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판소리 - 조선의 오페라로 빠져드는 소리여행 방구석 시리즈 3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국악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여러 K-드라마의 주제 음악으로 국악이 사용되고, 국악을 노래하는 가수들이 늘어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악의 현대적 재해석과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에서 국악이 주제 음악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전통 음악의 매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이러한 접근은 국악을 새로운 세대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최근 국악을 전문으로 하는 가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전통 국악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 음악에서도 국악과 현 대 음악의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통해 국악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화 <서편제>의 팬으로 판소리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에 판소리에 대해 감성적으로 이야기 해주는 신간을 읽었다. 이서희님의 방구 석 판소리>였다. ^.^

어떤 예술 장르는 시간의 강을 건너며 그 본질을 잃지 않는다. 판소리가 바로 그런 예술이다. 조선시대 광대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된 이 독특한 음악극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와 오늘날 우리의 거실 한켠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쉰다.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듯, 과거의 사람들은 장터에서, 양반가 사랑채에서 한 명의 소리꾼이 들려주는 서사에 몰입했다. 판소리는 우리 국악 장르에서 하나의 완성된 세계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때로는 슬픈 여인이 되고, 때로는 용맹한 장수가 되며, 때로는 간교한 악역이 되어 청중 앞에서 펼쳐지는 대서사시다. 서양의 오페라가 여러 명의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화려한 무대장치를 필요로 한다면, 판소리는 오직 한 사람의 소리꾼과 한 장의 북만으로도 우주를 창조해낸다. 저자는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여러 판소리에 대해 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심청가를 다시 읽으며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이 이야기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해왔다는 사실이다. 효녀 심청이라는 도덕적 프레임 너머로, 극한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을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단순한 효행담이 아니라, 가난과 절망이라는 현실 앞에서 한 젊은 여성이 내린 비극적 결단의 순간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는 모순이다. 심청이는 효녀인 동시에 불효녀다.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버지를 홀로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이런 복합적 해석이야말로 판소리가 지닌 깊이를 보여준다.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노래 속에 담아낸 것이다.

적벽가에서 만나는 조조의 군사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준다. 역사서에서는 한 줄로 넘어가는 '병사들'이 판소리에서는 각각의 개성과 사연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들은 대의명분보다는 집에 남겨둔 가족을 걱정하고, 전쟁보다는 자신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것이야말로 판소리가 지닌 가장 큰 힘이 아닐까. 권력자들의 거대한 서사 뒤에 숨겨진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길어 올리는 것. 역사의 주역 이 아닌 그저 시대에 휘둘린 개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런 시각은 오늘날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큰 사건들 뒤에 있는 개개인의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판소리의 가장 독특한 점은 그것이 '소리'라는 점이다. 글자로 쓰인 이야기와 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소리꾼의 목소리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감정의 언어가 된다. 목메는 소리는 슬픔을, 우렁찬 소리는 기쁨을, 떨리는 소리는 분노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계면조와 우조로 나뉘는 판소리의 선법은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담아낸다. 계면조의 서글픈 선율은 한이라는 감정을, 우조의 밝고 씩씩한 선율은 희망과 의지를 표현한다. 이런 음악적 특성은 서양 음악과는 다른 독특한 정서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방구석 판소리'라는 표현이 주는 친근함은 전통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더 이상 판소리는 국악당이나 특별한 공연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리타분한 예술이 아니다. 유튜브로, 팟캐스트로, 그리고 책으로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이런 변화는 매우 의미가 크다. 전통문화가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살아있는 문화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들이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악을 듣고, 전통 스토리텔링에서 웹툰의 소재를 찾아내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판소리는 본질적으로 소통의 예술이다. 소리꾼과 청중 사이의 호흡, '얼씨구', 좋다'는 추임새로 이어지는 즉석 소통은 일방적인 공연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이는 현대의 인터랙티브 미디어보다도 훨씬 앞선 참여형 예술의 모범이었다.

이런 소통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이 빠르고 효율적이긴 하지만, 때로는 깊 이와 온기가 부족하다. 반면 판소리적 소통은 느리지만 진정성이 있고,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다. 판소리와 우리 고전의 가치는 과 거를 그리워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이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주는 영감과 지혜에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상화되 는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정과 이야기,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판소리가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다루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 희망과 절망, 정의와 불의 같은 주제들은 시대를 초월해 우 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런 근본적 감정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방구석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판소리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