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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고양이의 결심 -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ㅣ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45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임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3월
평점 :
게으른 고양이 뒹굴이는 제대로 길이 들어 언덕과 연못까지 생겨버린 소파위에서 하루의 일과를 거의 모두 소화해낸다. 하루에 한번 정원 뒤쪽에 있는 세상 끝의 화장실로 움직이는 걸 제외하면 거의 완벽하게 소파와 합체해 있는 수준이다. 소파 주변에 늘어놓은 치약, 빗, 밥그릇, 깡통따개, 연필, 리모콘을 비롯해서 낚싯대만 던지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고양이 밥, 생수가 뒹굴이의 일상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뒹굴이는 18단계의 계획표대로 계획성 있는 생활을 실천하고 있으며 계획표에는 청소하기와 깨끗이 씻기가 있으며, 나름대로 깔끔한 성격이라 집안 화분에 볼일 보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세상 끝으로의 힘겨운 외출을 감행할 정도이다.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뒹굴이의 일상에 이웃집 개 루디가 유일한 골칫거리다. 결국 시끄럽게 짖어대고 정원을 돌아다니며 공을 차고 다니는 멍청한 개 루디 때문에 벼룩을 옮게 된 뒹굴이는 정든 소파를 떠나게 되면서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변화를 겪게 된다. 소파 중심의 생활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계기는 벼룩을 떼어내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됐지만 뒹굴이에게 내재된 능력들을 끄집어내는 기회가 된다. 멋진 미용사로, 벌레 잡는 사냥꾼으로, 축구 코치로, 유명한 가수로 주변의 친구들의 인생에 도움을 주게 되면서 뒹굴이 또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묘하게 행복한 기분도 느끼게 된다. 결국 벼룩을 털어내고 가장 좋아하는 소파로 다시 돌아왔지만 예전처럼 행복한 기분이 드는 대신 따분하다는 걸 느끼게 된 뒹굴이는 벼룩을 다시 데려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 뒹굴이는 게으른 고양이가 아니다. 아침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시간에 벌써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와 벼룩을 찾아 나선 것이다. 벼룩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 뒹굴이는 벼룩을 떼 내는 데 기울인 노력의 몇 배쯤은 더 쏟아 부을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과학자나 선생님이나 화가나 연예인이나 동화구연가나 개 조련사나 굴뚝 청소부로 변장할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세상 밖의 행복을 조금씩 알아가며 친구들과 소통의 기쁨을 배우면서 뒹굴이는 소파의 연못과 언덕을 차츰 잊게 될 것이다.
동화가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접하게 된 동화 속 세상은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는 걸 항상 느끼게 된다. 이 책 <게으른 고양이의 결심> 또한 마흔 줄에 들어선, 어느 정도 방향이 결정된 길을 걷기만 하면 되는 상태인 나에게도 소파를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갈 작은 가방 하나 챙겨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아직까지 끄집어 내지 못했던 작은 재능이 남은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지 모를 일 아니냐며 당당해지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길이 활짝 열려있는 아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