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38
토미 웅게러 글 그림, 진정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감동받기를 강요받는 느낌이 드는 책이나 착하고 바르고 교훈적인 방향만 고집하는 책은 심심하고 재미없다. 보아뱀을 키우는 할머니가 어때서? 무시무시한 강도가 등장하거나 아이를 잡아먹는 거인이 나오는 얘기가 아이들의 의식 한구석에 흉악범의 씨를 심어놓는 것 같아서?? 나는 이러한 세상의 편견이나 선입견과 정면승부를 하는듯한 토미 웅게러의 책을 좋아한다. 기존 그림책의 선악 구조에 반기를 들고 예사롭지 않은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면서 전쟁, 폭력, 화해, 편견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재미가 있다. 다른 작품들에 견주어 <모자>는 토미 웅게러의 작품 중 아주 무난하고 밝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베니토 바도글리오가 전쟁에 참가해 다리 한쪽을 잃은 상이군인이라는 것과 행운의 모자 덕분에 상금을 받게 돼서 그 나무다리에 은바퀴를 달아 씽씽 달려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부분에서 살짝 토미 웅게러 식의 유머를 엿볼 수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연분홍 리본이 달린 비단 모자가 바람에 실려 베니토 바도글리오라는 가난하고 늙은 병사의 머리에 내려앉는다. 살아서 움직이는 모자임을 알아챈 바도글리오는 모자와 함께 곳곳에서 일어나는 위기의 순간에 구원자로 나선다. 떨어지는 화분에 변을 당할 뻔한 여행자를 구하는 일을 시작으로 동물원의 귀한 새를 산 채로 잡아 상금을 받기도 하고 기치를 발휘해 희생없이 강도를 생포하며 공을 세우기도 한다. 불이 붙은 채 계단을 굴러 내려가는 유모차를 붙잡아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말벌에 쏘인 채 도시 한복판을 질주하는 말을 세워서 마차에 탄 공주님을 구하기도 한다. 결국 바도글리오는 사랑에 빠진 공주님과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모자는 처음 바도글리오에게 날아올 때처럼 홀연히 새로운 주인을 찾아서 날아간다. 다음 주인공은 하늘만이 알고 있을 거라고 끝을 맺었지만 마지막 그림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해답이 있다.

모자는 바도글리오의 명령에 따라 때로는 독자적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 지구상 어디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면 빛의 속도로 날아오는 슈퍼맨처럼 말이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화분도 받고, 분수의 물을 받아 불이 붙은 유모차를 구하기도 하는 영웅이다. 또한 바도글리오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도 한다. 장미꽃 한다발을 담아 날아가기도 하고 결혼식 피로연에서는 샴페인을 담아 춤추기도 한다. 스스로가 주인을 찾아서 날아다니는 모자. 아마도 행운의 기회를 제대로 멋지게 펼쳐 보일 수 있는 사람에게로 향하는 것 같다. 내게도 날아와 준다면 무엇부터 할까? 언젠가 내 머리 위로 풀썩 내려앉을 모자를 기다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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