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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의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82
베라 윌리엄스 지음,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사는 어린 소녀가 있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이혼을 했거나 혹은 미혼모일 수 있는...사연이야 어찌 됐든 엄마의 일상이 고단했으리라 쉽게 짐작이 간다. 엄마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발이 아프다고 할 정도로 힘든 식당일을 하고 아이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가끔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넉넉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새 신발을 사주고 남의 집 화단에 핀 꽃도 돌아볼 작은 호사도 누리며 살아가는데 이 가정에 희망의 씨조차 남기지 않을 고난이 닥친다. 화재로 인해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그마저 있던 세간들이 죄다 타버린 것이다. 새 집으로 이사하던 날, 마음 따스한 이웃들은 식탁과 의자 세 개, 침대, 양탄자, 커튼, 주방도구들과 곰 인형까지 집안에 필요한 물건들을 나눠 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보태준다. 하지만 궁핍한 생활은 화재 이후 1년이 지나도 번듯한 소파 하나 장만하기 힘들어 피곤에 지친 엄마도 나이 든 할머니도 딱딱한 식탁 의자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서 의자를 사기 위해 큰 유리병에 동전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엄마는 식당에서 받은 팁 중에 동전들을, 아이는 식당에서 일을 도와주고 받은 동전의 절반을, 할머니는 시장에서 물건 살 때 아낀 돈을 병에 모으기 시작한다. 벨벳 바탕에 장미꽃 무늬가 가득한 안락의자를 위해서 말이다. 유리병에 동전이 가득 찬 날 세 식구는 가구점을 꼼꼼히 돌아보고 마침내 모두가 꿈꿔온 의자를 발견하게 된다.
단지 안락의자 하나뿐이었지만 집안에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고단함과 궁핍함을 몰아낸 느낌이 든다. 소파에 편안하게 앉은 엄마와 엄마의 무릎 위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세 식구를 넉넉히 품어주는 커다란 의자에 앉아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는 행복감이 묻어난다. 엄마는 딸아이와 함께 장난스런 표정으로 사진 찍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도 생긴다. 이 모든 게 다 의자가 불러온 희망의 바이러스가 작용한 탓이다. 단순히 동전을 모아 마련한 의자 하나, 하지만 그 안에는 가족들의 노고가 배어있고 의자를 넘어선 미래에 대한 소망이 담겨있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엄마를 돕고자 식당의 잔일도 마다않고 피곤한 엄마와 연로하신 할머니를 위해 동전을 모으는 아이도 기특하고, 이사하는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줄지어 작은 물건이라도 챙겨 나오는 정이 넘치는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라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유리병 안에 동전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에 나 또한 퍽퍽한 세상살이에 희망의 불씨들이 조금씩 커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되셔서 지금껏 고생하시는 내 엄마를 떠올려도 본다. 안락의자처럼 엄마의 노고를 덜어줄 수 있는 게 뭘까 잠시 고민도 해본다.
<엄마의 의자> 후속편 격인 베라 B. 윌리엄스의 <내게 아주 특별한 선물>에 의하면 이 아이의 이름은 로사란다. 바로 이 소파도 반갑게 등장한다. 그림은 세련된 편은 아니다. 하지만 테두리 그림을 챙겨보는 재미도 있다. 엄마가 일하는 블루타일 식당 장면에서는 블루타일이, 식탁 풍경에서는 주방도구들이, 화재로 잿더미가 된 집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는 꽃대가 꺾인 채 까맣게 타버린 꽃들이, 이웃사람들의 온정이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희망찬 노란색 꽃들이, 소원하던 의자를 트럭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축제날 하늘을 장식하는 깃발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책에 대해 깊이 공부를 한 건 아니지만 가끔 이렇게 그림책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책들에서 테두리그림에 신경을 쓴 작품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타샤 튜더의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테두리그림도 그렇고, 버지니아 리 버튼의 <케이티와 폭설>의 폭설에 전봇대가 파묻히는 과정을 그린 테두리그림도 기억난다. 이 책의 테두리 그림은 주인공들의 마음 상태라든지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작가가 신경을 쓴 부분인 듯하니 지나치지 말고 챙겨보길 바란다.
엄마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걸로 부족해서 요즘은 집안에서 엄마가 어디 움직이기만 하면 정말로 엉덩이에 손을 대고 졸졸 따라다니고 심지어 엉덩이에 뽀뽀까지 하는 내 아이. 엄마가 너무 좋아서 졸졸 따라다닌다는데 말로는 벌써부터 엄마한테 멋진 집도 지어주고 파란 미니쿠퍼도 사준다고 한다. 아들아, 차도 집도 괜찮으니 엄마 엉덩이에 뽀뽀해대는 그 마음만은 변치 말기를..^^