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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6
로저 뒤봐젱 지음, 서애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발견한 책 한권을 날개 밑에 끼고 다니며 갈수록 교만해지는 피튜니아를 보면서 나의 책읽기를 돌아본다. 소화하기 힘겨웠지만 욕심 부려서 읽기를 시도했었던 몇몇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완벽하게 내 것으로 취하지도 못했으면서 전시용으로 꽂아두고 목에 힘만 잔뜩 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림책 한 권을 두고 아이와 엄마가 받아들이는 영역이 다른데, 아이는 피튜니아의 교만함이 불러오는 목장의 사건 사고들을 재미있어 하고 엄마는 책이 조심스럽게 숨겨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림책을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을...
피튜니아를 처음 만난 건 작년 겨울이었다. <피튜니아, 여행을 떠나다>와 함께 암거위 피튜니아의 이야기다. 아이는 피튜니아가 목장을 떠나서 대도시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다룬 <피튜니아, 여행을 떠나다>보다는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를 훨씬 더 즐겨 읽는다. 아무래도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등장하는 이야기라서 더 흥미롭게 읽는 것 같다.
피튜니아는 하는 행동이 어수룩해서 맹추라고 놀림 받는 암거위다. 어느 날 풀밭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하고는 목장 주인 아저씨의 말씀을 떠올린다. “책을 지니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롭다.” 그날부터 책을 항상 끼고 다니는 피튜니아는 정말로 지혜로워진 줄 알고 날로 교만해져서 목을 잔뜩 늘여 빼고 다닌다. 책을 지니고 다니는 피튜니아의 모습을 본 목장의 동물들도 정말 피튜니아가 지혜로워졌다고 믿게 되면서 피튜니아에게 이러저러한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피튜니아가 어려움에 처한 목장의 동물들에게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황당하면서도 정말 재미있다. 아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피튜니아의 어리석은 충고에 꼼짝없이 당하는 동물들의 우스꽝스런 모습들이다. 결국 피튜니아의 교만은 대형사고와 함께 날아가게 되고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게 된 피튜니아는 길이길이 새길 의미 있는 말을 내뱉는다. “지혜는 날개 밑에 지니고 다닐 수는 없는 거야. 지혜는 머리와 마음 속에 넣어야 해. 지혜로워지려면 읽는 법을 배워야 해.” 캬~ 이럴 때 보면 피튜니아가 맹추는 아닌 것 같다.^^
남편은 아이에게 늘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공부를 많이 해서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말고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청렴하고 아래를 살피고 힘없는 사람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이다. 물론 아이가 조금만 영특해도 내 아이가 천재라고 생각을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니 높은 위치에 당연히 있을 거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굳이 높은 위치가 아니더라도 도움 줄 곳을 살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일 거다. 아빠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니 혹시나 있을 사람을 높고 낮음으로 분류해서 되겠냐는 비난은 참아주길 바라며 적어 본다. 피튜니아는 지혜로워지면 친구들을 도와서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한다. 자신의 행복 추구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친구를 돕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목장의 골칫거리 피튜니아는 정말 기특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