맛집의 위치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 음식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 그리고 현지인들이 그 음식을 즐기는 방식까지 상세히 설명한다는 점이다. 파인 다이닝에서의 고급스러운 식사 경험부터 길거리 음식의 소박한 즐거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미식 경험은 여행의 풍성함을 더해줄 것이다. 때로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특별한 저녁을 보내고, 때로는 현지인들이 줄 서서 먹는 소박한 델리에서 진짜 뉴욕의 맛을 경험하는 것, 이런 다채로운 경험들이 모여 완전한 힐링의 여정을 만들어낼 것이다. 뉴욕하면 콘크리트 정글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도시 곳곳에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들이 숨어 있다. 센트럴 파크는 물론이고, 하이라인 파크나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 같은 곳들에서는 도심 속에서도 자연의 치유력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공간들에서 보 내는 시간은 힐링 여행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바쁜 도시의 리듬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의 속도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거나,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들이 여행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될 수 있다.

이제 곧 다가올 여름 휴가가 더욱 기대된다. 유명한 관광지를 체크리스트처럼 돌아보는 여행이 아니라, 뉴욕이라는 도시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이 가이드북은 그런 개인적인 여행 서사를 만들어가는 데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줄 것이다. 센트럴 파크에서 아침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작은 동네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미술관에서 좋아하는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어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 이런 소소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이 진정한 힐링을 가져다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경험들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궁금하다. 뉴욕에서 느낀 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끊임없는 변화에 대한 열린 마음가짐, 그리고 예술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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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판소리 - 조선의 오페라로 빠져드는 소리여행 방구석 시리즈 3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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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국악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여러 K-드라마의 주제 음악으로 국악이 사용되고, 국악을 노래하는 가수들이 늘어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악의 현대적 재해석과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에서 국악이 주제 음악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전통 음악의 매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이러한 접근은 국악을 새로운 세대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최근 국악을 전문으로 하는 가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전통 국악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 음악에서도 국악과 현 대 음악의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통해 국악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화 <서편제>의 팬으로 판소리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에 판소리에 대해 감성적으로 이야기 해주는 신간을 읽었다. 이서희님의 방구 석 판소리>였다. ^.^

어떤 예술 장르는 시간의 강을 건너며 그 본질을 잃지 않는다. 판소리가 바로 그런 예술이다. 조선시대 광대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된 이 독특한 음악극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와 오늘날 우리의 거실 한켠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쉰다.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듯, 과거의 사람들은 장터에서, 양반가 사랑채에서 한 명의 소리꾼이 들려주는 서사에 몰입했다. 판소리는 우리 국악 장르에서 하나의 완성된 세계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때로는 슬픈 여인이 되고, 때로는 용맹한 장수가 되며, 때로는 간교한 악역이 되어 청중 앞에서 펼쳐지는 대서사시다. 서양의 오페라가 여러 명의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화려한 무대장치를 필요로 한다면, 판소리는 오직 한 사람의 소리꾼과 한 장의 북만으로도 우주를 창조해낸다. 저자는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여러 판소리에 대해 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심청가를 다시 읽으며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이 이야기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해왔다는 사실이다. 효녀 심청이라는 도덕적 프레임 너머로, 극한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을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단순한 효행담이 아니라, 가난과 절망이라는 현실 앞에서 한 젊은 여성이 내린 비극적 결단의 순간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는 모순이다. 심청이는 효녀인 동시에 불효녀다.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버지를 홀로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이런 복합적 해석이야말로 판소리가 지닌 깊이를 보여준다.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노래 속에 담아낸 것이다.

적벽가에서 만나는 조조의 군사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준다. 역사서에서는 한 줄로 넘어가는 '병사들'이 판소리에서는 각각의 개성과 사연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들은 대의명분보다는 집에 남겨둔 가족을 걱정하고, 전쟁보다는 자신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것이야말로 판소리가 지닌 가장 큰 힘이 아닐까. 권력자들의 거대한 서사 뒤에 숨겨진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길어 올리는 것. 역사의 주역 이 아닌 그저 시대에 휘둘린 개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런 시각은 오늘날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큰 사건들 뒤에 있는 개개인의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판소리의 가장 독특한 점은 그것이 '소리'라는 점이다. 글자로 쓰인 이야기와 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소리꾼의 목소리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감정의 언어가 된다. 목메는 소리는 슬픔을, 우렁찬 소리는 기쁨을, 떨리는 소리는 분노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계면조와 우조로 나뉘는 판소리의 선법은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담아낸다. 계면조의 서글픈 선율은 한이라는 감정을, 우조의 밝고 씩씩한 선율은 희망과 의지를 표현한다. 이런 음악적 특성은 서양 음악과는 다른 독특한 정서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방구석 판소리'라는 표현이 주는 친근함은 전통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더 이상 판소리는 국악당이나 특별한 공연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리타분한 예술이 아니다. 유튜브로, 팟캐스트로, 그리고 책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이런 변화는 매우 의미가 크다. 전통문화가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살아있는 문화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이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악을 듣고, 전통 스토리텔링에서 웹툰의 소재를 찾아내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판소리는 본질적으로 소통의 예술이다. 소리꾼과 청중 사이의 호흡, '얼씨구', 좋다'는 추임새로 이어지는 즉석 소통은 일방적인 공연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이는 현대의 인터랙티브 미디어보다도 훨씬 앞선 참여형 예술의 모범이었다.

