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의 연결을 묻는 카를로 로벨리의 질문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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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카를로 로벨리의<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를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장자의 철학에서 시작해 레스보스 섬으로, 전쟁 이야기에서 편집자 자랑으로, 태양의 거리에서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저자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각각의 주제는 흥미로웠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두 번째 독서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로벨리는 처음부터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실제로는 하나의 거대한 주제 아래 연결되어 있었다. 바로 '연결'이라는 주제 말이다. 이 경험 자체가 로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부분만 보고 전체를 놓치며, 개별적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다.

로벨리가 제시하는 관계적 존재론은 내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가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의자를 볼 때 물질적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능과의 공명, 기억과의 연결을 통해 '의자'라는 의미를 구성한다는 관점은 매우 설득력 있다. 이는 내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머니의 찻잔을 볼 때 나는 도자기 그릇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찻잔에는 어머니와의 수많은 오후 시간들, 따뜻한 차향, 조용한 대화들이 스며들어 있다. 그 찻잔은 물질적 실체 이상의 것이며, 관계와 기억의 네트워크 속에서만 그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하지만 동시에 나는 의문을 갖는다. 이러한 관계적 존재론이 개체의 고유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개별적 정체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로벨리는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것 같다.

갈릴레오에 대한 로벨리의 해석은 내게 과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과학적 발견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의 획득이라는 관점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갈릴레오의 <대화>가 과학적으로는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사에 혁명적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은 인상적이다. 이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관과는 다르다. 나는 과학을 객관적 사실들의 체계로 이해해왔는데, 로벨리는 과학도 결국 인간의 관점과 해석이 개입되는 활동임을 보여준다. 이는 과학을 더 인간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으로 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관점이 과학적 객관성을 훼손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모든 것이 관점에 따라 상대적이라면, 과학적 진리의 보편성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로벨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로벨리의 사회정치적 비전, 특히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는 현재의 세계 상황을 생각할 때 매우 절실하게 다가온다. 팬데믹과 기후변화, 국제적 갈등들을 보면서 나는 그의 말이 이상론이 아님을 실감한다.지구가 작고 인류가 연약하다는 그의 지적은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의 작은 우주선에 함께 타고 있는 승객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협력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집단 간의 이해관계 충돌을 고려할 때, 로벨리가 제시하는 전 지구적 협력이 실현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그는 필요성을 잘 설명하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 것 같다.

로벨리의 시간 개념, 특히 기억의 시간, 욕망의 시간, 영원한 현재의 시간이라는 구분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물리학적 시간을 넘어서는 실존적 시간성에 대한 통찰이다. 내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정말로 이 세 가지 시간 속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미래에 대한 욕망과 기대가 나를 이끌며,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의 현재 속에서 실제로 살아 가고 있다. 이러한 시간성의 복합성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특징이라는 그의 지적에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시간이 때로 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속박하거나, 미래에 대한 욕망이 현재의 순간을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로벨리는 이러한 갈등적 측면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을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에 비유한 로벨리의 겸손한 존재론은 나에게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불안감을 준다. 우리가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은 분명 필요하다. 인간의 오만함이 환경 파괴와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겸손함이 무력감으로 이어질 위험은 없을까? 우리가 낙엽과 같은 존재라면, 우리의 노력과 선택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로벨리는 미래가 우리에게도 달려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그의 겸손한 존재론과 어느 정도 긴장 관계에 있는 것 같다. 나는 겸손함과 주체성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주의 작은 부분이지만, 동시에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로벨리는 완벽한 체계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많은 질문들이 답변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고, 때로는 논리적 비약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가치는 크다. 무엇보다 책은 분절된 현대 세계에서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소중한 시도다. 과학과 철학, 개인과 사회,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연결하려는 그의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시도들이 축적되어야 우리는 더 통합적인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벨리의 다정한 어조와 따뜻한 시선은 차가운 과학적 사실들에 인간적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는 복잡한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면서도 위로와 희망을 전달한다. 이러한 과학자의 모습 자체가 과학과 인문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철학에 대한 신선한 접근 방법으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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