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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부릉 자동차가 좋아 ㅣ I LOVE 그림책
리처드 스캐리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10월
평점 :
약간의 허풍을 보태서 말을 하자면 이 책에 대해서는 저자인 리처드 스캐리를 제외하고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거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줬으니 1년이 훌쩍 넘어 가는데 아마도 1000번 이상 읽어준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두어 번 정도 읽었고 책을 구입한 지 얼마되지 않은 기간에는 하루에 3,40번쯤 읽었으며 이 책은 아직도 책꽂이에 꽂혀 있는 시간보다는 방바닥에 놓여있는 시간이 더 많다. 책과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환상의 그림책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아이 마음에 쏙 들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엄마를 이렇게 오랫동안 힘들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 그만 볼 때도 되지 않았냐고 볼멘소리를 하면 이별이 아쉬워 집착하는 연인처럼 더 막무가내로 이 책을 고집한다.
책을 처음 읽을 무렵에는 온갖 신기한 자동차들을 꼼꼼히 살피느라 한 장 넘어가기 쉽지 않을 정도였으니 책 한권 읽는데 한 시간도 넘게 걸렸다. 각각의 자동차의 용도를 알려주고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도로 상황들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 다음에는 그림을 자세히 살피다보니 그저 자주 등장하는 줄 알았던 노랑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걸 발견하고는 '숨어있는 노랑이 찾기'놀이를 하느라 한참을 보냈다. 그 후로는 아이 혼자서 책을 펼쳐놓고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글자공부를 시작한 요즘은 이 책을 펼쳐놓고 아는 글자 찾기 놀이를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책과의 이별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다.
돼지가족이 바닷가로 소풍을 떠나면서 기가 막힌 자동차의 향연이 시작된다. 말썽꾸러기 운전자 딩고가 주차미터기를 죄다 넘어뜨리는 바람에 교통경찰인 플로시 경관에게 쫒기는 여정도 돼지가족의 나들이 여정과 맞물리면서 각각의 그림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딩고와 플로시 경관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 고장난 차가 있거나 사고현장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정비사 생쥐아줌마의 앙증맞은 견인차 찾기 놀이도 재미있다. 첫 장에 등장한 이삿짐 트럭이 마지막 장에서 옆집으로 이사 온 토끼가족 이야기로 연결이 되고, 바닷가로 출발하기 전 아빠가 들른 장난감 가게에서 주문한 물건이 소풍을 마치고 돌아온 돼지가족 집 앞에 배달되어 오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된다. 단순히 탈것들을 나열해 놓고 아이들을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구성이 치밀하고 이야기가 있다. 최근에 리처드 스캐리의 다른 책들이 <...가 좋아>시리즈로 계속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을 제외한 책들에서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단순하게 늘어놓기만 한 지루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70쪽에 달하는 책에 빼곡하게 온갖 종류의 탈것들이 등장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탈것들이 죄다 등장하는 것도 모자라서 바나나 호박 오이 도넛 연필 치즈 달걀 구두 모양의 기발한 차들도 등장한다. 특히 하늘을 나는 자동차비행기와 물 위를 달릴 수 있는 프로펠러 자동차와 같은 것은 이 책이 1974년에 출간된 책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책의 작가인 리처드 스캐리는 “나는 한 번 읽고 책꽂이에 꽂힌 채 잊히는 책을 만드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읽고 또 읽어 너덜너덜해지거나 스카치테이프로 책장을 이어붙인 책을 보면 나는 무척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집의 책은 심하게 너덜거린다. 천국에 있을 리처드 스캐리는 넘치도록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