이런 소통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이 빠르고 효율적이긴 하지만, 때로는 깊 이와 온기가 부족하다. 반면 판소리적 소통은 느리지만 진정성이 있고,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다. 판소리와 우리 고전의 가치는 과 거를 그리워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이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주는 영감과 지혜에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상화되 는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정과 이야기,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판소리가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다루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 희망과 절망, 정의와 불의 같은 주제들은 시대를 초월해 우 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런 근본적 감정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방구석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판소리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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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 - 숲의 말을 듣는 법
김용규 지음 / 디플롯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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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매일 아침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바쁜 발걸음에 쫓겨 스쳐 지나가던 나무들과 풀잎들이 사실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닫게 되었을까. 김용규의 글을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숲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 순간 들려온 것은 말이 아니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새들이 가지 사이를 오가며 내는 작은 움직임, 그리고 땅 속 깊은 곳에서 뿌리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을 것 같은 기운.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평화가 바로 여기, 내 발밑과 머리 위에 늘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완벽한 인생을 꿈꾸며 살아온 나에게 숲의 첫 번째 가르침은 충격적이었다. 여기 서 있는 모든 나무와 풀들이 결코 완벽한 조건에서 자라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어떤 나무는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그늘진 곳에서 몸을 비틀며 빛을 찾아 자랐고, 어떤 풀은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더 깊이 내려 생명수를 구했다.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는 곧게 뻗지 못하고 구부러진 채로 살아가지만, 그 굽은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문득 내 삶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모든 조건이 완벽해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숲은 말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자리에서도, 아니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게 삶을 일궈나갈 수 있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새로운 다짐을 했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말자. 지금 이 순간, 이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고, 바위틈의 소나무처럼 굽어져도 좋으니 꾸준히 자라나가자고•• 도시에서 살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피상적으로만 느끼게 된다. 달력으로 봄이 왔다는 걸 알고, 에어컨을 틀며 여름을 맞이하고, 단풍 사진으로 가을을 확인한다. 하지만 숲에서 만난 계절은 전혀 달랐다. 봄에 돋아난 새싹들이 여름의 뜨거운 시련을 견디며 단단해지고, 가을에 열매를 맺은 후 겨울의 춥고 긴 잠에 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 삶에도 계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늘 여름이기를 바랐다. 활기차고 뜨겁게 성장하는 시기만을 원했다. 겨울 같은 침잠의 시간이나 가을 같은 성찰의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조급해했다. 하지만 나무들을 보니 겨울이 없으면 봄도 올 수 없고, 가을의 떨어짐이 없으면 새로운 싹도 자랄수 없다는걸 알게 되었다. 요즘 나는 내 삶의 계절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지금이 겨울이라면 충분히 쉬고, 봄이라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여름이라면 열정적으로 달리고, 가을이라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감사한다. 각 계절마다 그 계절만의 아름다움과 의미가 있다는 걸 숲이 가르쳐주었다.

숲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은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각자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땅 밑에서는 뿌리로 연결되어 있고, 균류를 통해 영양분을 나누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큰 나무가 작은 새싹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낙엽이 썩어 거름이 되어 다른 생명을 키우고, 벌과 나비가 꽃가루를 옮겨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누구도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와 경쟁에 익숙해진 나에게 이는 큰 깨달음이었다. 나 역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마시는 공기, 먹는 음식, 입고 있는 옷,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종이와 펜까지 모두 수많은 생명과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나는 '나 혼자 힘으로 이뤄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받은 도움에 감사하고,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숲처럼 서로를 살리는 관계 속에서 살고 싶다. 도시의 시간은 빠르고 촉박하다. 분 단위, 초 단위로 쪼개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산다. 하지만 숲의 시간은 달랐다. 여기서는 계절이 시간의 단위이고, 해와 달의 순환이 리듬이다. 수백 년을 산 거대한 나무 앞에 서면 내가 고민하던 일들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 나무가 견뎌온 수많은 계절, 폭풍, 가뭄, 혹독한 추위를 생각하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도 결국 지나갈 하나의 계절일 뿐이라는 위안을 얻는다. 동시에 한 해살이풀들을 보며 짧은 생이라도 최선을 다해 꽃피우고 열매 맺는 모습에서 삶의 소중함을 배운다. 긴 시간의 관점에서는 겸손을, 짧은 생의 관점에서는 간절함을 얻는다. 이제 나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내 인생도 한 그루 나무처럼 천천히 자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오늘 이 하루도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고 여기며 충실하게 산다.

