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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1992년 사라예보의 한 빵가게 앞에서 빵을 사기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박격포의 공격으로 22명이 사망을 한다.
24시간이 흐른 오후 4시 한 명의 첼리스트가 박격포가 떨어진 그 장소에서 연미복을 입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큰 첼로로 알비노의 <아다지오 G단조>를 빵을 사기위해 기다리다 박격포 공격으로 죽은 22명에게 바치는 곡이며, 22일 동안 연주된다.
애로는 내전이 일어나기 전 22살의 사격 국가대표 선수였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언덕 위에서 사라예보 시민들을 사격하는 세르비아계 민병대에게 총을 겨누는 사격수가 된 여자. 자신이 그들을 죽이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소중한 이들을 빼어갔다라는 증오로 자기 최면처럼 걸면서 상대 저격수를 죽인다. 상사의 명령으로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22일 동안 상대편 저격수로부터 보호하라는 명을 받다. 첼리스트를 보호하면서 상대저격수가 첼리스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저격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한다.
케난은 가족과 아래층 괴팍한 노파의 일용할 물를 구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언덕 위의 저격수들의 위협을 받으면서 유일하게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는 양조장으로 위험한 길을 나서는, 매번 집을 나설때마다 무너지려는 자신을 느끼는 가장이다. 양조장에서의 폭격을 간신히 피하고 돌아오는 길 암시장에서 전쟁이라는 상황을, 자신과 같은 사람을 이용해서 호의호식하는 이를 보며 분노한다. 돌아오는 길 첼리스트의 연주를 듣게 된다.
드라간은 내전 직전 아들과 아내를 이탈리아로 피난을 보내고 자신의 누이집에서 기거하며 매일 자신이 일하던 빵집으로 나가며 주위로부터 모든 것을 차단한 채 살아간다. 빵집으로 가는 길 아내의 친구, 에미나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죽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저격수의 사격으로 부상을 입은 에미나를 구해주지 못하고 타인이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본다.
첼리스트의 연주는 전쟁을 끝내고자 무언가를 변화시키고자 한 것이 아닌 죽은 이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다. 하루하루 저격수들과 박격포 공격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이 사라예보의 시민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되지 않는 이들에게 첼리스트의 연주는 죽은 이들에게 애도와 산 자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준다.
애로는 챌리스트를 보호하고 그의 연주들 들으면서 자신이 내세운 살인의 이유가 그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이라는 것을,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누구를 증오하고 미워해서 죽이는 것이 정당화 될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케난 또한 연주를 통해 내전 이전의 평범한 일상, 평화로웠던 일상을 잠시나마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드라간은 그 속에서 자신의 쌓은 벽장 안에서 나온다.
이야기는 특정한 시간이 아닌 1992년 어느 날, 딱히 정해진 시간의 흐름이 없다.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애로나 케난, 드라간이 보낸 하루가 하루일수도 이틀이나, 삼일 일수도 있다.
전쟁 속에서 인간답게,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긴 전쟁기간 중 인간은 유령처럼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상태가 될 것이다. 케난처럼 가족을 위해 집을 나설때마다 무너지는 자신을 느끼고 언제까지 자신이 버틸 수 있는지, 지금 짊어지고 있는 모든 짐들을 놓아버리고 싶어질 것이다. 아니면 드라간처럼 자신은 유령처럼 살 수 없다하면서 주변사람들과의 사이에 벽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와 닿는 인물은 케난이다. 실제 전쟁 속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과 생각은 케난과 같은 것이 아닐까?
초등학교 때 TV에서 알비노의 <아디지오 G단조>를 무너진 폐허 속에서 연주하는 것을 듣고,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 책을 읽고, 그 곡을 들으면서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픈 곡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고 전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전쟁 속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