숲에서 배운 지혜들을 일상에 적용하려 노력하는 요즘, 내 삶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게 되었고, 완벽하지 않은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침묵의 가치를 깨달았다. 무엇보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문제와 어려움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상처도 성장의 과정으로 여기며, 작은 것들에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아침 걷는 그 길이 이제는 출근길의 의미만이 아니다. 숲과 나누는 무언의 대화가 시작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으며,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듣고,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한다. 숲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말없이 서서 누구든 찾아오는 이에게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준다. 오늘도 나는 숲으로 간다.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더 깊은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숲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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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의 연결을 묻는 카를로 로벨리의 질문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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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카를로 로벨리의<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를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장자의 철학에서 시작해 레스보스 섬으로, 전쟁 이야기에서 편집자 자랑으로, 태양의 거리에서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저자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각각의 주제는 흥미로웠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두 번째 독서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로벨리는 처음부터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실제로는 하나의 거대한 주제 아래 연결되어 있었다. 바로 '연결'이라는 주제 말이다. 이 경험 자체가 로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부분만 보고 전체를 놓치며, 개별적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다.

로벨리가 제시하는 관계적 존재론은 내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가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의자를 볼 때 물질적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능과의 공명, 기억과의 연결을 통해 '의자'라는 의미를 구성한다는 관점은 매우 설득력 있다. 이는 내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머니의 찻잔을 볼 때 나는 도자기 그릇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찻잔에는 어머니와의 수많은 오후 시간들, 따뜻한 차향, 조용한 대화들이 스며들어 있다. 그 찻잔은 물질적 실체 이상의 것이며, 관계와 기억의 네트워크 속에서만 그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하지만 동시에 나는 의문을 갖는다. 이러한 관계적 존재론이 개체의 고유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개별적 정체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로벨리는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것 같다.

갈릴레오에 대한 로벨리의 해석은 내게 과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과학적 발견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의 획득이라는 관점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갈릴레오의 <대화>가 과학적으로는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사에 혁명적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은 인상적이다. 이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관과는 다르다. 나는 과학을 객관적 사실들의 체계로 이해해왔는데, 로벨리는 과학도 결국 인간의 관점과 해석이 개입되는 활동임을 보여준다. 이는 과학을 더 인간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으로 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관점이 과학적 객관성을 훼손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모든 것이 관점에 따라 상대적이라면, 과학적 진리의 보편성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로벨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로벨리의 사회정치적 비전, 특히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는 현재의 세계 상황을 생각할 때 매우 절실하게 다가온다. 팬데믹과 기후변화, 국제적 갈등들을 보면서 나는 그의 말이 이상론이 아님을 실감한다.지구가 작고 인류가 연약하다는 그의 지적은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의 작은 우주선에 함께 타고 있는 승객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협력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집단 간의 이해관계 충돌을 고려할 때, 로벨리가 제시하는 전 지구적 협력이 실현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그는 필요성을 잘 설명하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 것 같다.

로벨리의 시간 개념, 특히 기억의 시간, 욕망의 시간, 영원한 현재의 시간이라는 구분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물리학적 시간을 넘어서는 실존적 시간성에 대한 통찰이다. 내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정말로 이 세 가지 시간 속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미래에 대한 욕망과 기대가 나를 이끌며,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의 현재 속에서 실제로 살아 가고 있다. 이러한 시간성의 복합성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특징이라는 그의 지적에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시간이 때로 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속박하거나, 미래에 대한 욕망이 현재의 순간을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로벨리는 이러한 갈등적 측면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을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에 비유한 로벨리의 겸손한 존재론은 나에게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불안감을 준다. 우리가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은 분명 필요하다. 인간의 오만함이 환경 파괴와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겸손함이 무력감으로 이어질 위험은 없을까? 우리가 낙엽과 같은 존재라면, 우리의 노력과 선택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로벨리는 미래가 우리에게도 달려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그의 겸손한 존재론과 어느 정도 긴장 관계에 있는 것 같다. 나는 겸손함과 주체성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주의 작은 부분이지만, 동시에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로벨리는 완벽한 체계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많은 질문들이 답변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고, 때로는 논리적 비약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가치는 크다. 무엇보다 책은 분절된 현대 세계에서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소중한 시도다. 과학과 철학, 개인과 사회,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연결하려는 그의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시도들이 축적되어야 우리는 더 통합적인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벨리의 다정한 어조와 따뜻한 시선은 차가운 과학적 사실들에 인간적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는 복잡한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면서도 위로와 희망을 전달한다. 이러한 과학자의 모습 자체가 과학과 인문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철학에 대한 신선한 접근 방법으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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